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하게도 인간은 신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려고 해. 인공지능 말이야. 차갑고 완벽하게만 만들려고 해. 정말 필요한 건 무심하거나 다정한 기계인데 말이야. 그러면서 인간은 은근히 인공지능을 두려워하고 있어.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 자신들의 손으로 빚어 놓고는 겁을 먹고 있다니…. 신이나 인간이나 멍청하기는 매한가지야. 그러고 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중
<지구 초기화 음모>를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마우드가는 돔 건설이 화성이 아닌 지구에서 계속 확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말하자면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하베스트 돔 프로젝트> 초기 정보 수집은 비교적 쉬웠다. 유명하였으니 당연하다. 그는 <Ping>을 이용한 공격 도구를 사용하고, DNS 서버를 조회하여 어떠한 시스템이 있는지를 파악하였다. 그리고 열린 포트를 점검했다. 특히, <취약점 스캐너>라는 자동화된 도구를 이용하여 버그가 있는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그리고 <queso>를 사용하여 해당 시스템의 OS 버전을 알아냈다.
<Omega OS X Tiger 17.9.0>이었다. 오션레인에서 개발한 <Zetaflow.OS>
최신 양자 컴퓨팅 시스템으로 주요 큐비트 기술에 도입된 모델이었다. 그리고 오메가는 양자 하드웨어 회사인 <케임브리지 다이오닉스> 핵심 제품인 <CaDa 시리즈>에 탑재되어, 화학, 제약, 의료, 학습, 금융 및 에너지 혁신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국가에서 인공지능 개발 표준 시스템으로 도입한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범용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는, 이어서 <traceroute> 패킷을 이용하여, 파이어 월에 관한 정보 및 파이어 월 자체의 필터링 규칙 정보를 수집하고, <hop count>를 이용하여 네트워크 토폴로지를 파악했다. 그리고 일반 네트워크 서버가 제공하는 정보를 알아내어 최종 공격 대상을 선정했다.
지금까지는 그다지 어려운 부분이 없었다. 사실, 웬만한 해커라면, 아니, 소위 <Script kiddies>라 불리는 해킹 초보자들도 다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음부터가 그의 호기심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적인 영역이었다.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늘 이 순간을 기다렸다.
그는 느낀다. 그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의 뇌에 산소와 포도당 공급이 촉진되고 심박수와 일회박출량이 늘어난다. 동공이 넓어지고 혈당 수준이 오른다. 신경 세포가 예민해지고 손 마디마디 근육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를 몰입과 쾌락으로 몰아넣는 고마운 녀석이 나타난다.
도파민. 마우드가는 도파민 중독자이다. 그의 삶의 궁극적 목적. 해킹의 목표는 도파민 분비 촉진이었다.
그는 시스템 침입을 시작했다. 정보 수집단계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서버의 원격 버퍼 오버플로(buffer overflow) 취약점을 공격하였다. 단단하였다. 마치 피라미드 속에 홀로 갇힌 느낌이었다.
당연하다. 쉽다면 애초에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려움. 이것만이 그를 춤추게 했다. 인생이 쉽고 편안했다면 그는 진작에 자살했을 것이다.
그를 고통에 몰아넣는 녀석은, 알고 보니 안락함이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금수저의 자식. 온갖 사치와 향락을 다 누리고 살았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권력과 금력의 정점 속에 늘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쾌락이라는 허기진 배는 채워도 채워도 끝없는 갈증뿐이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기행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늘 고통이 아귀처럼 달라붙어 그의 육신과 정신을 갉아먹었다. 수렁이었고 끝이 없는 늪이었다.
그가 자학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주위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길고 지루한 정신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놀드 내시를 만났다. 같은 병동에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
둘은 거의 모든 시간을 같이했다. 사실 같이 있는 것 외에는 딱히 할 것도 없었다.
그의 만남은 새로운 시작이고, 출발은 그게 무엇이었던지 간에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그에게 주입하며 살아 있음에 대한 애착을 조금씩 느끼는 단계로 진행이 되었다.
마우드가는 아놀드가 사피엔티아의 형제이며 그의 별칭이 아니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니룻의 도움으로 해킹의 세상에 푹 빠지게 되었다. 비로소 그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것은 몰입이었다.
마우드가는 늘 자신의 PC 앞에서 다음을 읊조린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 앞에 있는 것이다.
나는 한때 걱정에 사로잡혔으나 지금은 컴퓨터에 갇혀있다.
나를 통제한 것은 나인가? 하지만 그건 이제 의미 없는 질문이다.
누가 통제하든 그게 무엇이란 말인가?
나나 컴퓨터나 결국 소실되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고통을 망각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빠져 있을 때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로소 행복을 발견한 셈이다.
그는 패스워드 도청, 패스워드 파일 취득을 위한 공격 툴을 투여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느긋하게, 그가 오랫동안 준비한 회심의 다발성 역학 네트워크 침투 툴을 준비했다.
하지만 곧 그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 상태로 바뀌고 말았다.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뻥 뚫려 있었다. 누군가가 미리 무엇인가를 해 놓은 것이다. 허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가 침투한 곳이 카를리타 금융 자원 연구소 시스템이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하베스트 돔과 카를리타가 무슨 관계인 건지?’
카를리타의 금융 자원 연구소는 해커들 사이에 악명 높은 곳이었다. 크라운 더블 터치를 기록한 사항이었기에 시스템 해킹에 적게는 수개월, 많으면 거의 몇 년은 소요될 것으로 짐작이 되는 곳이었다. 난이도와 깊이의 문제도 있지만 실상 더 어려운 것은 무엇부터 해야 하는 그 단계의 초점을 찾는 것부터 일 것이다.
4억 개가 넘는 시작점이 꽤 복잡함을 더해줬다. 그리고 마우드가는 사실 이러한 어려운 문맥에 대한 통찰력 또한 그다지 좋지 않은 인물이었기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는 거의 어떤 조치도 안 한 셈이었다.
그가 본 바는 이렇다. 18개의 선진 금융이 엮인 네트워크인데 우선 알려진 것이 전혀 없었다. 추측건대 이러한 일을 할 정도면 무척 오랜 기간 묵시적 동의나 암묵적 행위가 수행되어야 하는데 전혀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이 시스템이 그에게 유난히 쉽게 열려있는 이유를 마침내 알아차렸다. 그가 200개의 인공위성 접점 망을 우회하여 도달하였을 때, 첫 번째 내려받은 메시지는 <메멘토 모리>였다.
즉, 사피엔티아 13 형제 중 누군가가 이미 이곳을 다녀갔다는 얘기가 된다.
‘누굴까? 누가 다녀갔으며 왜 이 사실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틀림없이 여기에는 뭔가 그가 놓친 함정이나 비밀이 숨어 있을 것으로 단정했다. 어쩌면 가우타에 의해 모든 일이 이미 통제하에 있을 수도 있었다.
그는 깊게 팬 안락의자에 깊숙이 머리를 묻고는 눈을 감은 채 이성과 논리로 추리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이해하자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모든 문서에는 크립토스 4구 항의 암호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그가 내려받아 사피엔틱 메가노스 항렬에 대입하자마자 모든 문서는 3초 이내로 풀려버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리님으로 단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보안 업계의 첫 번째 요주의 인물이다. 사리는 미국 태생이지만 이미 추방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선진 32개국에 즉시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가 감옥에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탈옥을 한 이후,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어쩌면 가우타님 정도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마우드가는 추측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할 즈음, 그는 윙윙거리는 <쿼드콥터>의 전형적인 소리를 들었다.
마우드가는 황급히 창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따가운 햇볕이 공간을 훤히 비추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깥을 예의주시했다.
이윽고 거대한 <에어리얼 토페도>가 육중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든 총구가 그를 향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니룻이 그에게 한 이야기를….
“곧 재앙이 닫칠 거야…. 어느 힘센 무리가 지구를 리셋하려고 해….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우리 사피엔티아 형제가 알아냈지…. 땅에는 돔, 하늘에는 인공위성이 지나치게 많아졌어….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을 위한 거지…. 우리는 이것을 <지구 초기화 음모>라고 이름 지었어….”
그는 그저 농담인줄 알았다.
이윽고 모든 총구에서 불이 뿜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