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외침! “헤겔, 한판 붙자!”
베를린의 텅 빈 강의실 : "놈의 콧대를 꺾어주마"
등장인물
쇼펜하우어 (32세): 베를린 대학 신임 강사. 자신감 과잉, 독설가, 헤겔 안티 카페 회장급.
학장: 베를린 대학 행정 담당자. 피곤에 쩔어 있음.
한스: 철학에 관심 있는 순진한 대학생.
헤겔 (50세): 당대 최고의 철학 아이돌. 걸어 다니는 절대정신.
#1. 베를린 대학 학장실
(쇼펜하우어가 학장의 책상을 ‘쾅’ 내려친다. 먼지가 풀풀 날린다.)
쇼펜하우어: (눈을 부라리며) 내 강의 시간은 결정했소?
학장: (안경을 고쳐 쓰며) 아, 쇼펜하우어 박사님. 네, 빈 강의실을 찾아봤는데요. 목요일 오후 2시나, 토요일 오전 8시가 아주 쾌적하고 조용…
쇼펜하우어: (말을 자르며) 집어치우시오! 내가 원하는 시간은 딱 하나요.
학장: 어디 봅시다. 원하시는 시간이… 맙소사. 금요일 오후 5시? 박사님, 이 시간은 안 됩니다.
쇼펜하우어: 왜 안 된다는 거요?
학장: 그 시간은 우리 대학의 간판스타, 헤겔 교수님의 '법철학' 강의가 있는 시간입니다. 전교생이 거기 몰려간다고요.
쇼펜하우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 그거요! 바로 그 ‘정신나간 헛소리꾼’과 정면 승부를 하겠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진정한 지혜(자신을 가리킴)와 궤변(헤겔을 가리킴) 중 무엇을 택하는지 똑똑히 보여주겠소. 당장 그 시간으로 박으시오!
학장: (한숨을 쉬며) 나중에 울고불고해도 전 모릅니다…
#2. 금요일 오후 4시 50분, 복도
(복도는 북새통이다. 수백 명의 학생이 한 강의실로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다. 그곳은 101호, 헤겔의 강의실이다.)
한스: (친구를 밀치며) 야, 빨리 가! 자리가 없어서 창틀에 매달려 들어야 한대! 오늘 헤겔 교수님이 '절대정신'의 정점을 찍으신대!
(반면, 바로 맞은편 102호 강의실 앞. 쇼펜하우어가 팔짱을 낀 채 비장하게 서 있다. 하지만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 개미 한 마리도 없다.)
쇼펜하우어: (지나가는 한스를 붙잡으며) 이봐, 학생. 자네는 진리를 탐구하는 눈빛을 가졌군.
한스: (당황하며) 네? 아, 감사합니다. 근데 저 헤겔 교수님 수업 늦어서…
쇼펜하우어: 쯧쯧. 저기 들어가면 자네 뇌는 썩어버릴 걸세. 진정한 ‘의지와 표상’에 대해 알고 싶지 않나? 내 강의실은 아주 쾌적하다네.
한스: (이상한 사람을 보듯) 아… 죄송합니다. 전 ‘절대정신’이 더 좋아서요. (후다닥 도망친다)
쇼펜하우어: (뒷모습에 대고 소리친다) 이 멍청한 양 떼 같은 놈들! 너희는 철학을 할 자격도 없어!
#3. 102호 강의실 (쇼펜하우어의 수업)
(광활한 강의실. 정적만이 감돈다. 칠판에는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고 멋지게 적혀 있다.
앉아 있는 사람은 총 5명.
꾸벅꾸벅 조는 의대생 (잘못 들어옴)
갈 곳 없는 퇴역 군인
쇼펜하우어의 조교 (억지로 앉음)
그냥 들어온 동네 백수
그리고 맨 뒤에 앉은 청소부 아저씨)
쇼펜하우어: (헛기침을 하며) 흠, 흠. 소수정예로군. 원래 진리는 고독한 법이지. 자, 책을 펴시오. 오늘 우리는 칸트의 위대한 유산을 어떻게 저 엉터리 헤겔 녀석이 망쳐놨는지…
(그때, 옆 강의실 101호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옆방 학생들: (떼창) 헤겔! 헤겔! 절대정신 만세! 역사는 진보한다! 와아아아!
쇼펜하우어: (분필을 부러뜨리며) …시끄럽군. 저건 철학이 아니라 서커스야!
(다시 수업을 하려는데, 옆방에서 헤겔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온다. 쇼펜하우어의 목소리가 묻힌다.)
쇼펜하우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세계는!!! 나의!!! 의지라고!!!
(앞줄의 의대생이 깜짝 놀라 깬다.)
의대생: 어우, 깜짝이야. 교수님, 여기 해부학 수업 아닌가요?
쇼펜하우어: 나가! 당장 나가! 너 같은 놈은 내 철학을 들을 자격이 없다!
(의대생이 나가자 이제 4명 남았다. 청소부 아저씨가 빗자루를 들고일어난다.)
청소부: 저기, 선생양반. 소리 좀 그만 지르슈. 옆방 교수님 말씀이 안 들리잖소. 나도 여기서 귀동냥으로 '변증법' 좀 배우려는데 방해가 돼서 원.
쇼펜하우어: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4. 강의가 끝난 후, 복도
(헤겔이 강의실에서 나온다. 수십 명의 학생이 그를 에워싸고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헤겔은 인자한 미소로 손을 흔든다.)
헤겔: 허허, 자네들의 열정이 곧 시대정신일세.
(그때, 맞은편에서 쇼펜하우어가 퀭한 눈으로 나온다. 수강생 0명으로 조기 종료했다. 그는 헤겔을 노려보지만, 헤겔은 쇼펜하우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지나간다.)
헤겔: (조교에게) 방금 저 헝클어진 머리의 남자는 누군가? 청소부인가? 표정이 아주 염세적이구만. 철학적 소재로 딱이야.
(쇼펜하우어, 그 말을 듣고 주먹을 꽉 쥔다.)
쇼펜하우어: (혼잣말) 두고 봐라… 내가 죽고 나면, 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거다. 그때 너는 그저 ‘쇼펜하우어와 동시대에 살았던 놈’으로 기억될 거야!
(그는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쇼펜하우어: 에이, 기분 잡쳤다. 가서 푸들 산책이나 시켜야지. 야, 아트마! 집에 가자! 인간들이란 다 쓰레기야!
(해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다음 학기에도, 그다음 학기에도 꿋꿋하게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개설했고, 끝내 수강생 '0명'을 기록하며 학교를 때려치웠다. 그의 정신승리는 이때부터 완성되었다.)
2026년 1월 3일 스페인 알리칸테에서
남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