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츠와프의 푸른 밤

by 남킹


제니아. 그 이름 석 자를 속삭이는 것만으로도 메마른 공기는 순수한 백합의 향기로 가득 차는 듯했다. 혹은 이제 막 첫눈이 내리기 시작한 고요한 새벽녘, 차갑게 얼어붙은 창문에 서리는 입김처럼 포근하고도 아련한 향취였다. 그 향기는 무중력 상태의 눈송이처럼 소리 없이 내려앉아, 오랫동안 두꺼운 빙벽에 갇혀 있던 내 마음의 표면 위에서 속절없이, 그러나 황홀하게 녹아내렸다. 브로츠와프의 밤은 깊고 푸른 벨벳, 그것도 가장 값비싸고 희귀한 염료로 물들인 듯한 비현실적인 색감의 벨벳처럼 도시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서서히 어둠의 심연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밤의 장막이 짙게 드리워질수록 도시는 중세의 마법사가 드리운 듯한 신비로운 베일에 싸여갔고, 축축하게 젖은 아스팔트 위 거리에는 저녁의 가장 뜨거운 심장을 향해 흘러드는 자동차들의 행렬이 붉고 흰 빛의 용암처럼 꿈틀거리는 강을 이루었다. 그 장엄한 빛의 행렬은 의심할 여지 없이, 수백 년 역사의 고색창연한 숨결과 21세기 현대의 약동하는 활기가 마치 연인처럼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도시의 중심부, 리네크(Rynek), 즉 구시가지 광장을 향하고 있을 터였다.

택시의 창밖으로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도시의 불빛들은 무수한 색채의 깨진 유리 파편이 되어 어두운 차 안으로 스며들었고, 그 변화무쌍하며 현란한 빛의 유희는 제니아의 매끄러운 뺨 위에 이제 막 피어나는 작약처럼 연하고 수줍은 분홍빛 홍조를 아른거리게 했다. 깊은 밤하늘의 색을 닮은, 수정처럼 투명한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창밖의 풍경, 즉 짙은 어둠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저마다의 빛을 발하는 도시의 생명력을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호기심과 함께, 이제 막 시작된 이 여정에 대한 설렘을 가득 담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섬세한 표정에는 거센 파도 뒤의 고요한 바다처럼 잔잔하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명백한 행복감이 고혹적인 아우라처럼 감돌았다. 그 행복감은 전염성이 강해서, 옆에 앉은 나에게까지 스며들어 심장을 미세하게 떨리게 만들었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밤공기는 폐부 깊숙이 스며들 때 서늘했지만, 동시에 갓 세수한 듯 상쾌했고, 그 미세한 바람결에 그녀의 부드러운 밤색 머리카락 몇 올이 실내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가볍게 춤을 추었다. 창밖에는 가늘고 고운 안개 같은 비가 소리 없이, 그러나 대지를 적시기에 충분할 만큼 시원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그 비는 마치 도시 전체를 부드럽고 투명한 수채화 물감으로 섬세하게 덧칠하는 듯했고, 가로등과 중세풍 건물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은 이슬 맺힌 축축한 대기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번져나가며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내 마음속 가장 깊은 저장고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정성껏 숙성된 최고급 빈티지 포도주처럼 풍요롭고 진하며 치명적이기까지 한 연정을 애써 감추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 격렬한 감정의 홍수가 예고 없이 둑을 넘어 무방비하게 흘러넘쳐 그녀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조차 들킬까 봐, 나는 조심스럽게 가능한 가장 무표정한 가면을 찾아 쓰려 애썼다. 그러나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내 손바닥에는 주체할 수 없는 긴장과 터질 듯한 설렘이 뒤섞인 끈적한 땀이 흥건히 배어 나왔고, 그 미세한 축축함마저도 이 순간에는 역설적이게도 사랑스럽게, 살아있음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손은 내 손에 비해 작고, 어쩌면 노동으로 인해 조금은 투박하며 다소 딱딱한 느낌이었지만, 내 손안에서 끊임없이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들의 미세한 움직임, 그 생동하는 감촉과 온기가 나에게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심오한 위안을 선사했다. 그것은 마치 길 잃은 나그네가 마침내 발견한 따뜻한 안식처와 같았다.

차가 붉은 신호등 앞에서 아스팔트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멈춰 서자, 택시 운전사가 룸미러 너머로 우리를 향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풍성하게 자란 회색빛 구레나룻과 눈가에 자잘하게, 그러나 깊게 자리 잡은 주름들이 지난 세월의 풍파와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고, 그 꾸밈없고 진솔한 모습은 그를 어떤 인위적인 꾸밈이나 과장 없이 선량하고 성실한, 이 도시의 익명의 시민으로 자유롭게 표현해주었다. 그는 마치 오래된 동화 속에서 막 걸어 나온 현자처럼, 혹은 밤의 도시가 품은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우아한 그림자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폴란드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은 구슬픈 억양이 실려 있었고, 마치 오래된 첼로의 선율처럼 귓가에 감겨들었다. 제니아의 답변은 그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치 준비된 대본처럼, 혹은 샘에서 솟아나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녀는 운전사와 대화하는 동안에도 나를 힐끗 쳐다보며 입가에 장난기 어린, 그러나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었고, 그 모습은 마치 능숙한 마법사가 비밀스러운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신비롭고 황홀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차가 다시 푸른 신호와 함께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더 이상 가슴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거의 속삭이듯 그녀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기사님이?” 내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살짝 떨리고 있었다.

“아…”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이 혹시 제 남편이냐고 물어보시던데요.”

그녀의 얼굴 가득 장난기가 만개한 꽃처럼 활짝 번졌다. 따스하고 선명한 마젠타색 립스틱이 발린 도톰한 입술이 샐쭉하게 오므라들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풀렸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 심장이 다시 한번 북처럼 크게 울렸다. 방금 전 억눌렀던 감정의 둑이 다시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래서 제니아, 당신은 뭐라고 대답한 거예요?”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녀를 향한 애정이 거대한 해일처럼 거세게 밀려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휘감는 듯했다. 단순한 이끌림, 호감, 그 이상의 감정, 어쩌면 경배에 가까운 감정이 내 안에서 거세게 물결치고 있었다.

“뭘요, 뭘 그렇게 궁금해해요?” 그녀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반문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말씀드렸죠. 회사 동료인데,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데이트하는 거라고요.”

그녀의 대답 속에는 소녀 같은 청순함과 어머니 같은 포근함, 그리고 이 상황 자체를 즐기는 듯한 달콤하고도 짓궂은 유혹이 미묘하게 뒤섞여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설렘을 넘어 가슴 벅찬, 거의 종교적인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니, 그러니까 그 뒤에 기사님이 뭐라고 하셨냐고요.”

나는 상체를 기울여 그녀를 내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수와 비누 향, 그리고 그녀 고유의 체취가 뒤섞여 아찔한 향기를 만들어냈다. 제니아는 장난스럽게 살짝 반항하는 듯 몸짓하다가, 이내 저항을 포기하고 내 어깨에 폭 안기며, 짐짓 못마땅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흘기는 시늉을 했다. 그 작고 사소한 저항마저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음… 글쎄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척하더니, 내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혹시라도… 오늘 밤에 호텔에 갈 일이 생기면, 다른 택시 부르지 말고 꼭 자기를 다시 불러 달라고 하시던데요.”

“그래서?”

심쿵. 온몸의 신경 세포가 일제히 기립하여 반응하는 듯한 강렬한 설렘. 세상이 잠시 멈추는 듯한 아찔한 두근거림. 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할 다른 적절한 단어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비어버리는 느낌. 마치 강렬한 섬광을 정면으로 본 듯한 현기증.

‘이 벅찬 감정을, 이 숨 막히는 순간을 도대체 어떻게 언어로 붙잡아 표현해야 하는 걸까?’

“뭐가 그래서예요?” 그녀가 내 품에서 고개를 살짝 들며,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떻게 대답했냐는 말이에요, 제니아.”

나는 그녀의 귓가에 거의 입술이 닿을 듯이 더 가까이 다가가, 마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속삭이듯, 뜨겁고 촉촉한 입김을 불어넣듯이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물었다.

“토마스, 정말이지. 도대체 저에게서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달콤한 애정과 함께 나를 부드럽게 꾸짖는 듯한 질책이 섞여 있었다. “잊지 말아요, 오늘이 우리의 첫 데이트라는 사실을.”

그녀의 목소리는 나를 잔인하게 현실로 끌어내리는 동시에, 더 깊고 어두운 열정과 애틋함의 심연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차오르는 감정의 격렬한 소용돌이 속에서, 나 자신도 거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자동차는 마침내 브로츠와프 구도시의 입구, 수 세기의 역사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신성한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타닥타닥. 자동차 바퀴가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반질반질한 돌길, 오스트루프 툼스키(Ostrów Tumski), 즉 성당 섬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다리의 포석과 마주치며 내는 정겹고 리드미컬한 소리가 밤의 깊은 정적을 부드럽게 깨뜨렸다. 제니아는 창밖의 황홀한 풍경에서 잠시 눈을 떼어 찰나의 순간 나를 스치듯 바라보았고, 그녀의 깊고 그윽한 시선과 마주친 나의 눈길은 그 오래된 돌길의 리듬과 완벽하게 어우러져 부드럽게, 그러나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녀를 향한, 거의 육체적인 고통에 가까울 정도로 간절한 갈망이 내 속을 예리한 칼날처럼 깊숙이 후벼 파는 듯했다. 눈앞에 서서히 펼쳐지는 구시가지의 풍경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중세 시대로 타임슬립한 듯, 작고 희미한 과거의 그림자들이 길가에 일렬로 도열하여 우리를 맞이하며 서성거리는 듯한 강렬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고풍스러운 파스텔톤의 건물들은 밤의 어둠 속에서 군데군데 전략적으로 배치된 따뜻하고 환한 불빛에 의해 그 정교한 윤곽과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더욱 강조되었고, 길가에는 저마다 다른 개성과 역사를 품은 작은 상점들과 아늑한 카페들이 마치 동화 속 삽화처럼 비현실적으로 떠 있었다. 이 모든 경이로운 풍경은 마치 오랫동안 잊혔던 고대의 이야기 책이 마법처럼 펼쳐진 한 페이지 같았고, 그녀에 대한 나의 주체할 수 없는 격렬한 끌림과 완벽하게 공명하며, 시간마저 그 흐름을 멈춘 듯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택시 안에서, 나는 제니아와 함께 브로츠와프의 밤을, 그 안에 담긴 모든 소리와 색채와 감정의 파편들을 조용히, 그러나 온 마음을 다해 깊이 있게 품어 안았다. 도시의 낮은 숨소리와 촉촉하고 푸근한 밤공기가 우리 주변을 부드러운 실크처럼 감싸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사랑의 여정이 이제 막,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서막을 열었음을 강렬하게 직감했다.

“하지만 제니아,”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내 쪽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우리는 내일 같이 휴가를 냈잖아요.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이 있는데. 하루 정도는… 하룻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내 목소리는 애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도심을 오래된 성벽처럼 둘러싼 듯한 육중한 건물이, 밤의 조명 아래 더욱 도드라지는 정교한 석조 장식물을 품은 채 천천히, 위엄 있게 지나가고 있었다. 오래된 성벽의 잔해와 복원된 성문, 우아한 곡선의 아치형 돌다리와 마치 미로처럼 좁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골목길, 밤하늘을 향해 경건하게 솟아오른 성당의 첨탑과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숨겨진 작은 광장들, 낮은 돌단과 기품 있는 아치 구조물, 각기 다른 높이와 모양, 그리고 색깔을 가진 다층 건물들, 그리고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견고한 돌기둥들이 길가의 오래된 소나무들과 함께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이 도시의 모든 역사를 지켜봐 온 현자들처럼, 혹은 수호신들처럼 묵묵히 우리를 굽어보며 서 있었다. 거리는 그 자체로 한 폭의 섬세하게 그려진 유화 풍경화처럼, 완벽한 구도와 깊이 있는 색채로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물론이죠, 토마스.” 그녀는 부드럽게 내 품에 기대며 속삭였다. “저도 정말이지 당신과 밤새도록, 아니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밤늦게까지 기숙사에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히 사람들이 수군거릴 거예요. 당신도 익히 알잖아요. 우리 회사 기숙사, 거기 사람들 얼마나 말 많고 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는지. 특히나….”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심호흡을 했다. “정말이지… 계집년들이라고 쌍욕을 퍼붓고 싶을 만큼 얄밉고 못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짜증과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거리는 게 뭐 그리 중요해요? 그들의 시선 때문에 우리가 망설일 필요는 없잖아요. 어차피 조만간 모두 다 알게 될 텐데. 안 그래요?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어둡고 퀴퀴한 창고 뒤편이나 아무도 없는 비상계단에서 몰래 숨어서 불안하게 키스하는 것 정도는 안 해도 되는 시점이잖아요? 주방에서 같이 일하는 식구들, 특히나 눈치 빠른 쉐프도 우리 사이는 이미 다 눈치채고 있는 것 같던데… 그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거야 물론 그렇죠. 우리랑 매일 얼굴 맞대고 부대끼는 동료들이야 알아도 크게 상관없어요. 오히려 축하해 줄지도 모르죠. 맞아요, 토마스 당신 말이 백 번 맞아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지긋지긋한 사장님이잖아요. 세상에 둘도 없이 변덕스럽고, 입만 열면 독설을 퍼붓는, 고약하기 이를 데 없는 그 할머니 사장 말이에요. 그녀가 만약 우리 관계를 알게 된다면,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짐 싸서 길거리로 쫓겨날 거예요. 당신은 아마 잘 모르겠지만, 그분은 직원들 연애사에 거의 병적으로 집착하고 간섭해요. 마치 자신의 불행한 삶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사장이 도대체 어떻게 알겠어요? 그분은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두 번, 그것도 아주 잠깐, 마치 유령처럼 소리 없이 나타나서 매장 한번 휙 둘러보고는 연기처럼 금방 사라지는 인물인데. 겉보기엔 심술궂어 보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 같은 말단 직원들에게는 거의 관심도 없잖아요. 우리 이름이나 제대로 알까 모르겠네.”

“오, 토마스. 당신은 정말… 때로는 너무 순진하시군요.”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여자들의 세계, 특히 질투심으로 얽힌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가장 큰 문제는, 거기 있는 거의 모든 여자들이 당신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당신의 그 다정함, 젠틀함, 유머 감각,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꽤 괜찮은 외모까지요. 우리 사이가 공공연하게 탄로 나면, 틀림없이 질투심에 눈이 먼 누군가가 익명으로든 뭐든 교묘하게 포장해서 사장 귀에 흘리고 말 거에요. 그럼 정말 끝장이에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사라지고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났다. 그녀의 불안은 나에게도 전염되어 약간의 초조함을 느끼게 했다.

택시에서 내려 구시가지의 축축한 돌길 위에 첫 발을 내딛자, 그녀의 옷깃과 머리에 달린 반짝이는 작은 장식들 – 아마도 스팽글이나 작은 크리스털일 것이다 – 이 밤의 도시가 흩뿌리는 희미하고 다채로운 불빛에 섬세하게 반사되어 마치 밤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별 조각들처럼 영롱하게 반짝였다. 또닥또닥. 우리의 발걸음 소리가 물기를 머금어 더욱 선명해진 돌길 위에서 명료하고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 청량한 소리는 마치 이 아름답고 장엄한 중세 도시의 심장부에 오직 우리 둘만이 남겨진 듯한, 감미롭고도 비현실적인 착각에 빠지게 했다. 갈림길 모퉁이에 이르자, 고요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품은,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빛바랜 듯한 붉은 벽돌 건물이 마치 거대한 수호자처럼 우리의 앞을 막아서듯 당당하게 서 있었다. 어딘가에서, 아마도 근처의 레스토랑이나 숨겨진 바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나른하고 감미로운 재즈 음악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들려왔다. 트럼펫의 애잔한 선율과 콘트라베이스의 깊은 울림이 섞여 있었다. 그 음악 소리와 함께 우리의 걸음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자연스레 느려졌고, 시간은 마치 그 블루지한 선율 속에 녹아들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롯이 우리만의 공간, 우리만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며 서로의 눈을 깊이 바라보다가, 이내 같은 곳을 향해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향기로운 커피와 갓 구운 빵, 그리고 달콤한 케이크의 냄새가 흘러나오는 아늑한 카페의 따스한 불빛과, 감각적이고 세련된 조명 아래 맛있는 음식과 고급 와인을 약속하는 레스토랑의 유혹적인 분위기에 동시에 이끌렸다. 그곳은 마치 수많은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낭만적인 만남을 품고 있는, 마법에 걸린 듯한 공간처럼 보였다.

레스토랑 안으로 이어지는 짧고 아늑한 복도로 들어서자, 양옆 벽면에는 작은 사설 갤러리처럼 여러 점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대부분은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의 작품을 모방한 듯한 모조품들이었지만, 그 특유의 천진하고 장난스러우며 자유분방한 형태와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채가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유쾌함을 선사했다. 제니아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흥미롭게 둘러보다가, 문득 나를 돌아보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와, 정말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네요. 꼭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의 그림 같아요. 순수하고, 거침없고.”

“마치 우리처럼?” 내가 그녀의 말에 장난스럽게 덧붙이며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맞아요. 우리처럼.” 그녀는 내 품에 살짝 기대며 속삭였다. “특히… 당신처럼요, 토마스.”

“왜 하필 나죠? 나는 꽤 진지한 사람인데.” 내가 짐짓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꼭…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 같으니까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진지함이나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고, 꼭… 난생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한 소년처럼 늘 설렘과 흥분에 들떠서 부산하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눈빛은 따스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거, 왠지 모르게 최고의 칭찬처럼 들리는데요?”

“맞아요. 칭찬이에요.”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당신의 그런 모습이… 저는 너무 좋아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게 해요.”

우리는 복도 중간, 미로의 유쾌하고 강렬한 색채 앞에서 잠시 멈춰 선 채, 서로의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행복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눈부신 별똥별처럼 아무런 예고 없이 우리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 듯했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나의 길고 막연했던 기대와 희망은, 이제 그녀라는 단 하나의 존재를 통해 마침내 나를 완성하는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수식처럼 느껴졌다. 그 키스는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향한 간절한 갈망을 확인하는 하나의 종용과도 같았다. 그녀에게서는 잘 익은 베리류의 새콤달콤하면서도 아찔한 향기가 피어올랐고, 나는 그녀가 터뜨리는, 약간은 거칠면서도 더없이 사랑스러운 코웃음 소리마저 남김없이 빨아들일 듯한 자세로, 거의 중심을 잃을 정도로 심하게 기울어진 채 그녀에게 온전히 이끌리는 감각을 기꺼이, 황홀하게 받아들였다. 세상의 모든 저항은 무의미했고, 오직 서로를 향한 거부할 수 없는 끌림만이 존재하는 완벽한 순간이었다.

“저기 봐요, 재떨이가 밖에 있어요. 아마 여기는 실내가 완전 금연 구역인가 봐요.” 잠시 숨을 고르며 입술을 뗀 그녀가 입구 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붉어진 그녀의 뺨이 더욱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작은 핸드백에서 익숙한 상표의 담배를 꺼내 입술에 물었다. 그 모습마저도 관능적이었다. 나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키스의 여운으로 아직도 떨리는 손끝.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기대감이 다시금 혈관을 타고 빠르게 흘렀다. 우리는 입구 옆,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닿는 작은 공간으로 나와 나란히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늘거리는 두 줄기의 담배 연기가 축축한 밤공기 속으로 부드럽게 피어올랐다 흩어졌다.

푸른빛을 희미하게 띤 담배 연기가 우리 주위의 공기를 천천히, 그러나 감각적으로 가득 채우면서, 좁은 공간은 마치 운명적인 만남과 거부할 수 없는 내밀한 끌어당김으로 충만한 특별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녀의 붉고 도톰한 입술 사이에서 피어오른 흰색 연기가 밤의 조명 아래서 마치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게 춤추듯 흩어졌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 몽환적이고 에로틱한 광경은 마치 오랫동안 억눌렸던 색정과 감각적인 갈증이 마침내 분출되어 만들어내는, 아슬아슬하고도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둘만의 유토피아의 세계처럼 보였다. 그녀의 어떤 명확한 응답이나 약속을 듣지 않아도, 나는 내가 뿜어낸 만큼의 희뿌연 연기 속에서, 그 길고 무더웠으며 열병 같았던 지난여름의 한 조각, 시냇가 옆 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서 보냈던 우리의 첫 스킨십에 대한 격렬한 열정과 동시에 느꼈던 미묘한 죄책감과 아픔을 비로소 정면으로,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는, 엄연하고도 차분한 기분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나친 감정의 기복과 끝없는 망설임으로 점철되었던 지난날들의 여정을 마치 쏜살같이 날아가는 화살처럼 단숨에 해치우고 새로운 단계, 더욱 깊고 진실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가벼움과 해방감 말이다. 그래, 힘겹게 돌이켜보면 그 아찔했던 기억마저도 이제는 미소 지으며 즐겁게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을 외곽의 작은 개울가, 하얀 야생화들이 발목까지 무성하게 자라 지나치게 낮아 보이던 그 작은 숲길을 함께 지날 때, 나는 고개를 수그리며 마치 발밑의 돌부리를 피하는 척,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제니아의 부드러운 가슴을 스치듯 훔쳤었다. 참을 수 없는 충동과 감각적인 욕망을 이기지 못한 그 본능적이고 이기적인 행위는, 그녀가 순간 숨을 멈추며 주춤거리다가 미약한 반항의 손짓을 허공에 몇 번 어색하게 심는 듯하더니, 이내 내 뒷머리를 그녀의 두 손으로 강하게 감싸 안으며 나를 끌어당겼을 때, 비로소 나는 가슴 졸였던 안도감과 함께 터질 듯한 심장으로 미친 듯이 파닥거렸다.

물론, 지금 이 순간, 이 귀하고 소중한 시간에, 굳이 필요치 않은 헛된 상념으로 나의 뜨거운 열정을 부질없이 소모하고자 하는 뜻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넘칠 수 있다는 가능성, 즉 우리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모든 경계를 허물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그것에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거친 육체적 탐닉과 섬세한 정신적 교감의 향연은, 반드시 우리 곁으로 도도히 흘러들어와 메마른 삶에 대한 새로운 자긍심과 의미를 부여하고, 이전에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강렬하고 압도적인 소용돌이 같은 감정을 선사할 것임은 거의 확실해 보였다. 특히, 이 밤이 더욱 깊어져 새벽의 여명으로 이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들이 선사할 황홀함을 수식하는 모든 감각적인 장식들과, 우리 두 사람을 보이지 않는 강철 같은 끈으로 단단히 엮어내는 내밀한 동의와 교감에 대한 가치는, 어쩌면 세상을, 그리고 나 자신의 삶을 깨달음의 또 다른 측면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식견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담배를 아쉬움 속에 비벼 끈 후, 우리는 다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 웨이터의 정중한 안내를 받아 창가 옆 아늑한 구석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섬세하게 만들어진 실크 인조 꽃 장식과 가느다란 몸체 위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촛불이 놓여 공간을 로맨틱하고 부드럽게 밝히고 있었다. 테이블 주변에는 마치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한 온화한 스모그 장식(아마도 드라이아이스 효과일 것이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했다. 테이블보는 갓 세탁한 듯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리넨 소재였으며, 그 모서리에는 화려하게 반짝이는 작은 진주 장식이 정교하게 수를 놓고 있었다. 우리는 메뉴판을 잠시 살펴보고 곧 레드 와인과 각자의 취향에 맞는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잠시 후, 따뜻한 식전 수프가 작은 볼에 담겨 나왔고 우리는 천천히, 서로의 눈을 깊이 바라보며 수프를 조용히 홀짝였다. 그 시선 속에는 수많은 언어보다 더 깊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세공된 포도주잔과 길고 우아한 샴페인 글라스가 놓여 있었고, 향기로운 바닐라 향 캔들의 부드러운 불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였다. 잠시 후,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다가와 깊고 검붉은 빛깔의 와인을 우아한 곡선의 잔에 소리 없이 부드럽게 따랐고, 잔의 매끄러운 크리스털 유리 표면 위에는 와인의 깊은 광택과 춤추는 촛불의 이미지가 함께 아름답게 반영되었다. 테이블 중앙에는 신선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과일이 풍성하게 담긴 작은 바스켓이 마치 정물화처럼 먹음직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잘 익은 망고, 달콤한 파인애플, 붉은 보석 같은 석류 등 이국적인 맛과 향을 선사하는 열대 과일들은 마치 정교하게 구성된 예술 작품처럼 탐스러웠다. 향긋하고 독특한 풍미의 여러 종류의 치즈(브리, 고르곤졸라, 체다)와 고소하고 바삭한 견과류(호두, 아몬드, 피스타치오)가 작은 올리브 나무 접시에 정갈하게 담겨 있었고, 앙증맞은 크기의 디저트 플레이트 위에는 통 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다크 초콜릿 조각들이 치명적인 유혹의 자태로 누워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의 풍요롭고 조화로운 구성은 단순한 미각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 거의 성적인 매력만큼이나 강렬하고 원초적으로 우리의 감각을 끌어당겼다.

따뜻하게 데워져 나온 빵 바구니에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빵 한 조각을 찢어 차가운 무염 버터를 꾹 찔러 바르고 오물거리며, 우리는 다시 한번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을 깊이 마주쳤다. 밤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더욱 농밀하게 익어가는 희미하고 따스한 불빛 아래, 우리는 방금 전 피운 담배의 쌉싸름한 잔향과 향기로운 와인의 매혹적인 조화 속으로 저항 없이 깊숙이 빠져들었다. 와인은 기분 좋게 차가웠고,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 감각적인 장식품들과 나른하고도 로맨틱한 분위기는, 때로는 너절하고 예측 불가능한 속단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거친 숙면을 예감케 하는 이 한기 서린 밤을, 역설적이게도 퇴폐적이면서도 속된 아름다움으로 충만하게 느끼게 하는, 너그럽고도 변칙적인 마법을 강력하게 펼쳐 보였다.

그때, 천장 모서리 네 군데에 눈에 띄지 않게 설치된 까만 스피커에서 프랑스 포스트 록 밴드 Kwoon의 음악, <Ayron Norya>가 마치 안개처럼 잔잔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몽환적이고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슬픔을 머금은 듯한 선율은 마치 투명한 액체처럼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채우며 우리의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으로 천천히 흘러내렸다. 우리는 각자의 포도주잔을 들어 올려 서로의 눈을 맞추고, 잔과 잔이 부딪히는 맑고 청아한 소리와 함께, 서로에게 약간은 피곤함으로 퀭한, 그러나 주체할 수 없는 만족감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뜨거운 기대감으로 가득 찬 복잡 미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와인이 입속으로 스며들면서 부드럽고 순조로운 취기가 따뜻한 안개처럼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우리의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던 본연의 광채는 더욱 밝고 강렬하게 빛나며 서로를 향해 더욱 깊이 몰입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절규하듯 애절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운 그 음악은 이 순간의 분위기를 한층 더 농밀하고 극적으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강조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의 대화는 점차 그 빈도가 줄어들고 단속적으로 변해갔다. 단어와 문장 사이의 침묵이 점점 길어졌지만, 그 침묵은 결코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아닌,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교감과 이해로 충만하게 채워져 있었다. 눈빛과 미소, 그리고 가끔씩 스치는 손길만으로도 충분했다. 대신, 서로를 향한 육체적 끌림과 정신적 갈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명백하고 강렬해졌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거대한 파도가 소용돌이치며 나의 정수리 부근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마치 주변의 모든 세계가 갑자기 소리를 잃고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오직 나를 중심으로 완벽하게 정지한 듯한 강렬한 착각마저 들었다. 레스토랑의 다른 손님들의 희미한 웃음소리, 웨이터의 분주한 움직임, 창밖으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거리의 풍경, 심지어 배경으로 흐르던 음악까지도 점차 희미해지고 멀어져 갔고, 오직 흔들리는 촛불 아래 우윳빛처럼 하얗게 빛나는 그녀의 얼굴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절대적이고 선명하게 내 시야에 남았다. 그녀는 나의 우주였다.

레스토랑을 나와 다시 차갑고 축축한 밤거리로 나서자, 한동안 우리 사이에는 무거운 듯 편안한, 그리고 많은 의미를 함축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고, 밤의 정적 속에서 타오르는 담뱃불과 함께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그리고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관계의 밀도를 молча(말없이) 확인했다. 안개비는 여전히 쉼 없이, 그러나 이전보다 더욱 미세하게, 마치 속삭이듯 내리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란스러운 소리를 부드럽게 흡수하려는 듯, 도시는 깊은 고요함 속에 잠겨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가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까이 서서, 담배를 피우는 손을 번갈아 주고받으며 점점 더 빈틈없이 밀착했다. 더 이상의 물리적인 거리는 불필요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그녀의 따뜻한 체온과 은은한 살 내음, 그리고 방금 피운 담배의 쌉싸름하면서도 독특하고 중독적인 향기는 이 순간을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한 장면으로 강렬하게 아로새기며 장식했다.

“조금만 더 걷고 싶어요, 토마스.” 그녀가 밤의 정적을 깨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거의 내뱉듯이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마치 꿈결처럼 들렸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던 푸른 담배 연기는, 우리가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마자, 마치 우리의 짧은 이별을 아쉬워하듯 뭉그적거리며 허공 속으로 슬프고 아련하게 흩어졌다. 가로등 불빛은 드문드문, 밤이라는 거대한 장막에 가려진 도시의 어두운 빈 곳들을 간헐적으로 비추며 우리의 길을 희미하게 안내했다. 낭만과 함께 약간의 퇴폐미가 기묘하게 어우러진 이 비밀스러운 공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길로 접어드는 입구에서, 나는 그녀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 세우고 차가운 벽돌 벽으로 기댄 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에 내 혀를 세차게 밀어 넣었다. 그것은 단순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입맞춤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감정의 격렬한 고조와 함께하는, 강렬한 소유욕과 주체할 수 없는 갈망이 뒤섞인 깊고 탐욕스러우며 거의 폭력적인 키스였다. 그녀는 짧고 가쁜 탄식 같은 신음을 흘리며 반사적으로 내 목을 감싸 안았고, 떨리는 속삭임처럼 그녀의 입술에서는 오랜 시간 숨겨왔던 비밀스러움과 터질 듯한 열망이 함께 격렬하게 춤을 추었다. 그녀의 부드럽고 도톰한 입술은 나와 닿을 때마다, 방금 전까지 피웠던 담배의 미묘하고 스모키한 향과 함께 그녀만이 가진 독특하고 달콤하며 중독적인 맛을 나에게 고스란히, 남김없이 전해주었다. 그 황홀하고 아찔한 순간, 나는 우리의 사랑이 마치 우리가 내뿜는 담배 연기처럼, 이 깊고 푸른 밤의 공기 속으로 자유롭게 춤추며 퍼져나가 온 세상을 우리의 색깔로 물들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했다.

축축하고 서늘한 밤바람은 마치 우리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려는 듯, 혹은 오히려 더욱 부추기려는 듯 우리의 달아오른 몸을 가볍게 휘감았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가 가진 모든 것에, 그녀의 영혼까지도 더욱 깊게 빠져들었다. 담배 연기는 이 격정적이고 숨 가쁜 감정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듯, 우리의 깊어지는 입맞춤과 함께 밤하늘 속으로 아련하게, 마치 꿈처럼 흩어져 나갔다.

우리가 천천히 걸어가는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드문드문 움직이는 사람들은 깊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얼굴조차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들의 희미한 움직임과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각자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숨겨진 목적지를 품고 밤의 도시를 배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우리의 배경이 되어주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는 거리의 코너에 자리한 어느 이름 모를 바에서 흘러나오는 간간하고 블루지한 음악 소리와 함께, 아주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이 마치 깊이 잠든 도시의 느리고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느리고, 무겁고, 동시에 아름다웠다.

건물들의 창문과 낡고 녹슨 가로등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이따금 짙은 어둠을 번쩍이며 조금씩 밝혀내고는 있었지만, 그 짙고 무거운 어둠은 여전히 도시 전체를 신비롭고 비밀스럽게 감싸 안고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깊고 검은 그림자로 가득 차 있어, 마치 도시 자체가 거대한 어둠이라는 신비로운 재료로 정교하게 빚어진 거대한 예술작품에 둘러싸여 있는 듯한 장엄하고도 내밀한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마침내 도착한 호텔 방 문이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닫히고, ‘딸깍’ 하는 작지만 분명한 금속성 소리와 함께 자동으로 잠겼다. 그 건조한 소리는 마치 외부 세계와의 완전한 단절, 그리고 이제부터 펼쳐질 오직 우리 둘만의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마침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엄숙한 신호처럼, 방 안의 고요함 속으로 울려 퍼졌다.

이제 더 이상 숨길 필요도, 망설일 이유도, 두려워할 대상도 없었다. 그녀를 향한 나의 모든 갈망과 경배에 가까운 끌림은, 이제 눈앞에 실재하는 그녀의 숨 막히도록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육체에 깊숙이, 그리고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이 혼란스럽고 때로는 추악하기까지 한 속세의 모든 경계를 가볍게 넘어, 더 높고 순수하며 이상적인 차원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고 있는 살아있는 성전(聖殿)처럼 느껴졌다. 나의 마음과 영혼은 그녀를 향한 끊임없는 갈망과 경이로운 경탄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가득 차 있었다. 제니아의 몸은,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일상 속에서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던 절대적인 고요와 평온한 조용함의 궁극적인 상징이었다. 그녀의 육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예술, 신의 손길로 빚어진 살아 숨 쉬는 걸작이었다.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이 마치 물 흐르듯 그녀의 체형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고, 그녀 몸의 각 부분은 마치 섬세한 시적인 우아함과 신중하게 계산된 완벽한 절제미가 깃든 조화로움으로 정교하게 물들어 있는 듯했다. 그녀의 피부는 최고급 상아나 연마된 실크처럼 눈부시게 매끄러웠고, 방 안의 희미하고 따스한 간접 조명 아래서조차 그녀의 매혹적인 형태와 윤곽은 숨 막힐 듯 관능적이고 뚜렷하게 감지되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마치 햇살을 듬뿍 머금은 잘 익은 밀밭처럼, 혹은 고대의 금빛 보석처럼 부드럽게 반짝이며,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마치 여신의 후광처럼 신비롭게 둘러싸고 있었다. 그녀는 존재 자체로 빛이었고, 나의 길고 어두웠던 밤을 밝히는 유일한 등불이자 구원이었다. 이 밤, 브로츠와프의 밤은 우리의 사랑을 위한 완벽한 서곡이었다. 그리고 이제, 본 악장이 시작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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