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겨진 레비아탄: 로켓이라는 환상과 독점의 민낯
여기, 자본의 욕망이 빚어낸 거대한 바벨탑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편의라는 달콤한 앰브로시아(Ambrosia)에 취해 스스로의 영혼을 담보로 맡겼던 계약서가 불길에 휩싸이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그러나 한국의 골목과 혈관을 점령한 거대 기업 쿠팡(Coupang)의 계정이 전방위적으로 유린당했다는 비보는, 단순한 전산 오류나 보안의 허점이 아니다. 이것은 21세기 디지털 자본주의가 잉태한 기형적인 괴물, 그 레비아탄(Leviathan)의 비늘이 뜯겨나가는 역사적 사건이자, 독점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낳은 필연적 비극의 서막이다.
이 글은 무너져 내리는 신전 앞에서 부르는 애가(哀歌)이자, 그 폐허 위에서 쏘아 올리는 날 선 비판의 화살이다. 나는 이 지면을 빌려 쿠팡이라는 시스템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잠식했고, 그들이 쌓아 올린 독점의 성벽이 얼마나 위태로운 사상누각(沙上樓閣)이었는지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인간성과 시장의 정의를 철학적 사유와 역사의 거울을 통해 통렬하게 해부하고자 한다.
1장: 욕망의 파놉티콘과 뚫린 방패
새벽 3시, 도시의 불빛이 사그라든 시간에도 쿠팡의 물류센터는 멈추지 않는 심장처럼 박동한다. 그곳은 벤담(Jeremy Bentham)이 고안하고 푸코(Michel Foucault)가 비판했던 '파놉티콘(Panopticon)'의 완벽한 디지털 재현이다. 노동자들의 동선은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간수에 의해 감시당하고, 그들의 땀방울은 데이터로 치환되어 '로켓'이라는 이름의 추진체가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부를 향한 그토록 철저한 감시의 눈동자는 외부의 침입자 앞에서는 맹인과 다를 바 없었다.
계정이 뚫렸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디와 패스워드의 조합이 노출되었다는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에게 있어 '자아(Self)'의 일부가 강탈당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소비 패턴, 주소, 취향, 금융 정보가 집약된 그 계정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페르소나(Persona) 그 자체다. 쿠팡은 고객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맡기면, 내일 새벽 문 앞에 행복을 배달해주겠다"고 속삭였다. 이것은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넘길 때 맺었던 계약과 흡사하다. 편의성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대중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그 거대한 성벽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묻지 않았다.
이번 해킹 사태는 그 '신뢰의 성역'이 얼마나 허술한 기만 위에 세워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트로이 목마는 성문 밖에 있지 않았다. 우리가 환호하며 맞아들인 '로켓 배송'이라는 목마의 배 속에, 이미 멸망의 씨앗이 잉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객의 정보를 금고 속의 보물이 아니라, 그저 마케팅을 위한 연료로만 취급했던 그들의 오만함이, 결국 아킬레스건을 드러내고 말았다.
2장: 독점의 히드라, 시장을 질식시키다
쿠팡의 죄악은 보안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그들이 시장 내에서 행사해온 무소불위의 권력, 즉 '독점(Monopoly)'의 폭력성에 있다. 그들은 초기에 막대한 자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라는 수혈을 통해 적자를 감수하며 경쟁자들을 고사시키는 '약탈적 가격 책정(Predatory Pricing)' 전략을 구사했다. 이것은 마치 로마 제국이 속주들을 병합하며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말살하고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획일적 질서를 강요했던 것과 같다.
동네의 작은 서점, 옷가게, 중소 온라인 몰들은 쿠팡이라는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양성은 효율성이라는 칼날 아래 거세당했다. 쿠팡은 플랫폼의 지위를 이용하여 입점 업체들에게 최저가를 강요하고, 자신들의 PB(Private Brand) 상품을 교묘하게 상위에 노출시키는 알고리즘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심판이 선수로 뛰면서 호루라기를 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자유 시장 경제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주창한 '보이지 않는 손'은 쿠팡의 알고리즘이라는 '보이는 손'에 의해 비틀렸다. 그들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준다는 미명 하에, 실상은 자신들이 설계한 미로 속에 소비자를 가두었다. 이 미로 속에서 우리는 주체적인 소비자가 아닌,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사육된 가축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욱이 쿠팡의 독점은 노동 시장의 황폐화를 불러왔다. '쿠팡맨' 혹은 '쿠팡친구'라 불리는 배송 기사들과 물류센터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현대판 시시포스(Sisyphus)다.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영원히 반복해야 했던 시시포스처럼, 그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물량을 처리하며 육체와 영혼을 소진한다. 새벽 배송이라는 기적은 누군가의 밤잠과 건강, 때로는 목숨을 갈아 넣어 만든 피 묻은 빵이다. 과로사로 쓰러진 노동자들의 비명은 로켓의 소음에 묻혀 세상 밖으로 들리지 않았다. 쿠팡은 혁신 기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19세기 산업혁명 당시의 착취적 노동 구조를 21세기 첨단 기술로 포장하여 재현하고 있다.
3장: 사막의 왕 오지만디아스의 몰락
영국의 시인 셸리(P.B. Shelley)는 시 <오지만디아스>에서 거대한 석상의 잔해를 묘사하며 권력의 무상함을 노래했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로다. 너희 강대하다는 자들아,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그러나 그 곁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오직 황량한 모래벌판만이 뻗어 있을 뿐이었다.
지금 쿠팡이 겪고 있는 위기는 오지만디아스의 석상에 금이 가는 순간이다. 계정 해킹으로 인한 전 국민적 분노는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의 둑을 터뜨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가 숭배했던 그 거대한 시스템이 실은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유린하고, 이웃 상인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며,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었다는 사실을.
미국 증시에 상장하며 '글로벌 기업'의 위용을 뽐냈지만, 정작 한국 시장에서의 책임은 회피하려는 그들의 이중적인 태도는 '검은 머리 외국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익은 본사로 송금되지만, 위기의 비용은 한국 사회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 이것은 현대판 제국주의적 수탈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이버 보안의 붕괴는 곧 신뢰 자본의 파산이다. 화폐가 신용에 기반하듯, 플랫폼 기업은 사용자의 신뢰를 먹고 산다. 그 신뢰가 깨진 순간, 아무리 빠른 배송과 저렴한 가격도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 비난이 쇄도하는 것은 단순히 내 정보가 털렸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동안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었던 그들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비윤리적인 경영 행태에 대한 총체적인 심판이다.
4장: 폐허에서 피어나는 성찰의 꽃
이제 우리는 멈춰 서서 질문해야 한다. 쿠팡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함의는 무엇인가?
첫째,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경종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으며, 인간의 존재 양식을 규정한다"고 했다. 우리는 더 빠른 것, 더 편한 것을 추구하며 기술에 종속되었다. 쿠팡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상품을 사고, 그들이 정해놓은 시간에 물건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며 우리는 사유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이번 사태는 기술이라는 거울이 깨지면서, 그 파편에 비친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게 만든 사건이다.
둘째, 독점의 해체와 공존의 가치 회복이다. 생태계의 건강함은 다양성에서 온다. 단일 경작(Monoculture)은 병충해에 취약하여 한 번에 전멸할 위험을 안고 있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쿠팡이라는 거대 공룡 하나가 지배하는 시장은 외부 충격에 극도로 취약할 수밖에 없음이 증명되었다. 우리는 이제 동네의 작은 가게들, 다양한 색깔을 가진 플랫폼들이 공존하는 '다채로운 숲'을 복원해야 한다. 효율성이 떨어질지라도, 그 안에는 인간적인 교류와 상생의 따스함이 존재한다.
셋째, 윤리적 소비의 필요성이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사회를 '소비의 사회'로 규정하며, 우리는 상품의 사용가치가 아닌 기호가치를 소비한다고 했다. 쿠팡을 이용하는 행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속도'와 '효율'이라는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기호 뒤에 가려진 노동의 고통과 독점의 폐해를 직시해야 한다. 나의 편리함이 타인의 고통을 담보로 한다면, 나는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윤리적 결단이 필요하다.
에필로그: 카산드라의 예언을 넘어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으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비운의 예언녀 카산드라. 오늘날 수많은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이 쿠팡의 독점과 노동 문제, 보안 취약성을 경고해왔으나, 그 목소리는 로켓 배송의 환호성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이제,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성벽은 뚫렸고, 불길은 치솟고 있다.
그러나 모든 몰락은 새로운 시작을 잉태한다. 그리스 신화의 불사조(Phoenix)가 잿더미 속에서 다시 날아오르듯, 우리는 이 디지털 재앙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시장 질서를 설계해야 한다. 그것은 거대 자본이 독식하는 정글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이어야 한다. 알고리즘의 차가운 계산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흐르는 장터여야 한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은 로켓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을 비추는 은은한 별빛이어야 한다. 쿠팡의 계정이 뚫린 이 사건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잃어버렸던 '공공의 선(Common Good)'과 '인간 존엄'을 되찾는 거룩한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거대한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가 멈춘 지금, 비로소 인간의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붕괴의 끝이 아니라, 각성의 시작이기를. 저 차가운 디지털의 바벨탑이 무너진 자리에, 상생과 연대라는 이름의 소박하지만 단단한 집들이 지어지기를 바란다. 우리의 소비가 탐욕의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아니라, 삶을 가꾸는 경건한 행위로 거듭나야 할 때다.
지금, 당신의 문 앞에 놓인 것은 택배 상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시대의 청구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