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면허를 취득한 자, 날나리 조

1화

by 남킹

내 이름은 조필호. 하지만 스파이 업계에서는 날나리 조로 알려져 있다.

나는 지금 망망대해, 나 홀로 둥둥 떠다니는 컨테이너 박스위에서 18일동안 갇혀있다.

주변에는 식인 상어들이 입맛을 쩝쩝 다시고, 제 멋대로 불어 제끼는 바람은 언제라도 컨테이너 박스를 뒤집어 삼킬 기세다.

절체절명의 상황.

물도 바닥나고 통조림도 빈깡통만 남았다.

이대로 가다간, 상어 밥이 되던가 익사하던가 굶어 죽을 판이다.

돌이켜보면, IMF(Impossible Missions Force) 최고의 킬러로, 스파이로 살아온 18년이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그동안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지만, 덕분에 전 세계 미녀들과의 잊을 수 없는 광란의 밤도 부지기수로 보냈다.

대략 꼬집어봐도 69명의 미녀들.

오드리, 그레이스, 안젤리나, 스칼렛, 모니카, 아이시와라, 마고, 마릴리, 딥리카, 리우, 마리옹, 이자벨, 소피아, 페넬로페, 엘사 등등.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잊을 수 없는 여인은, 내 첫사랑, 도도희다.

이름 그대로 도도하기 짝이 없었던 그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였다. 하지만 섬을 떠나기 전 (구체적인 섬 이름은 보안상 비밀로 남겨둔다. 나에 대하여 너무 알면 당신도 위험해 질수 있으니...) 그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뜨거운 밤을 보냈다.

나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은 좀 아껴두려한다. 내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지난 시점에, 좀 지루하다 싶을 때 다시 꺼내도록 하겠다.

그리고 생각나는 이름. 송미자.

나는 그녀를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극히 평범하던 내가, 바로 그녀 때문에, 순간 순간 죽음을 염두에 둔 스파이의 삶으로 방향전환을 했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내게 악몽 그 자체였다.

송미자 때문에 평범하던 대학생이 전과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10년을 채우기가 힘들다는 전문 킬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를 죽이기 위해, 그 혹독하기 짝이 없는 전투 훈련을 감내하였고, 심지어 고문 저항 훈련, 거짓말 탐지기 회피 훈련, 심문 기술 및 대처법, 감정 통제 훈련까지 견뎌냈다. 그리고 대대적인 성형 수술 까지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의 첩보원으로 거듭난 순간, 나는 깨달았다. 미자를 죽이기 위해 2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나는 이제 온전히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귀속된 몸. 함부로 사사로운 개인 감점으로 살인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즉, 20년 뒤, 내가 무사히 살아서 은퇴를 하는 순간, 나는 송미자를 찾아 빚을 돌려 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나는 컨테이너 박스 위에서, 뜨거운 태양 빛에 타오르는 고통을 느끼며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아쉽지만 이번 생에 그녀를 다시 만나기가 힘들어 보인다.

돌이켜 보면,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그저 평범하게 지방 대학 나와 그저 평범한 여인과 결혼하고 그저 평범한 직장을 다니다가 그저 평범하게 은퇴하고 그저 평범하게 죽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송미자는 내게 애증의 관계인 셈이다.

그럼 이제, 그녀와의 첫 만남을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

그러니까 그때, 나는 대학 1 학년을 마치고 군에 가기 위해 빈둥빈둥 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오래간만에 상경했다.

친구와 닭발을 안주 삼아 포장마차에서 찐하게 소주를 들이킨 나는, 밤 늦게 고모집으로 향했다.

밤 늦은 시각임에도 전철은 꽤 번잡했다. 몇 정거장 가지 않아 용케 자리가 난 나는 잽싸게 자리를 차지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내 한쪽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 나는, 실눈을 뜨고 옆을 째려봤다. 그곳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입을 쩍 벌리고 내 어깨를 베개 삼아 쎅쎅거리며 꿈나라 여행을 하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는 향이... 정말이지 이 세상 향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약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점심 때 삭힌 홍어에 슈르스트뢰밍(Surströmming, 발효 청어)을 먹고 저녁에 취두부에 하우카를(Hákarl, 발효 상어고기) 먹고 입가심으로 두리안을 먹은 듯... 그녀가 숨을 내 뱉을 때마다 정말이지 복합다단하고 오묘한 암모니아 시궁창 냄새가 내 코 끝을 심하게 쥐어짜는 거였다.

술이 확 깬 나는, 질식사 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최대한 반대로 돌리고 얕은 숨을 쉬며 겨우 겨우 버티기로 돌입했다.

마침내, 인고의 시간이 끝나고 내가 내릴 역으로 전철이 스무스하게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니 그녀의 대가리가 너무도 세차게 내 어깨를 내리 누르고 있는 터라, 내가 그냥 일어나면 그녀는 바로 쓰러졌다가 2차로 바닥에 때기장 칠지도 모른 다고 판단한 나는, 교양인 답게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를 사아살 밀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전철이 급정거를 하면서 내 손이 그만 그녀의 빈약한 가슴을 만지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손에 그녀의 가슴이 와 닿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그 찰라와도 같은 순간에 벌어지고 말았으니....

어느새 깬 그녀가 내 손을 꽉 잡고는 이렇게 외치는 거였다.

“어딜! 만지는 거야! 이 변태 새끼가!”

이 한마디가 무심한 주변인들을 각성하게 만들었다. 일제히 44개의 눈알이 나를 째려보기 시작하였다.

그 중 18개의 눈은 휴대폰으로 나를 촬영하기 시작했고, 그 중 4개의 눈은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그녀에게 잡힌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독기를 품은 그녀는 쉽사리 날 놔줄 생각이 없었다.

“너 같은 변태 새끼는 콩밥 좀 먹어야 돼!”

그녀는 박테리아로 가득한 침을 내 안면에 무차별로 튀기며 격렬하게 반응했다.

나는 놀라고 두렵고 당황하고 쪽팔려서, 변명은커녕 진실 공방을 치를 의지도 상실한 채, 그저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자 격하게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문으로 달아났다.

그게 바로 내 일생 일대의 최대 패착이었다.

문 앞을 딱 가로 막고 있는 덩치 좋은 젊은이들. 그 중 한녀석이 나의 멱살을 잡고는 보란 듯이 외쳤다.

“어딜 도망가려고!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치러야지! 경찰서 갑시다!”

파출서로 질질 끌려간 나는 구치소로, 다시 심문실로, 법원으로 그리고 결국 실형 6개월을 선고 받고 교도소로 끌려 갔다.

내가 아무리 항변해도 CCTV에 명백하게 나와있는 내 손과 그녀의 가슴 접촉 순간... 심지어 나를 변호할 국선 변호사도, 고모도, 부모도 나의 결백을 믿지 않았다.

****

호송 차량에 실린 채, 감옥으로 가면서 나는,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수천번도 더 외쳤다.

‘송미자! 송미자! 두고 보자!’

하지만 그 때만 해도 출소 후, 그녀를 찾아가 해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딱 하나, 그녀의 사과를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교도소 7번방에 입소한 날부터, 날이 가면 갈수록 나는 점점 악랄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지옥 그 자체였다. 특히, 7번방.

7명의 입소자. 그 중 나를 제외한 6명은 손과 발, 몸뚱아리가 무슨 도화지라도 되는 양, 동양화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에게 내 이름은 조필호가 아니었다.

“어이! 성추행!”

“야! 성추행!”

“성추행 너 임마 일루와봐!”

나는 그곳에서 한 달동안 그들의 따까리, 시다바리 신세가 되어, 낮에는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서 했고, 밤에는 바지가랑이로 쑥쑥 들어오는 손을 온 몸으로 막아야 만 했다.

한 달이 10년 같았다. 6개월은 커녕 두 달도 버티기 힘들었다. 이대로 가면 6개월 내로 철창에 목메달고 싸늘한 시신이 될 운명처럼 느껴졌다.

뭔가 반전이 필요했다. 죽던가 죽이던가. 죽이되던 밥이 되던.

사실 내게는 비밀 아닌 비밀이 하나 있었다. 태권도 유단자였다. 즉, 4단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태권도장에 얼굴을 내 밀었다.

왜냐고?

바로 태권도 관장이 내 첫사랑 도도희 아버지였다. 나는 순전히 그녀를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꾸역 꾸역 도장을 방문했던 거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태권도 유단자가 된거고...

아무튼 감옥에서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샤워실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나는 7번방 멤버 6명을 뒤후리기, 점프 돌려차기, 540도 돌려차기, 720도 돌려차기, 점프 뒤차기, 점프 후리기 한방으로 모두 그 자리에서 떡 실신시켰다.

덕분에 나는 독방에 갇힌 채, 두 달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독방을 나온 나의 위상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소위 ‘샤워실 돌려차기 한방 사건’의 주인공이 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성추행범을 쳐다보는 경멸의 눈초리가 아니라, 시라소니나 김두한을 올려다보는 존경의 눈동자였다.

특히, UFC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교도소장은, 나를 마치 코너 맥그리거 (Conor McGregor) 나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Khabib Nurmagomedov)처럼 대하며, 방과 후 심심찮게 나를 불러내 태권도를 배우곤 했다.

게다가 나를, 유력인사들이 사용하는 고급 방 (18번 방)으로 이감시켜 주기 하였다.

하지만 7번방의 그 놈들이 그냥 당하고만 있을 놈들이 아니었다. 나는, 자진해서 내게 놈들의 정보를 알려주는 감방 동료들 덕분에 여러차례 고비를 넘기곤 하였다.

그러다 결국, 출소를 불과 10일을 남겨둔 상황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들과 맞짱을 뜰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각자 그들의 손에 흉기가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그들을 떡사발나게 두드려 팼다. 하지만 나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손과 발, 등, 어깨 심지어 얼굴에도 칼에 베인 상처를 입고 나는 과다 출혈로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에 실려간 나는 사흘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몇 번의 크고 작은 수술이 이어졌고 결국 한달 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퇴원을 하루 앞둔 그 날, 나는 두 사람의 방문자를 만났다.

한 사람은 교도소장이었다. 그는 내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안 좋은 소식을 전했다.

이미 육개월의 수감 생활을 마쳤지만, 감방 폭행 사건으로 인해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까지 감옥에서 더 썩어야 한다는 거였다.

또 한사람은 낯선 사람이었다. 짙은 회색의 슈트와 검은 선그라스를 걸친 그는 세련된 몸짓으로 내게 악수를 먼저 청했다. 나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통보 때문에 매우 우울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악수를 했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누구신지?”

그는 대답대신 천천히 선그라스를 벗고는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윽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국정원 사람입니다. 조필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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