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의 바람결에 실린, 중봉의 푸른 철학
어느 해사한 봄날, 역사의 숨결이 깃든 땅 금산을 찾았다. 시간의 더께를 고요히 이고 선 사백여 년 노송들의 푸른 기상이 땅을 감싸는 곳. 그 솔숲 사이를 거닐다 나는 문득 한 사내와 마주쳤다. 책장을 넘기던 정갈한 손으로 창을 움켜쥐고 격랑의 시대로 뛰어든 선비, 바로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이었다. 그의 자취는 비록 희미했으나, 금산의 공기 속에는 그의 강직한 정신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산책길 위,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비석에 새겨진 짧지만 강렬한 문구였다. '인생자 필유일사, 허국이불위(人生自必有⼀死, 許國而不爲)'. "사람이란 본디 한 번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법,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함이랴." 단순히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결의로만 읽어 넘기기에는 그 안에 담긴 철학의 깊이가 심연처럼 아득했다. 중봉에게 죽음이란 회피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되, 의(義)라는 더 높은 가치를 통해 능히 초월할 수 있는 실존적 한계였다. 죽음마저도 대의를 실현하는 과정의 일부로 끌어안았던 그의 시선에서, 나는 범상한 용기를 넘어선 드높은 정신의 경지를 보았다.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어받은 중봉은 성리학(性理學)을 서재 안의 관념으로만 가두지 않았다. 그에게 성리학은 난세의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치열한 현실 참여의 나침반이자, 시대의 병폐를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살아있는 지혜의 원천이었다. 임진왜란의 국난을 예견하며 올린 절절한 '시무십조(時務十條)'에는 당시 조선 사회가 직면한 폐단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시급한 개혁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그의 고뇌와 경륜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단순한 지식의 축적을 넘어, 앎을 곧바로 실천으로 옮기려 했던 그의 불타는 열정 속에서 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유학의 이상이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얼마나 숭고하게 완성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그는 이론과 실천, 사유와 행동 사이의 간극을 온몸으로 메우려 했던 진정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문득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 뇌리를 스쳤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적게 행하고 있는가. 원칙과 당위는 머리로 수긍하면서도, 현실의 벽 앞에서 얼마나 쉽게 타협하고 외면하는가. 지식은 넘쳐나지만 실천의 동력은 희미해진 시대, 삶과 유리된 공허한 담론들이 부유하는 세태 속에서, 중봉의 삶은 그 자체로 질타이자 귀감이 되는 묵직한 철학서였다. 그는 책상 위에서 연마한 사유의 칼날을 피 튀기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몸소 휘두르며, 자신의 철학이 단순한 글자의 나열이 아닌, 피와 땀으로 증명해야 할 생생한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금산의 아담한 기념관 한편에 자리 잡고 『중봉집(重峯集)』을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행간마다 먹물처럼 배어 있는 것은 '공(公)'에 대한 그의 깊은 성찰이었다.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선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최우선으로 삼는 그의 철학은, 개개인의 욕망이 파편화되어 공동체적 가치가 위협받는 오늘날의 극단적 개인주의 시대에 더욱 절실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공'이란 단순히 사(私)의 반대 개념을 넘어, 개인이 공동체와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비로소 참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그것은 사익(私益)의 탐닉을 경계하고, 불편부당한 공심(公心)을 견지하며, 개인과 공동체가 조화롭게 상생하는 이상 사회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었다. 그의 글 속에서 '공'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적 지향점이자 실천적 목표였다.
척왜양론(斥倭洋論)에 대한 기록들을 더듬어 읽으며, 나는 그를 시대착오적인 배외주의자로 단정하는 것은 지극히 피상적인 이해임을 깨달았다. 그에게 더 근본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외세의 침략적 위협 앞에서 조선 고유의 문화적, 철학적 정체성을 굳건히 수호하는 일이었다. 외부 세계와의 불가피한 관계 속에서도 민족적 자존과 주체성을 견지하려는 치열한 고민, 그것이야말로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자 했던 중봉의 진정한 의지였다. 그의 주장은 단순한 거부가 아닌, 자기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자부심에 기반한 자주적 선택의 요구였던 것이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붉은 노을이 금산의 옛 전투지를 물들일 무렵, 나는 중봉과 칠백의사(七百義士)가 장렬히 산화한 역사의 현장 위에 서 있었다. 바람 소리마저 숙연하게 느껴지는 그곳에서 나는 생각했다. 중봉이 이곳에서 남긴 것은 단지 스러져간 육신과 패배의 기록만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하나의 철학, 즉 의(義)와 충(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진 지행합일의 정신적 승리였다.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완성했고, 그 숭고한 희생은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가르침으로 남았다.
금산을 떠나 돌아오는 버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 사이로 중봉의 낮은 음성이 귓가에 환청처럼 맴돌았다. "인생자 필유일사..." 그렇다. 우리 모두는 유한한 생을 부여받았고,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이 한 번뿐인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시간과 열정을 바쳐야 하는가? 중봉은 혼란한 시대 속에서 자신의 답을 찾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랐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답을 찾아가고 있는가. 혹여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지는 않은가.
버스가 도심의 불빛 속으로 들어설 때, 금산에서 불어오던 맑은 바람 한 줄기가 마치 그의 숨결처럼 내 뺨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 속에는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는 중봉의 푸른 철학이, 오늘도 변함없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금산의 바람은 단순한 대기의 흐름이 아니라, 한 위대한 정신이 남긴 숭고한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역사의 전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