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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Change Girl

by 남킹

Asaf Avidan - Small Change Girl


그녀가 다시 눈을 뜬 것은 뉴질랜드의 어느 외딴 섬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자신의 의지로 서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뒤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움직임을 제 뜻대로 하기에는 몇 주가 더 필요했다.


“새로운 육체에 적응하는 단계입니다.” 가우타 생체 공학 연구소 선임 연구원인 란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제가 어떤 상태였나요? 박사님.”


“죽었죠.” 박사는 살짝 윙크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목 이하는 모든 게 조각조각 난 상태였습니다. 즉 건질 게 하나도 없었죠.”

“저를 왜 살리셨나요?” 그녀는 눈을 뜬 순간부터 줄곧 품어왔던 의문을 표시했다.

“그 부분은 저도 모릅니다. 이곳 연구소를 설립하신 가우타 님의 뜻이었습니다. 꼭 살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심장이 산산조각이 났는데 어떻게 살 수가 있는 거죠?”

“소위,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라는 것을 이용했습니다. 인포모프(Infomorph)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의 한 분야입니다. 뭐,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로봇의 신체에 인간의 정신을 옮기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럼, 저는 로봇인가요?”

“굳이, 분류하자면 인조인간입니다.”

“그분을 만나고 싶군요.”


“곧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 그리고 한가지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네?”

“지금은 2069년입니다. 그리고 2066년에 아마겟돈이 있었습니다. 이곳 지하 연구소는 안전하지만, 바깥은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 벌어졌던 모든 불편한 진실을 당신은 지금부터 마주할 것입니다. 부디 절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온전히 당신의 새로운 육체에 빨리 적응되기만을 가우타님은 바라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그분이 당신을 방문하실 것입니다. 그럼….”

가우타가 실제로 그녀를 방문한 것은 2070년 1월이었다. 그녀는 강한 여자였다. 태생부터 살아남기 위한 의지는 그녀가 재탄생한 이후의 삶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꼭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가우타는 파란빛으로 반짝이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말을 했다.

“왜, 필요한가요?”

“당신은 누구보다도 전쟁을 잘 압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인조 얼굴이 그녀가 죽기 직전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는 전형적인 게르만 혈통에 북방인종에 속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 벌어진 대멸종으로 이제 인류는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본능적으로 의문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누가 했나요?”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합니다.”

“왜 저인가요? 출중한 능력을 겸비한 이들이 많을 텐데요.”

“능력만 비견하자면 다른 이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는 오래전, 젊은 시절, 한 예언가의 일기를 물려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 일기 중 한 부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가우타는 그의 가방에서 낡은 공책을 하나 꺼내 표시한 부분을 펼쳐서 그녀에게 내보였다.

‘...키가 크고 금발에 푸른 눈, 투명에 가까운 눈빛을 한 여자가 보입니다. 늘 가시투성이의 삶이지만 집착은 생명을 불어넣고 본능은 한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녀는 구원자의 귀와 눈이 되어 그가 디딜 곳의 평지를 선사합니다….’

“이게 저를 지칭한다는 말인가요? 금발에 푸른 눈동자는 수도 없이….” 가우타는 다시 몇 장을 넘기더니 표시한 대목을 그녀에게 다시 가리켰다.


‘...여자는 죽음의 도시에서 태어나 삶의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죽음의 도시?”

“네, 당신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을 우리는 죽음의 도시라고 합니다.”

“하지만 죽음의 도시는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다음을 보시죠…” 그는 일기장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 해의 시작은 하늘의 폭발이었다. C로 시작하는 하늘을 나는 것이 뿌연 먼지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해에는 평화로운 도시가 아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로 변하였다.’

“모두 1986년의 일입니다. 그해 1월 챌린저 우주왕복선이 폭발하였고 4월에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체르노빌 출신이라는 사실은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걸 어떻게?”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버린 게 아니었습니다. 체르노빌에는 몰래 숨어 들어와 살던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2022년 당신이 태어난 직후 당국에 발각되어 강제로 위탁 시설에 보내진 것입니다. 물론 당신 이름도 위탁인이 즉석에서 지어낸 것이고요.”

“하지만 어떻게 제가 모르는 사실까지 당신은?”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해커 조직인 <사피엔티아>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출생 서류 복사본입니다.” 그는 모니터에 그녀의 출생 신고서를 띄웠다.

‘체르노빌 출생. 강제 이주. 이름 : 빅토리아 단테스

위탁인 : 에르난데스 단테스’

“하지만 단지 예언가의 말을?”

“네, 그렇죠. 그냥 자신이 본 환영을 적어놓은 일기장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해석이 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부분도 많고 틀린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과학자이자 사업가입니다. 불확실한 것에는 늘 의심하고 투자를 망설이고는 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준비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회의감에서 오는 불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겟돈만큼은 정말이지 틀리기를 바랐습니다. 정말로 일어나지 않기를…”

“그럼?”


“네, 그는 비교적 자세하게 <종말의 일주일>을 적어 놓았더군요.”

한동안 두 사람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예언은 언제까지 기록되어 있나요?”

“2099년 9월 9일입니다.”

“뭐라고 적혀 있나요?”

“붓다의 유언이 적혀 있습니다.”

‘그만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예언서에 당신은 <아니룻>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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