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나는 식당에서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온종일 헤드셋을 끼고 살았다. 나는 그때, <하드락>과 <헤비메탈>에 심취해 있었다. 그리고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높은 볼륨을 유지했다. 나는 일렉트릭 기타의 거칠게 긁어 대는 날 선 사운드와 마치 모든 것을 부숴버릴 듯이 두드려 대는 드럼 연주, 괴성을 질러 대는 보컬, 전신을 파고드는 신시사이저가 어우러져 쏟아내는 폭발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열광했고 그 열광 속에 암울한 현재를 잊었고 막연한 미래를 환영으로 바꾸고 있었다.
나는 <딥 퍼플(Deep Purple)> <레드 제플린(Red Zeppelin)>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레인보(Rainbow)> <AC/DC>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퀸(Queen)> <스위트(Sweet)> 의 히트곡들을 줄줄이 꿰고 다녔다. 이 중에서 특히 <주다스 프리스트>와 <블랙 사바스>를 가장 좋아하였다. 이 두 헤비메탈 밴드는 묘하게도, 당시에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공업도시인 영국 버밍엄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밴드를 만들어 음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그들은 평생 먼지 가득한 공장지대에서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음악 속에는 암울함이 배여 있었다. 그 속에는 소외, 반항, 가난, 불행, 절망 그리고 나약함 같은, 지금의 나를 특징짓는 요소와 너무도 닮아 보였다. 나는 사랑의 기쁨보다는 실연의 상실감을 매일 주문처럼 읊조리고 다녔다.
나는 <블랙 사바스>의 She’s gone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
The endless hours of heartache, waiting for you
당신을 기다리는 끝없는 슬픔의 시간
My summer love has turned to rain, all the pain
내 여름의 사랑은 고통으로 바뀌었네
The silent emptiness of one sided love
짝사랑의 공허함이여
.......
나는 또, <주다스 프리스트>의 Before the Dawn을 즐겨 들었다.
........
It's been a lifetime
한평생을 보냈죠
Since I found someone
누군가를 찾아낸 이후
Since I found someone who would stay
그는 내 곁에 있어 줄 줄 알았는데
I've waited too long
너무 오래 기다렸죠
And now you're leaving
이제 당신은 떠나려고 하네요.
Oh please don't take it all away
제발 내게서 모든 걸 가져가지 말아요
.....
28.
그러나 나의 이중 학원 생활 – 입시 학원과 기타 학원 – 은 대학 입시 실패와 함께 마감하고 말았다. 입영 통지서가 날아온 것이다. 나는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채우고만 다니게 되었다. 사실, 애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수였다. 대학 입시에만 매달려도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한 실력에 기타 연습과 식당 아르바이트까지 하였으니 애당초 실패는 예견되어 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기타를 배우면서 나는 또 하나의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악기를 배운다는 게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배우고 싶은 것을 한다는, 초기의 설렘과 호기심의 단계가 지나가자 고통이 찾아왔다. 기타 코드는 점점 어려워지고 악보는 더욱 복잡해졌다. 복습이 필요하였지만, 시간도 없을뿐더러 드러내 놓고 할 수 없는 비밀이 아니던가. 그러자 다른 수강생들에게 뒤처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간격은 점점 더 벌어졌고, 나는 의기소침해졌으며 회의감이 몰려왔다.
나는 나의 음악적 재능이 의심되었다. 아니, 애초에 재능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단순히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과 음악을 <한다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인기 록 밴드들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삶에 고무되어 그 이면을 미처 보지 못하였다. 그들이 대중 앞에 서기 위해 흘려야만 했던 땀방울과 인내의 세월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결국, 나는 기타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입시 학원까지 그만둔 나는 삼촌네 가게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며 입대 날을 두려움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오후, 나는 식당 홀에 혼자 앉아 무언가를 작성하고 있는 학생을 발견하였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공군 입대 지원서>였다. 나는 호기심으로 그에게 지원동기를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타 군보다 공군이 편하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솔깃하여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그는 친절하게도 그가 알아낸 공군에 관한 이야기를 내게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사이좋게 같이 지원서를 제출하였고 신체검사와 필기시험도 같이 봤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만 합격하였다.
그는 충치가 너무 많아 신체검사에서 그만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대전에 있는 신병 훈련소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훈련소 생활 한 달째 되던 날, 우리 다음 기수로 들어온 신병들 틈에서 그를 본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교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배시시 웃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그의 벌어진 입에서 유난히 새하얀 이빨들이 반짝거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신체검사에서 떨어진 그는, 다음날 당장 치과에 달려가서 모든 충치를 치료하고 심지어 미백 치료까지 받았다고 하였다. 그 이후, 우리는 바쁘고 고달프기 그지없는 훈련소 생활이었지만 틈만 나면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한 달 나중에 입소한 그가 주로 묻고 나는 주로 답변을 하였다. 하지만 그와의 인연은 훈련소를 끝으로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29.
기초 군사 훈련이 마무리될 때쯤, 훈련병들은 영어를 포함한 몇 가지 시험을 더 치러야만 했다. 이번 시험은 특기생을 선별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군 특성상 영어가 필요한 분야가 꽤 있었다. 그중에 훈련병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던 게 <항공 통제> 특기였다. 쉽게 말해 레이더 기지에서 근무하는 것인데, 대부분 산속에 위치하였으므로 <산신령>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지만 비교적 자유시간과 외출, 외박이 잦았고 내무 생활의 강도도 약하다는 소문이 훈련병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즉, 1순위 특기였다.
반면에 <항공기 정비> 특기는 훈련병들의 기피 대상 중 하나였다. 항공기 정비는 조종사의 생명과 직결되는 사항이므로, 육체적인 노동의 강도도 강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압박도 심하다는 것이었다. 즉, 군기가 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특기의 공통점은 영어 점수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영어 점수가 좋았다. 아무래도 중학생 시절부터 줄곧 팝송에 미쳤던 게, 시간 낭비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대부분 대학생인 훈련병 중에 고졸 출신인 내가 영어 성적 우수자가 된 것이 놀랍기도 하거니와 끝없이 추락하기만 하는 자신을 보듬어 줄 약간의 자부심마저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때 아마 어렴풋이 내 미래의 청사진에 영어를 포함해야겠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를 포함한 몇몇 영어 성적 우수 병들은 따로 특기 적성 검사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검사는 항공 통제 특기생을 선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검사 도중,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헤드폰을 끼고, 레이더에서 흘러나오는 삐삐 같은 음향이 나는 쪽 손을 드는 거였는데 아무리 집중해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높은 볼륨의 헤비메탈에 길든 나의 불쌍한 고막은 삐삐 같은 낮은음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탈락한 나는, 훈련병들이 꺼리는 <항공기 기체 정비> 특기를 부여받고 말았다.
그리고 이듬해 봄, 나는 남쪽으로 향하는 군용열차에 동기병들과 함께 몸을 실었다. 기차가 도착하는 역마다 불리는 동료들이 아쉬운 작별 인사와 함께 내렸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호출되지 않았다. 결국, 부산역까지 왔다. 마지막까지 남은 몇몇 동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전투 부대가 아니라 수송 부대였기 때문이다. 즉,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