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그러다 나는 안나의 낙서장을 발견했다. 여러 가지 사랑 혹은 이별을 묘사한 노래 가사와 만화 주인공 그림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슬픔과 기쁨, 고통과 행복들이 깨알 같은 글씨로 구석구석 아로새겨져 있었다. 나는 배고픔도 잊은 채 찬찬히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안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전공인 클래식 음악에 빠지지 못하는 자신에게 힐책을 가하고 있었다. 그녀는 의무적으로 수업을 듣고 연주를 하며, 주위의 시선에 맞추어 행동하고 말하는 자신이, 점점 위선적이고 못나 보인다는 투의 고통을 곳곳에 적어 놓았다. 그녀는 몇 시간씩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여 감동의 표정으로 앉아 있는 친구들을 보며, 대단한 부러움과 질투심을 동시에 느끼며, 결국 그들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갖출 수밖에 없는 뻔한 결말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현실에 일종의 자괴감을 서술해 놓기도 하였다. 즉, 그녀는 아무리 노력해도 클래식 음악에서 감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나와 많이 닮았다. 어떤 이들은 음악에 심취하게 되면, 초반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게 되지만 결국에는 재즈나 클래식으로 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발라드풍의 팝송에서 시작하여 록의 세상에서만 줄곧 살아왔다. 최근에 줄곧 애청하는 음악들도 결국 록에 뿌리를 둔 프로그레시브 록, 포스트 록, 아트 록 등과 같은 범주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단지 운동을 할 때는 지극히 단순한 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레시브 테크노>를 틀어 놓고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재즈나 클래식 음악에 감흥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안나는 발레의 실패처럼 피아노도 잘못됨으로써 갖게 될 부모님의 실망감을 견디기 힘들다고 적어 놓았다. 이 글을 읽자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거기에 덧붙여 안나의 능숙한 독일어 실력도 뜻밖의 고통으로 서술돼 있었다. 안나의 학교에는 한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연주 실력은 아주 뛰어나지만, 독일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안나처럼 어릴 때 오지 않고, 성인이 되어 유학할 경우, 언어 문제를 사실 극복하기는 쉽지 않은 일임은 틀림없다.
나도, 비록 독일어를 전공하였지만, 독일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버벅대기 일쑤였다. 그러므로 한국 유학생들에게 안나처럼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국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이다. 문제는 이런 도움을 원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너무 많다는 데에 있었다. 그들은 수시로 안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였고, 매정하지 못한 나의 딸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청을 대부분 들어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안나는 경찰서에도 여러 번 간 것으로 적혀 있었다. 간단한 경범죄나 교통 문제 같은 일들도 같이 가서 통역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뭐 관공서나 학교 행정실 같은 곳은 거의 제집 드나들듯이 출입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 안나에게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가장 자유롭고 즐거워야 할 대학 시절이 오히려 그녀에게는 짐으로만 작용하는 듯 보였다.
42.
가슴이 답답한 나는 기숙사를 나왔다. 안개는 사라졌고 휴일의 거리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나는 딸의 고통만큼 무거워진 발걸음을 천천히 내디디어 어디 가서 커피라도 한 잔 얻어먹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허기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도로와 철길을 여러 번 건너며 무작정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차츰차츰 늘어났다. 쾰른 시내와 가까워진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문을 연 카페를 발견했다. 실내는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로 꽉 찼다. 빈자리가 없었다. 말할 힘도 없이 지친 나는 작은 소리로 커피와 치즈케이크 두 조각을 주문하였다.
주문한 커피와 음식을 받아 들고 나는 급히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허겁지겁 먹고 마셨다. 그러다 갑자기 노숙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마침 송아지만 한 개를 앞세운 중년의 아줌마가 내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옆을 스쳐 갔다. 나는 다시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홀짝거렸다. 따뜻한 기운이 멱을 따라 몸 전체로 퍼져갔다. 그러자 피곤이 몰려왔다. 하지만 몸을 뉠 수가 없는 처지인 데다, 적어도 저녁까지 이곳에 머물며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다. 아니면 패스트푸드점이라도 찾아 햄버거라도 포장해서 들고 가야만 했다. 나는 납덩이 같은 몸을 겨우 곧추세우고 다시 천천히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로 빨려 들어갔다.
쾰른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이 지척에 보이는 거리에 들어선 나는, 한 무리의 인파가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음반 가게였다. 무슨 이벤트를 하는 듯이 보였다. 흥겨운 팝 음악이 크게 흘러나오고 요란하고 울긋불긋한 장식들이 천장에 줄줄이 달려 있었다. 마치 크리스마스 행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모습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내부는 좁은 입구보다 훨씬 넓었다. 중앙에는 2층으로 난 에스컬레이터도 있고 구석에는 간단한 무대장치도 있었다.
나는 몸도 녹이고 시간도 때울 겸 구석구석 둘러보기로 작정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던 중 나는 익숙한 얼굴이 그려진 포스트에 발길이 멈추었다. 검은 바탕에 짙은 황갈색의 얼굴. 굳게 다문 입술과 우수에 찬 표정. 수백 번도 더 본 얼굴. 그래서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 해도 아주 오랜 친구처럼 단숨에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모습.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이었다.
군에서 마지막 휴가를 나왔을 때, 나는 헌책방 거리를 쏘다니며 고등학교 참고서를 구매하다가 우연히 음반 가게에 들러 코헨의 신작 앨범 <Various Positions>을 구매했었다. 그리고 대학 시절 동안 그는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If it be Your will (당신의 뜻이라면)>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수백 번도 넘게 들었으므로 아마 잠결에서도 흥얼거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이국 만 리 낯선 장소에서 이렇게 조우를 다시 하고 말았다.
학창 시절의 추억과 함께 그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그의 앨범 <Various Positions> CD 2장을 즉석에서 구매했다. 한 장은 나를 위해 또 한 장은 딸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음반 가게를 나오자 다행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피자 가맹점이 개점 중이었다. 나는 피자 한 판을 받아 들고 택시를 타고 안나의 기숙사로 향했다. 오늘 밤은 피자와 맥주로 속을 채운 뒤 코헨의 음악으로 추억을 담아 두기로 하였다.
43.
다음 날 나는 무사히 내 차를 찾았다. 물론 적지 않은 견인 비용도 지급했다. 결과적으로 값비싼 축구 관람료를 내게 된 셈이었다. 그러고서는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집과 회사가 있는 프랑크푸르트로 쏜살같이 달렸다. 달리면서 내내 <레너드 코헨>의 음악을 들었다. 안나의 책상에도 그의 CD를 한 장 남겨 두었다. 그리고 노트 한 장을 찢어 간단하게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우리 딸 안나에게
덕분에 주말 이틀은 좀 불편했지만 재밌고, 좀 배고팠지만, 추억을 얻게 되어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 딸에게 선물을 마련했어….
아빠가 한때 엄청 좋아했던 <레너드 코헨>의 앨범을 우연히 쾰른 시내에서 샀거든…….
그의 노래는 너무 많이 들어 아마 귀에 못이 박였을 거야….
그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앨범의 마지막에 있는 <If it be Your will (당신의 뜻이라면)>.
노래 가사 중 특히 좋아하는 부분.
.......
If it be your will (당신의 뜻이라면)
If there is choice (선택할 수 있다면)
Let the rivers fill (강물을 채우고)
Let the hills rejoice (기쁨의 언덕을 만드시고)
Let your mercy spill (당신의 자비를 채우시어)
On all these burning hearts in hell (모든 고통받는 이들에게)
If it be your will (당신의 뜻이라면)
To make us well (우리를 편안케 하소서)
.......
음…. 다소 기독교적인 메시지이지만….
아빠가 늘 얘기했던 <선한 마음>이 느껴지잖아?
그러면 된 거지…. 그것 말고 뭐 있겠어?
그리고 참, 사람들이 너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거는 그만큼 우리 안나가 소중하다는 뜻이겠지.
그러므로 귀한 자신을 잘 돌보아주기 바람. 무슨 뜻인지 알겠지? smoke, alcohol (그리고 엄마에겐 비밀로 할게….)
아빠가 독일에 와서 좋았던 점은 덜 경쟁한다는 거지.
적게 일하고 느리게 밥 먹고 책을 사랑하고 대화를 즐기는 모습도 좋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학업의 성취나 직업의 높낮이 등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거든…….
그래서 아빠가 해주고 싶은 말은…….
그냥 너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길 바래.
너의 뜻대로……. 그냥 네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을 한다면
아빠는 무조건 O.K.
사랑하는 아빠가.
추신 : 이번 방학 때 유럽여행 한번 생각해보셔. 혼자서는 위험하니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며칠 뒤, 안나에게서 메신저가 도착했다. 아빠의 선물에 감사하다는 것과 실용음악학과를 부전공으로 이수할 생각을 한다는 것, 그리고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는 바램도 적혀 있었다. 나는 답장으로 하트 이모티콘을 다섯 개 날렸다. 아내는 안나의 메신저를 보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안나는 무대 체질이라니까…. 글쎄…. 나 닮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