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커플 _ 양치컵 vs 칫솔꽂이

by 남킹

EP 008. 양치컵 vs 칫솔꽂이

"야, 장지훈! 너 또 내 양치컵에 네 칫솔 넣었냐?!"

아침부터 욕실에서 수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막 잠에서 깬 지훈이 눈을 비비며 욕실 문 앞으로 다가가자, 수현이 한 손에는 자신의 하늘색 양치컵을, 다른 한 손에는 지훈의 노란색 칫솔을 들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자기야. 아침부터 목청 한번 우렁차네. 혹시 성악이라도 전공했어?"

지훈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지만, 수현의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웃음이 나와? 이게 안 보여? 왜 내 양치컵에 네 칫솔을 넣어! 영역 표시하냐? 여기가 나미비아 초원이야? 네 칫솔이 사자고 내 양치컵이 바오밥 나무냐고!"

수현이 지훈의 칫솔을 그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칫솔모에 맺힌 물방울이 지훈의 인중에 살짝 튀었다.

"아, 그거. 그냥 칫솔꽂이가 좁아서 잠깐 넣어둔 건데. 뭘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어."

"잠깐? 네 ‘잠깐’은 거의 영구 임대 수준이던데? 그리고 칫솔꽂이가 왜 좁아? 네 칫솔만 뚱뚱한 거 아니야? 다이어트 좀 시켜!"

"내 칫솔이 뭘 어쨌다고! 그리고 양치컵 좀 같이 쓰면 어때서 그래.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따져."

"우리 사이? 우리 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 거야! 이건 엄연한 사생활 침해라고! 내 양치컵은 나만의 신성한 공간이란 말이다! 네 칫솔모에 묻은 정체불명의 세균들이 내 양치컵을 오염시키는 거, 상상만 해도 끔찍해!"

수현은 마치 세균과의 전쟁이라도 선포한 듯 비장했다. 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정체불명의 세균? 야, 내 입안이 무슨 세균 배양지냐? 나름 매일 치카치카 열심히 하는 건전한 시민이거든?"

"건전? 네 생활 습관을 보면 전혀 건전해 보이지 않는데? 그리고 네 칫솔, 가끔 변기 옆에 떨어져 있는 거 내가 몇 번이나 봤는데! 그 칫솔을 내 양치컵에? 완전 세균 폭탄 테러잖아!"

수현의 폭로에 지훈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아, 그건… 가끔… 아주 가끔 실수로 떨어뜨리는 거지. 그리고 바로 주워서 씻거든!"

"실수? 네 실수는 왜 이렇게 빈번한 건데! 그리고 씻으면 다야? 이미 변기 주변의 온갖 비말들이 네 칫솔에 내려앉았을 텐데! 생각만 해도 소름 돋아!"

수현은 몸서리를 치며 자신의 양치컵을 뜨거운 물로 박박 헹궜다. 지훈은 그 모습이 못마땅했다.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니냐? 그럼 넌 뭐, 네 칫솔은 무균실에 보관이라도 하냐? 어차피 입안에 들어가는 건데 뭘 그렇게까지."

"유난? 이건 유난이 아니라 청결의 문제야! 그리고 난 내 칫솔, 꼬박꼬박 칫솔꽂이에 잘 보관하거든? 너처럼 아무 데나 방치하거나 남의 영역 침범 안 한다고!"

"칫솔꽂이 그거 얼마나 넓다고. 내 칫솔 하나 더 들어간다고 큰일 나냐? 너 완전 쪼잔하다, 강수현."

"쪼잔? 아니, 난 내 영역을 소중히 여기는 자주적인 현대 여성이다! 그리고 넌 그냥… 남의 물건 함부로 쓰는 개념 없는 무단 침입자고!"

수현의 단호한 선언에 지훈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묘한 미소를 지으며 수현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내 칫솔이 싫어? 그럼… 차라리 내 입술은 어때?"

지훈이 장난스럽게 입술을 쭉 내밀자, 수현은 질색하며 뒤로 물러섰다.

"저리 안 가?! 지금 장난이 나와? 그리고 네 입술도 못 믿겠어! 방금 그 세균 가득한 칫솔로 양치했을 거 아니야!"

"에이, 너무하네. 나름 아침부터 키스 시도한 건데, 이렇게까지 철벽을 치다니. 상처받았어."

지훈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수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흥, 엄살은. 아무튼, 다시는 내 양치컵에 네 칫솔 넣지 마. 경고했다. 안 그러면 네 칫솔, 변기 청소용으로 강제 전직시켜 버릴 줄 알아."

"알았어, 알았다고. 내 칫솔은 소중하니까. 그럼… 우리 그냥 양치컵 하나로 같이 쓸까? 커플 양치컵 어때?"

지훈이 능글맞게 제안하자, 수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됐거든? 난 그냥 내 하늘색 양치컵 솔로로 쓸란다. 넌 네 노란색 칫솔이랑 잘 해보든가."

결국 양치컵 vs 칫솔꽂이 논쟁은 각자의 영역을 사수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지훈은 칫솔꽂이에 자신의 칫솔을 조심스럽게 꽂으며 생각했다. ‘강수현은 진짜… 넷플릭스 비밀번호 공유는 하면서 양치컵 공유는 안 되는 이상한 여자야.’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수현의 이런 까칠함조차 사랑스럽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이 사소한 영역 다툼이 그들의 관계에 소소한 긴장감과 재미를 더해주는 양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물론, 내일 아침 또 다른 생활 습관 문제로 욕실에서 고성이 오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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