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뜻대로 5

by 남킹

12.




라디오에 대해, 내가 가졌던 최초의 기억은 무서움이었다. 어릴 적, 내 집에는 언제부터인가, 어른 손바닥만 한 까만 일제 라디오가 있었다. 등에는 자신보다 더 크고 뚱뚱한 배터리가 고무줄로 칭칭 매어져 있었고, 머리에는 반짝거리는 은빛 안테나가 늘 비딱하게 뻗어 있었다. 아버지는 밤이 깊어지면, 이부자리를 펴신 뒤, 라디오를 머리맡에 두시고는, 엎드린 채, 다이얼을 이리저리 굴려서 채널을 맞추시곤 하셨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전설 따라 삼천리>이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가 다 좋아했다. 아니 우리 동네 모든 사람이 좋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디오에서 밤 10시 정각을 알리는 시보와 함께 구슬픈 가락의 전설 따라 삼천리 시그널 음악이 안방에서 흘러나오면, 누나와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안방으로 건너가 아버지 곁에 각자의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라디오에선, 산신령 같은 목소리의 해설자가 나와, ‘저으은 설 따라 사아암천리….‘라고 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때쯤이면 나는, 오늘은 제발 무서운 전설이 나오지 않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곤 하였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나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건 손에 꼽을 정도였었다. 전국에는 참 많은 귀신이, 저마다의 기구한 사연과 원한을 품고 복수와 응징으로 이어지는, 한 맺힘의 슬픈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듯 보였다. 나는 귀신이 등장할 만한 순간이 예측되면, 이불 끝자락을 한 손으로 꽉 움켜쥐곤 하였는데, 여차하면 재빨리 이불 속으로 숨기 위해서였다. 텔레비전처럼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줄곧 열려있는 귀로 듣는 건데도, 왠지 이불 속에 있으면 덜 무서운 듯 느껴졌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누나도 나와 얼굴을 맞댄 채, 귀를 반쯤 양손으로 닫고는, 무서운 장면이 빨리 지나가길 소원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런 날은, 마당 건너편에 있는 변소 가기가 죽을 만큼 싫었다. 무서움으로 잠도 쉬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음날 밤이 깊어지면, 어김없이 라디오에 귀를 쫑긋 세우곤 하였다.



그런데,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러니까 그때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머리는 벗어지고 수염은 회색으로 변해버린 그러한 나이에, 어느 안개 낀 일요일 아침, 독일 쾰른에 있는 5평 남짓의 32층 기숙사에서, 나는 무심결에, 잊혔던 오싹함을 경험하고 있었다. 나는 무료한 아침을 달래기 위하여, 안나의 책상 옆에 제멋대로 놓여 있는 CD 하나를 집어 휴대용 플레이어에 넣어 듣고 있었는데, 바로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그 무서운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온 것이다.


나는 급히 CD 표지를 살펴보았다. <클로드 드뷔시>의 <조각배 (En bateau)>. 뜻밖의 만남에 반가움이 올라왔지만, 두려움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잔영은, 이제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내 속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문득 그 라디오가 궁금해졌다. ‘아직도 고향 집 다락방에 처박혀 있을까? 아니, 아직 고향 집이 남아있기는 한 것일까?’




13.




라디오에 관한 추억이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날의 이른 아침은 여느 때와 달랐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외침이 우리 가족 모두를 깨우고도 남았다. 나는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팬티만 걸친 채, 아버지에게 달려가, 라디오에 귀를 바싹대고 있는 그의 넓은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흥분된 표정으로, 나에게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시곤, 다시 고개를 돌려 라디오로 귀를 가져갔다.


라디오에서는 심한 잡음과 같은 소리와 함께 흥분된 남자가 쉼 없이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부지…. 지금 뭐하는데?”

“홍수환이 권투 시합한다. 아이가…….”

“권투가 뭐꼬?”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눈을 한번 찡긋거리더니, 다시 시선은 라디오로 향한 채, 쉰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먹으로 아 두드려 패는 기다….”

“그건 깡팬데……. 홍수환이 깡패가?”

“.....”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가 이상한 말을 외치면서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따운 따운……. 또 따운이다…….” 그러면서 나를 번쩍 안으시고는, 우리 홍수환이 세계 챔피언이 되려는 모양이라시면서 깨춤을 추셨다. 거구의 아버지가 춤을 추시니 좁고 낡은 집이 흔들흔들했다. 그리고 그날, 춤은 아버지만 추신 게 아니었다. 옆집 서방구 아버지도, 건너편 오말자 아버지도, 흔들흔들하며 우리 집으로 모여들어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나도 덩달아 춤을 췄다. 영문도 모른 채 말이다.




14.




그리고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 나는 라디오를 들으며 또 한 번 추억의 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낮은 다락방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함성과 함께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누나가 쿵쾅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달려와 다락문을 벌컥 열었다. 나는 라디오를 그녀에게 내보이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 노래 들리제……. 철새는 날아가고 다……. 내가 신청한 노래다……. 억수로 좋제……. 이 노래…….” 그러자 누나가 삐딱한 표정으로 한심스럽다는 듯이 대꾸했다.

”뭐시라……. 철새라고……. 어휴…. 저거 언제 철들겠노……. 날아 댕기는 바퀴벌레나 잡아라. 인마…….” 하면서 문을 쾅 닫았다. 그러자 흘러나오던 노래가 갑자기 광고로 바뀌어 버렸다. 1절도 못 끝내고 그만 끝나버린 것이다. 아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일주일을 꼬박 기다린 끝에, 1분 동안의 감격만 남긴 채 사라진 것이다.


나는 노래를 담을 수 있는 레코더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애창곡을 담을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 레코드의 존재가 절실한 것이다. 나는 동네 시장 입구에 자리 잡은 전파상으로 달려갔다. 그동안 등하굣길에 무심코, 수없이 지나쳤던 이곳을, 나는 눈이 뚫어지라 바라봤다. 유리로 된 낡은 진열장에는, <테레비, 전축 출장 수리>라는 글귀가 붙어있고, 다양한 모양의 전축과 라디오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중에, 선반 맨 하단에 놓인 제품 하나에 시선이 꽂히기 시작했다. 까만 색상으로, 좌측에는 1개의 카세트테이프 데크가, 우측에는 동그란 스피커와 유리로 된 AM/FM 라디오 주파수 표시창이 보였다. 위에는 휴대하기 편하도록 손잡이가 달려 있었고, 여러 개의 버튼도 있었다. 대부분 버튼은 까만색이었으나 한 개는 빨간색이었다. 나는 그 버튼이 내가 그렇게 바라던 녹음 버튼인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선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저것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묘책이 떠오르질 않았다. 우리 집 형편에 저 레코드는 너무도 사치스러워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면, 습관적으로 전파상 앞에 멈춘 채, 한동안 라디오 레코드를 바라보곤 하였다. 보면 볼수록 점점 좋아 보이고 점점 더 갖고 싶어졌다. 하지만 가족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순 없었다. 비록 외아들이었지만, 지금까지 어느 것 하나 넉넉하게 가져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욕망에 대한 절제와 타협에 이미 길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누르면 누를수록 틈새로 삐져나왔다.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늘 기억의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자 마음의 병이 들기 시작했다. 집에 오면 말없이 가방을 홱 던지고는, 다락방에 올라가서는 처박혀 꼼짝하지를 않았다. 밥상머리에서도 멍하니 초점 잃은 표정으로 말없이 밥만 먹었다. 엄마가 부르면 시큰둥했고, 누나가 말을 걸면 짜증부터 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마음의 병은 이제 몸으로 옮아갔다. 식욕도 떨어지고, 초여름의 쾌청한 날씨인데도, 으슬으슬하게 추위를 타더니, 어느새 몸 구석구석 뼈 마디마디가 아팠다. 결국, 이틀 동안 학교도 가지 않고 누워서 보냈다. 그리고 몸이 좀 나아졌을 때쯤, 나는 다시 전파상을 찾았다.


한동안 서성거리며 바라보고 있는데, 전파상 문이 반쯤 열리더니,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나는 주섬주섬하며 발을 안으로 들여놓았다. 아저씨는 대뜸 “니 어제는 와 안 왔노?”라고 하면서 싱긋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내 속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 덩어리가, 백주대로에 사람들에게 온전히 다 까발려진 것 같은 심한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마음에, 입을 비죽거리며 대답도 못 하고 그냥 서 있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흑백으로 된 인쇄물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받아보니 바로 그 카세트 라디오의 광고 전단이었다.


전단 윗부분에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카세트 라디오를 즐겨주십시오…….‘라는 글자가 큰 글씨로 인쇄되어 있었고, 왼쪽에는 제품의 사진이, 오른쪽에는 제품명과 특징, 판매처 등이 적혀 있었다.

“너거 어머이한테 한번 보여봐라…. 요즈음 최고로 잘 나가는 긴데……. 이 아저씨가 특별히 니한테 억수로 싸게 파께…….” 나는 대답 대신, 꾸벅 한번 인사를 하고는, 잽싸게 전파상을 빠져나와 집으로 힘차게 뛰어갔다. 나는 뛰면서, 이번에는 꼭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집이 가까울수록, 내 속에 채워졌던 용기가 듬성듬성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대문에 들어서자, 나의 결심은 모두 방전되고 말았다. 나는 다시 예전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멍한 표정과 함께 다락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가져온 전단은 양쪽 모서리에 풀칠해서 창 옆 벽면에다 붙였다. 그리고 한동안, 그 속의 제품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자 자신이 참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서글픈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슬픔은 원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작은 소망조차 채워줄 수 없는 아버지의 무능함이 너무도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너거 할아버지 때는, 밟고 댕기는 여가 모두 우리 땅이었다 아이가….” 아버지는 틈만 나면 그렇게 옛날을 자랑하셨다.

”집에 머슴과 식모가 바글바글했다…. 내 어릴 때만 해도….” 아버지는, 술을 한잔 걸치고 오신 날이면, 대청마루에 벌떡 누우셔서,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그렇게 날 풀처럼 사라진 지난날의 풍요를 읊조리곤 하셨다.

”술 마시고 노름으로 다 말아 묵었뿠다 아이가…. 너거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집에 숟가락 몽둥이 하나도 안 남았는 기라……. 참 해도 해도 너무 했제……. 대대로 내려오던 그 많은 재산을 홀라당 그렇게 우찌 거덜내뿌노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원망하셨다.


그리고 이제 나는, 대를 이어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자 나의 원망은, 어렴풋하게나마, 나의 다음 대까지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밤, 만약 내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만약 자식이 생긴다면, 절대로 못난 아비가 되지 않겠다고, 어금니를 꽉 깨물며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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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내리는 빗물 - 2023-12-21T164036.38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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