“성공의 배후에는 오로지 하나의 의지, 즉 가장 높은 다이빙대에서 장려하게 추락하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 상상력 사전>
1.
교도소장의 호출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딱 487일째 되던 날이었다. 차가운 쇠창살 너머로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빛을 헤아리던 참이었다. 내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회색 공간을 벗어난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인 시간. 소장의 집무실은 의외로 볕이 잘 들었다. 먼지 쌓인 서류 더미와 낡은 책장 사이로,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금빛 가루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자네 같은 존재도 이 사회에는 필연적이야. 일종의 필요악이랄까. 왜 그런지 아는가?”
소장은 두꺼운 뿔테 안경 너머로 지친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모된 레코드판처럼 건조하게 긁혔다. 나는 입을 다문 채, 벽에 걸린 빛바랜 액자 속 풍경화의 균열을 무심히 세고 있었다. 어차피 하루 뒤면 두 번 다시 볼 일 없는 얼굴이었다.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회에도 면역 체계가 필요하거든. 항체 말일세. 자네 같은 바이러스를 겪어봐야 비로소 건강해지는 법이지. 그런 녀석들을 다루면서, 법과 질서는 더 단단해지고, 사람들은 경각심을 배우지.”
그는 마치 심오한 진리를 설파하는 현자처럼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그의 논리 속에서 나는 사회의 건강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병균'이었다.
“그러니 너무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어쩌면 자네는 세상을 위한 거름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지. 뭐, 그런 숙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면 좀 위안이 될까? 말하자면… 거대한 유기체의 일부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셈이니까.”
그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 미소 비슷한 것을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햇살 아래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늘하고 끈적이는 그늘을 드리우는 듯했다.
“나잇살이나 훔친 이 미욱하고 자조적인 늙은이가 쓴 글일세. 그래도 한 번쯤은 찬찬히 곱씹어볼 만한 구석이 있을 거야. 자, 받아두게.”
그는 내게 낡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감옥으로부터의 명상>, 저자 김학수. 표지에는 온화하다 못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미소를 띤 저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방금 전 소장의 표정을 박제해 놓은 듯했다.
교도소 문을 나서자마자, 나의 첫 번째 행동은 가장 가까운 쓰레기통을 찾는 것이었다. 육중한 철문이 등 뒤에서 쿵, 하고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그 책을 구겨 더러운 오물 속으로 던져 넣었다. 단 한 줄도 읽지 않았다. 읽을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눈에 박힌 그 표지의 미소와, 소장의 얼굴, 그리고 ‘세상을 위한 거름’이라는 말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미줄처럼 들러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저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거리는 실들을 털어내려는 듯이. 하지만 그 점액질 같은 불쾌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삶이란 때때로 의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른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게 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나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갯내음처럼 스며 있는 곳. 하지만 그 기억들은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했고, 현실의 고향은 지겨운 햇빛과 나른한 바람만이 넘실대는 무료한 공간일 뿐이었다. 필사적으로 바빠지고 싶었지만, 시간은 맥없이 흘러 한가로움 속에서 부유했다.
한때 친구들과 뛰놀던, 바닷물이 질척거리며 발목을 적시던 갯벌을漫步했다. 돌 틈 사이에 숨어 사는 꾀바른 작은 게들을 찾아 무심히 돌멩이를 뒤집었다. 속으로는 샤를 푸리에가 꿈꿨던 ‘팔랑스테르’ 같은 이상적인 공동체를 갈망했지만, 현실의 나는 낡고 텅 빈 집을 홀로 지키는 외톨이였다. 뜨끈한 아랫목, 폭신하고 안온한 요에 누워 세상과 단절된 채 뒹굴고 싶다는 욕망이 간절했지만, 나는 어느새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라산 백록담의 장엄한 분화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모순되고 뒤틀린 시간 속에서,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을지도 모를, 그러나 가장 공허했던 날들이 흘러갔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세상 속으로 기어들어갈 준비를 해야 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설익어 시큼하거나 너무 익어 뭉크러진 노지 감귤을 조심스레 까먹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력서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 칸에는 그럴싸한 단어들을 주워섬겼다. ‘신중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친화력이 뛰어나고 늘 웃는 얼굴로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성실함과 책임감을 지녔다’. 끊임없는 욕구 불만, 깊은 좌절감, 세상에 대한 냉소와 같은, 익숙하게 내 영혼을 감싸고도는 어두운 용어들은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성실함과 긍정. 그것은 내가 팔아야 할 상품이었다. 완벽하게 조립된 자기소개서. 훌륭하게 빚어진 거짓말들이 끈적이는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면접관은 예상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고, 작은 체구의 나보다도 더 왜소했다. 그는 돋보기 너머의 흐릿한 눈으로 나의 ‘소설’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온화한 미소를 보냈다. 그는 나의 거짓된 글을 통해 나라는 인간을 이해했다고 믿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표정에 떠오른 그 안도감과 신뢰를 통해, 그가 나의 거짓말을 온전히 믿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서로의 오해 위에 위태롭게 쌓아 올린 신뢰.
“컨시어지? 허허, 그거 뭐 별거 있습니까. 어려운 거 하나도 없어요.” 그는 얄팍한 금속테 안경 너머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저 친절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친절하면 뭐든지 통하는 세상이에요. 안 그런가요?”
나는 진지하고 경건한 표정으로 가만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하긴, 내가 그 자리에서 뭐라고 반박할 수 있겠는가? 그의 말은, 적어도 그가 믿는 세상에서는, 너무나 명백한 진리였으므로.
그의 말처럼 골프장 클럽하우스의 컨시어지 업무는 놀랄 만큼 단순했다. 도착하는 손님들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무거운 골프 백을 꺼내 카트에 옮겨 싣거나, 라운딩을 마친 손님들의 백을 다시 트렁크에 실어주는 일이 전부였다. 물론, 입가에는 늘 달콤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로. 세상에 이렇게 간단하고 수월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마치 소풍 나온 아이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겁게 일했다.
차가 들어오면 반사적으로 달려나가 허리를 굽히고, 차가 없을 때면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이 붙은, 에어컨 바람이 약하게 새어 나오는 자그마한 사무실에 앉아 싸구려 일회용 커피를 마셨다. 손님들은 대개 비슷한 시간대에 몰려왔다. 바쁠 때는 정신없이 바빴고, 한가할 때는 지루할 정도로 한가했다. 그리고 제주도의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거나 섬 전체를 뒤흔들 듯한 강풍이 부는 날에는, 신기하게도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그런 날이면 나는 종일 텅 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창밖으로 펼쳐지는 잿빛 하늘과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나무들,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의 행렬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혹은 사무실 구석, 습기 찬 벽을 따라 달팽이가 남기고 간 은빛 점액질 흔적을 눈으로 천천히 따라가거나, 창밖으로 보이는, 아무렇게나 자란 노란 꽃의 개자리 풀밭을 무심히 응시하기도 했다. 무엇을 하든, 하루에 정해진 9시간의 노동 시간은 무심하고 꾸준하게 흘러갔고, 나는 생명을 간신히 연명할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돈을 벌었다.
나의 유일한 직장 동료는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박 씨였다. 그는 술, 특히 막걸리를 병적으로 좋아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무척이나 편안하고 속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어디선가 ‘즐거운 일을 함께한 사람보다 고통을 함께 나눈 사람에게 더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는 글귀를 읽은 기억이 났다. 실로 웃기는 소리였다. 유대감이나 친근함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전적으로 달라진다. 친근함은 좋은 사람에게서만 우러나온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규정하기를, 나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내게서 어떤 서늘한 반감이나 불쾌감을 느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재수 없는 놈>. 나는 내가 머무는 곳 어디든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친다. 그리고 나의 거미줄에 걸려드는 먹잇감은 대체로 순박하고 마음이 여린, 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에 비해 나는 너무나 영악하고 계산적이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퇴근 후 막걸리를 마셨다. 다른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오로지 막걸리. 하루에 한 병으로 시작해서, 두 병, 어떤 날은 세 병씩 비웠다. 막걸리 병이 비워지는 속도만큼, 나는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그는 스무 살,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 더 큰 세상을 보겠다며 일본으로 건너갔고, 무려 삼십 년이라는 세월을 그곳에서 보낸 뒤 쉰 살이 되어서야 고향인 제주로 돌아왔다고 했다. 일본인 아내와 함께.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대신 애지중지하는 애완견 다섯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들은 제주시 외곽의 좁고 낡은 빌라에 살고 있었다. 아내는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는데, 그의 말을 빌리자면, “도내에서 가장 아카데믹하고 훌륭한 섹스 박물관”이라고 했다. 그는 그 말을 할 때마다 껄껄 웃으며 눈가에 잔주름을 만들었다.
그는 나를 친동생처럼 아끼고 다정하게 대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더없이 좋은 먹잇감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검소했다. 외식 한번 하는 법이 없었고, 옷가지 하나도 해질 때까지 입었다. 그에게는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이 있었다. 마당이 있는 작은 주택을 마련하는 것. 그것은 평생 도시의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아내의 오랜 소원이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아주 조금씩, 그 꿈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그는 그 말을 굳게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나는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옆 좌석에는 그의 피와 땀, 그리고 아내의 소박한 꿈이 담긴 묵직한 돈 가방이 놓여 있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 무렵, 나는 기내 화장실로 들어가 용변을 보았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서 비누 거품을 내어 끈적거리는 듯한 손을 오랫동안 열심히 씻었다. 하지만 아무리 씻어도 그 미끈거리고 불쾌한 감각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마치 그의 선량한 믿음과 배신당한 꿈이 내 손바닥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2.
“난 그냥… 소박하게 지금을 살고 싶어. 당신처럼 미래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
그녀는 깊고 서글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빛 속에는 오랜 기다림에 지친 피로와 체념이 안개처럼 서려 있었다.
“제발, 뜬구름 같은 거창한 목표 같은 건 잠시 잊고 말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애절하게 떨렸다. “하루하루가 잔잔한 호수처럼 평형한 상태로, 그렇게 살아가는 거.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야.”
나의 약혼자는 내가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은 지 꼭 1년이 되던 해, 내 곁을 홀연히 떠나갔다. 미국에서의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정계에 뛰어든 것은, 어찌 보면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들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고, 더 높은 곳에 서고 싶었다. 결국, 남들처럼 살고 싶었던 것이다. 다만 그 ‘남들’의 기준이 조금 더 높았을 뿐.
성공적인 정치를 위한 기초 공사는 비교적 탄탄하게 다져두었다고 자부했다. 명문대 졸업장과 유학 경력으로 포장된 훌륭한 학벌, 선하고 신뢰감 주는 인상으로 계산된 외모, 유려하고 설득력 있게 다듬어진 말솜씨,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온화하고 여유로운 미소. 나는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다. 이 시대는 내용의 깊이보다는 형식의 화려함이 중요하고, 알맹이의 진실성보다는 겉치레의 그럴싸함이 실속을 압도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나는 유권자라는 집단을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더 이상 후보자의 복잡하고 따분한 정강 정책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후보자의 도덕성이나 정직함 따위는 이미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후보자의 출신 지역, 졸업한 학교, 호감 가는 생김새와 부드러운 미소, 듣기 좋은 목소리 톤, 세련된 옷맵시, 언론 노출 빈도,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자세, 그리고 때때로 터져 나오는 재치 있는 언변 같은 피상적인 요소들로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던진다는 것을. 그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어느 날, 나는 유력 정치인들의 명단을 펼쳐놓고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나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든든한 후원자, 아니, 좀 더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나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꼭두각시가 필요했다. 나의 미국 유학 비용을 묵묵히 책임졌던, 이제는 떠나버린 전 약혼자처럼, 나의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되어 줄 존재. 나는 새벽녘 농수산물 도매시장 한 귀퉁이에 버려진, 물러터지거나 흠집 난 단감을 주워와 주머니칼로 조심스레 깎아 먹으며, 노트북 화면에 또 다른 나를 창조해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작업은 이제 제법 익숙했다.
미국 유학 시절, 모 주지사의 선거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선거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고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물론, 실제로는 캠프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대신,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동기들로부터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들을 짜깁기하고 부풀려 그럴싸한 경험으로 둔갑시켰다.
‘끈기 있고 치열한 자세로 세상의 문제들과 정면으로 마주한다’고 적었다. ‘능숙하고 신뢰감 있는 소통 능력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설득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내면 깊숙이 들끓는 쉴 새 없는 감정의 기복, 세상에 대한 불만과 냉소, 존재론적 고통과 같은, 나라는 인간을 진정으로 수식하고 규정짓는 어둡고 솔직한 단어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우수한 학업 성적과 화려한 수상 경력 또한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했다. 실로 대단한 자기소개서였다. 전도 양양한, 새로운 시대를 이끌 젊은 일꾼의 탄생. 멋지게 포장된 공갈과 허위가 끈적거리는 투명한 막처럼 나를 감싸 안았다.
거만함이 뚝뚝 묻어나는 중진 국회의원은 나를 의례적으로 한번 흘낏 쳐다보았을 뿐, 이내 시선을 책상 위에 놓인 나의 자기소개서에 고정했다. 그는 영악한 나보다 한 수 위로, 더욱 교활하고 노련해 보였다. 그는 나의 과장되고 부풀려진 경력들을 마치 감동적인 서사시라도 읽는 듯 음미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나의 교묘한 기만을 통해 나의 능력을 신뢰한다고 믿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탐욕스럽고 계산적인 표정을 통해, 그가 나의 야망을 위한 튼튼한 버팀목, 아니, 조종하기 쉬운 허수아비로 손색이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정치? 허허, 그거 뭐 별거 있어? 어려운 거 하나도 없다니까.” 그는 두툼하게 살이 오른 볼살을 보기 좋게 흔들며 호탕하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집무실의 값비싼 가구들 사이를 공허하게 맴돌았다.
“그냥 그럴싸하게 보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이게 바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고. 그럴싸하면 뭐든지 다 통하는 세상이니까. 안 그런가, 젊은 친구?”
나는 깊은 공감을 표하며 확신에 찬 모습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뭐, 내가 그 자리에서 뭐라고 감히 반박할 수 있겠는가? 그의 말은 이 추악한 정치판에서 불변의 진리였고,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했으니까.
그의 말대로, 그를 보좌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나는 주로 정보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통제와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 우리 측에 불리한 정보는 교묘하게 감추거나 왜곡하고, 유리한 정보는 최대한 부풀려 확산시키는 일이었다.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 그 정의는 명료했지만, 실행은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고, 어려운 듯하면서도 쉬웠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 한번 노출된 정보는 완벽하게 숨기거나 삭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정보를 차단하는 대신, 유사하지만 핵심을 비껴나간 가짜 정보들을 대량으로 창조하여 온라인 공간에 범람시키는 전략을 주로 사용했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무엇이 정작 중요한 정보인지 판단력을 잃고 혼란에 빠지기 마련이었다.
요즘 세상은 가히 졸작들의 과잉 시대라 할 만하다. 누구나 너무나 쉽게 무엇이든 만들고, 그리고, 작곡하고, 창조하고, 글을 쓰고, 그럴싸하게 꾸며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원본을 교묘하게 베끼거나 유사하게 만드는 것은 더욱 쉬워졌다. 수많은 아류와 모방 속에서 진정한 독창성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비평가들조차 무엇을 주목하고 평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이용하는, 탁월한 짜깁기의 대가였다.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는 검색 몇 번이면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곳저곳의 기사나 논평들을 가져와 적당히 버무리고, 자극적인 사례들을 덧붙이고, 논점을 살짝 비틀어서, 사건의 맥락을 내 의도대로 재구성하여, 최대한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포장하면 그만이었다. 대중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혼탁하고 끈적이는 거미줄 세상. 나는 그 거미줄을 능수능란하게 설계하고 엮어내는, 명민한 통찰력을 지닌 창조자였다.
나는 내가 가공한 기사나 논평을 인터넷에 게시할 때마다 속으로 주문처럼 외쳤다. “아브라카다브라! <내가 말한 대로 이루어질지어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속임수와 허상이 만들어내는 가짜 세상 속에서 기묘한 위안과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창조물’에 만족한 나의 허수아비는 점점 더 나를 신뢰하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거대한 권력이라는 그늘막, 그 뜨락 깊숙한 곳에 나 자신을 꼭꼭 숨겼다. 아무도 나의 진짜 모습, 나의 진짜 의도를 모른다는 사실을 마음껏 향유했다. 고개를 들어, 저택의 높은 처마 밑, 어둡고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제비집처럼, 나는 칸살이 촘촘히 붙은 내 보이지 않는 침대에 편안히 누워 지냈다. 급전직하하며 추락하는 한국 정치의 어두운 이면에서, 변함없이 총애와 신임을 받으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
적어도, 그 망할 놈의, 다리를 저는 신문사 기자가 파리처럼 집요하게 내 주변을 맴돌며 캐묻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야! 이게 얼마 만이냐! 너 맞지?”
녀석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까맣게 잊고 지냈던, 아니, 잊으려고 필사적으로 외면했던 오래된 공포가 차가운 해일처럼 온몸을 덮쳐왔다.
3.
거대한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예보가 있었다. 섬 전체가 숨 막히는 긴장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수송기 정비가 주특기인 나에게, 이런 궂은 날씨는 내심 반가운 소식이었다. 왜냐하면, 악천후 속에서는 모든 비행 스케줄이 취소되고, 따라서 우리 정비병들에게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활주로와 계류장에 있던 항공기들을 최대한 거대한 격납고 안으로 이동시켰고, 미처 들여놓지 못한 비행기, 헬리콥터, 그리고 관련된 지상 장비들은 강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굵은 쇠사슬과 로프로 단단히 결박했다. 살갗을 태울 듯이 내리쬐던 찌는 듯한 더위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바람이 점점 그 세기를 더하며 거칠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서늘하고 습한 공기가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상쾌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서늘함이 찾아왔다. 비상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7 내무반 소속 상병 이하 전원. 집합 장소는 행거(Hangar) 안, 우리가 매일같이 기름때 묻은 손으로 만지고 정비하는 구닥다리 수송기, C-123 내부였다. 그곳은 우리에게 알려진 최악의 집합 장소였다. 육중한 좌우측 도어와 항공기 후미의 거대한 로딩 도어까지 모두 닫히고 나면, 그 안은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밀실이 되었다. 그 속에서 어떤 끔찍한 참사가 벌어진다 해도 바깥에서는 그 어떤 비명이나 신음 소리 하나 들을 수 없었다. 비행기 자체는 당장 폐차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고 덜덜거리는 고물 화물차보다 더 초라하여 ‘과연 이런 쇳덩이가 하늘을 날 수 있긴 한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방음 장치 하나만큼은 최신예 항공기 못지않게 완벽했다.
집합 명령을 내린 것은 ‘사이코’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윤 병장이었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불쾌하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행거로 향하는 발걸음이 보이지 않는 공포의 무게에 짓눌려 후들거렸다. 함께 걷고 있는 동기 오 상병과 김 상병의 얼굴에도 나와 같은, 짙은 두려움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삑,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행거 측면의 작고 녹슨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텅 빈 듯 넓은 공간에 뚱뚱하고 볼품없는 회색 수송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악명 높은, 베트남 전쟁 당시 정글 위로 치명적인 고엽제를 살포했던 바로 그 기종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에게 또 다른 종류의 공포와 오명을 안겨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윤 병장의 집합 장소는 그날그날 그의 기분과 분노의 수위에 따라 주로 세 군데로 나뉘었다. 내무반, 외부 화장실 뒤편, 그리고 비행기 내부. 내무반에서의 집합은 비교적 가벼운(?) 수준의 구타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주로 뺨을 후려치거나, 군대 은어로 흔히 ‘쪼인트 깐다’고 알려진, 군홧발로 정강이를 걷어차는 행위, 혹은 젖꼭지를 비틀거나 꼬집는 등의 비교적 소음 발생이 적은 가벼운 형벌들이 주를 이루었다. 군대 내에서의 구타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된 상황이었기에, 가끔 원칙을 중시하는 깐깐한 당직사관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통제 불능의 사이코라지만, 윤 병장도 내무반에서는 최소한의 눈치를 보며 폭력을 행사했다.
다음 단계는 화장실, 정확히는 부대 외곽에 위치한 낡은 외부 화장실 뒤편의 후미진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맨주먹과 군홧발, 그리고 때로는 각목이나 야전삽 자루 같은 둔기가 동원되었다. 폭력의 강도는 내무반보다 훨씬 강했지만, 시간은 비교적 짧게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이곳 역시 아주 가끔이지만, 유난히 부지런하고 의욕 넘치는 당직 사령관이 순찰을 돌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현장에서 발각되면 변명의 여지없이 곧바로 헌병대에 인계되어 영창 신세를 져야 했다. 이미 상병 시절에 폭행 사건으로 영창을 경험한 적이 있는 이 사이코는, 헌병대에 끌려가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했다. 그래서인지 화장실 뒤편 집합은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작되어 후다닥 해치우듯 끝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최악의 장소는 바로 비행기 안이었다. 나는 자대에 배치받고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맞닥뜨렸던 비행기 집합의 지옥 같은 공포를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모든 문이 닫히고 나면, 비행기 내부는 천장에 매달린 비상등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하고 탁한 노란 불빛만이 감도는 아득한 공간으로 변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두꺼운 기체 벽 너머로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무한한 공포가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흘렀다. 그리고 어김없이 시작되는 상급자의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폭행.
군홧발이 인정사정없이 가슴팍과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맞는 순간의 육체적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절대로 쓰러져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었다. 다른 장소라면 차라리 맞는 순간 충격에 못 이기는 척 쓰러지는 것이 충격을 완화하고 폭행을 빨리 끝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소위 ‘짬밥이 어느 정도 찬’ 상병쯤 되면, 축구 시합에서나 볼 법한 ‘할리우드 액션’의 달인이 되곤 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며 멋지게 나뒹굴어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송기 내부는 좁고, 바닥과 벽은 온통 차갑고 딱딱한 강철로 이루어져 있었다. 부드러운 카펫과 안락한 쿠션 의자가 마련된 민간 여객기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만약 쓰러져서 기체 내부의 돌출된 부분이나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그 통증과 부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자칫하면 뼈가 부러지거나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맞더라도, 아니 맞을수록, 이를 악물고 두 발로 버텨 서야 했다. 그것이 주먹이든, 발이든, 심지어 쇠파이프든 상관없이 말이다. 쓰러지는 순간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두툼하고 어딘가 기형적으로 보이는 몸집의 윤 병장이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행기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등장과 함께 공기의 밀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홱, 하고 우리를 쏘아보는 그의 살기 어린 시선에 심장이 얼음송곳에 찔린 듯 날카롭게 뛰기 시작했다. 바늘 끝처럼 예리한 공포가 온몸의 신경계를 찌르르 관통하며 발끝까지 내려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자신의 군화 끈을 더욱 단단하게 조여 매기 시작했다. 그 느리고 의도적인 동작 하나하나가 우리의 공포를 극대화했다.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제대로 서 있기조차 쉽지 않았다. 나는 흐르지도 않는 식은땀이 눈에 들어간 듯, 계속해서 눈을 껌뻑거렸다.
마침내, 윤 병장의 찢어진 듯 가느다란 눈길이 내게 와 닿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의 군홧발 앞코에 묻은 희미한 기름때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그 비릿하고 음험한 시선이 내 온몸을 샅샅이 훑고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부터 익숙한, 그러나 매번 새로운 종류의 공포가 차갑게 찔러왔다.
그리고 이내, 예고 없이 폭력이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겁에 질린 신음과 짧은 비명, 둔탁한 타격음이 뒤섞여 귀청을 따갑게 두드렸다.
싸늘한 침상에 피곤하고 멍든 몸뚱이를 뉘이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납덩이처럼 무거운 통증이 숨 막히게 짓눌러왔다. 어림잡아 군홧발로 적어도 열 대 이상은 맞은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때리다 지쳤는지 아니면 변덕이 생겼는지, 녀석이 옆에 놓여 있던 쇠파이프를 집어 들기를 포기했다는 점이었다. 가슴 전체가 골고루, 그러나 집요하게 쑤시고 결렸다. 숨을 쉴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육신의 고통은 차라리 견딜 만했다. 정말 참기 힘든 것은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상실감조차 무뎌진 듯한 깊은 비참함과 무력감이었다. 게다가 저 정신병자 같은 녀석과 앞으로 족히 1년은 더 한 공간에서 숨 쉬고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는 끔찍한 현실이었다.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인간과 같은 내무반에서, 같은 침낭에 몸을 누이고 지새워야 하는 밤들이 셀 수 없이 남아 있다는 사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의 바늘을 내 손으로 붙잡아 미래로 확 잡아당겨 버리고 싶었다. 앞으로 당길 수 없다면, 차라리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서라도, 이 인간을 만나지 않아도 되었을 수많은 가능성의 순간 중 하나로 도망치고 싶었다.
지난 1년은 어떻게든 정신없이 버텨왔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지만, 그럭저럭 견뎌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도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나 자신의 정신 상태를 온전히 신뢰하기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부지불식간에, 서서히 저 괴물 같은 녀석을 닮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 안에 잠재된 폭력성과 분노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터져 나와,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꿈꿔왔던 내 삶의 계획과 미래를 송두리째, 한순간에 파괴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이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 병장과 나는 입대일이 불과 5개월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그가 나보다 무려 네 살이나 어리다는 점이었다. 그는 대학에 갓 입학하자마자 입대했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다가 입대했다. 만약 내가 대학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한 학기를 휴학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는 나의 아랫 졸병이 되었거나, 최소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입대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운명의 잔인한 장난이었다.
사실 군 입대는 나의 인생 계획에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나의 꿈은 정치학, 그중에서도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특히 이승만 정권 이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 세력들이 어떻게 교묘하게 권력의 중심부에 남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망쳐놓았는가에 대한 강한 지적 호기심과 분노를 오랫동안 느껴왔다. 나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 단 한 번도 학자의 길을 벗어나 다른 삶을 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건설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믿었던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거액의 부도를 내고 행방불명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나의 꿈을 산산조각 냈고, 나를 원치 않던 이곳, 군대라는 현실로 내몰았다.
4.
바람 소리가 점점 더 격렬해졌다. 마치 수백 마리의 굶주린 늑대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행거의 얇은 철판 벽을 두들겼다. 하필이면 오늘 밤, 윤 병장과 같은 조로 불침번 근무가 편성되었다. 밤사이 상황실에서 만난 당직사관은, 오늘 밤 03시경에 태풍의 눈이 이곳 상공을 지나갈 것이라며, 시설물 관리와 경계 근무에 특히 만전을 기하라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녀석과 단둘이 불침번을 서게 되면 여러 가지로 피곤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다. 우선, 그의 줄담배를 위해 내 담배를 넉넉하게 상납해야 했고, 가까이 다가설 때마다 풍기는 역겨운 입 냄새와 몸에서 나는 퀴퀴한 땀 냄새를 견뎌야만 했다. 게다가 녀석은 단 한 번도 지정된 근무 초소에서 제대로 불침번을 선 적이 없었다. 그가 즐겨 찾는 아지트는 격납고에서 약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버려진 채 방치된, 낡은 공구 보관용 막사였다. 그는 그곳 어두컴컴한 구석에 숨어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아예 드러누워 잠을 청하곤 했다. 녀석이 그 비밀스러운 구석으로 기어들어가면, 나는 근무 시간 내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당직사관의 불시 순찰 전에, 반드시 녀석을 찾아 깨워서 제자리로 데려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근무지 이탈 현장을 들키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함께 근무를 선 나에게도 돌아올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날 밤. 기록적인 위력의 강력한 태풍이 섬 전체를 집어삼키려 하던 그 밤. 녀석은 평소보다 더욱 대담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결정을 내리고 나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번에는 격납고에서 무려 200미터나 떨어진, 활주로 확장 공사 현장에 임시로 지어진 인부들의 숙소 건물에 가 있겠다는 것이었다.
몇 달 전부터 기지 내에서는 대규모 활주로 확장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공사를 하는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우리 같은 말단 사병들은 알 길이 없었다. 아무튼, 공사판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인부들을 위한 간이 식당과 숙소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윤 병장, 이 녀석은 그때부터 거의 매일같이 그곳에 드나들며 인부들 틈에 끼어 점심이나 저녁을 때우곤 했다. 물론 사병 신분으로 영외의 민간 식당을 이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 발각되면 이유 불문하고 바로 영창행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규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담하고 뻔뻔하게 거의 매일같이 그곳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식당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와는 모자지간처럼 허물없이 지낼 정도로 친해져 있었다.
나이 차이가 거의 서른 살은 넘게 나는데도, 녀석은 스스럼없이 ‘누나, 누나’ 하고 부르며 식당 아주머니에게 살갑게 달라붙어서, 공짜로 얻어먹거나 외상으로 사제 밥을 우걱우걱 처먹곤 했다. 우리가 이 기막힌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 이유는, 녀석이 단 한 번도 자기 돈으로 밥값을 치르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내무반의 졸병들을 번갈아 한 명씩 불러내어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는 듯 함께 밥을 먹고는, “내가 특별히 너만 데려온 거야. 다른 놈들한테는 비밀이다” 따위의 생색을 있는 대로 내면서, 결국 우리에게 밥값을 떠넘기거나 착복하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치졸하고 역겨운 인간이었다.
녀석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거대한 격납고 안은 이제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낡고 군데군데 노란 래커칠이 벗겨진 3층 높이의 철제 계단 난간에 기대선 나는, 태풍이 쏟아내는 광란의 교향곡, 온갖 종류의 소리가 일어나고 스러지고 격렬하게 변주하며 휘몰아치는 어둠의 심연을 마주하고 있었다. 드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거대한 군용기들.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짐승들처럼, 강풍에 몸을 떨며 끽끽거리는 신음 소리로 바람과 소통하고 있었다. 행거 지붕 어디선가 빗물이 새어 들어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려왔다.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빗물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가느다란 물방울의 차가운 감촉.
나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 내 온몸을 불쾌하게 감싸고도는 보이지 않는 끈적거림. 감옥에서 풀려나던 날 느꼈던 그 불쾌한 감각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했다. 이런 종류의 느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조용히 증식하고 독기를 내뿜으며, 이상하리만치 강력하게 주변 공간으로 뻗어 나갔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문득 난생처음 겪는 듯한 생경한 종류의 그리움에 젖어 들기도 했다.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얗고 매끄러웠던 이마. 햇살 아래 반짝이던 가느다란 잔머리. 얇지만 단호했던 입술의 선. 달빛 아래서 유난히 빛나던 작은 귀걸이. 처음 그녀의 볼에 손을 대었을 때 느꼈던 예상외의 차가움. 깊은 슬픔과 연민이 담겨 있던 다갈색의 반짝이는 눈동자. 가녀리고 앙상했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던 매끄러운 실크 블라우스의 촉감. 단순하지만 기품 있었던, 소박한 명주로 안감을 댄 스커트. 나는 어쩌면 그 순간, 이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내가 살아야 할 이유, 버텨내야 할 명분을 본능적으로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나에게 너무나 가혹했고,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그녀에게, 부드러운 모슬린 천으로 만든, 깊고 푸른 바다 빛깔의 드레스를 입혀주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곤 했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이게 현실인걸요. 당신도 알잖아요. 저… 저를 재정적으로 안정되게 지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더 이상 당신만 기다릴 수는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헬리오트롭처럼 청초한 보랏빛 스웨터를 입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반짝이는 첼로 케이스를 불안한 듯 만지작거리며,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말했다. 나는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긴 뭐, 내가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녀의 말은 너무나 현실적이었고, 그것 또한 이 냉혹한 세상의 이치인 것을.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
이런 과거의 잔상과 현재의 절망, 현실과 몽환이 뒤섞인 기이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는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마치 세상 전체를 삼켜버릴 듯한, 더욱 격렬해진 폭풍의 울부짖음이 행거 전체를 뒤흔들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두껍고 뻣뻣한 우의를 걸쳐 입었다. 머리에 쓴 철모의 턱끈을 숨 막힐 정도로 바짝 조였다. 마치 날카로운 가시로 엮어 만든 화관을 쓴 것처럼 턱과 목 주변이 따갑고 불편했다. 나는 격납고의 작고 무거운 철문을 있는 힘껏 열어젖히고, 미친 듯이 울부짖는 태풍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문이 열리는 순간, 거칠고 사나운 비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얼굴과 온몸을 인정사정없이 강타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강풍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공사장 불빛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굳건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나는 공사장 입구에 도착했다. 임시로 지어진 합판 건물은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여러 가닥의 굵은 밧줄들이 강풍 속에서 공포에 질린 듯 덜덜덜 떨고 있었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속을 어렴풋이 비추는 작고 초라한 봉창이 빗물에 젖어 더욱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다용도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건물을 묶고 있는 밧줄들을 하나씩, 하나씩, 아주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자르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끈적끈적한 밧줄들이 칼날 아래서 거칠게 저항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나의 손목을 휘어 감고 뒤틀리며 발악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밧줄 한 가닥까지 정확하고 깨끗하게 잘라 버렸다. 자유를 얻은 밧줄의 끝자락들이 어둠 속에서 잠시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바람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했던 모든 속박의 줄들이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시원하고 강력한 바람이 아무런 방해 없이 내 귓가를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쳐갔다.
밧줄이 끊어지자, 건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삽시간에 더욱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림의 강도가 점점 더 거세어지더니, 이내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종잇장처럼 찌그러지고 꼬부라졌다. 그리고는 마치 거대한 축구공처럼, 바람에 밀려 활주로 위를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무언가 단단한 것에 부딪히며 짜부라지는 굉음과 함께, 어둠과 폭풍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다.
거짓말처럼, 태풍이 지나가자 섬에는 깊고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윤 병장은 원래 있던 공사장 건물터에서 무려 300미터나 떨어진 활주로 배수로 근처에서 발견되어 군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의병 제대 판정을 받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한쪽 다리가 아주 심하게,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부러졌다고 했다. 나는 뜻밖에도 14박 15일이라는 파격적인 포상 휴가를 받았다. 악천후 속에서도 실종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고군분투한 영웅적인 행동이 부대 내에 귀감이 되었다는 것이 표창 이유였다.
나는 바로 그때, 그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이제 세상 속으로 나아갈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나의 오랜 유충 시절은 끝났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한 마리, 작고 영리하며, 때로는 치명적인 독을 품은,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가련하고 귀여운 구석마저 있는 거미로 완벽하게 변신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 그리고 영혼의 눈은 모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인식하게 되었다. 입가에는 나도 모르게 미세한 거품이 북적거리기 시작했고, 등 뒤 항문 언저리에서는 무언가 끈적하고 강인한 실 같은 것이 비죽이 튀어나오려는 기미를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어둡고 텅 빈 공간, 그 위 어딘가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 나만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거미줄을 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