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다섯이 되던 그해 어느 날, 나는 인생이 무척 짧고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죽기 전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한 가지에 몰입하기로 결심을 했다. 우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열해 보았다.
게임, 축구, 낚시, 여자, 영화, 술, 당구, 춤, 여행, 맛집, 글쓰기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덜 좋아하는 항목을 지워나갔다. 결국 여자만 남았다.
그래서 연애에 내 모든 것을 걸기로 다짐했다. 나는 앞으로 25년 동안, 즉 내 나이 60이 될 때까지, 찐하게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깨끗하게 은퇴해서 후회 없는 여생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월드 와이드하게 전 세계 여인들과 애정 행각을 벌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금수저도 아니고, 억대 연봉의 전문직을 가진 것도 아니며, 투자의 귀재도 더더욱 아닌 신분이므로, 벌어놓은 돈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게 가능한 종류의 직업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해외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서 자세히 검토해 봤다.
특정 국가나 일부 지역에서만 필요로 하는 직종이 아니라, 범용적으로 전 세계에서 두루 모집하는 직업군을 대충 추려보니 다음과 같았다.
프로그래밍, 건설, 여행, 식당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점검해 나갔다.
프로그래밍 : 나는 베테랑 프로그래머다. 하지만 책상에 꼼짝없이 앉아 하루 15시간씩 작업하는 게 날이 갈수록 싫어졌다. 나는 몸을 움직이고 싶다.
건설 : 내 체력으로는 한 달 이내에 쓰러진다.
여행 : 길치에 가까운 내가 가이드를? 길에서 비명횡사한다.
결국 식당만 남았다.
그래서 다음날, 곧바로 요리학원과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나는 육 개월 동안 한식, 일식, 중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차례대로 땄다. 그리고 백종원, 고든 램지 요리 유튜브를 열심히 봤다. 게다가 영어도 웬만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익혔다. 그렇게 나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나는 한글, 영문 이력서를 멋있게 작성했다. 비록 요리 경험은 없지만, 성실, 근면하고 빨리 배우고 성격도 무척 좋다고, 침이 마르게 자화자찬했다. 그리고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있는 한인 식당에 이력서를 뿌렸다.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수많은 만남 앱을 연구 조사했다. 그중에 가장 괜찮은 만남 앱 3개와 채팅 앱 5개를 추렸다.
한 보름쯤 지나니 폴란드에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 사장이었다. 급여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숙식 제공이 되었다. 우선 경력을 쌓는 게 중요했으므로, 나는 무조건 빨리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빨리 출발할 수 있는, 항공권을 예매했다. 2주 뒤였다. 그렇게 나는 내 생에 첫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다.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공항을 거쳐, 브로츠와프시 코페르니쿠스 공항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홀에 나와보니 한 젊은 외국 청년이 <할매 식당>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손짓했다.
남?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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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나의 캐리어 2개를 덥석 잡더니 재빠른 속도로 주차장으로 끌고 갔다. 나는 잰걸음으로 그를 뒤따랐다. 무척 빨랐다. 나는 헉헉거리며 따라갔다. 넓은 야외 주차장에는 듬성듬성 차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마치 우리가 은행 털이범이라도 되는 양, 잽싸게 차 트렁크에 나의 짐을 싣고는 시동을 걸었다.
나를 태운 차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뻘쭘하게 경치나 쳐다보면서, 약 30분 정도를 달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이름은 이반이었고 벨라루스 출신이었다. 그는 도시락 및 요리 재료 배달과 주방 보조를 하였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온 지 두 달 만에 쫓겨났다.
식당은 생각보다 무척 크고 썰렁했다. 하지만 <할매 식당>이라는 간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입구에 <I Love Food>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예전 간판이 붙어 있었다. 홀에는 여자 직원 다섯 명이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고, 주방에는 한국인 쉐프가 닭을 튀기고 있었다. 할머니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쉐프와 인사를 나누고 나머지 직원과도 말없이 악수를 교환했다.
쉐프는 송 실장으로 불렸다. 다섯 명의 여자 이름은 차례대로 <올라>, <크리스티나>, <제니아>, <나탈리아>, <안나>였다. 모두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세 명은 젊고 두 명은 나이가 들어 보였다. 젊은 올라는 작고 말랐으며 비슷한 또래의 크리스티나는 크고 뚱뚱했다. 둘은 무척 친한지 꼭 붙어 있었다. 제니아는 삼십 대쯤 보였고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나탈리아는 사십 대쯤 되었고, 배가 나왔다. 하지만 주먹만 한 얼굴에 큰 눈과 코를 지녔다. 안나는 거의 할머니에 가까웠다. 성깔도 있어 보였다.
나는 곧바로 집을 배정받았다. 숙소는 식당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10층짜리 주상 복합아파트였다. 1층에는 <자브카>라는 편의점과 스시 레스토랑, 미용실, 제과점이 있었다. 나는 9층에 배정받았다. 내가 배정받았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우리 식당에서 운영하는 방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할매 식당>은 대규모 건설 현장의 공사장 인부 전용 식당이었다. 한국에서 건설 인력이 도착하면, 식당은 그들에게 하루 세 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거였다. 심지어 출퇴근 차량도 제공하였다. 우리 식당은 약 100명 정도의 고정 고객을 받고 있었다. 지금은 건설 막바지라서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하였다. 많을 때는 200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방은 작지만, 최근에 신축한 듯 깨끗하고, 세간살이는 모두 갖추고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어 밖을 보니, 맞은 편에 태극마크가 선명한 한국 식품점이 보였다. 비행기로 15시간 넘게 날아서 온 외국이지만, 마치 한국의 중소도시를 방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날 시차 적응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자다 깨다'를 반복하였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긴 여행의 피로와 새로움에 대한 설렘,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흥미진진한 나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복합적으로 나를 들뜨게 했다.
나는 새벽 4시에 기상했다. 그리고 5시에 식당으로 출근했다. 나의 근무시간은, 오전 5시에서 오후 5시까지, 총 12시간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돌아가면서 쉬었다. 예전 한국에서의 근무 환경에 비하면 많이 열악한 편이지만, 주방 초보자로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일 때까지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해뜨기 전이라 밖은 어두웠다. 날은 약간 쌀쌀했으나 공기는 맑았다. 2차선 도로와 트램 철길이 나란히 뻗은 길을 따라, 나는 조심스레 걸어서 식당으로 갔다. 지나가는 차량과 트램은 보이지 않았다. 식당 입구에 도착하니 여자 2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올라와 크리스티나였다.
나를 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나는 담배를 끊은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외국에서 맞이하는 첫날, 그것도 낯선 여인들과 마주하다 보니, 참을 수 없는 흥분과 설렘 속에 선뜻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올라가 라이터를 켜 내게 내밀었다. 나는 담배를 일단 살짝 빨아 보았다. 생각보다 무척 순한 맛이었다. 기침도 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자신 있게 깊게 담배를 빨았다. 그러자 갑자기 머리가 핑하며 도는 게, 하마터면 크리스티나 쪽으로 쓰러질 뻔하였다.
아저씨! 오늘 기분이 어때? 올라는 영어로 내게 물었다.
오늘? 최고지! 나는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였다.
그녀들은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는 그 순간, 나의 선택 – 무조건 외국으로 가자 -에 대한 대단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꿈과 모험이 가득한 신비스러운 환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어쩌면 그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첫 외국인 여자친구가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렇게 사이좋고 진하게 각자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업무를 시작했다. 나의 첫 미션은 달걀후라이였다. 내 앞에 30개짜리 계란판이 3층을 이루고 있었다. 즉, 적어도 90개의 후라이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올라가 한국에서 가져온 휴대용 가스레인지 2개를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내 옆에 선 채 먼저 시범을 보였다. 그녀는 양손에 달걀을 한 개씩 들고는 서로 부딪혀 깬 다음 능숙하게 큰 프라이팬에, 알이 중앙에 가게 하여 동그랗게 놓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모두 8개의 달걀을 한꺼번에 굽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왼손이 부자연스러워 오른손에 달걀 한 개를 살짝 쥐고는 프라이팬 모서리에 달걀을 부딪친 다음 살포시 팬에 풀었다. 나의 후라이는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나의 서툰 모습을 지켜보던 올라와 크리스티나는, 서로가 빠르게 말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웃어 제겼다. 그러더니 어느새 크리스티나의 한 손이 내 어깨에 올라가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삶의 기쁨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