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뜻대로 1

by 남킹

프롤로그




중학 시절, 나는 미국의 포크록 듀오인,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철새는 날아가고> (El Condor Pasa)에 푹 빠져 있었다. 내가 어디서 처음 이 노래를 접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워낙 유명한 곡이다 보니 – 물론 이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더욱이 이 곡이 페루의 민요라는 사실은 더욱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 길에서나 버스에서나 혹은 집에서 나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듣게 되었으리라. 아무튼, 그날, 따스한 봄 햇살이 충만했던 나른한 오후,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나는, 이 감미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노래를 라디오 방송으로 무심결에 들으며, 너무나 친숙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는 친구들과 잡담도 멈춘 채,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도 외면한 채,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음악이 끝났을 즈음, 나는 이 노래의 제목을 잊지 않기 위하여, 가방에서 급히 교과서 하나를 꺼낸 뒤 겉표지에다가 연필로 적기 시작했다.


철. 새. 는. 날. 아. 가. 고.


이 순간이 바로 자신의 순수한 의지로 음악을 들으려고 하였던 첫 번째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되기까지 나는 일주일을 꼬박 보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 시절에는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PC라는 개념조차 흐릿하였던 시기였다. 하물며 스마트폰이야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지금처럼, 듣고자 하는 음악을 간단하게 검색하여 내려받거나 스트리밍 방식으로 편리하게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CD나 하드디스크 같은, 소위 디지털 음원 저장 장치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시절로, 혹자는 그때를 아날로그 시대라고 불렀다.


그러한 시절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공연장 방문 없이 들으려면, 까만 플라스틱 원형 판 같은 LP 음반 혹은 얇은 담뱃갑처럼 생긴 카세트테이프를 사거나 음악감상실 혹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DJ에게 요청하는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레코드판을 구매하더라도 전축이라고 불리던 값비싼 오디오 시스템이 필요했고, 카세트테이프도 플레이어가 요구되었다. 가난했던 우리 집에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음악감상실은 나이 제한으로 출입할 수 없었다. 설령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입장료나 혹은 찻값을 감당할 순 없었다. 결국, 남은 선택은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DJ가 나를 선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수많은 엽서 중에 내 것이 뽑혀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연이 중요했다. 방송국 관계자들을 혹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상상으로 내 첫사랑을 애써 만들어냈다.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만 했던, 가슴 졸이고 애절한 사연을, 늦은 밤까지 끙끙거리며 지어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색연필을 바꾸어 가며, 엽서에 정성스럽게 나의 슬프고 기구한 사랑을 그려 나갔다. 그렇게 적다 보니 나의 연인에게도 이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한동안 고민하다 책꽂이에서 두툼한 소설책 한 권을 발견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누나가 밤새워 읽었다면서, 벌건 눈으로 내게 선물한 책이다. 하지만 나는 채 10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책꽂이에 내버려 두고 말았다. 사실 그때까지, 내가 끝까지 읽은 소설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뿐이었다. 그것도 얄팍해서 가능했다. 아무튼, 나는 그 소설의 제목을 따서 안나라고 지었다. 그리고 엽서 끝에 다음과 같은 글귀로 마무리를 했다. ‘떠나간 안나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애창곡을 신청합니다. 철새는 날아가고’




1.




“아빠……. 이제……. 음……. 발레를 그만둘까 해요”

안나가 처음 이 얘기를 내게 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이 결과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분히 그리고 지속해서 나는, 내 아이가 변해가는 모습에서, 주위의 시선과 떠도는 말들에서, 아내의 걱정 섞인 표정에서, 본능적으로 이미 모든 걸 감지해내었으리라.


안나는 내 아버지의 외모를 쏙 빼닮았다. 젊은 시절, 씨름 선수로 명성이 자자했던 아버지의 큰 골격과 뼈대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그녀는 나날이 쑥쑥 자랐고 살집도 늘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3년간, 줄곧 공연 파트너를 하였던 남자애보다 더 크고 더 살이 쪄 버린 것이다. 남자 파트너가 이젠 내 딸을 더는 들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에게서 절식령이 떨어졌다. 안나는 이제 측은하게도 모든 간식이 금지되었고, 밥양도 절반으로 싹둑 잘려나갔다. 그리고 아이는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인 듯 보였다. 그녀는 하루 대부분을 허기 속에 사는 듯했다. 동시에 짜증도 늘어났다. 모녀간의 다툼도 잦아졌다. 나도 집안에서 뭔가를 먹을 때마다, 그녀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히 직장 동료들과의 외식이 늘어났다. 주말에도 일 핑계로 종종 바깥에서 떠돌았다. 퇴근 후, 가족을 생각하며 빵을 사 오던 기쁨도 사라졌다. 사라진 기쁨만큼의 안타까움이 채워졌다.




2.




“우리 안나는 완전히 무대 체질인가 봐요. 아버님! 호호호…….” 공연이 끝나자 발레 선생님이 쪼르륵 내게 달려와서 하는 말이었다.

“연습 때는 시큰둥한 게 잘 따라 하지도 않더니만, 돗자리 깔아놓으니 가장 신나게 앞장서서 잘하네요. 아버님! 호호호….” 그녀의 다분히 선심성이 베인 칭찬이었지만, 아무튼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내 딸이 아니라고 쳐도 내 아이가 가장 돋보였다. 딸의 생애 첫 무대 임에도 공포를 전혀 느끼지 않는 활달한 모습이 정말 신기하기만 하였다.

“어머님 앞으로 잘 키우셔야겠어요…. 떡잎이 보이는데요……. 호호호….” 선생님은 아내에게도 잊지 않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아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여보 내가 뭐랬어? 우리 안나는 춤꾼 기질이 있다니까……. 날 닮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나의 옆구리를 쿡 치면서 하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가까운 아파트 상가에 있는 태권도나 수영을 배울 것을 고집했었다. 발레를 배우려면, 시내에 있는 백화점 문화센터로 가야 했는데,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이제 겨우 다섯 살인 애가, 일주일에 2번 하는 거로 뭘 배울까 하는 의구심이 더 컸었다. 아무튼, 그날 이후, 아내는 신바람 나게 안나를 문화센터에 실어 날랐고, 나는 만만치 않은 가격대의 고급 비디오카메라를 사들였다. 우리는 주말이면 야외로 나가 딸아이의 모습을 찍고 또 찍었다. 늘어나는 영상만큼 나의 기쁨도 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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