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12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아직 날개를 접지 않았다
— 불법 계엄 1주년, 시민의 위대한 승리와 잔존하는 파시즘의 망령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
제1장: 동지(冬至)의 전야, 그 서늘했던 역사의 파열음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나선형의 궤적을 그리며 회귀한다고 니체(Nietzsche)는 설파했던가. 우리는 정확히 1년 전, 그토록 시리고 매혹적인 공포의 밤을 기억한다. 12월 3일, 대지의 열기가 식고 만물이 침잠하는 그 겨울의 입구에서, 대한민국 헌정사(憲政史)는 예기치 못한 파열음을 내며 비명(悲鳴)을 질렀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말한 '예외 상태(Ausnahmezustand)'의 강제적 현현(顯現)이었으며, 주권자의 권능을 찬탈하려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의 기괴한 하품과도 같았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흩날리던 것은 눈발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탑을 무너뜨리려는 야만의 파편들이었다. 계엄(戒嚴). 그 두 글자가 전파를 타고 망막에 꽂혔을 때, 우리의 의식은 순간적으로 1979년의 10월이나 1980년의 5월이라는 트라우마적 시공간으로 강제 소환되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진보를 향해 굴러간다는 헤겔(Hegel)의 믿음은, 그날 밤 둔탁한 군화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질 위기에 처했었다. 헌법이라는 성스러운 계약 문서는 휴지 조각이 될 운명에 처했고, 광장은 침묵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보라. 그 절망의 크로노스(Chronos)적 시간을 찢고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시민(Citizens), 즉 깨어있는 데모스(Demos)의 집단지성이었다. 그것은 플라톤이 우려했던 중우(衆愚)가 아니었다. 그것은 칸트가 말한 '계몽된 이성'의 실천적 표상이었으며, 아렌트(Arendt)가 찬양했던 '공적 영역(Public Sphere)'에서의 위대한 행위(Action)였다. 국회로 향하던 시민들의 발걸음은 마치 성난 파도와 같았으나, 그 내면에는 법치와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 흐르고 있었다. 바리케이드와 경찰 버스의 차벽(車壁)을 맨손으로 밀어내던 그들의 손끝에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헌법 1조의 숭고한 무게를 다시금 체감했다.
그날 밤, 밤하늘은 칠흑처럼 어두웠으나 지상에서는 수천, 수만 개의 휴대폰 불빛이 은하수처럼 흐르며 저항의 서사시를 써 내려갔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짓된 권력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몰아내는 진리의 섬광(閃光)이었고, 얼어붙은 민주주의의 동토(凍土)를 녹이는 뜨거운 심장의 박동이었다.
제2장: 승리의 현상학, 그리고 아고라의 부활
계엄 해제 가결의 망치 소리가 국회의사당의 돔을 울렸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의결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체제)으로 회귀하려는 반동의 세력을 향한 역사의 단호한 심판이자, 헌정 질서의 복원이라는 거룩한 의식(Ritual)이었다.
우리는 그 승리를 통해 무엇을 확인했는가? 한국 민주주의가 더 이상 연약한 묘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4.19의 피와 5.18의 통곡, 6.10의 함성으로 다져진 이 땅의 민주주의는 이제 거대한 거목(巨木)이 되어, 어떤 폭풍우에도 뿌리 뽑히지 않음을 증명했다.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관찰하며 경이로워했던 그 시민적 결사체의 힘보다, 12월 3일 한국의 시민들이 보여준 자발적 연대와 저항의 미학은 더욱 숭고하고 처절하게 아름다웠다.
시민들은 두려움을 용기로 치환(置換)하는 연금술사들이었다. 그들은 총구 앞에서도 헌법을 낭독했고, 탱크 앞에서도 자유를 노래했다. 이것은 폭력에 대한 비폭력의 승리였으며, 야만에 대한 문명의 승리였고, 거짓에 대한 참됨의 승리였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한 '역사의 천사'가 만약 그 현장을 목격했다면, 그는 잔해를 바라보며 슬퍼하는 대신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꽃을 보며 미소 지었으리라.
이 승리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쾌거다. 현대 정치학의 교과서들은 민주주의의 퇴행(Backsliding)을 우려하고 있었으나, 한국인들은 그 퇴행의 시계바늘을 맨손으로 멈춰 세웠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권위주의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시그널을 보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명제를 비틀어버린, 진정한 민주적 권력의 원천을 보여준 것이다.
제3장: 히드라의 머리는 잘렸는가? - 잔존하는 반란의 그림자
그러나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우리의 잔은 아직 독배(毒杯)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1주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냉철한 이성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과연 반란의 세력은 완전히 척결되었는가? 과연 그날 밤의 주동자들과 그들에 동조했던 부역자들, 그리고 침묵으로 방조했던 기회주의자들은 역사의 단두대 위에서 합당한 심판을 받았는가?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그리스 신화 속의 히드라(Hydra)처럼, 반란의 머리는 하나가 잘리면 그 자리에서 두 개의 독사 머리가 솟아오르는 형국이다. 그들은 이제 군복을 벗고 양복을 입은 채, 혹은 법복(法服)의 권위 뒤에 숨어, 혹은 언론이라는 거대한 확성기 뒤에 숨어 자신들의 과오를 정당화하고 역사를 왜곡하려 든다.
그들은 말한다. "그것은 구국의 결단이었다"라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라고. 아, 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후안무치한 레토릭(Rhetoric)인가! 이것은 전형적인 가해자의 논리이며, 악(Evil)의 평범성을 가장한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며 느꼈던 그 '생각 없음(Thoughtlessness)'의 공포가, 21세기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내란의 잠재적 동조자'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 자체를 혐오하며, 효율과 질서라는 미명 하에 독재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들에게 헌법은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일 뿐이며, 시민은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가짜 뉴스(Fake News)라는 독버섯을 배양하여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고, 진실의 거울을 깨뜨리려 한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내전(Civil War)이며, 총성 없는 전쟁이다.
더욱 통탄스러운 것은, 법의 칼날이 이들에게 닿을 때마다 무뎌진다는 사실이다. 사법 정의(Judicial Justice)는 때때로 정치적 타협이라는 명분 아래 휘어지고, '국민 통합'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 아래 면죄부가 남발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불의(Injustice)와 타협하는 것은 통합이 아니라 야합(野合)이며, 그것은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는 행위다.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고 새살이 돋기를 바라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불가능한 망상이다.
제4장: 므두셀라의 나무처럼 깊게 박힌 뿌리를 향하여
반란 세력의 잔재가 이토록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전근대적인 위계질서와 권위주의적 심성(Mentalité)이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민지 경험과 군사 독재,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축적된 '힘의 숭배' 문화가 여전히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그들은 카르텔(Cartel)을 형성하여 서로의 치부를 가려주고, 이권(利權)을 공유하며, 자신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았다. 그 성벽은 너무나 높고 단단하여, 시민의 함성만으로는 쉽게 무너뜨릴 수 없어 보인다. 그들은 엘리트주의라는 갑옷을 입고 대중을 개돼지로 취급하며, 자신들의 특권을 천부인권인 양 착각한다.
이 잔존 세력을 척결하는 것은 단순히 몇몇 주동자를 감옥에 보내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것은 일종의 문화적 혁명(Cultural Revolution)이자, 의식의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을 요구하는 과업이다. 푸코(Foucault)가 말한 '미시 권력(Micro-power)'의 그물망 속에 숨어 있는 파시즘의 포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소각해야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미디어 속에서 은연중에 작동하는 차별과 배제, 억압의 기제들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계엄령은 언제든 다른 가면을 쓰고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제5장: 망각과의 투쟁, 그리고 시지프스의 신화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라고 했다. 1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외부에 있는 반란군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스며드는 '망각'이라는 달콤한 마취제다.
시간은 고통을 무디게 하고, 분노를 희석시킨다.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12월 3일의 충격은 점차 퇴색되어, 교과서의 한 페이지나 박물관의 박제된 기록으로 남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비극을 박제하는 순간, 그 비극은 생명력을 잃고 화석이 된다. 우리는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존해야 한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며, 기억해야 할 때 잊는 것은 공범이 되는 길이다.
우리의 투쟁은 시지프스(Sisyphus)의 형벌과도 닮아 있다.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지는 부조리한 운명. 그러나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우리는 시지프스를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바위를 밀어 올리는 그 투쟁의 과정 자체에 인간의 존엄과 실존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상태(State)가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Process)이다. 반란 세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바위를 굴러떨어뜨리려 할 때마다, 우리는 묵묵히, 그러나 결연하게 다시 그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그 고단한 반복 속에 역사의 진보가 숨 쉬고 있다.
제6장: 에필로그 - 겨울의 맹세,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다시 12월이다. 창밖에는 1년 전 그날처럼 차가운 바람이 분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겨울바람 속에 봄의 기운이 잉태되어 있음을. 셸리(Shelley)의 시구처럼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는 희망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의 철칙이다.
우리는 승리했다. 하지만 그 승리는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아직 어둠 속에 숨어 번뜩이는 늑대들의 눈빛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잠들 수 없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날개를 편다고 했다. 이제 막 어스름이 깔린 이 역사의 변곡점에서, 우리는 올빼미의 지혜로운 눈으로 시대를 감시해야 한다.
반란 세력에게 고한다. 너희는 잠시 어둠을 틈타 세상을 훔치려 했으나,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 너희가 숭배하는 권력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나,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민주주의는 바위처럼 단단할 것이다. 너희의 이름은 역사의 오물로 기록될 것이나, 시민의 이름은 영원한 별빛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 밤, 우리는 다시 촛불을 켠다. 1년 전의 그 절박했던 마음을 담아, 그러나 이제는 승리의 확신과 미래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담아 촛불을 든다. 이 작은 불꽃들이 모여 거대한 횃불이 되고, 그 횃불이 반란의 잔재를 남김없이 태워버릴 때까지, 우리의 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저 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보라. 윤동주가 노래했던 그 별들은 부끄러움을 아는 자들에게만 비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반란의 후예들이여,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 전율하라. 그리고 위대한 시민들이여, 서로의 어깨를 걸고 이 시린 겨울을 건너가자. 찬란한 봄, 진정한 민주 공화국의 완성을 향하여, 우리의 숭고한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12월 3일, 그 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고. 그리고 그 시작을 만든 것은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바로 당신, 이름 없는 시민들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