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입대 후 처음으로 아버지가 면회를 온 것이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게 몇 년 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부동산 사업하신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외지로 떠난 게 내가 중학생 때였다. 그동안 내가 접한 아버지 소식은 도망 다닌다는 것, 결국 자수해서 옥살이했다는 것 그리고 풀려났다는 것뿐이다.
설렘과 주저함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으로 면회실 문을 연 순간, 아버지는 오래 기다렸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으쓱하고 계셨다. 반가워할 때의 저 특이한 모습은 공교롭게도 미래의 손녀딸이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버지의 큰 체구는 여전하였으나, 얼굴과 팔은 까맣게 탄 채 깡말라 보였다. 아버지가 앉은 자리 앞 탁자에는 빵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내가 앉자마자 아버지는 그중 한 개를 집더니 비닐 포장을 능숙하게 벗기고는 내게 불쑥 내밀었다. "이거 엄청 맛있다. 함 무 봐라." 노릇하게 잘 익은 단팥빵이었다. 나는 엉거주춤 빵을 받아 든 채 아버지를 바라보며 황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버지는 나의 표정에 담긴 무언의 질문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면회실 창 쪽으로 끄덕끄덕하시면서 손짓하였다. 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 나의 시선에 아담한 크기의 분홍색 트럭이 들어왔다. 트럭의 한쪽 전체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빵이 담긴 광주리를 든 아리따운 주부가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이 크게 새겨져 있었다.
"아들아…. 너거 아부지 빵 공장에 취직했다." 아버지는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두 팔을 의자에 걸친 채 빙그레 웃으며 나를 찬찬히 바라봤다. 아버지의 표정에 그리움이 배어있다. 나는 무표정하게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올라왔다. 나는 애써 참으며 빵을 천천히 씹었다.
"이제 병장이네…. 좀 편안하제?"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너거 엄마도 데리고 올끼다. 집 하나 봐 놨다. 다음 달에 들어 갈끼다...니 방도 하나 있다. 이제 니 제대하면 같이 살면 된다. 아무 걱정 없다. 이젠…." 나는 말 없이 다시 아버지의 트럭을 바라봤다.
"저게 저래 봬도 엄청 빠르다. 새벽에 빵 가게 한 바퀴 쫙 돌고 오후에 급한 곳 몇 군데만 더 돌면 된다. 마 너거 아버지한테는 식은 죽 먹기다. 너거 아버지 운동 신경 하나는 쥑인다 아이가…. 총알같이 운전한다…. 속도위반 걸려도 상관없다. 회사에서 알아서 다 처리한다. 그러니 맘 놓고 밟는다…."
38.
면회실을 나와 내무반으로 가는 내내 나는 울었다. 그냥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흘러내렸다. 내무반에 도착하기 직전에 손등으로 눈물을 겨우 훔쳐내었다. 일요일, 평상에서 뒹굴고 있던 내무반원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양손에는 뭔가를 잔뜩 담은 큰 비닐봉지가 들려 있고, 눈은 퉁퉁 부은 채 빨갛게 충혈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빵을 쏟아내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옆 반에 있던 녀석들도 몰려와서 다들 빵을 한두 개씩 집어 갔다. 심심한 일요일 오후 느닷없이 빵 파티가 벌어졌다. 나도 빵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참 맛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니 적금통장 하나 맹글었다. 니 대학 등록금 할끼다…."
아버지는 약속을 지켰다. 한 달 뒤, 어머니와 함께 면회를 오신 것이다. 물론 엄청난 양의 빵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누이의 편지도 가지고 왔다. 누나는, 내가 전역하면 미국으로 건너와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영어도 배우고 또, 천천히 대학도 진학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봐라. 너거 누나, 니 안 잊었다 아이가…."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다.
39.
나는 그날 저녁, 독서실에서 고등학교 참고서를 꺼내 펼쳤다. 다시 대학 입시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 해, 내게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이, 만약 신이 있다면, 마치 신의 섭리와도 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신은 내게 <하인리히 뵐>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인간의 슬픔>을 공유하고 나를 문학의 세상으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신은 다시 <빅토르 위고>를 소개하셨고, 그를 통하여 내게 <선한 마음>을 깨우쳐 주셨다. 선한 마음을 생각하자 놀랍게도 가족들이 돌아왔다. 아니 가족들은 애초에 떠난 적이 없었다.
나는 이듬해 전역을 하였고, 그해 대학에 입학하였다. 나의 전공은 독어독문학과다. 나는 학과 선택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미 루이제 린저, 귄터 그라스, 괴테,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 등의 여러 유럽의 문인들에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그들이 나고 자란 곳을 직접 가 볼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40.
쾰른의 일요일은 짙은 안개로 시작되었다. 나는 안나의 좁은 침대에서 밤새워 뒤척이다, 늦게 잠든 바람에 거의 정오 가까이 일어났다. 사실 늦게 일어난 게 좀 다행스럽기도 하였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아무런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시간이 빨리 가서, 내일 오전에 내 차를 돌려받고 집으로 내려가기만 바랄 뿐이었다. 나는 일단 뭔가 요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냉장고 문을 열어 봤다. 집에서 가져온 듯한 몇 가지 밑반찬과 다양한 종류의 맥주 캔들이 눈에 띄었다. 다소 실망한 나는, 잠시 나가서 피자라도 먹을까 하고 외투를 입으려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사실에 주저앉고 말았다.
독일에서 일요일에 문을 여는 식당은 <맥도날드>나 <버거킹> 같은 미국 자본의 패스트푸드점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독일인들의 주식인 빵집은 오픈하는데, 그것도 대부분 오전이 지나면 문을 닫아 버린다. 그러니 24시 편의점 같은 것은 이곳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가끔 한국 사람 중, 토요일 밤늦은 시각에, 조식이 제공되지 않는 호텔에 투숙했다가 다음 날 온종일 쫄쫄 굶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나는 할 수 없이 먹을 것을 찾아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했다. 좁은 방에 지나치게 많은 짐이 뒤섞여 있어 산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화장실 입구 근처 구석을 살펴보니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는 깡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양한 종류의 담배들이 쌓여 있다. 아주 오래된 것부터 최근에 막 핀 듯한 것들까지, 슬림한 모양부터 손으로 조잡하게 말아서 만든 것까지 실로 다양하기 짝이 없었다. 안나 혼자서 이 모든 담배를 다 핀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사실 아내가 안나와 학과 친구들의 흡연을 의심하기에,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는데, 아무튼 물증은 확실히 잡은 셈이다. 다만 이 사실을 아내에게 고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게 고민스러웠다. 왜냐하면, 아내는 안나가 집 가까이에 있는 대학에 다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표현을 빌자면, '안나는 성격이 너무 여려서 자칫 나쁜 애들에게 쉽게 빠지거나 이용당할 수 있다'라는 거였다. 그래서 부모가 가까이에서 꾸준히 지켜봐야만 한다는 논리였다. 나는 아내의 주장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시다시피, 아내는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동생 핑계를 대며, 아주 멀리 있는 서울로 유학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안나의 학교는, 집에서 자동차로 겨우 2시간 거리였다.
이번에는 맞은편 구석에, 비닐로 된 쇼핑백을 덮어 놓은 것을 살짝 들춰봤다. 빈 술병과 캔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중에 몇몇 병에는 담배꽁초가 들어가 있었다. '이 코딱지만 한 방에서 파티하였나?'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많은 술병을 안나 혼자서 마셨다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니면 이곳에 살게 된 후로 한 번도 빈 병을 버리지 않은 건가?' 나의 머릿속이 온갖 추측과 상상으로 복잡하게 섞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마치 범죄 현장에 조사 나온 감식반처럼 꼼꼼하게 이곳저곳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먹을 만한 것을 찾겠다는 애초의 의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음으로 안나의 책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3층으로 된 아담한 책꽂이와 필통, 휴대용 CD 재생기 겸 라디오, 플라스틱으로 된 CD 보관용 데스크 그리고 책상 위에 널브러진 여러 CD 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우선 CD 들을 살펴봤다. 절반 정도는 클래식 음반이었으며, 나머지는 요즈음 유럽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는 K-Pop 들이었다. 나는 그중에 클래식 CD 한 장을 꺼내어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조용한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다. 아마 안나가 연습하는 곡 중의 하나일 듯싶었다. 그런대로 들을 만했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지만, 일요일 오후, 뜻하지 않은 고독과 배고픔을 감내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나마 위안거리는 되어 주는 듯했다.
나는 눈을 돌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살펴봤다. 대부분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책 들이었으며 간간이 한글 소설책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한글책은 나의 서재에서 가져다 놓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안나가 견진 성사 때 신부님께서 선물하신 책이다. 안나와 같이 포장지를 뜯고 처음 책을 마주했을 때의 의아함과 감동이,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천주교 교리서 정도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스님이 집필하신 책이라니! 그 내용은 미리엘 주교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가짐>으로써 느껴야 하는 <부담감>. 그러므로 종래 <줌>으로써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마음의 가벼움>. 나는 안나가 이 책만큼은 두고두고 소유하고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