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44
<버스 44(车四十四)>라는 제목의 단편 영화가 있습니다. 실화라고 합니다. 대만 출신의 데이얀 엉(伍仕賢) 감독 작품입니다. 상도 많이 받은, 꽤 유명한 영화입니다. 저는 오늘에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으니 여러분도 무료로 손쉽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에 2명의 강도가 들어와 금품을 뺐습니다. 그리고 여성 운전사를 길옆으로 끌고 가 강간합니다. 그런데 승객들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를 않습니다. 오직 한 청년만 강도에게 대항하다 상처를 입습니다. 이윽고 강도들은 달아나고 운전사는 돌아와 운전대를 잡습니다. 그리고 다친 청년도 버스를 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운전사는 그 청년을 버려둔 채 출발합니다. 황망한 눈빛으로 떠나는 버스를 지켜보는 청년.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버스는 절벽에 추락하고 탑승객 모두는 사망하게 됩니다.
저는 이와 비슷한 설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워낙 오래전이라 그 내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러합니다. 어느 한적한 시골 산길을 달리던 버스 앞에 호랑이 몇 마리가 버티고는 길을 터주지 않습니다. 참다못한 한 승객이 탑승객 중에 가장 연약한 이를 호랑이 먹이로 주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결국, 한 어린이와 그의 어머니가 강제로 버스에서 내리게 됩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길을 터줍니다. 버스는 출발하고, 남겨진 모자는 두려움에 떱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호랑이는 그냥 가버립니다. 그리고 얼마 뒤, 여러분이 예상하듯이, 버스는 절벽에서 추락합니다.
이 영화와 설화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깁니다. 버스와 죽음을 매개로 한, 충격적인 반전은 우리에게 뚜렷한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당신이 저 버스의 승객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아마, 우리는 이 거북살스러운 물음에 선뜻 뭐라고 나서질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수긍할 만한 정답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모든 승객은 강도와 호랑이에게 대항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이런 비극적 결말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정의라고 배웠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인간의 당연한 행위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매스컴을 통해, 위험을 무릅쓰고 가치 있는 일을 실현하는 의인을 접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곤 합니다. 혹은 횡포한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옳은 말을 하고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역사적 사건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이런 일이 현실에서 닥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심적으로는 선뜻 나서고 싶지만, 흉악범이 휘두르는 칼에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짧은 시간 속에, 수많은 분노와 갈등, 타협과 미안함, 부끄러움과 자기 위안, 기만과 같은 생각들이 범벅이 되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태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순간적으로 판단한 그 날의 행동에 따라, 자칫 후회와 죄송스러움을 간직한 채 평생 살아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저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제가 유럽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겪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로 답하고자 합니다.
독일로 이주한 첫해의 일입니다. 노란 유채꽃의 물결이 곳곳에 펼쳐진, 그런 따스하고 즐거운 봄날이었습니다. 저는 꽤 먼 곳에 있는 회사를 방문하고, 자동차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도로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어떤 구간은 10분을 넘게 달려도, 주위에 차 한 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연료 계기판을 봤습니다. 기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략 2, 30km는 더 달릴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저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비게이션으로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 방문했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냥 달리다 보면, 한국처럼, 곧 주유가 가능한 휴게소가 나올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가도 가도 주유 표지판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차는 서서히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갓길에 차를 겨우 세우고, 비상등을 켜고, 사고 삼각대를 설치했습니다.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어도 서툴러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대형 트럭 한 대가 제 뒤에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덩치 좋은 아저씨가 내리더니 상냥한 미소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계기판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러 군데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뒤, 동료로 보이는 분이 기름을 한 통 들고 나타났습니다. 저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사했습니다. 저는 사례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분들은 극구 받지 않으시고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여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저는 폴란드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브로츠와프 시내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저희는 갓길에서 차에 비상등을 켜고 초라하게 서 있는 청년을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차에 문제가 발생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 친구는 그를 보자마자 차를 세우고 그에게 가서 묻고는, 보닛을 열고 이것저것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뒤에 또 다른 차량이 멈추더니 운전자가 달려 나와 그들과 합세하였습니다. 결국 서로 모르는 세 사람이 비를 쫄딱 맞으며 자동차를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저는, 놀라움과 미안함으로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두고두고 아름다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우리가 눈을 떴을 때, 오늘 <나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라고, 작은 결심 한번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의 몸은, 마치 습관처럼 굳어진 우리의 마음씨에, 주저함이 없이 반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