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미르 드칸은 신혼여행 중이었다. 부부는 한 달 가까이 코트다쥐르와 이탈리아의 리비에라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아드리아해의 작은 외딴섬에 도착한 것은 늦은 봄 오후였다.
하늘은 흐리지만, 바람은 잔잔하였다. 섬은 온통 녹색 숲으로 덮였으며 100가구 정도의 주민은 해안가에 모두 모여 살았다. 그들은 대부분 어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평지는 보이지 않았다. 작은 돌집과 나무, 깎아지른 듯한 계곡뿐이었다.
그리고 낡은 등대가 산 왼편, 위태롭기 짝이 없는 절벽에 세워져 있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좁고 험하였다. 웬만한 젊은이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난코스였다.
그런 그곳을 팔순의 등대지기인, 알페르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에 내려와 먹을거리를 짊어지고 올라갔다.
아르미르가 그를 본 것은 아침이었다. 섬에서 유일한 호텔과 식당, 식료품점을 겸하고 있는 3층 건물의 베란다에서 느긋한 식사를 하던 그는, 천천히 호텔로 다가오는 알페르노를 보고는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영감님”
“누구신가?” 알페르노는 낯선 이의 인사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 네 저는 아르미르라고 합니다. 지금 신혼여행 중입니다.”
“축하해요. 좋을 때군요.” 알페르노는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자신의 일주일 치 식료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만….” 아르미르는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부탁?”
“네. 등대를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건 안될 말이네. 위험하기 짝이 없거든…. 더구나 여자가 오르기엔….”
“저 혼자 갈 겁니다. 아내는 호텔에 머무를 겁니다.”
“혼자? 신혼여행이라고 하지 않았나?”
“네. 하지만….” 아르미르는 노인의 눈치를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혹시 <레스피로디비노>를 아시나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알페르노의 온화한 표정이 엄숙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당신은 우연히 이곳을 온 것이 아니군요.”
“네, 저는 고고 언어학자입니다. 주로 출처나 연대를 알 수 없는 고문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동굴을 꼭 보고 싶습니다.”
지루한 설득이 오전 내내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등대지기는 아르미르의 청을 받아들였다. 점심을 마친 그들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르미르는 노인의 짐을 분담하였다. 그들은 2시간 동안 가파른 산길을 올라 마침내 등대에 도착했다.
무거운 하늘이었다.
아르미르는 마치 죽을 듯한 표정으로 가파르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우선, 산 정상에 올라가세요. 여기서 30분 정도 더 가야 합니다. 그리고 바다 쪽으로 난 아주 좁은 길을 내려가야 합니다. 푸른 매듭이 당신을 인도할 것입니다. 매우 조심하셔야 합니다. 경사가 심합니다.”
여전히 거친 숨을 쉬는 아르미르에게 알페르노는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다음의 주의사항을 일러 주었다.
“그리고 동굴 속에서 100m쯤 가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올 것입니다. 그곳에 아주 섬뜩한 경고문을 보실 것입니다. 경고문을 따르세요. 절대로 어느 길로도 들어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여름을 재촉하는 소박한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친 육신을 일으켜 세운 뒤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30여 분을 더 올라간 아르미르는 마침내 산꼭대기에 섰다.
정상에 오른 뒤 한동안 세상에 펼쳐진 끝없는 바다를 경탄의 눈길로 바라봤다. 아무리 대담하고 독창적인 환상이라도 이런 풍경을 그려내진 못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바람은 지극히 섬세한 파도 선을 새기고 있었다.
고문서에서는 이곳을 <유혹의 노스렁게일>이라고 적어놓았다. 사실, 아주 섬뜩한 경고 표지와 지독하게 두툼한 장벽이 없다면, 그대로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고픈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노스렁게일은 이 지방 토착 신앙에 근거한 용어로 천국과 지옥의 이등분적인 내세관에서 벗어나 좀 더 세분된 믿음으로 발전한 것으로, 절제와 검소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치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욕망, 즉 내 마음이 하고픈 것을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머무른다는 형벌의 사후세계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는 바다를 사랑했다.
늘 바다 꿈을 꾸었다. 파도가 넘실넘실 밀려오는 대양 속에 그는 부유물처럼 떠 있었다. 차고 넘치는 행복감이 다가왔다. 신이 생명체를 물에서 시작하였듯이 그는 물을 보며 신을 경외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치스러운 감정에 젖이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해가 지기 전에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아내에게로 가야만 했다. 그는 서둘러 동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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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의 입구는 무척 좁았다. 그는 우거진 잡목을 헤치고 천천히 동굴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램프를 켠 뒤 천천히 사방을 비추었다. 지극히 평범한 동굴이었다. 그리고 딱 한 사람이 걸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그는 크게 한 번 심호흡하고 한 발짝 한 발짝 동굴로 들어갔다. 노인의 말대로 100m쯤 들어가자 제법 넓은 광장이 나왔다. 그리고 그 끝에는 두 개의 작은 구멍이 나란히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구멍 옆에는 붉은 글씨의 경고문이 걸려 있었다.
절대 들어가지 말 것. 행방불명 된 자 : 33명
신선한 바람이 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그 순간, 신묘함을 느꼈다. 그는 낡은 가방에서 문서를 꺼내어 휴대용 램프에 비추었다. 그것은 산스크리트어로 적힌 고문서 복사본이었다. 그는 천천히 그가 마크해 놓은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두 개의 구멍
두 개의 유혹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인간
선과 악
그리고 두 개의 마음
쾌락과 절망
행복과 슬픔
구원과 파괴
그리고 하나의 진실
아르미르야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
1년 전, 도서관 창고에서 먼지로 덮인 낡은 책에서 발견한 장문의 시 <레스피로디비노 동굴>에는 우연히도 그의 이름, 아르미르가 13번이나 언급되었다.
그 처음은
아르미르야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그 끝은
아르미르야 너는 정녕 세상을 구원하려는가? 였다.
그는 수백번도 더 이 시를 읽고 또 음미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결심한 듯, 천천히 오른쪽 구멍으로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서….
그렇게 십수여 분을 더 들어가자 갑자기 세찬 바람이 올라왔다. 뒤이어 그의 몸이 가벼워졌다. 그는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구멍은 점점 커졌다.
마침내 그가 서서 걸을 정도로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이곳에도 똑같이 2개의 작은 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 옆에는 다음의 글귀가 적혀있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지혜의 시대이자 몽매의 시대였다.
희망의 봄이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미래가 장미였으나 실제로는 썩어가는 낙엽이었다.
단지 우리의 멸망이 몇백 년 지연된 것뿐이다.
모든 것은 그렇게 운명지어져 있다.
그때와 매한가지로.
두 갈래 길은 네 갈래로 다시 여덟 갈래로 그리고 열여섯 갈래로 끝도 없이 넓어지리라. 하물며 인간의 욕망이 그러할진대 대체 누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두려움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하지만 세상으로 향한 출구는 이미 사라졌다.
그날은 2056년 6월 6일. <종말의 일주일>로 알려진 아마겟돈이 시작되기 딱 일 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