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입

by 남킹
사리는 사피엔티아의 첫 번째 형제이다.
그는 기호학자이고 해커였다.
그가 다국간 군사 비밀 협정 유출에 관한 스파이 혐의로 구속되었을 때, 가우타가 그를 찾았다.
가우타는 낡은 종이 한 장을 그에게 보였다.
그리고 곧 형제가 되었다.
그가 내민 문서의 내용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사리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것만 알려졌다. (<릴리안 나리>의 <호모 사피엔스 기록> <구원 편> 17장 99절)


그들은 정오에 도착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잠잠했다.

그들의 발 끝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붉은 절벽이 놓였다.


지도에서 본 그곳이었다.

일명 살마루시의 악어 입.

데론리 절벽이었다. 선경 같은 곳.


"생각만큼 크고 깊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재론 오방카스는 아케론을 슬쩍 바라보며 난감함을 표했다.

동시에 그의 목소리가 한 음정 높아졌다.


하지만 아케론은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하였다.

한 줄기 바람을 타고 천둥새 무리가 높이 솟았다가 계곡의 심연으로 빨려들 듯이 사라졌다.

그 순간, 라후라는 낡고 성긴 천에 그려진 지도를 떠올렸다.


북에서 남으로 완만한 경사로 올라가던 구릉은 최남단에 이르러 급격하게 솟구쳤다.

그리고 낙서처럼 보였지만 분명 새의 그림이 그곳에 있었다.

원주민은 이 섬을 뵈괼추탄이라고 불렀다.

큰 새의 땅.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본진이 도착했다.

세 명의 대원과 네 명의 원주민이다.

그들은 11마리의 라마와 3마리의 망치머리 박쥐를 데려왔다.


라마는 각종 식량과 텐트 및 등산 장비를 운반하기 위한 운송 수단이다.

그리고 비상식량이기도 하다.

박쥐는 야간 경비용이다.


이 섬은 새만 큰 것이 아니다.

자이언트 모기와 지네가 서식한다.

특히, 모기는 한 번 흡혈에 2L를 마신다.

치사율도 80%가 넘는다.


“여러분, 지금 하강 준비를 하겠습니다.

최소 2군데의 확보물을 조사해 주세요.

서두르세요.” 아케론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원들과 원주민들은, 그들의 땀도 식히기 전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많은 예행연습이 그의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케론은 매우 냉정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무엇이던 완벽을 추구하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항상 진지하여 여간해서는 웃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팀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성격은 출생의 고통에서 기인한 면이 없지 않았다.

아케론은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형과 달리, 동생은 거대세포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로 태어났다.


작은 머리와 노란 피부, 비대한 간과 폐 염증.

의사는, 살 가능성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인큐베이터에서 석 달을 버텼다.


그동안 형은 어머니의 젖과 사랑을 독식하였다.

동생은 그저 투명 유리 밖,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2개의 거대한 나무 밑동에 묶인 로프가 절벽 아래로 던져졌다.

하강 루트를 유심히 살핀 아케론은 로프를 잡은 왼손은 하강기 앞에, 오른손은 옆구리에 위치하고, 발을 어깨너비로 벌려서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나머지 대원들과 원주민들도 따랐다.


그들은 각자, 최소한의 식량과 제례의식에 사용할 몇 가지 물건만 넣은 배낭을 짊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후라가 내려갔다.

라마와 박쥐는 그냥 남겨두었다.


운이 좋다면 얼마 뒤에 다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퓨마에게 먹히지만 않는다면...


절벽 아래에 무사히 도착한 라후라는 비로소 그 절벽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원주민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그 폭과 넓이가 광대하였다.

그리고 청록색의 물줄기가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5개의 폭포가 합치고 갈라지면서 뿜어져 나오는 물안개로 쌍무지개가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졌다.


그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간극이 놓여있다고 느꼈다.

일행은 잠시 멈춘 채 자연의 경이에 빠져 들었다.

투명한 바람이 무쇠소리를 내며 이어졌다 사라졌다.


그는, 당연하게도 이곳이 원주민들에게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만하다고 느꼈다.


한 세기 전, 가브리엘 튜더 신부가 미션을 와서 묘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은 매년 3월부터 돌이 지난 아기를 제물로 바쳤다.

즉, 악어 입으로 갓난아기를 내려보낸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절벽에서 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반달 모양의 활화산섬, 미이샤 때문이었다.

크고 작은 3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마가스 군도는, 무인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섬에서 비슷한 의식이 행해졌다.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바치는 거였다.

월경을 하지 않은 처녀 혹은 사내아이였다.

각 마을이 정한 날이 오면 그곳 제사장들은 이곳 데론리 절벽으로 배를 타고 와 의식을 행하고 제물을 각자의 방식대로 바치곤 하였다.


넓은 바나나 잎으로 아기를 둘둘 말아 폭포 가장자리에 두거나 천둥새 둥지에 넣어 두기도 하고 풍선에 매달아 바람이 화산섬으로 불 때, 날리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주로 절벽에 난 동굴에 약간의 음식과 함께 가두곤 하였다.

아무튼 재물을 바치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방식이 수백 년간 이어졌다.


단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재물은 산채로 바쳐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여지없이 재물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벽 아래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구의 시체도, 심지어 뼛조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한 때, 할마서 섬과 이웃 그루던 섬 주민 간의 대규모 전쟁으로 인하여 반년정도 의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해, 화산 폭발로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이것을 신의 노여움으로 원주민이 확신하기에 남음이 없었다.

하지만, 아마겟돈 이후 나타난 한 선교사에 의해 이 고통스러운 의식은 역사 속에만 남게 되었다.


그는 유일신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미이샤는 더 이상 폭발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공약하였으며, 정말로 그때 이후로 화산섬은 더 이상 폭발하지 않았다.


“자, 서두릅시다! 일몰 전에는 꼭 도착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케론의 재촉에 일행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정글 숲이었다.


울창한 삼림과 늪이 공존했고 검은흙과 잡초가 바닥을 메웠다.

암묵적인 걱정이 팽배했다.

바람은 높은 나무 끝에서 만 살랑거렸다.

여기저기서 괴상한 동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신경을 곤두 세운체 흐릿하게 난 숲길을 헤쳐나갔다.

각자 한 손에 정글도를 쥐고 무성한 잎을 자르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30분쯤 갔을 때 조그마한 공터가 보였다.


나무옹이 같은 게 몇 개 있었고 낡아 빠진 해먹텐트가 나무에 묶인 채 건들거리고 있었다.

그 위로 1m쯤 되는 독사가 꿈틀거리며 몸을 쪼그리고 그들을 굽어 보고 있었다.


“여기서는 땅에 텐트를 치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수십 마리의 살인 지네 공격을 받을 겁니다.” 원주민의 말을 안내인이 통역해 주었다.


“불편하지만 이 길을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 안전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도 그다지 안전한 편은 아니지만...” 라후라는 땀을 닦으며, 아케론을 쳐다 보고는 지긋이 웃었다.

그의 발치에 선명한 붉은색의 개구리가 천천히 지나갔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선, 하늘 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수천만 대의 감시 드론이 돌아다녔다.


그중에는 살상용 화기를 장착한 드론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차량을 이용한 지상 통로는 더 위험하다.

아마겟돈에서 살아남은 1%의 인간들이 아직 지상에 있었다.


물론 수백 개의 안전 주거 둠이 건설되어 그들을 잇는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지만, 그건 대부분 유럽 쪽에 국한된 상황이었다.


대다수 지역, 특히 남아메리카는 방사능이 가득한 지상에 그냥 방치된 채 생존자들이 살아갔다.

그리고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방사능은 위험한 상태였다.

문제는 방사능에 오랫동안 노출된 이들의 자손들이 생기면서 심각한 돌연변이를 보인다는 거였다.


대부분이 몇 세대 이후 사라졌지만, 오히려 번성하여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지상의 세계를 빠르게 정복하는 종족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지능이 뛰어나고 폐쇄적이며 폭력적이었다.

특히, 이방인을 극도로 두려워하여 무차별 공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인도의 노스 센티널 아일랜드 원주민처럼 되어 버렸다.

땅을 밟는 순간 시체로 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사이커라고 불렀다.

그나마 다행 인 사실은, 남극 빙하에 세워진 극연합국은 종신 지도자인 프라이스를 중심으로 매우 효율적인 국가 형태를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독한 환경에서 비롯한 태생적인 국가 이념이 있었으니, 바로 푸른 땅을 얻기 위한 북진 정책이었다.

그리고 최근 10년 동안에는 남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 남미 일부 대륙을 점령하면서 그 세력을 점차 넓혀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이커와의 교전에서도 초반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후, 효율적인 전술을 도입하면서, 최근 몇 전투는 대승을 거두는 성과를 올렸다.


아직까지는 턱없이 부족한 땅이지만, 대륙의 돌연변이들을 몰아낼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었다.

“이곳은 아마겟돈 이후 거의 폐쇄가 된, 지하세계로 연결된 가장 가까운 통로입니다.

섬은 대륙과 무척 가깝고, 활발한 지각활동으로 무수하게 많은 용암동굴이 생기며, 얽히고설켜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길을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당신 아들을 꼭 만날 수 있을 겁니다. “ 라후라는 자신 있게 힘주어 말을 했다.


인간의 지하세계 문명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지하세계의 역사는 카타콤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카타콤은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기에 피신처이자 순교자의 묘지였다.


로마 박해가 계속되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지하 무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탄압은 무려 30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로마에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도 신도의 일부는 계속 지하에 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그들은 끝없이 파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박해는 항상 있어 왔다.


그리고 도망자는 오지나 숲 속 혹은 동굴로 스며들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들이 지하의 어느 지점에서 만났다.

지상의 인간에게는 마치 신화나 전설 혹은 가설 따위로 알고 있는 그곳은, 수천의 지하인이 공존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누군가 그곳을 애틀란타로 명명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인간은 그곳에 문명을 꽃피웠다.

하지만 지하 세계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고립 사회라는 것이다.


즉, 근친상간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근친이 여러 세대를 반복하게 되면, 유전학 적으로 열성 유전병의 위험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였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스페인 합스부르크 가문을 들 수 있다.

반복된 근친혼으로 인해 점점 갈수록 무능한 왕이 등장했다.

정신적으로도 심약하고 유전된 주걱턱이 심하여 음식도 제대로 씹어 삼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기 지하 세계에서는 지상의 이방인을 납치하거나 유인하는 일도 발생하곤 하였다.

하지만 이곳 군도에서는 원주민을 교묘하게 협박하는 술책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하인들은 사실 지열 에너지를 오랫동안 이용해 왔다.

즉, 그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지하 마그마를 이용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것은 곧 원주민들을 협박하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재물을 바치지 않으면 화산신이 노여워한다는 소문을 퍼트리는 거였다.

그리고 실제로 화산을 살짝 분출하면 원주민들은 겁에 질려 산재물을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 매년 처녀와 사내 어린아이가 지하 세계로 공급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아마겟돈 이전의 이야기였다.

대멸종으로 지나치게 많은 피난민들이 지하세계에 불청객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제 지하 문명은 더 이상 고립된 사회가 아니었다.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되었다.


“여기까지입니다.” 앞서가던 통역사가 아케론을 바라보며 외쳤다.


기이한 문양으로 장식이 된 돌 조각상들이 작은 공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얼굴은 도마뱀처럼 생겼으나 몸은 가냘픈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옷을 두른 듯 어깨는 넓었으나 밑은 삼각팬티만 착용한 듯 보였다.


“제랴두나입니다.” 라후라는 아케론에게 다가가며 속삭였다.

“원주민들을 협박하기 위해 만든 조각상입니다.


유일한 화산섬인 미이샤는 남성신으로 여러 명의 제랴두나, 즉 여성신을 아내로 두고 있습니다.

매년 바치는 처녀가 제랴두나 가 되고 어린아이가 그들에게서 난 자식이 되는 겁니다.”


원주민들은 서둘러 가져온 재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이어스틸을 이용해 불을 지폈다.

그리고는 제사 의식을 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라후라는 다시 아케론에게 속삭였다.


“여기서부터는 우리만 갈 수 있습니다.

이곳부터 저들에게는 신의 영역입니다.

카스툴퀴에라고 부릅니다.

모든 게 사라지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라후라는 준비해둔 스노클링 마스크를 꺼내 아케론에게 주었다.


“이게 필요합니다.

여기서 10분 거리에 끓는 호수가 나옵니다.

사실 그건 지하에서 올라오는 물방울입니다.

우리는 지하로 이어진 물줄기를 따라 끝없이 내려갈 것입니다.


최대한 숨을 천천히 쉬기 바랍니다.

그럼 행운을...”


아케론은 라후라의 손을 굳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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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예언서 떠오르는 위협 2 (6).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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