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의 10월

by 남킹


10월 9일, 월요일. 발렌시아의 공휴일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이 밝았다.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은 계절의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지중해 특유의 깊고 투명한 사파이어 빛을 머금고 있었고, 가을이라 부르기엔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대기 중에 잔잔히 감돌았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아침의 정적은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예고 없이 시작된 건너편 아파트의 외벽 공사 소음이 마치 성벽을 공략하는 공성추처럼, 굳게 닫힌 창문을 뚫고 실내로 밀려들었다. 둔탁한 망치질 소리와 날카로운 전동 드릴의 금속성 비명이 뒤섞여, 의도치 않은 불협화음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했다. 오늘은 모처럼 공휴일의 은총 속에서, 흐트러진 생각들을 모아 글로 엮어내고 싶었건만, 예상치 못한, 아니 어쩌면 이곳에서는 너무나 예상 가능한 방해꾼이 나의 작은 계획을 무참히 짓밟고 있었다.

책상 한구석, 언제 적어두었는지 모를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스페인다운 것과 스페인답지 않은 것의 경계는 희미한 안개와 같다." 이곳, 발렌시아에서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의 삶과 일하는 방식은 바로 그 안개 속 경계를 넘나들며 나를 당혹감과 매혹 사이 어딘가에 붙들어 맨다. 특히 저 건너편 공사 현장을 무심히 관찰하고 있노라면, 내가 알고 있던 시간의 물리적 법칙마저 이곳에서는 다르게 적용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인부들은 마치 영원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순례자처럼, 벽돌 하나하나에 우주의 무게를 싣듯 신중하고도 느긋하게 쌓아 올린다. 담배 한 대를 태우는 동안의 망중한,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이 식어갈 때까지 이어지는 달콤한 휴식.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마치 슬로우 모션 비디오를 보는 듯 답답하리만치 여유롭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러한 '만사태평'은 내 안의 조바심을 들쑤시는 짜증의 근원이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일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에 익숙했던 나에게, 그들의 리듬은 이해 불가능한 나태함으로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 느긋한 리듬에 스며들어, 이제는 그들의 휴식 시간마저 풍경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나 자신을 발견한다. 어쩌면 효율성이라는 잣대만이 세상을 재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발렌시아의 거리를 걷다 보면, 몇 주, 몇 달, 심지어 해가 바뀌어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같은 모습으로 방치된 공사 현장들과 마주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푸른 방수포가 너덜거리며 바람에 흩날리는 낡은 비계,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시멘트 포대, 주인을 잃은 듯 무심하게 놓인 연장들. 그 풍경은 마치 현대적인 폐허처럼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결코 작업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와는 다른, 그들만의 유구한 시간 개념 속에서 묵묵히, 그러나 꾸준히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 버려진 듯한 공사 현장을 우연히 다시 지나게 될 때, 예고 없이 나타난 기적처럼 말끔하게 완공된 건물이 아침 햇살 아래 눈부시게 서 있는 광경에 놀라곤 한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인처럼, 그 건물은 도시의 풍경 속에서 당당하게 제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이곳의 시간 감각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열린 길, 닫힌 마음

바로 어제가 그런 경이로움을 목격한 날이었다. 나의 집에서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해변으로 곧장 이어지는,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공사 중이라는 팻말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그 직선 도로. 수년 동안 붉은 테이프와 육중한 공사 장벽에 가로막혀 있던 그 길이 마침내, 마치 오랫동안 참아왔던 숨을 터뜨리듯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장벽이 걷힌 자리에는 매끈하고 반듯한 아스팔트 길이 마치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검은 실크 리본처럼, 저 멀리 수평선을 향해 거침없이 뻗어 있었다. 그 길의 끝에는 분명 눈부신 바다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을 법한 그 새로운 길 위에는 오가는 차량이나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마치 초대받지 못한 연회장처럼 텅 비어 있었다. 주민들은 여전히, 마치 몸에 밴 오래된 습관처럼, 익숙하지만 불편한 우회로를 택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 신호등이 유난히 많은 번잡한 길.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그 새 길을 앞에 두고,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예전에 다니던 길 쪽으로 향하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습관이란 이토록 강력하고 질긴 것인가. 오랫동안 돌아가는 길에 길들여진 발걸음과 사고방식은, 눈앞에 펼쳐진 더 넓고 빠른 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이내 익숙한 불편함 속으로 회귀하고 만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라는 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 나은 길, 더 효율적인 방법, 더 행복한 선택지가 눈앞에 명백히 존재한다 해도, 우리는 종종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안락한 감옥, 혹은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기꺼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길을 향한 설렘보다는, 돌아가는 길의 예측 가능한 불편함이 주는 안정감을 더 선호하는 것일지도.

가을의 노래, 시인의 숨결

오랜만에 서재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불협화음의 공사 소음과 함께, 소금기를 머금은 듯한 지중해의 미풍(微風)이 방 안으로 부드럽게 밀려들었다. 상반된 두 감각의 공존. 소음의 침입을 잠시 잊기 위해, 나는 습관처럼 유튜브를 열어 이브 몽땅(Yves Montand)의 깊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찾았다. 이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고엽(Les Feuilles Mortes)'의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방 안의 공기를 감쌌다. 가을바람에 힘없이 떨어져 쌓여가는 낙엽처럼, 시간 속에 흩어지고 바래가는 추억과 사랑에 대한 노래.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 쟈끄 프레베르(Jacques Prévert)의 시에 작곡가 조셉 코스마(Joseph Kosma)가 영혼을 불어넣은 이 곡은, 가을이라는 계절이 품은 보편적인 우수와 상실의 감정을 완벽하게 대변한다.

노래는 기억의 풍경을 눈앞에 펼쳐 놓는다. 어느덧 싸늘해진 밤, 거리의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이의 손을 잡고 걷던 순간의 온기.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던 낙엽들의 속삭임, 그 소리에 파묻혀 나누었던 비밀스러운 대화들. 그리고 시간이라는 무심한 강물에 휩쓸려 흔적 없이 흩어져버린 약속과 웃음들. 이브 몽땅의 목소리는 삶의 희로애락을 겪어낸 자의 깊은 연륜처럼, 이 모든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듣는 이의 가슴 깊은 곳을 촉촉하게 적신다. 발렌시아의 가을은 내가 자라온 한국의 가을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온 산을 붉고 노랗게 물들이는 극적인 단풍의 향연이나,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바람 대신, 아주 미묘하고 점진적인 변화만이 감지될 뿐이다. 햇살의 각도가 조금 낮아지고, 공기의 밀도가 살짝 달라지는 정도. 하지만 계절이 선사하는 서정, 특히 가을이 불러일으키는 내면의 성찰과 그리움의 정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은 언어로 가슴속에 스며드는 모양이다.

쟈끄 프레베르. 그의 시는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다.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언어로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하여 영원으로 끌어올리는 마법. 그의 또 다른 시, '알리칸테(Alicante)'를 떠올리며 노트 위에 그 구절들을 옮겨 적어본다.

탁자 위에 놓인 오렌지 한 개 (Une orange sur la table)

양탄자 위에 흩어진 너의 옷들 (Ta robe sur le tapis)

그리고 내 침대 속에 잠든 너 (Et toi dans mon lit)

지금 이 순간은 부드러운 현재 (Doux présent du présent)

밤이 가져다준 신선함 (Fraîcheur de la nuit)

내 삶에 스며든 따사로움 (Chaleur de ma vie)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들이 압축되어 있는 이 시는, 이곳 스페인 남동부, 지중해 연안의 삶이 가진 본질적인 정서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 달콤한 과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함, 그리고 현재라는 순간에 대한 충만한 긍정. 알리칸테. 발렌시아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그 도시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지 모르나, 유럽인들에게는 오랫동안 꿈꿔온 태양과 휴식의 동의어다. 에메랄드빛 지중해의 따스한 물결이 맨발의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며 흐르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 그곳에서는, 아마도 누구나 프레베르처럼 시인이 되어 사랑과 현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어질 것이다. 단순한 것들 속에 깃든 충만함, 그것이 바로 지중해가 품은 매력일 테다.

붉은 그리움, 해 질 녘의 독백

어느덧 시간은 흘러, 서재의 창문으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이 점차 짙은 붉은 기운을 띠기 시작했다. 빛은 길고 비스듬한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방 안의 사물들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벽에 걸린 그림, 책장의 책들, 나의 그림자까지도 온통 석양의 붉은 물감으로 덧칠되는 시간. 나는 다시 펜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관찰이나 사색이 아닌, 내 안 깊숙한 곳에서 피어오르는 그리움을 종이 위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수문을 여는 것과 같았다.

바람은 저 높은 플라타너스 나무 꼭대기에서, 보이지 않는 무희처럼 나른하고도 우아한 춤사위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아직 새벽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지요.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가 맨살 위에 차가운 점묘화를 그리던 그런 날.

저는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이제는 이름조차 희미해진 곁가지 오솔길로 굳어버린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고 있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흘러간 시간의 무게가 발목을 잡아끄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기억 속으로의 힘겨운 순례였습니다.

세월의 더께를 입은 구부정한 소나무들이 침묵 속에 늘어선 길, 그 휘어진 가지들 사이로 언뜻,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마치 겁먹은 짐승처럼 서글프게 뒷걸음치는 듯 보였습니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찾아, 당신의 부재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제 혼란스러운 마음이, 오랜 방황 끝에 마침내 하나의 또렷한 형체를 갖추어 제 눈앞에 일렁이는 파고(波高)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흔들리는 물결처럼,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어떤 일정한 리듬을 간직한 채로 말입니다.

문득, 당신의 얼굴에 희미하게 패어 있던, 살짝 주름진 입가의 미소가 기억의 표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그러했듯, 마음속 깊은 곳의 아픔이나 슬픔을 감추려 애써 고개를 돌리곤 했지요. 하지만 그 애처로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그을린 듯한 다갈색 뺨 위로 소리 없이 흘러내리던 두 줄기 눈물 자국을 온전히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마치 오래된 상흔처럼, 시간이 흘러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제게 참으로 여러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변화무쌍한 계절처럼.

때로는 살을 에는 겨울의 북풍처럼 차갑고 매섭게 돌아서서 제 가슴에 얼음 파편을 박아 넣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새 눈부신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고 너그러운 품으로 저를 힘껏 안아주었지요.

까끌까끌한 현실의 날카로운 모서리로 예기치 않은 상처를 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상처 입은 짐승을 어루만지듯,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위로의 손길로 저의 아픔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당신은 제게 겨울이자 봄이었고, 상처이자 치유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얼굴은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지금 제 곁에는 당신의 부재만이 거대한 실체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빈자리가 만들어내는 공허함 속에서, 핏빛처럼 선명한 붉은 그리움이 자꾸만 제 눈시울을 뜨겁게 물들입니다. 온 세상을 삼킬 듯 타오르는 저녁노을 같은 그리움, (그것은 너무도 강렬하고 아름다워 오히려 눈물이 솟구치는 종류의 감정입니다) 당신을 향한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은, 해가 서쪽 하늘 너머로 기울수록 더욱 그 색을 짙게 더해만 갑니다.

지중해의 석양은 어째서 이토록 처연하도록 붉을까요.

먼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못하는 뱃사람들의 사무친 한(恨)이 푸른 물결 위에 녹아들어 저 하늘까지 번진 것일까요.

아니면, 항구에 남아 떠나간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 그 간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아 붉게 물들어서일까요. 어쩌면, 그저 제 마음속 그리움이 투영된 풍경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웃고 울었던 그 시간들은 이제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기억의 앨범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 느꼈던 감촉, 공기의 냄새, 당신의 목소리 톤 같은 감각적인 기억들만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기억이라는 그림의 가장자리는 세월의 풍파에 조금씩 흐릿하게 마모되어 갈지라도, 그 그림의 중심, 가장 밝게 빛나는 자리에 자리한 당신의 미소, 특히 슬픔을 감추려 애쓰던 그 미소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합니다.

이곳, 발렌시아의 이국적인 가을, 당신 없이 홀로 맞이하는 이 계절의 문턱에서, 저는 다시 펜을 들어 이 넘실대는 그리움에 색을 입히려 합니다. 붉게, 아주 짙고 깊은 붉은색으로. 마치 저 하늘을 온통 뒤덮은 지중해의 강렬한 석양처럼.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물감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당신의 희미한 흔적들을 하나하나 다시 정성껏 그려나갑니다. 부재를 현존으로 바꾸려는, 덧없는 몸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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