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뜻대로 11

by 남킹

30.




그렇게 나는 김해 공항 활주로가 끝없이 펼쳐진 곳에서, 뚱뚱하기 이를 데 없는 수송기와 단순하기 그지없는 헬리콥터를 정비하며 30개월이 넘는 자대 생활을 시작하였다. 나는 동기 3명과 함께 검사 중대에 배정되었으며 내가 맡은 구역은 라이트 윙이었다. 즉, 일정한 시간이 지나간 수송기를 대상으로 각종 검사와 수리, 세척을 하게 되는데, 나는 오른쪽 날개를 전적으로 담당한 것이다.


나는 비행기 날개가 대부분 연료 탱크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주 업무는, 날개에 수없이 박혀 있는 볼트나 너트 틈새로 연료가 새는지를 점검하여, 만약 새는 곳이 발견되면 누유 방지제를 묻혀서 다시 조여주는 일이다. 기름이 샌 흔적은 비교적 쉽게 발견이 되었다. 왜냐하면, 누유된 곳 주위에는 보라색 얼룩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원래 수송기 연료는 휘발성이 아주 강한 투명한 액체인데 구분을 쉽게 하도록 보라색 염료를 살짝 섞어 준다고 하였다.


나는 수송기 날개 위에 올라가서 작업할 때도 종종 있었다. 처음 올라갔을 때는, 마치 바람 부는 마천루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불안에 떨며,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며 작업을 하였다. 바닥이 생각보다 엄청 미끄러운 데다 날개 끝으로 갈수록 흔들림이 점점 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 년쯤 지나자 나는 놀이터처럼 날개 위를 뛰어다녔고,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날에는 가끔 그 위에서 낮잠을 즐기기도 하였다. 어느새 나는 자동차 정비 공장에서나 봄 직한 모습의 정비사가 되어 있었다. 기름때로 까맣게 얼룩진 정비복을 거리낌 없이 걸치고 다녔으며, 손톱이나 코밑이 시커먼 상태에서도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31.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전역을 1년 정도 앞두게 되었다. 병장으로 진급한 지도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어머니가 한번 다녀갔다. 사실 매월 한 번꼴로 외박을 하였기에 그다지 면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결국 도피 생활을 마감하고, 자수하여 6개월 정도 교도소 복역을 하고 특사로 풀려났다. 그러고 나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하는데 뜻대로 잘되지 않아 보였다. 누나는 여전히 미국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고군분투한다고 했다.


나의 보급품 함 벽에는 기타리스트인 <리치 블랙모어>의 연주 사진과 함께 누나의 사진이 한 장 붙어있다. 어머니가 면회 와서 주고 간 것이다. 그녀는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곳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그리고 사진 뒷면에 <뉴욕 브루클린 브릿지에서>라고 적혀 있다. 나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누나의 자유로움과 동시에 강한 의지를 느꼈다. 나에겐 그다지 찾아볼 수 없는 덕목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언제나 <그 누나의 동생>으로 나를 지칭했다.

"쟤가 바로 이번에 전교 1등 한 송가네 딸 있잖아. 걔의 동생 인디. 성적이 형편없다네."

"쟈가 바로 이번에 서울대 들어간 송가네 딸내미 동생 인디……. 대학도 못 가고 놀고 있다는데……. 글씨..."

"에구구 둘이 바꿔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말이여"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작은 동네에서 누나는 유명인사였고 나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어디를 가나 나를 대하는 어른들의 궁금증은 누나에 관한 것이었다.

"너거 누나 이번에도 일등했제?"

"너거 누나 법대 간다냐 의대 간다냐?"

"니는 언젠가는 너거 누나 덕 좀 볼끼다. 누나 말 잘 듣고 있제?"

학교 선생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니가 송은정이 동생 맞나? 에구 니 많이 노력해야겠다. 우찌 이래 너거 누나하고 다르노?"


그렇게 나의 청소년 시절은 누나의 그늘에 가려진 흐릿한 정체성으로만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나에게 적대감이나 불평불만을 가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무슨 일이든 사려 깊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어떤 난관에도 끈기로 차근히 풀어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의존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무능한 아버지로 인해 그 의존성은 더 심화하였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가족 모두가 누나만 바라보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홀연히 떠나 버렸고, 구심점이 사라지자 가족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32.




나는 그즈음 많아진 시간만큼 고민도 깊어졌다. 1년 뒤면 사회로 환원되어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하자니 나의 재능과 의지에 의심이 들었으며, 대학 입시 공부를 다시 하자니 자신도 없거니와 설령 입학하더라도 등록금을 벌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누나는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지 않은가! 설령 닿더라도 누나 또한 홀로서기에 힘든 시간을 보낼 텐데 거기에 손 벌릴 염치는 더더욱 생기지 않았다.


나는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무거운 어깨를 짊어지고, 내무반 끝에 마련된 독서실에 처박혀 동기들과 바둑이나 장기를 두며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독서실 복도 맞은편에는 제법 큰 TV와 카펫이 깔린 휴게실도 있었다. 한때는 그곳에서 TV를 보며 휴식을 취하곤 하였는데, 비록 병장이지만 TV 채널을 내 마음대로 돌리기에는 선임들이 너무 많았고, 또 바둑에 재미를 들이면서 자연히 자리를 독서실로 옮기게 되었다. 독서실 한쪽 벽면 전체에는 크고 작은 서적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데, 모두 전국 각지에서 기증받은 것들이었다. 그중 대부분 책은 소설이나 잡지였고, 입구 쪽에는 따로 고등학교 교과서나 참고서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독서실에는 고정 회원이 서너 명 있었는데 그들 모두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처럼 고졸 출신도 있고 전공을 바꾸려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들을 따라 교과서나 참고서를 펼쳐 놓고는 하였는데 마음만 심란하여 책을 덮고 말았다. 목표가 흐릿한데 글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였다. 나는 그때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나는 내게 가난을 물려준 부모를 원망했고 무정하게 떠난 누이를 저주하였으며 내 앞에 놓인 참담한 미래에 좌절하고 있었다. 차라리 군에 몸담은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하였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다.




33.




그러던 어느 날, 매년 실시되는 <팀 스피릿> 훈련이 시작되었다. 주한 미군과의 합동 군사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갑자기 주위의 사람들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경험하였으므로 오히려 차분한 상태였다. 사실 약간의 기대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미군들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임시 막사 자국이 선명한, 내무반 옆 공터 한쪽 구석에 수북이 쌓아 놓은 버려진 잡동사니 속에서, 우리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맥주 캔을 상자째로 발견하거나 개봉도 하지 않은 담뱃갑을 몇 보루나 손쉽게 찾기도 하였다. 더욱이 내무반원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성인용 잡지들도 부지기수로 주웠다. 우리는 이렇게 손쉽게 얻은 전리품들을, 간부들의 눈을 피해 가며, 계급순으로 돌아가며 누리곤 하였다.


훈련의 처음은, 언제나 우리 것보다 몇 배나 더 크고 뚱뚱한 미군 수송기들이 굉음을 내며 줄줄이 활주로에 등장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의 비행기는 거대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그 속에서 탱크나 장갑차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하루는,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동료들과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저 수송기에서 과연 몇 대의 차량이 나올까 하는 거였다. 우리는 한 수송기에서 나오는 군사 장비의 수를 10까지 세고는 멈춘 채 놀라움으로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였다. 우리가 제시한 가장 큰 숫자는 고작 여섯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도 적지 않은 장비들이 기내에 남아있었다.


훈련 기간에는 정비 업무가 생략된다. 그 대신 대부분을 필드에서 보내게 된다. 내가 하는 가장 주요한 업무는 항공기 주유였다. 나는 쉴 새 없이 뜨고 내리는 수송기들을 수신호로 안전하게 지정된 구획에 유도한 뒤, 바퀴 앞뒤에 노란 버팀목을 넣어 고정하고, 주유 차량을 불러서 주입구 마개를 따고 기름을 가득 채웠다. 항공기 유는, 상온에서는 가스 상태의 휘발성이 강한 기름으로, 주유하는 동안, 우리는 올라오는 가스에 취해 대부분 해롱해롱한 상태였다. 실없이 웃음이 터지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주유를 마치고도 주입구 마개를 닫는 것을 잊어버려 상관에게 혼이 나기도 하였다.


연료를 주입하는 동안 나는, 되도록 가스를 흡입하지 않기 위하여, 목을 길게 빼고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시선은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향하고는 하였다. 그런데도 대기 속으로 빠르게 흩어지는 가스 일부는 내 코로 잠입하여 나의 시상하부에 영향을 미치고 감성계에 자극을 주는 거였다. 그러면 나는 유명한 록 가수가 된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안면에 최대한 인상을 쓰며 멜랑꼴리한 발라드곡들을 불러 젖히곤 하였다.


<무디 블루스(Moody Blues)>의 <멜랑꼴리맨(Melancholy Man)>, <버클리 제임스 하베스트(Barclay James Harvest)>의 <푸어 맨스 무디 블루스(Poor Man’s Moody Blues)>,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에피타프(Epitaph)>, <딥 퍼플(Deep Purple)>의 <솔저 오브 포춘(Soldier of Fortune)>, <레인보(Rainbow)>의 <레인보 아이즈(Rainbow Eyes)>, <퀸(Queen)>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줄리아 드림(Julia Dream)>, <캔자스(Kansas)>의 <더스트 인드 윈드(Dust in the Wind)>, <조지 베이커 셀렉션(George Baker Selection)>의 <아이브 빈 어웨이 투 롱(I’ve Been Away Too Long)>, <스콜피온스(Scorpions)>의 <홀리데이(Holiday)>,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rodite's Child)>의 <레인 앤 티어스(Rain & Tears)> 등등의 노래들을 연속으로 부르며, 어떤 때는 나의 노래에 스스로 감동하여,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러다 노래가 바닥이 드러나면 그냥 멍하니 하늘과 구름, 일렁이는 갈대밭과 새들을 바라봤다. 특히 나의 시선이, 무리를 지어 어디론가 힘차게 날아가는 철새들을 따라갈 때는, 나도 그들처럼 훌훌 털고 낯선 이방인의 세상으로 떠나고 싶다는 간절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때, 나의 내면은 아마도 누나가 있는 미국으로 이미 끌려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방인 (15).jpg
Black And White  Modern Alone Story Book Cover - 2023-12-05T190703.37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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