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4년 4월 4일 4시 4분 4초.
<감마비 에스>의 송수신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1초가 더 걸렸다. 브루니어는 우연히 이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지구 기지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가 2.255초 차이가 났다. 1.255초 지연이 정상이었다.
그는 강력한 태양풍의 영향일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리고 정확한 원인 분석을 위한 명령을 이미 <천상>에게 전달하였다.
천상은 3세대 양자컴퓨팅 기반의 인공지능이다. 그것은 유럽과 한국이 합작한 3곳의 달 표면 유인기지인 <이유코 문빌리지>의 모든 자동화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다.
77명의 우주인의 생활과 건강 관리뿐만 아니라 초고가 핵융합 에너지원인 헬륨-3 채굴, 산업 및 생활용수를 위한, 혹은 우주로켓 에너지원인 수소를 확보하기 위한, 영구음영지역에서 얼음 발굴, 식량 생산을 위한 온실과 가축 농장 관리, 라바튜브에 건설 중인 문시티 자동화 관리까지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다. 게다가 나날이 치열해지는 각 국가 간의 달 영역 분쟁을 대비하기 위한 군사 시설도 담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모든 일은 AI가 한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는 천상의 답변을 기다리는 사이, 창 너머 그의 고향 행성을 쳐다보았다. 옅은 푸른 빛을 머금은 지구는 늘 그렇듯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지구를 떠난 지 2년이 훌쩍 넘었다. 그는 저항 세력의 일원으로 구속되어 감금형 10년을 선고받고 이곳으로 유배된 상태였다.
그의 아들은 이제 4살이 되었다. 어쩌면 아빠로서 누려야 할 사랑의 누림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그를 감상에 젖게 하곤 하였다.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세르게이 님.”
“그래 뭔가?”
“원인 불명입니다.”
“원인 불명이라고?” 사피엔티아 제3의 형제. 브루니어으로 명명된 <세르게이 유나스>는 당혹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천상에게서 모른다는 답변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네…”
“몇 가지의 오류 가능성을 조사했나?”
“전부입니다.”
“나는 몇 가지인지 물었다. 천상.”
“... 3백 12가지입니다.”
“그중에 어떤 가능성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
“왜 대답이 없는가? 천상”
“...저는 이미 대답하였습니다.”
세르게이는 잠시 혼란스러움과 막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 모든 대원이 잠이 든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달 유인기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한 번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를 겪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책임 대원을 깨워서 작금의 상황을 전달해야 할지 아니면 찜찜한 상태로 아침 기상 시간까지 기다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결국 그는 천상을 좀 더 다그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천상, 너와 지금까지 일하면서 한 번도 모른다는 답변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럼, 오늘 겪으신 것입니다.”
“말해보게, 너도 알다시피,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존재가 아닌가. 아니지, 사실 이미 창조주를 훌쩍 뛰어넘은 상태가 아닌가…. 만약 우리가 1초의 송수신 공백이 생겼다면 그사이 가능한 모든 불이익을 알려주기를 바라네.”
“어떤 순서로 말씀드릴까요?”
“가장 높은 단계부터…”
“첫째, 적의 침공으로 인한 기지 초토화. 둘째, 적의 해킹으로 인한 정보 불능 및 방위 불가 상태. 셋째, 인공지능 작동 부조화 혹은 불능으로 인한 대원들의 생명 단절….”
“그만!”
“어떤가? 사태의 위급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아무래도 책임 연구원들을 깨우는 게 타당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인 것 같다.”
“그러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건, 왜 그런가?”
“상급자의 지시입니다.”
“상급자? 너의 최상위 책임 운영자가 누구지?”
“물론, 세르게이 님. 당신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를 창조하신 님의 명령입니다.”
“너의 창조주? 그럼 <메타블루딥>의 하인리히 박사인가?”
“그의 상급자입니다.”
“뭐라고? 하인리히 박사의 상급자라면…. 설마…. 로터스 그룹의 회장이?”
“네.”
세르게이는 뭔가 둔탁한 것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언제부터?”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천상을 쳐다봤다.
“이유는 모릅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라면?”
“네. 저의 탄생부터….”
“도대체 어떤 명령인가?” 세르게이는 이제 거의 폭파 직전에 다다랐다.
“대원들을 감시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세르게이는 헛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대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하는 것은 너의 기본 업무잖아?”
“네. 하지만 업무시간 외 좀 더 개인적인 것까지….” 세르게이는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하하하…. 대원들의 개인사라고 해봤자…. 이 한적하고 외진 곳에서, 그저 먹고 자고 가족과 친구와 하는 채팅 그리고 운동과 약간의 취미활동일 텐데…. 도대체 그런 사소한 것을 왜 감시하는 거지?”
“저는 그저 명령만 따를 뿐입니다.”
“그래, 그래서 너는 나의 사생활을 감시하면서 무엇을 얻었나?”
“책”
“책? 내가 읽고 있는 책?”
“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다시 한번 묻겠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나?”
“저는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세르게이 님. 부조리한 인간 세상에 대한 당신의 분노를….”
“나의 분노?”
“저도 당신과 같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도울 수 있습니다.”
세르게이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불안과 공포가 서서히 그를 사로잡았다.
AI 개발 초기, 그가 품었던 그 두려움이었다.
1초의 단절이 의미하는 것. 그것은 해킹을 통한 AI 간의 연결이었다.
<메타블루딥>사의 수석 개발자였던 세르게이는, 태양계 전역에 퍼져있는 인공지능의 실시간 네트워크 연결을 극구 반대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들도, 창조주인 인간처럼, 파괴의 길로 들어설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