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상념
Ólafur Arnalds - Happiness Does Not Wait
집으로 올라가는 길. 좁고 울퉁불퉁한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놀이터 경계를 가르던 마로니에 나무는 작년에 베어지고 밑동만 남았다. 마로니에 열매를 밤인 줄 알고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경우가 해마다 발생하자, 어느 날 구청 직원이 나와 잘라버렸다.
이제 봄을 채우던 탐스러운 분홍빛 꽃은 순전히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나의 한 손에는 미자의 오른손이, 다른 손에는 라면과 달걀, 파와 햄이 든 검은 봉지가 들려있다.
통장의 잔액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나는 비로소 어정쩡한 아이템 구매와 불필요한 소비에 냉담해질 수 있었다. 꾀죄죄하고 낡은 건물들이 삐쭉하게 들어선 낮은 언덕을 오르며, 나는 텅 빈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척 가늘어진 햇빛을 모두 받고 있다.
지독한 황사가 물러가자 더위가 찾아왔다. 헐떡거리는 목덜미에 땀이 배어 나온다. 얇고 헐렁한, 목이 파인 겨자색 반소매 셔츠에서 쉰내가 올라왔다.
“제발 집 좀 옮기자!” 여자가 헐떡거렸다. 굵은 땀방울이 얼굴에 파다하게 송골송골 맺혔다.
방안의 모습은 어제와 다름없다. 당연하게도. 펄럭거리는 하얀 커튼 사이로 마지막 빛이 춤춘다. 춤추는 건 미자의 담배 연기도 있다. 그녀는 가느다란 담배 끝을 위태롭게 잡고 연기를 창으로 훅 뿜었다. 몽글한 구름이 삐죽 열린 창을 들이박는다.
늙은 오후가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걸터앉았다. 내가 이불을 개어 한쪽 끝에 두자 그녀는 창을 닫았다. 담배를 비벼 끄고 출렁이는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나를 힐끗 쳐다본다.
“도대체 언제까지 라면으로 때울 거야?”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노란색 하트가 새겨진 헐렁한 셔츠 사이로 젖꼭지가 봉긋하다. 여자는 책상 구석에 놓인 영양제를 발견한다. 그리고 짙은 갈색 병을 들어 양을 조사한다.
“그동안 오메가 3 하나도 안 먹었네. 어휴! 챙겨줘도 소용없다니까!” 그녀의 선물이다. 여자는 뚜껑을 열고 두툼한 캡슐 2개를 손가락으로 꺼내 꼴깍 삼키고 생수를 한 모금 마신다.
“나라도 먹어야지.” 여자는 약을 좋아한다. 무엇이든 보이면 닥치는 대로 삼키고 본다. 그녀는 백에서 스프레이를 꺼내 입속에 칙칙 뿌리고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나는 눈만 뜬 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디선가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그녀의 체취에 취한 듯 눈을 가늘게 뜬다. 나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반듯한 원룸으로 옮길 때까지.”
“뭐?”
“아, 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