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Sabbath - Changes

음악, 상념

by 남킹

https://youtu.be/QNMdtkGM4bQ


여름날 오후의 강렬한 빛이 세브르 찻잔에 담겨있다. 안나는 우수에 빠졌다. 나는 삶의 잉여분을 탕진한 듯 나자빠져 있었다. 가늘게 흔들리는 연회색 커튼. 책장을 비추던 햇살이 흩날렸다. 안개처럼 가려진 곳에 그녀는 성난 듯 서성거렸다. 평온했던 시절을 다 써버렸다. 지나친 걱정, 무기력, 암울함이 다시 자랐다. 침대 위에 던져진 나들이옷.


“그냥 내내 그리웠어요. 지저분하고 번잡한 거리지만….” 여자가 뉴욕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녀의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그곳으로 말이다. 빌딩으로 덮인 원경이 그려진다. 나는 그즈음 그녀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실재하는 갈등이 낳은 정적.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행복했던 시절은 지나치게 짧고 거북살스럽게 의미가 깊다.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딱 한 번. 한번은 보고 싶었다. 안나와 함께 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 여름의 끝 무렵. 우리는, 노르웨이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공항에서 차를 빌려 이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사흘째. 서쪽으로 가는 베르겐행 기차를 탔다. 그리고 다시 차를 빌렸다. 어머니에게 가기 위해서.


오전부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홀로 운전대를 잡았다. 안나는 호텔에 남았다. 룽게가르즈반 호수가 창을 뒤덮은 방이었다. 나는 검은 구름을 마주하며 질퍽한 국도를 달렸다. 속도를 한껏 높이고 스테레오 볼륨을 올렸다. <Black Sabbath>의 찢어지는 헤비메탈 사운드가 귓전을 때렸다. 창을 조금 열자 훅하고 비바람이 가차 없이 이마를 강타하였다. 빗물은 얼굴을 적시고 목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시렸다.


비구름이 거의 사라진 정오쯤에, 나는 푀르데로 접어드는 도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언덕길에 마침내 정차했다. 나는 여우비로 젖은 풀밭을 신발이 젖지 않게 사뿐히 걸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반짝이며 따라왔다. 이윽고 폭이 좁은 강의 굽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관목숲이 우거진 경사길 아래로 너울거리는 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나는 마치 달걀처럼 독특하게 생긴 은색 빌딩을 기억하며, 이곳이 어머니가 보내온 사진에서 보았던 그 장소임을 되새김질했다.


나는 빽빽한 나무 사이로 난, 좁은 돌길을 한참을 지나 밝은 광장으로 나왔다. 중앙 광장에는 평범한 분수대가 있었다. 물소리가 났다. 한적하고 조용한 곳. 하지만 조금만 귀 기울이면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람에 실리는 낙엽, 테라스의 식기, 포크와 나이프, 사람들의 대화, 발걸음, 눈에 띄지 않는 자그마한 새들, 멀리서 울리는 경적. 애들의 웃음. 이들은 모두 속삭이듯, 소음들 사이로 섞이지만, 조금만 애를 쓰면,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아이의 웃음소리는 가장 명료하게 울렸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 모든 소리를 종합 해 보면, 이곳은 유럽에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외진 시골이라는 것을 누구나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GPS가 그다지 잘 작동하지 않는 그런 외진 곳 말이다.


나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오후의 햇살이 사방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바람은 조용하고 나무는 풍성하고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었다. 덜컥이는 손수레가 지나갔다. 유년 시절의 기억에 남은, 낡은 미닫이문 소리와 흡사했다. 나는 조금 전까지 맑은 어린이가 뛰어다니던 광장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손수레와 어린이, 카페 손님이 사라지자, 홀로 남겨진 나는, 마치 시간이 쭉 늘어진 듯, 모든 게 슬로비디오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느림이 만드는 느긋한 기운이 커피를 준비하는 종업원의 익숙한 손동작이 가로지르는 곳에서 멈추었고, 바람은 점점 느리게 흐르다가, 잠시 죽은 듯 고이고는 다시 미정 된 곳으로 흐름을 이어갔다.


마침내, 어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서성거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심각한 그리움으로 인해 이상하게 기억에서 지워진 얼굴. 그녀의 나이 든 미소에서 나는 이모를 보았다.


“솔직히 당신과 할 생각이 없습니다.” 여자의 손이 나의 허벅지를 만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손이 멈췄다.


“그럼 다음에라도.” 여자는 수수한 미소를 띠며 천천히 물러난다. 그녀의 뒷모습에 슬픔이 묻어난다. 금방 후회가 찾아왔다. 에둘러 말했어야 했다. 착한 거짓말 말이다. “조금 전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거든. 이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서. 미안해”라고 하던가 아니면 진실을 말하던가. “사실 나는 여행가이드야. 고객을 모시고 온 거였어. 준비한 돈도 없고 말이야. 미안해.”


그저 들뜬 기분에 이성이 마비된 듯하다. 감정이 순간적으로 곤두박질친다. 시간이 갈수록 상대방에게 모질게 한 일들이 가슴에 남았다. 그들은 변덕스럽게도, 우울할 때면 아프게 다가온다. 어머니와의 짧은 만남은 소소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마치 이웃인 것처럼. 그리고 형식적인 포옹과 함께 헤어졌다. 무채색의 짧은 답변만 늘어놓았다. 그리고 매정하게 돌아섰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숨고 싶었다. 낯선 곳에 낯선 사람과 벗은 채 있지만, 자신을 향한 경멸이 불현듯 느껴졌다. 나는 연약하게 매달려 있는 수건을 허리에 다시 한번 조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궁전의 이곳저곳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치 숨기라도 할 듯.


어느 순간, 작고 마른, 그리고 왠지 외로워 보이는 얼굴이 내 곁에 머물렀다. 젊은 패거리들은 자신들이 정한 파트너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홀이 잘 보이는 어두운 곳에 머물렀다. 보고 싶음과 눈에 띄지 않음이 공존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따라가다가 다시 돌아서며 천장을 보거나 다시 쳐다보곤 하였다. 짙은 까만 눈동자. 그저 무언가에 관심이 있거나 끌고 싶은 빛의 실루엣. 미소 뒤에 보이는 외로움이 퍼지듯 펼쳐져 지나온 듯한, 애틋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이윽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미소를 지었다.


“카타리나에요.” 여인은 자신의 몸에 묻은 애액을 휴지로 닦으며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특이했다. 키도 작고 가슴도 작았다. 까만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지녔으며 마르고 연약해 보였다. 그러니 인기가 없었다. 나와 조그마한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녀는 적어도 10명 정도의 남자에게 거절당했다. 그녀는 전형적인 아시아인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 궁전에 있는 유일한 아시안 여인일 것이다.


나는 그녀의 국적이 무척 궁금했다. 아니, 정확히 출생이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그녀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리 개방된 나라 일지라도, 매춘에 대한 의미는 서로에게 부끄러운 일인 것인 것만은 틀림없으니 말이다. 그녀는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무척이나 어렵사리 손님을 맡은 것 같기도 하였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내 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하였으며 정사를 할 때도 무척이나 친절하였다.


나는 지갑에서 50유로 1장을 쥐었다가 다시 한 장을 더 쥐여 주었다. 그녀 얼굴 전체에 행복감이 걸렸다. 그 행복이 따스하다. 모처럼 만에. 왠지 그냥 헤어지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돌아섰다. 나는 무거운 발을 옮긴다.


수증기로 덮인, 사우나의 모퉁이를 돌 때쯤,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내게 명함을 쥐여 주고 간다.


“언제 한번 꼭 들러주세요. 꼭요.” 명함에 적힌 곳은 마사지하는 곳이었다.


나는 여름이 오기 전, 그곳을 들렀다. 그리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갔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긴 여행의 끝자락에는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이제 내가 사는 도시의, 몇 안 되는, 아는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그녀에게 딸이 하나 있다는 것뿐이었다. 마사지 중에 걸려온 전화로 알게 된 게 고작이었다. 우리는 그저 눈을 마주치고 웃고 만지고 섹스만 할 뿐이었다.


Lyrics


I feel unhappy, I feel so sad

I've lost the best friend, that I ever had.

She was my woman, I love her so.

But it's too late now, I've let her go.

I'm going through changes.

I'm going through changes.

We shared the years, we shared each day.

In love together, we found a way.

But soon the world, had it's evil way.

My heart was blinded, love went astray.

I'm going through changes.

I'm going through changes.

It took so long, to realize.

And I can still hear her last goodbyes.

Now all my days, are filled with tears.

Wish I could go back, and change these years.

I'm going through changes.

I'm going through ch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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