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후, 내 세계에는 절대적인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것은 평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망각이라는 이름의, 살아있는 죽음이었다. 나는 친청(秦城)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베이징 교외에 위치한, 중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 하지만 내가 수감된 곳은 평범한 죄수들이 머무는 곳이 아니었다. 독립된 건물에 마련된, ‘특별’ 감방이었다.
나의 새로운 감옥은 이전보다 훨씬 넓고 깨끗했다. 햇볕이 잘 드는 창문이 있었고, 푹신한 침대와 개인 화장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매일 세 번, 영양사가 짠 최고급 식사가 제공되었다. 그들은 나를 죄수처럼 대하지 않았다. 마치 요양원에 온 귀한 손님처럼 대했다.
나는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육체적 고통은 오히려 나를 순교자로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이 내게 내린 형벌은 훨씬 더 교묘하고 잔인한 것이었다. 바로 ‘완벽한 고립’과 ‘철저한 무시’. 그들은 나를 이 안락한 감옥에 가두어두고, 세상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마녀’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해한 늙은이로 조용히 썩어가도록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나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무대가 감옥으로 바뀌었을 뿐. 나는 그들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 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었다. 감방 안을 걷거나 태극권을 하며 체력을 단련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들은 내게 책을 제공했다.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마오쩌둥의 저작들. 그들은 내가 이 낡은 이념의 세계에 갇혀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책들을 읽으며 나의 신념을 더욱 견고히 했다.
나의 가장 큰 투쟁은 ‘침묵’과의 싸움이었다. 간수들은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들은 내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기계처럼 움직일 뿐이었다. 내가 말을 걸어도, 그들은 대답하지 않거나 단답형으로만 응대했다. 나는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논쟁을 원했다. 나의 사상을 변호하고, 그들의 모순을 공격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앞에는 단단한 침묵의 벽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벽에 대고 소리쳤다. 허공에 대고 연설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나의 공허한 목소리뿐이었다. 이것이 그들의 진짜 고문 방식이었다. 나에게서 ‘관객’을 빼앗아버리는 것. 배우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은, 텅 빈 객석 앞에서 홀로 독백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딸 리나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유일한 핏줄.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나를 면회 오는 것이 허락되었다. 나는 그녀를 통해 바깥세상의 소식을 듣고, 나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려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억울함과 투쟁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리나는 나의 기대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나의 자랑스러운 ‘혁명의 후계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평범한 여자, 평범한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의 정치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 제발 이제 그만하세요. 세상은 변했어요. 과거는 잊고, 그저 편안히 지내세요.”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애원했다. 나는 그녀의 나약함에 분노했다.
“잊으라고?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이냐! 이것은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혁명의 명예가 걸린 문제다! 너는 마오쩌둥의 딸이다. 어떻게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이 저 배신자들의 손에 더럽혀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그녀가 처음으로 내게 소리쳤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제 죄수예요! 제발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저와 제 남편, 그리고 제 아이를 위해서라도… 제발 조용히 계셔주세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배신감에 온몸이 떨렸다. 나의 딸마저 나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그녀는 혁명의 대의보다, 자신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시민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녀가 가져온 과일 바구니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나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너 같은 겁쟁이는 내 딸이 아니다!”
면회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녀가 울며 돌아간 뒤, 나는 감방에 홀로 남아 텅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남편도, 동지도, 그리고 이제 마지막 남은 핏줄마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의 투쟁은 나 혼자만의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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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강물처럼 흘렀다. 1983년, 나의 형은 사형 집행유예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들은 나를 죽일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감형 소식은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사형이든, 무기징역이든, 이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를 괴롭힌 것은 외부 세계의 변화였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중국의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서양의 영화와 음악이 흘러나왔고, 젊은이들은 청바지를 입고 디스코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내가 목숨을 걸고 파괴하려 했던 그 ‘부르주아적’ 문화가, 이제 중국 대륙을 뒤덮고 있었다.
내가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이 부정당하고 있었다. 순수했던 혁명의 이상은 이제 ‘가난한 사회주의’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마오쩌둥 사상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박제되어갔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계급투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돈을 버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나는 이 모든 변화를 신문을 통해 지켜보며, 무력감과 분노에 몸을 떨어야 했다. 나의 혁명은 실패했다. 완벽하게. 내가 피를 흘려 지키려 했던 붉은 강물은, 더러운 자본의 황금빛 강물에 완전히 뒤덮여 버렸다.
나는 자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무의미한 생을 끝내고 싶었다. 이렇게 잊혀진 채, 내가 증오하는 세상의 번영을 지켜보며 살아가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나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젓가락을 목구멍에 쑤셔 넣기도 했고, 양말을 꼬아 목을 매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감시 카메라를 통해 나를 지켜보던 간수들에게 발견되어 실패했다. 그들은 나의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살려두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복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84년, 나는 인후암 진단을 받았다. 내 목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지독한 아이러니였다. 내 평생의 무기였던 나의 목소리가, 이제 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거부했다.
“수술을 하면 목소리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그 말에 나는 결심을 굳혔다. 나는 내 목소리를 잃을 수 없었다. 비록 지금은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독백일지라도, 목소리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내가 여전히 살아있는 혁명 투사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였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투사의 목에 어찌 너희 같은 부르주아 의사들이 함부로 칼을 댄단 말이냐! 나는 너희의 치료를 거부한다!”
나는 그렇게 외치고 의사를 쫓아냈다. 나는 암과 함께 살기로 했다. 이 육체의 고통이, 나의 정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당 중앙에 편지를 썼다. 덩샤오핑에게 직접 보내는 편지였다. 나는 그의 개혁개방 정책을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지도력을 칭찬했다. 그리고 나의 남은 여생을, 그와 함께 살았던 중난하이에서 보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이것은 나의 굴복이 아니었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전략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 감옥을 나가고 싶었다. 감옥 밖으로 나가야만, 나에게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었다. 세상이 나를 잊었을지라도, 세상에는 여전히 나의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 마지막 투쟁을 준비하고 싶었다.
나의 요청은 당 지도부 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나를 감시하기 편하도록 중난하이에 두자는 의견과, 정치의 중심부에 나를 두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의견이 맞섰다. 결국, 결정은 덩샤오핑의 손에 넘어갔다.
그는 나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늙고 병든 나를. 감옥에 갇힌 죄수인 나를. 그는 내가 여전히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거절 소식을 듣고, 실망하는 대신 기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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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봄, 중국은 다시 한번 거대한 격랑에 휩싸였다. 베이징의 학생들이 민주화와 부패 추방을 요구하며 천안문 광장을 점거한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광장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내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느꼈다.
저것은 반란이다!
비록 그들의 구호가 내가 외쳤던 것과는 다를지라도, 그 본질은 같았다. 낡은 권위에 대한 도전.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갈망. 나는 20여 년 전, 나의 홍위병들을 떠올렸다. 저 순수한 열정, 저 맹목적인 용기.
나는 이 사태가 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덩샤오핑의 정권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 혼란 속에서, 마오쩌둥의 이념이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개혁개방이 가져온 빈부격차와 부패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강력한 지도자와 순수한 혁명의 시대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태도를 바꾸었다. 나는 덩샤오핑을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보라! 저것이 당신들이 말하던 번영의 결과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부패를 낳고, 인민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마오 주석께서 살아계셨다면, 그리고 내가 권력을 잡고 있었다면, 결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베이징 거리에서 인민을 향해 총을 쏘는 그런 야만적인 짓은 하지 않았다!”
나의 이 발언은 비밀 문건을 통해 당 지도부에 보고되었다. 그들은 나를 더욱 위험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통제는 다시 강화되었다. 나는 사실상의 가택연금 상태에서,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다.
6월 4일, 덩샤오핑은 군대를 동원하여 천안문 광장의 학생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탱크에 깔리고 총에 맞아 죽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하는 대신 차가운 희열을 느꼈다.
덩샤오핑, 당신은 끝났다. 당신은 인민의 피를 손에 묻혔다. 당신은 이제 역사 앞에서 영원한 학살자로 기록될 것이다. 나와는 다르다. 나는 비록 많은 사람들을 숙청했지만, 그것은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비무장한 학생들을 학살했다. 역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나는 희망에 부풀었다. 이제 곧 다시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10년만 기다리면, 혁명의 노선은 반드시 부활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희망은 또다시 꺾였다. 덩샤오핑은 천안문 사태 이후에도 건재했다. 그는 더욱 강력한 통제로 사회를 안정시켰고, 경제 성장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세상은 나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1990년, 나는 완전히 절망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의 육체는 암세포에 의해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었고, 나의 정신은 끝없는 패배감에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나는 살아있는 화석이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과거의 유물.
나는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삶, 나의 투쟁, 나의 진실을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내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깨닫게 될 뿐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혁명? 인민? 아니면 단지 나 자신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위해?
나는 내가 쓴 원고를 모두 찢어버렸다. 나의 삶은 기록으로 남길 가치조차 없는, 한 편의 추악한 실패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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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봄, 나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고열에 시달렸고, 음식을 거의 삼킬 수 없었다. 나는 베이징 공안병원으로 옮겨졌다. ‘리륀칭’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나의 마지막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었다.
병원에서 나는 마지막 편지를 썼다. 덩샤오핑에게 보내는 저주의 편지였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쟁이이며, 마오 주석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기만했다.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피고이며, 결코 편히 죽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투쟁이었다. 초라하고, 무력한, 언어의 투쟁.
그리고 나는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간수들의 감시 아래 실패를 거듭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죽음을, 완벽하게 계획된 마지막 연기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딸 리나에게 부탁해, 비단 손수건을 하나씩 가져오게 했다. 그것이 무엇에 쓰일 것인지, 그녀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5월 13일.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지 정확히 25년이 되는 날. 나는 나의 유서를 썼다.
“마오 주석, 당신의 제자이자 전우였던 제가 이제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그의 이름을 빌렸다. 마지막 허세이자, 마지막 자기기만. 어쩌면 나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그림자 속으로 도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이름으로 죽는 것이 두려워서. ‘장칭’이라는 이름이 짊어져야 할 모든 죄의 무게가 버거워서.
그리고 5월 14일 새벽. 나는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준비해 둔 비단 손수건 묶음을 문고리에 걸고, 의자 위에 올라섰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 삶을 돌아보았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상하이의 네온사인, 옌안의 황토 동굴, 천안문 광장의 함성, 그리고 이 차가운 감옥의 침묵. 모든 것이 한 편의 긴 꿈처럼 아득했다. 나는 내 평생 무엇을 좇아왔던가. 권력? 복수? 사랑? 결국 내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낡고 병든 육신과, 지울 수 없는 죄의 기억뿐.
나는 졌는가? 이긴 것인가?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덧없었다.
나는 의자에서 발을 뗐다.
…잊혀진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9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