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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기억

by 남킹

쾌락의 기억: 해방과 파멸 사이, 인간 욕망의 심연을 탐색하는 검은 거울


소설 "쾌락의 기억"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의 탐닉을 넘어선다. 늦은 밤 남행열차에 몸을 싣는 희주의 여정은, 사회적 가면과 도덕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욕망과 마주하려는 한 여성의 고독한 투쟁을 상징한다. 작품은 낯선 공간, 익명의 존재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 내면에 숨겨진 욕망의 심연을 탐색하며, 현대 사회의 위선과 개인의 파멸 가능성을 동시에 조명한다.


욕망의 기차: 억압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은밀한 여행


희주에게 기차는 현실 도피의 수단이자, 억압된 욕망을 분출하는 해방구다. 낡은 기차의 덜컹거리는 움직임, 차창을 스치는 빗소리는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도 희미한 쾌감을 느끼는 희주의 심리를 반영한다. 그녀는 익숙함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며, 사회적 규범과 내면의 충동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왜 나는 이토록 흔들리는 걸까?"라는 질문은,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적인' 삶과 진정한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고뇌를 대변한다.


404호: 버려진 공간, 욕망의 은신처


낡은 모텔 404호는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익명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희주만의 은밀한 공간이다. 이곳은 그녀에게 완벽한 자유와 일탈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고독과 파멸의 씨앗을 품고 있는 양날의 검과 같다. 창문이 열리지 않는 폐쇄성은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하며, 그녀는 자신만의 욕망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 희주가 "옥자"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또 다른 자아를 창조하려는 시도다.


쾌락의 기억: 과거의 상처와 욕망의 재구성


희주가 쾌락에 탐닉하는 이유는 단순히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녀는 과거 스티브와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고통과 쾌락의 기억을 재구성하며, 자신의 욕망을 새롭게 정의하려 한다. 스티브는 희주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있지만, 동시에 그녀를 억압된 욕망의 세계로 이끄는 촉매제가 된다. 희주는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려 하지만, 결국 파멸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타락한 여왕: 권력과 파멸의 변주


만남 앱을 통해 남자들을 '노예'로 만들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희주의 모습은, 권력을 획득한 여성의 타락을 보여준다. 그녀는 사회적 지위와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을 도구화하고 파괴적인 쾌락을 추구한다. 희주의 행동은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 욕망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낸다.


기억 상실: 파멸의 대가,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


희주가 폭행당한 후 기억을 잃는 것은, 과거의 삶과 단절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기회를 얻게 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녀는 쾌락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다시 그 길을 선택한다. 이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강력하며,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옥자는 행복을 느끼지만, 그녀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쾌락의 기억은 그녀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진정한 자신을 찾아 나설 수 있는 동기가 될 수도 있다.


검은 거울: 우리 안의 욕망을 비추다


"쾌락의 기억"은 단순히 한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은 우리 사회의 위선과 개인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이 초래할 수 있는 파멸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검은 거울이다. 희주의 이야기는 우리 안에도 존재하는 욕망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과연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억압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쾌락의 기억"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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