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ER BALIK - Coffee Blues

by 남킹

파더스 가문은 유럽을 떠돌던 집시였다.


그들의 조상이 어디서 기원하였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수 세기 동안 유럽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를 돌아다녔다.


그들이 유럽의 중앙,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지역에 정착을 한 시기는 대략 신성 로마 제국 시절이었다. 그곳에서도 그들은 한동안 천민으로 살았다.


그들은 대륙의 지리에 밝은 점을 이용해 소규모의 무역을 하고 있었다.


암스의 조상, 슐레트 또한, 어릴 적부터 중국 혹은 인도까지 이어지는, 거칠고 위험한 육로 무역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나라의 여러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영리하고 성실하여 인근 귀족들이 단골이 되었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각종 차나 향신료뿐만 아니라 중국 도자기, 여러 가지 금속 공예품 등을 취급하였다.

그는 고객이 주문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꼭 구해주었으므로 귀족이나 재력가들의 인심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였다. 즉, 천년 제국 동로마가 멸망한 것이다.


이것은 유럽의 무역상들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을 안겨 주었다. 이슬람 제국을 거치지 않고서는 육로로 무역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하지만 슐레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였다. 그는 이슬람 친구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어릴 적부터 그들의 관습과 종교에 익숙하였다.


사실상 그에게는 무역 독점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기회를 충분히 발휘했다.


그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동방의 제품들을 안정적으로 그의 고객들에게 납품하였다. 그는 무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신뢰였다.


그는 합당한 가격으로 계약을 하였으며, 판매 물건 가격이 아무리 높게 올라도 계약 가격으로만 받았다.

그의 명성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명성에 걸맞게 세습 남작이라는 직분을 돈을 주고 샀다.


주위의 유력 가문들이 그에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어떤 가문은 아예 장부 관리까지 맡겼다. 그렇게 그는 유럽의 성공한 가문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시 가문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그들을 따라다녔다. 적어도 워털루 전투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러하였다.


그레고리 흘라디의 묘한 죽음 (26).jpg
거짓과 상상 혹은 죄와 벌 (2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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