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몽롱한 상태의 바쁜 며칠을 보낸 후 달콤한 휴식이 찾아왔다. 일요일이 된 것이다. 보통 날씨 좋은 일요일 오후가 되면, 우리 내무반원들은 활주로 옆 잔디밭으로 몰려가서 축구를 하곤 하였다. 그날도 우리는 예외 없이, 간이 골대 2개를 양편에 꽂아 두고는 절반으로 나뉘어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다. 한창 축구에 몰입하고 있는데, 뜻하지 않게 관중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놀이가 재미있는지, 크게 웃으며 환호성도 지르고 손뼉도 치곤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모두 외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즉, 이번 훈련에 참여한 미군들이었다.
우리는 점점 늘어나는 관객들에 비례하여 점점 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헛발질이 줄을 잇고 누가 밀지도 않았는데 제풀에 미끄러지기도 하였다. 공을 두고 땅을 차는가 하면 슛한 공이 골대 반대편 공중으로 솟구치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를 삥 둘러싼, 초대받지 않은 그들은 마치 서커스 구경을 하러 온 어린이처럼 좋아하는 표정들을 짓는 것이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최선임자가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전반전 종료를 선언하였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호기심으로 가득한 이방인들이 빨리 사라져 주기를 기원하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미군 중 덩치 큰 흑인 병사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영어로 뭐라고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황한 우리는 그 누구도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멀뚱멀뚱 앉아서 고개만 갸우뚱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우리와 같이 축구를 하고 싶다는 뉘앙스를 나는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짧은 영어 문장으로, 그 병사에게 우리와 함께 운동하기를 원하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유난히 흰 이빨을 크게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이었다. 나는 몇 명 정도 뛰기를 원하는지를 다시 천천히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자기 동료들과 빠른 말로 쑥덕이더니, 미군 대 한국군으로 해서 시합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뜻을, 마치 전문 통역사 같은 의기양양한 자긍심을 애써 감추며, 우리 진영에 전달하였다. 우리 쪽에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는가 싶더니 결국 도전을 수락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우리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객관적으로 실력이 나은 베스트 일레븐을 뽑아 선발로 내세웠다. 나는 심판을 보게 되었다. 사실 실력이 달려 선발을 넘볼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하거니와, 혹시라도 분쟁이 발생하게 되면 소통이 가능한 한 거의 유일한 중재자였기 때문이다. 상대 진영에서도 열한 명이 선발되었다. 흑인과 백인이 골고루 섞여 있고 여자도 세 명이나 끼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긴장된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지만, 상대방은 마치 소풍 온 사람들처럼 여유와 즐거움이 철철 넘쳐 보였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보다 키가 다들 한 뼘씩은 더 크고 덩치도 훨씬 좋았다. 그래서 우리는 몸싸움을 피하고 짧은 패스 위주로 빠르게 공격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나는 양 팀의 진영이 갖추어진 것을 확인한 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을 불었다. 우리 선수들은 킥오프가 진행되자마자, 마치 국가 대표라도 되는 양, 전력 질주를 하며 공을 가진 상대방에게 달려들었다. 기선 제압을 위하여 강력한 전방 압박을 가한 것이다. 그러자 미군들은 당황한 듯 움찔움찔 놀라며 뒷걸음치다 결국 패스 한 번 못해보고 공을 뺏기곤 하였다. 그런 상대에게 우리는 비장한 표정으로 맹공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승부의 추는 의외로 너무 쉽게 기울어져 버렸다. 그들은 마치 태어나서 축구공을 처음 만져 본 사람처럼 보였다. 느리고 서툴렀다. 게다가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너무 느긋했다. 공을 뺏겨도 그다지 안타까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우리가 10 대 1로 이겼다. 게다가 상대방이 득점한 한 골도, 경기 막판에 우리 진영 가까이에서 벌어진 가벼운 몸싸움에, 내가 그냥 선심 쓰듯 페널티킥 선언을 해서 얻은 거였다. 경기 초반, 그들의 덩치에 바싹 긴장했던 우리가 오히려 무안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부상 없이 축구 경기를 잘 끝낸 양 팀은 악수를 교환하였고, 다음번에는 야구 시합을 하자는 미군들의 제안을 우리가 흔쾌히 받아들이며 헤어졌다.
35.
그날 저녁, 나는 무척 고무되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인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였다는 사실에 덧붙여, 그들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의 뜻을 어느 정도 영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 것이다. 더구나 내 주위의 젊은이들보다 내가 좀 더 낫지 않은가! 나는 못난 내 인생의 돌파구가 어쩌면 영어에 있을 것 같다는 운명적 믿음을 그날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누이가 미국에 있다는 것 또한 그러한 믿음에 어느 정도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나는 식사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독서실로 달려갔다.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서재에서 도움이 될 만한 영어책을 찾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영어와 관련한 책들은 대부분 사전류나 고등학교 참고서뿐이었다. 그렇다고 참고서로 영어 공부를 하자니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입시 실패의 아픈 추억도 한몫 거들었겠지만, 무엇보다 딱딱하고 지겨운 책으로 끝까지 읽어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서재 한쪽 구석에서 <영한대역문고>라는 작고 얇은 책 하나를 발견했다.
붉은색 표지에 <And Never Said a Word>라는 영어 제목이 적혀 있고 그 밑에 한글 제목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표기되어 있었다. 책 제목치고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처음에 들었다. 그리고 제목 밑에는 연필로 그린 듯한, 작가로 보이는 초상화가 인쇄되어 있었다. 머리가 많이 벗겨진, 중년의 마음씨 좋은 듯한 외국 아저씨가 싱긋이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까만 바탕에 흰 글씨로 적혀 있었다. <Heinrich Böll> 처음에는 영어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ö>라는 생소한 철자가 눈에 띄었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운 까닭에, 나는 작가가 독일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책을 펼쳐 보니, 왼쪽 면은 영어로 오른쪽 면은 국문으로 번역이 되어 있었다. 영어 한 문장씩 차곡차곡 읽고 생각하고 번역문과 맞추어 보면 꽤 재미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가지고, 입시 공부에 여념이 없는 동기 옆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주 어려웠다.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처음 보는 단어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문학 작품이다 보니 쉽고 단순한 문체가 아니었다. 머릿속이 마치 스파게티처럼 얽히고설키고 있었다. 나는 그날, 몇 시간을 끙끙대다, 겨우 1페이지 정도 끝내고 잠자리에 들고 말았다.
다음 날 저녁, 같은 자리에 앉은 나는, 하루만 더 버텨 보자는 각오로 다시 그 책을 펼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혼란과 자책과 절망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시간 대부분이 영어 사전 뒤지는 것에 할당되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벌떡 드러누워, 눈을 감은 채, 이 괴로운 영어 공부를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안 보였다. 결국, 그날은 고심만 하다 끝나고 말았다.
36.
다음 날에도 나는 변함없이 독서실을 찾기는 하였다. 하지만 선뜻 그 책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책 제목처럼 나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다 나는 아무래도 다른 책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참고서를 보는 게 현명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서재에 도로 꽂아 두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왕에 이렇게 된 거, 그 소설의 내용이나 한번 살펴보자는 거였다. 사실 2페이지 정도밖에 읽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글 번역 부분만 읽기 시작했다.
다음 날도 그 책을 읽었다. 그다음 날도 계속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겼다. 아쉬움이 찾아왔다. 읽는 내내 슬픔과 고통을 느꼈는데 막상 끝이 나니 아쉬움만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한 줄 한 줄 힘들게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더 보냈다.
나는 읽는 내내, 작가가 사실대로 그려 놓은 가난하고 절망적이며 음울하기 그지없는, 패전으로 망가진 독일의 세상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나는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빙의가 된 것처럼 같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난으로 흩어진 우리 가족과 닮아 있었다. 나는 이제껏 잘 생각하지도 않았던 우리 가족 –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 – 을 떠올렸다. 이제껏 원망과 불평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우리 가족에게 비로소 그리움이 덧붙여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글이 주는 놀라운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음악에 빠진 것처럼 이제 문학에 폭 빠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독서실 서재에 꽂힌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는 자연히 뒷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두꺼운 책 하나를 꺼냈다. 나의 누이가 예전에 좋아하던 소설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사실 독서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이었는데, 그 두께에 압도되어 감히 선택할 수 없었던 거였다. 게다가 나의 독서 속도는 아주 느린 편이었다. 나는 한 줄 한 줄 문장의 의미를 곱씹어가며 읽었으며, 그 뜻이 잘 이해되지 않으면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두꺼운 책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나는 좋은 글이 우리의 내면에 미치는 놀라운 힘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글을 통하여 더 많은 자극을 받고, 그러한 과정에 내 삶의 깊이를 늘려나가는 것에 아무런 주저함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위고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미리엘 신부를 만났다. 성당의 은그릇을 훔쳐 간 장발장에게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은촛대도 주었는데……. 왜 가져가지 않았소?" 나는 이 부분에서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주 펑펑 흘렸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나의 말라비틀어진 마음에 단비 같은 사랑이 주룩주룩 내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자 원망이 사라지고 선한 마음이 찾아왔다. 나는 어느새 장발장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