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아마 여러분들도 다들 뉴스에서 보고 들으셨을 겁니다.
베스트셀러 <신경끄기의 기술>의 작가 <마크 맨슨>이 우리나라를 여행하고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예전 소설에서 <늘 화가 난 사회>라고 바꿔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우울증은 “유교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무시하고 단점을 극대화한 결과”라고 합니다. 그는 “불행히도 한국은 유고의 가장 나쁜 부분인 수치심과 남을 판단하는 것을 극대화했지만, 장점인 가족이나 지역 사회와의 친밀감을 저버렸다.”라고 합니다. 이어 “자본주의의 최악의 단면인 현란한 물질주의와 돈벌이에 대한 집착을 강조하지만, 가장 좋은 부분인 자기표현과 개인주의는 무시했다.”라고도 합니다. 그는 “이런 상충하는 가치관이 엄청난 스트레스와 절망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정말이지 우리 사회를 이처럼 명확하고 간결하게 꼬집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것도 외국인이? 한편 부끄럽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큰 병이 든 것이 명확해졌으니까요.
자, 이제 치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진단한 병명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남을 판단하기의 극대화>
요즈음이 딱 이렇습니다. 물론 예전에는 안 그랬다는 뜻은 아닙니다. 더 심해졌다는 말씀입니다.
돌아온 선거철. 선거 공화국은 그야말로 남을 비방하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유튜브와 틱톡에 흘러넘치는 상대방 깎아내리기 혈전. 정보의 사실 여부는 뒷전입니다. 없는 병은 만들어내고 있는 병은 악화시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정말이지 가관입니다. 사바나의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습니다. 그저 더 악하고 끈질긴 놈이 살아남을 뿐입니다.
저는,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쓴 <에세>의 한 구절을 여기에 인용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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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흔히 하듯 나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잘못은 범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는 나와 다른 점들이 있으리라 쉽게 이해하는 것이다. 내 삶이 어떤 틀에 속해 있다고 느낀다고 해서, 남들이 다 그러는 것처럼 세상에 그것을 강요할 마음이 없으며, 살아가는 데는 서로 다른 수많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이해한다. 그리고 너나없이 모두가 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 사이의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내 의향이나 내 원칙으로 남을 구속하지 않으며,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 고유의 모습에 맞게 옷을 입히는 정도이다.
<에세> 제1권 3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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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다. 우리의 불행과 우울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그저 그 자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부족해서입니다.
또, 하나의 병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현란한 물질주의와 돈벌이에 대한 집착>
물질주의 : 고급 호텔, 오마카세, 명품 가방, 슈퍼카, 성형 등등…. 눈부시게 현란합니다.
돈벌이 집착 :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펀드 등등…. 탐욕에 잡아먹힌 아귀(餓鬼, Hungry Ghost)의 다른 이름입니다. 정말이지 '적당히'가 없습니다.
저는 다시 몽테뉴의 <에세>에 기록된 에피소드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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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스 왕이 이탈리아로 원정을 떠날 계획을 세울 때, 그의 현명한 조언자 키네아스는 그 야심의 부질없음을 느끼게 해주고자 그에게 물었다.
"아, 그렇습니까, 전하! 무슨 목적으로 그런 거창한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왕은 즉각 대답했다.
"이탈리아의 주인이 되려고 하지"
"그럼 그다음에는요?"
"골 지방으로, 또 에스파냐로 가야지."
"그다음에는요?"
“아프리카를 정복하러 갈 거야. 그리고 마침내 전 세계를 정복하고 나면 쉬면서 즐겁게 편안히 살아야지" 그러자 키네아스가 응수했다.
"하느님 맙소사, 전하, 소원이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지금 당장 그렇게 살지 않으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왜 소원이라는 그 상태를 바로 이 순간부터 누리고, 그동안에 겪을 그 많은 수고와 위험을 덜려 하지 않으십니까?"
<에세> 1권 4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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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분에게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에피소드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구글에서 <멕시코 어부 이야기>라고 검색하시면 쉽게 접하실 수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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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윤리의 붕괴에 대한 일화
(Anekdote zur Senkung der Arbeitsmoral)
유럽 서쪽 해안의 어느 항구에서 초라한 차림의 어부가 자신의 어선에 누워 졸고 있었다. 바로 그때 세련된 차림의 한 여행자가 카메라에 컬러 필름을 새로 끼워 넣으며 그곳의 풍경을 찍으려고 했다. 파란 하늘, 새하얀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오는 녹색 바다, 검은 배, 어부의 빨간 모자. 찰칵. 다시 한번 찰칵. 모든 일은 세 번이 좋은 것이지, 암, 당연하지. 그러니 세 번째로 찰칵.
신경에 거슬리는 적대적인 소음에 잠을 깬 어부는 일어나 앉아 졸린 듯한 눈으로 담뱃갑을 더듬어 찾는다. 그러자 여행자가 재빠른 동작으로 담뱃갑을 코앞에 내민다. 담배를 어부의 입이 아니라 손으로 건네주며 라이터로 불까지 붙여주고는 네 번째로 찰칵. 이렇게 해서 신속한 예의는 끝이 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속한 예의에 담긴 지나친 동작에 어부가 당황하자 그 지방말에 숙달된 여행자는 대화로 분위기를 누그러트리려 한다.
"오늘 고기를 많이 잡으셨나 보군요." 어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렇지만 오늘은 고기를 잡기에 날씨가 좋다고들 하던데요." 어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도 고기를 잡으러 안 나간단 말인가요?" 어부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행자의 신경이 과민해진다. 옷차림이 초라한 사람들의 행복이 마음에 걸리던 여행자의 머릿속으로 어부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파고든다.
"혹시 어디 몸이 불편한가요?" 그러자 어부는 마침내 동작으로만 하던 대꾸를 끝내고 입을 열어 대답한다.
"몸 상태는 아주 좋아요. 어느 때보다 오늘은 몸이 좋단 말이오." 어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몸이 운동선수처럼 얼마나 잘 단련되어 있는지 과시하려는 듯 사지를 펴 보인다.
"몸 상태는 나무랄 데 없이 좋아요." 여행자의 표정은 점점 더 애처롭다. 그는 솟구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침내 묻는다.
"그런데 왜 고기를 잡으러 나가지 않는 건가요?" 그러자 간단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대답이 돌아온다.
"오늘 아침에 이미 나갔다 왔으니까요."
"많이 잡았나요?"
"다시 나갈 필요가 없을 정도는 됩니다. 바닷가재 네 마리하고 고등어를 스무 마리 넘게 잡았으니까요."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깬 어부는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안심을 시키듯 여행자의 어깨를 토닥인다.
어부가 볼 때 여행자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걱정이 지나쳐 서글퍼 보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내일이나 모레까지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어부는 낯선 이방인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말한다.
"내 담배 한 대 피우시지요."
"감사합니다."
담배를 입에 물리고 다섯 번째 찰칵. 이방인은 고개를 흔들면서 뱃전에 앉는다.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말하면서 제스처를 쓰려면 양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일에 간섭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두 번, 세 번 나가면 스무 마리가 아니라 서른 마리, 쉰 마리, 백 마리라도 잡을 수 있는 것 아니겠소? 그렇지 않아요?"
어부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행자가 말을 잇는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나갈 수 있는 거 아니요? 두 번 아니라 세 번, 네 번을 나갈 수도 있고요.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어부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당신은 넉넉잡고 1년이면 엔진이 달린 배를 사들일 수 있을게요. 2년이 지나면 배를 한 척 더 장만할 수도 있고 말이오. 3~4년만 지나면 작은 범선도 살 수 있을 테고 범선 하나와 모터보트 두 척이면 당연히 훨씬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고 말이오. 그러다 보면 두 번째 범선을 장만하게 되고 그리되면…."
스스로 감격해서 여행자의 목이 잠긴다.
"그리되면 작은 냉동 창고도 지을 수 있을 것이고 아마 훈제 제조 공장이나 나아가 생선 소스 공장도 차릴 수 있을게요. 또 헬리콥터를 장만해서 어군을 탐지해 무전으로 어선에 위치를 알릴 수도 있겠지요. 당신은 연어 조업 건도 따낼 수 있을 거예요. 생선 전문 레스토랑도 차릴 수 있고 중간상인 없이 직접 파리로 바닷가재를 수출할 수도 있고 말이오.” 다시 감격에 겨워 여행자의 말이 막힌다. 마음이 심란한 듯 머리를 흔들면서 여행자는 이미 자신의 휴가 계획은 잊어버리고 잔잔하기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본다. 마치 그 속에서 뛰노는 고기를 잡지 못해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흥분한 나머지 목이 잠긴다. 어부는 마치 음식을 잘 못 먹은 아이에게 하듯이 여행자의 등을 토닥이며 고개를 젓는다.
"그런 다음에는 뭐요?"
어부가 나지막이 묻는다.
"그런 다음에는…."
여행자가 감격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런 다음에는 당신은 이 항구에서 느긋이 앉아서 햇볕을 쬐며 졸 수 있겠지요. 저 아름다운 바다를 감상하면서 말이오."
"하지만 그것은 이미 하고 있지 않소?"
어부가 되물었다.
"나는 이미 항구에 느긋이 앉아서 졸고 있소. 다만 찰칵거리는 카메라 소리에 잠이 깬 것이지." 이 말을 듣고 나름대로 똑똑한 여행자는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일하는 이유가 언젠가는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마음속에는 초라한 옷차림의 어부에 대한 동정은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약간의 시기심만 일 뿐이다.
- 하인리히 뵐(Heinrich B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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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우리의 불행은, 어쩌면 <내가 얻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뿐일지 모릅니다. 당연하게도 말입니다.
참고로, 저는 독일의 소설가 <하인리히 뵐>을 무척 좋아합니다. 괴롭고 힘들었던 군 시절, 저는 그의 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을 읽고 비로소 <글이 주는 행복>에 빠졌고,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의 활동 무대였던 <쾰른>을 방문하고, 소설가로 여생을 채워야겠다고 결심을 굳히게 한 계기를 마련해준 분입니다.
지금 우울하신 여러분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책을 딱 덮는 순간, 아마 느끼실 겁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