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먼지와 별
1센티미터. 그 보잘것없는 길이 속에, 약 1억 개의 수소 원자가 숨 막힐 듯 촘촘히 도열할 수 있다. 이 아찔한 미시의 세계, 그 중심에는 원자 전체 크기의 고작 1만 분의 1에 지나지 않는 핵이 섬처럼 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미세한 핵보다도 다시 10억 분의 1. 상상조차 불가능한 그 미립자의 크기가 바로 137억 년 전, 시간과 공간이 막 눈을 뜨던 찰나, 태초 우주의 전부였다.
무한을 향해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시공간의 거대한 자궁 속에서, 이 티끌 같은 점은 수천억 개의 은하를 잉태했다. 그 광활함 속에서, 이름 모를 한 나선 은하의 변방, 그 희미한 가장자리에 우리에게 익숙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노란 별 하나가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태양. 그리고 그 중력을 따라 공전하며, 생명의 푸른 빛을 머금은 작은 행성. 지구. 인류라는 종족의 요람이자, 예고된 무덤. 우리는 대부분 이곳, 이 연약한 행성에 발 딛고 살아간다. 아마겟돈이라는 거대한 재앙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에도, 그리고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후에도…
시간의 강물은 무정하다. 특히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존재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물살로 흐른다. 인류는 그 존재 자체에 파멸의 씨앗을 깊숙이 품고 있었다. 그것은 메마른 땅처럼 끝없이 갈라지는 탐욕이었고, 어둠 속에서 스멀거리는 근원적 공포였으며, 타인을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권력에 대한 병적인 갈망이었다. 이 세 가지 독은 인류 문명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운명이었다.
아니룻은 화성의 유일한 유인기지, 라스둠 시티(Lasdoom City)를 방문할 때마다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도시는 매번 눈부신 속도로 스스로를 변태하고 확장하고 있었다. 불과 수십 년 전, 인류의 첫 발자국이 붉고 메마른 모래 위에 역사적인 흔적을 남긴 이후, 이 도시는 불모의 땅 위에 세워진 인간 의지의 기념비, 아니, 오만의 상징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 그것이 인류의 가장 큰 힘이자 가장 위험한 저주였다.
돔으로 덮인 도시의 중앙 광장에서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를 따라 걷노라면, 그녀의 기억 속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길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마치 도시 자체가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성장하는 듯했다. 그 길들의 끝에는 어김없이 '하드롯(Hardrot)'이라 불리는 육중한 기계 로봇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건설 현장이 펼쳐졌다. 밤이면 용접기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이 화성의 검붉고 신비로운 하늘을 인공적인 별자리처럼 수놓았고, 낮이면 금속이 부딪치고 마찰하는 날카로운 소음이 도시 전체를 잠식했다. 라스둠 시티는 결코 잠들지 않는, 영원히 진화하는 기계 문명이었다.
아니룻은 타고난 방향 감각과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무기 삼아 라스둠 시티의 가장 깊숙한 골목까지 탐험했다. 최첨단 3D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도, 그녀는 거의 모든 거리와 건물, 인공 호수의 잔잔한 물결, 심지어 돔 내부의 작은 생태 공원 구석구석까지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그녀의 두뇌는 마치 완벽하게 축적된 지리 정보 시스템처럼 작동했고, 한번 눈에 담은 장소는 사진처럼 선명하게 각인되어 결코 희미해지지 않았다. 이 기이할 정도로 발달한 능력은, 그러나, 그녀의 고통스러웠던 유년 시절,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야 했던 시간 속에서 단련된 생존 본능의 산물이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던, 그녀만의 혹독한 과거가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이었다.
제2장: 고아의 눈
세상에 태어난 지 불과 6개월. 어머니의 품이 아닌 차가운 고아원의 공기를 처음으로 폐에 채운 순간부터, 아니룻은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생존이라는 절박한 기술을 먼저 터득해야 했다. 여러 탁아소와 위탁 가정을 끊임없이 떠도는 유랑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누구도 자신의 처절한 울음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쓰라린 진실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렸다. 아무리 목 놓아 울어도 따뜻한 젖병을 물려주는 손길은 없었으며, 웅크린 어깨를 감싸주는 온기는 더더욱 없었다. 스스로 경쟁에서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도, 결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뼈저리게 각인했다. 세상은 그녀에게 너무나 일찍 어른의 무게를 지웠다.
"울음? 그건 약자들이나 휘두르는 무기야." 열 살 무렵, 잠시 머물렀던 어느 위탁 가정의, 세상에 지친 듯한 눈빛을 가진 나이 든 소년이 그녀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멸과 연민이 뒤섞여 있었다. "여기선 아무짝에도 소용없어. 네 울음 따위에 신경 써 줄 부모는, 여기엔 없으니까."
그날 밤, 그녀는 이불 속에서 소리 죽여 마지막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유년기와의 작별 의식과도 같았다. 그 후로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 대신 서늘한 냉정함과 철저하게 계산된 침착함만이 흘러나왔다. 고통은 익숙한 친구가 되었고, 인내는 집착에 가까운 강박이 되었으며, 어떤 위험 앞에서도 무감각할 정도의 정신적 내구성을 견고하게 쌓아 올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수정처럼 맑고 깊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지만, 그 심연에는 누구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강철 같은 단단함, 결코 부러지지 않을 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열여덟.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 마지막 위탁 가정을 떠나던 날,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해진 손잡이가 달린 낡은 가방 하나와, 세상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뿐이었다. 대학 시절, 그녀는 따뜻한 잠자리 대신 도서관 구석의 차가운 책상 위에서 쪽잠을 자며 밤새워 공부했고, 캠퍼스의 낭만 대신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쉴 새 없이 전전하며 팍팍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언론학. 그녀가 택한 전공은 세상을 향한 그녀의 갈증을 보여주는 듯했다. 감춰지고 왜곡된 세계의 진실을 파헤쳐 세상에 알리는 기자. 그것이 그녀가 잿빛 현실 속에서 품었던 유일한 꿈이었다.
"진실은 언제나 가장 어둡고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그녀는 자신의 졸업 논문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마치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처럼. "그리고 그 불가해한 어둠 속으로 기꺼이 발을 내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만이, 마침내 그 희미한 빛, 진실을 발견할 자격이 주어진다."
제3장: 저널리스트의 탄생
대학 졸업 후, 그녀가 처음 몸담은 곳은 이름 없는 중소 도시에 위치한, 그저 그런 중견 신문사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주로 지역 사회의 소소한 시사 문제나 경제 동향, 때로는 이웃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담긴 사회면에 관한 기사를 다루었다. 그러나 평온함은 그녀의 본성과 맞지 않았다. 입사한 지 고작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그녀는 편집국 문을 박차고 들어가 종군기자를 자원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수십 년간 펜대를 굴려온 노련한 편집장은 처음에는 당혹감과 함께 명백한 난색을 표했다. 젊고 아름다운 여기자가 자청해서 사지로 뛰어들겠다니,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룻 기자," 편집장은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염려와 의구심이 섞여 있었다. "자네가 지금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건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건가?"
아니룻은 희미하게, 그러나 단호한 미소를 입가에 걸며 대답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편집장님, 제 인생 전체가 크고 작은 위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어쩌면 전쟁터가 제게는 더 익숙한 곳일지도 모릅니다. 이번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건 없을 겁니다."
그녀의 끈질긴 설득과, 그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을 듯한 강한 의지에, 편집장은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때가 바로 아마겟돈이라는 인류 최후의 재앙이 닥치기 정확히 20년 전, 역사의 시계추가 2046년의 봄을 가리키고 있던 때였다. 이미 거대한 전쟁의 암울한 그림자가 전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북미 대륙 깊숙이 드리워져 음울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하늘은 인간 조종사가 탑승한 전투기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무수한 드론 떼로 뒤덮여 있었고, 땅 위는 강철의 포효를 내지르는 전차와, 죽음을 향해 행군하는 병사들의 끝없는 행렬로 넘쳐났다. 밤하늘은 더 이상 영롱한 별빛으로 반짝이지 않았다. 대신, 지상을 불태우는 폭격의 섬광과 예광탄의 궤적이 어둠을 갈랐다. 인류는 스스로 만든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비극의 씨앗은 2020년대, 표면적으로는 경제적 이해타산으로 시작된 중화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간의 지리멸렬한 패권 다툼에서 뿌려졌다. 처음에는 무역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관세를 무기로 서로를 공격했고, 점차 외교적 수사가 험악해지며 관계는 단절로 치달았다. 마침내, 양국의 영향력 아래 놓인 약소국들의 영토에서 국지적인 군사 충돌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동유럽의 분쟁 지역, 아프리카의 자원 부국, 중남미의 불안정한 국가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들이 그들의 대리 전쟁터가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수호나 인권 보호 같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 실상은 강대국들의 탐욕과 야욕이 충돌하는, 추악하고 노골적인 대리전에 불과했다.
"힘없는 자들의 땅은 언제나 이렇게, 강대국들의 잔혹한 체스판이 되더군요." 아니룻은 시리아의 황량한 난민 캠프에서, 카메라를 향해 담담하게 첫 리포트를 전하며 말했다. 그녀의 등 뒤로는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와, 공포와 슬픔에 잠겨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비극적인 배경처럼 펼쳐져 있었다. "여기서 이름 없이 죽어가는 이들에게, 민주주의니 자유니 하는 고상한 이념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저 총성이 멎는 것, 단 하루라도 좋으니 평화롭게 잠들 수 있는 밤, 그것뿐입니다."
203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럽 연합(EU)과 러시아 연방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자 전쟁의 양상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충돌의 수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고, 전장의 규모는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지닌 최첨단 무기 체계들이 앞다투어 실전에 투입되었고,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공격하는 인공지능 기반의 드론과 로봇 병사들이 전장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제 제3세계 국가들은 어느 편에 서든, 크고 작은 전쟁의 참화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처지에 놓였다. 선택지는 없었다. 오직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전쟁의 얼굴이 섬뜩할 정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아니룻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잿더미 위에서, 방탄 헬멧 아래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리포트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이제 더 이상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기계 대 기계, 알고리즘 대 알고리즘의 대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여전히 이 차가운 전쟁터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은, 오직 우리 인간들뿐입니다."
제4장: 세계의 분열
2040년, 마침내 세계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지구는 두 개의 거대하고 적대적인 세력으로 명확하게 양분되었다. 한 축은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인도가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손을 잡은 아시아-러시아 연합(AR Union, 아러 연합)이었고, 다른 한 축은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기반으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이 뭉친 유라시아-아메리카 연합(EA Union, 유아 연합)이었다. 두 거대 연합은 공식 석상에서는 평화와 공존을 역설했지만, 그 수면 아래에서는 서로를 향한 불신과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고, 끊임없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상대를 견제하고 도발했다. 세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이러한 극도의 긴장 상태 속에서도, 아이러니하게 인류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멈추지 않았다. 2050년, 지구의 인구는 마침내 200억이라는 경이로운 숫자에 도달했다. 그러나 늘어난 입만큼 식량 생산량은 따라가지 못했고, 인류 문명을 지탱해 온 석유와 희토류 같은 핵심 자원은 고갈 위기에 직면했다. 드넓던 바다는 더 이상 푸르지 않았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 섬들이 대륙처럼 떠다녔고, 하늘은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염물질과 미세먼지로 뿌옇게 흐려져 갔다.
"인류는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이룩한 눈부신 성공에 질식당하고 있습니다." 아니룻은 205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N 환경회의 현장에서, 각국 정상들의 공허한 연설을 뒤로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너무 많아졌고, 우리의 욕망은 너무 커졌으며, 우리의 미래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풍요 속에서 익사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해 10월, 인류는 중요한 선언을 한다. 현재의 지질시대를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로 공식 명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30년 전 국제 지질학 연합에서 처음 제기된 개념으로,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지난 1만 2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직후 시작된 홀로세(Holocene)의 자연적 변화 규모를 넘어섰다는 과학적 합의를 인정한 것이었다. 이로써 인류가 지구의 주인이 되어 환경을 좌지우지하게 된 시대, 홀로세는 공식적으로 그 종말을 고했다.
"인간이 마침내 지구를 완벽하게 지배하게 된 시대의 이름을, 우리는 스스로 명명했습니다." 그녀는 UN 본부 앞에서 리포트했다. 그녀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그러나 이것이 인류 문명의 위대함을 기리는 찬사일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새긴 거대한 묘비명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역사적인 선언의 이면에는, 그러나, 더욱 짙고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힘, 핵무기의 망령이었다. 한때 강대국들의 전유물이었던 핵폭탄은 이제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생존을 갈망하는 모든 국가가 탐내는, 궁극적인 가치를 지닌 '물건'이 되어 버렸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아슬아슬한 균형추는 이제 여러 개의 핵 버튼 위에 불안하게 놓여 있었고, 그 버튼을 누를 권한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 그의 판단과 감정 상태에 따라 세계의 운명이 결정되는, 끔찍하고도 부조리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인간이 지구의 모든 구석, 땅끝까지 지배하게 된 세상은,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시대보다 더 잔혹한 야생과 다름없습니다." 아니룻은 뉴욕 타임스와의 심층 인터뷰에서,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진정한 야생에는 적어도 약육강식이라는 명확한 법칙이라도 존재합니다. 현대 문명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뒤집어쓴 지금의 야만은, 그 어떤 법칙도, 그 어떤 도덕률도 따르지 않습니다. 오직 힘과 탐욕만이 모든 것을 결정할 뿐입니다."
제5장: 불꽃과 재
아니룻의 삶은 이제 전쟁터를 떠도는 유목민과 같았다. 동유럽의 얼어붙은 참호 속에서, 분쟁으로 얼룩진 중국 국경 지대에서, 마약 카르텔의 총격전이 끊이지 않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서, 종교적 갈등이 폭발하는 중동의 사막에서, 그리고 카스트 제도의 그늘 아래 신음하는 인도의 빈민가까지. 그녀는 끊임없이 전쟁과 폭력의 가장 참혹한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 실상을 기록했다. 그녀의 카메라는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총알이 빗발치는 혼돈의 한가운데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냉철함을 잃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한 곳이라면 어디든, 그녀는 가장 먼저 도착하여 진실을 목격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그 기록을 세상에 전하는 저널리스트였다.
그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생존 비결은, 앞서 언급했듯, 경이로운 수준의 방향 감각과 한 번 본 지형은 결코 잊지 않는 사진 같은 기억력이었다.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 '인간 내비게이션'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그녀는 아무리 복잡하게 얽힌 도시의 미로 같은 골목길이라도, 표지판 하나 없는 울창한 정글의 희미한 오솔길이라도,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 언덕 속에서도 결코 길을 잃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의 종군기자들이 목숨을 잃는 진짜 이유는 총알이나 폭탄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는 때때로 신입 기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네곤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자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들은 길을 잃기 때문에 죽습니다. 혼란 속에서 안전한 곳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전장에서는 방향 감각이 곧 생명줄입니다."
그러나 그녀를 진정으로 위대한 저널리스트로 만든 것은, 단순히 뛰어난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을 향한, 특히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폭력성의 근원을 파헤치려는 집착에 가까운 열정이었다. 왜 인간은 이토록 잔인하게 서로를 죽이는가? 왜 우리는 평화로운 공존 대신 파괴적인 전쟁을 선택하는가? 이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밤낮으로 그녀의 영혼을 괴롭혔고, 역설적이게도 그녀를 더욱 위험한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끊임없이 몰아넣었다. 마치 불나방이 불을 향해 뛰어들 듯이.
"나는 단지 사건을 기록하는 기자가 아니다. 나는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깊고 어두운 심연을 기록하는 증인이다." 그녀는 총성이 잠시 멎은 어느 밤, 낡은 수첩에 자신의 내면을 기록했다. "그 어둠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은 숨 막히도록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의 파괴적인 본성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에만, 아주 희미하게나마 구원의 가능성이 열릴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아니룻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기자의 이름을 넘어, 시대의 양심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아름다운 금발을 두꺼운 방탄 헬멧 속에 감춘 채, 때로는 숨 막힐 듯 긴박하게, 때로는 깊은 슬픔을 머금고 전하는 그녀의 보도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는 미국 최대 규모의 유튜브 기반 뉴스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녀의 개인 채널은 구독자 1억 명을 돌파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니룻은 단순한 저널리스트가 아닙니다." 저명한 미디어 평론가 중 한 명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그녀는 우리 시대 인류의 양심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거부할 수 없도록 우리의 눈앞에 들이미는 냉정한 거울입니다."
2065년, 그녀는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지역에서 벌어진, 민족과 종교 갈등이 빚어낸 참혹한 대규모 학살 사건을 심층 보도한 공로로 저널리즘 최고 영예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죽음의 경계선(Line of Death)>은 전 세계적으로 30억 뷰 이상을 기록하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분쟁 해결을 위한 중대한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영광의 정점에서,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아프리카 사헬 지역 남단, 사리엔(Sarrien)이라 불리는 분쟁 지역의 참상을 취재하던 중, 그녀는 후퇴하는 반군이 매설해 놓은 대인지뢰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밟고 말았다. 찰나의 섬광과 함께, 그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진실을 향한 그녀의 치열했던 삶은, 그녀가 평생 동안 기록하고 고발해 온 바로 그 폭력에 의해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그녀의 마지막 순간은, 바로 옆에서 촬영 중이던 동료 카메라맨의 렌즈에 고스란히 담겼고, 그 충격적인 영상은 편집 없이 전 세계로 송출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제6장: 잠에서 깨어나다
그녀가 다시 의식의 빛을 감지했을 때, 처음 마주한 것은 눈부시게 하얀 천장이었다. 코끝을 희미하게 자극하는 소독약 냄새, 그리고 귓가에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낮고 일정한 기계음.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마치 두꺼운 장갑을 낀 것처럼 감각이 둔하고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의식은 놀랍도록 선명했지만, 그녀의 육체는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거나, 혹은 아예 남의 것처럼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아니룻 씨. 다시 깨어나신 걸 환영합니다." 부드럽고 차분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왔다. 아니룻? 그 이름은 낯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그녀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두 발로 서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리고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자신의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고 제어하기까지는 또다시 몇 주간의 힘겨운 재활 과정이 필요했다. 그 기간 동안, 그녀는 매일같이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깊고 푸른 눈동자,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 백금색에 가까운 탐스러운 금발. 모든 것이 그녀가 기억하는 자신의 모습과 놀랍도록 똑같았다. 완벽하게 보존된 그녀의 젊고 아름다운 얼굴. 하지만 거울 속의 존재는 분명 그녀 자신이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것이 아닌, 기묘한 위화감을 떨칠 수 없었다.
"새로운 육체에 당신의 정신이 완벽하게 적응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가우타 생체 공학 연구소(Gauta Bionics Institute)의 선임 연구원이자 그녀의 재활을 돕고 있는 란젠 박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온화한 인상의 아시아계 남성이었다.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웃음 뒤에는, 그러나, 깊은 지식과 헤아릴 수 없는 지혜가 숨겨져 있는 듯했다.
"제가… 제가 어떤 상태였던 거죠? 박사님." 아니룻은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목소리마저 예전과 똑같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야기했다.
"간단히 말해, 죽었었습니다." 박사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살짝 윙크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가벼운 태도와는 달리,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지뢰 폭발로 인해, 목 아랫부분은 말 그대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즉, 의학적으로는… 건질 만한 것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죠."
아니룻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희미하게나마 죽음의 순간을 기억해냈다. 발밑에서 터져 나온 갑작스러운 폭발음, 눈앞을 하얗게 태우던 눈부신 빛, 그리고…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절대적인 침묵과 암흑. 그 이후의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왜 저를 다시 살리신 건가요?" 그녀는 눈을 뜬 순간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되뇌었던 근본적인 의문을 마침내 입 밖으로 꺼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세상에서, 왜 하필 자신이었을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란젠은 어깨를 으쓱하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곳 연구소를 설립하시고 모든 것을 총괄하시는 가우타 님께서 직접 내리신 지시였습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녀는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고,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심장까지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어떻게 제가 다시 살아 숨 쉴 수 있는 거죠?" 아니룻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소위,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이라고 불리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했습니다." 란젠은 의자에 편안히 자세를 고쳐 앉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인포모프(Infomorph), 즉 정보 형태의 생명체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연구의 한 분야입니다. 뭐,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당신의 뇌에 저장된 모든 정보—기억, 성격, 감정 패턴, 사고방식—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인공 신체의 두뇌 시스템에 완벽하게 이식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로봇의 몸에 인간의 정신을 옮겨 담는 것이죠."
"그럼… 저는… 로봇인가요?" 아니룻은 천천히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 자세히 살펴보았다. 손가락 끝의 미세한 지문도, 손바닥에 복잡하게 얽힌 손금까지도, 그녀가 기억하는 자신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너무나도 정교하고, 너무나도 인간다웠다.
"음… 굳이 분류하자면, '인조인간(Android)' 혹은 '바이오로이드(Bioroid)'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란젠은 용어를 정정했다. "당신의 새로운 육체는 단순한 금속과 플라스틱의 조합이 아닙니다. 현존하는 최첨단 유기 합성 물질과 나노 기술을 총동원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피부 조직은 실제 인간의 것과 현미경으로도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며, 근육과 골격 구조는 일반 인간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효율적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당신의 두뇌는, 현재 인류가 가진 최고 수준의 양자 컴퓨팅 시스템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당신이 죽기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과 성격, 독특한 사고방식까지도 99.999% 이상 완벽하게 재현해냈습니다."
아니룻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팔뚝을 꼬집어보았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공기가 폐로 흘러 들어오는 감각, 산소가 혈액 속으로 녹아들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녀 자신이었다. 기억도, 감정도, 의식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더 이상 온전한 의미의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이기도 했다. 이 기묘한 경계선 위에서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그… 가우타라는 분을 직접 만나 뵙고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곧 그럴 기회가 있을 겁니다." 란젠은 고개를 부드럽게 끄덕였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신이 반드시 아셔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네?" 아니룻은 긴장하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은 2069년입니다. 당신이 사망한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잠들어 있던 사이인 2066년에, 인류는 '아마겟돈'을 겪었습니다."
아니룻의 푸른 눈이 충격으로 크게 뜨였다. "아마겟돈…이라고요?"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네, 정확히 말하자면, 전면적인 핵전쟁이었습니다." 란젠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의 눈가에 깊은 슬픔이 서렸다. "아러 연합과 유아 연합 사이의 오랜 긴장과 불신이 결국 최악의 방식으로 폭발하고 만 것이죠. 미국의 주요 도시들 대부분, 중국의 산업 및 인구 밀집 지역 거의 전부, 유럽 대륙의 심장부… 모두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잠겨 들어갔다. "인류의 약 90%가… 사라졌습니다.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들은 치명적인 방사능 오염을 피해 지하 깊숙한 곳이나 극지방의 격리된 시설로 피신했죠."
"그럼… 여기는?" 아니룻은 본능적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는 눈부신 태양빛 아래 푸른 하늘과 싱그러운 녹음이 펼쳐져 있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다행히 이곳, 뉴질랜드 남섬의 외딴 섬 지하에 위치한 이 연구소는 안전합니다. 가우타 님께서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철저하게 준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 바깥세상은 이제 당신이 기억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란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동안 벌어졌던 모든 끔찍하고 불편한 진실들을, 당신은 이제부터 하나씩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너무 절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가우타 님께서는 당신이 새로운 육체에 온전히 적응하여 당신 자신을 되찾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때가 되면, 그분께서 직접 당신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쉬십시오…"
란젠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조용히 방을 나섰다. 방 안에 홀로 남겨진 아니룻은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초록의 숲, 그리고 저 멀리 반짝이는 바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알고 있었다.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저 아름다운 풍경 너머에는 인류 문명의 처참한 몰락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도대체… 내가 다시 살아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낯선 듯 익숙한 모습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 세상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녀의 마음속에는 혼란과 함께, 알 수 없는 무거운 책임감이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7장: 예언과 운명
가우타가 마침내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해가 바뀌어 2070년 1월의 어느 맑은 날이었다. 그 사이 몇 달 동안, 아니룻은 놀라운 속도로 자신의 새로운 몸에 적응해나갔다. 처음에는 마치 꼭두각시처럼 삐걱거리고 낯설기만 했던 감각들이 점차 자연스러워졌고, 때로는 자신이 더 이상 순수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조차 망각할 정도로 완벽하게 동화되어 갔다. 그녀의 정신은 강인했고, 육체는 그 정신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는 연구소 내부에 마련된 방대한 디지털 도서관에서 지난 5년간 지구에서 벌어진 격변의 역사를 밤낮없이 탐독했다. 아마겟돈이라 불리는 핵전쟁의 참혹한 과정, 그것이 남긴 돌이킬 수 없는 여파, 그리고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인류의 처참한 현황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본래 강인한 여성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의 유전자에 각인된 듯한 생존 본능과 불굴의 의지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한 이후에도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신이 반드시 살아야만 했던 이유, 그 필연성을 알고 싶었다. 왜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간 잿빛 세상에서, 유독 그녀만이 선택되어 다시 깨어나야만 했는지. 그 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가우타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도 초조했다.
마침내 나타난 가우타는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서류상으로는 6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그의 짙고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에는 흰 가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인 깊은 주름 대신, 오랜 사색과 통찰에서 비롯된 듯한 지혜의 부드러운 광채만이 은은하게 어려 있었다. 그의 눈은 깊고 어두웠으며, 마치 상대방의 영혼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롭고도 차분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아니룻." 가우타는 파란빛으로 신비롭게 반짝이는 그녀의 인조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 보며,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벨벳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강철처럼 단단한 의지가 녹아 있었다.
"제가… 왜 필요하신 겁니까?" 아니룻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그녀가 깨어난 이후 줄곧 품어왔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그녀의 산산조각 난 과거와 불확실한 현재, 그리고 아직 그려지지 않은 미래 사이의 끊어진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를 쥔 사람이 바로 눈앞의 이 남자였다.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직접 그 지옥의 한복판을 경험했으니까요. 그리고…" 가우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마치 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그녀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그녀의 인조 얼굴이 그녀가 죽기 직전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냈다는 사실에 내심 만족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녀는 전형적인 게르만 혈통의 북방 인종 특유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깊고 투명한 푸른 눈동자, 햇빛에 거의 타지 않는 창백한 피부, 그리고 백금색에 가깝게 빛나는 눈부신 금발. 그녀의 아름다움은 차갑고도 강렬했다.
"그리고 당신이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사이 벌어진 이 끔찍한 대멸종으로 인해, 이제 인류는 그야말로 존재의 소멸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당신은 깨어난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의문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끔찍한 재앙을 일으켰는가…"
아니룻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강하게 흔들렸다.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가 의식을 되찾은 순간부터 그녀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집요한 의문. 이 모든 파괴의 배후는 누구인가? "누가… 누가 이런 짓을 했습니까?"
"아직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가우타의 목소리에는 깊은 무게와 함께 분노의 기색이 실렸다. "바로 그래서, 당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창밖으로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의 나무들이 부드러운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지구에 남은 마지막 에덴동산의 풍경처럼 평화로웠지만, 그 평화는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다.
"왜… 하필 저여야만 했습니까?" 아니룻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분명 저보다 더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이들이 세상에는 많았을 텐데요."
"단순히 능력이나 기술적인 측면만 비교하자면, 당신 외에 다른 이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가우타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하지만…?" 아니룻은 그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가우타는 깊은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 그의 눈에는 아주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감춰왔던 비밀을 마침내 드러내기로 결심한 듯한, 비장한 결단이 깃들어 있었다.
"저는 아주 오래전, 아직 젊었던 시절에 우연한 기회로 한 예언가의 낡은 일기장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주 천천히,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 일기장의 내용 중 당신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한 부분을 당신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가우타는 자신의 옆에 놓여 있던 낡은 가죽 가방에서 빛바랜 공책 한 권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표지는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닳고 해져서 본래의 색깔조차 가늠하기 어려웠고, 두껍게 묶인 페이지들은 누렇게 황변되어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분명 수십 년, 아니 어쩌면 한 세기 이상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고대의 유물과 같은 물건이었다.
그는 마치 성물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책갈피가 끼워져 있던 부분을 펼쳐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니룻은 떨리는 손으로 공책을 받아들고, 희미하게 번진 잉크로 빼곡하게 적힌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고풍스러운 필체였지만, 내용은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키가 크고 눈부신 금발에 바다처럼 깊고 푸른 눈, 때로는 너무 투명하여 그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가진 한 여인이 보인다. 그녀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가시밭길의 연속이지만, 진실을 향한 강렬한 집착은 꺼져가는 생명에 다시 불을 지피고, 예리한 생존 본능은 그녀를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게 한다. 그녀는 장차 도래할 구원자의 눈과 귀가 되어, 그가 발 디딜 험난한 길 위에 평탄한 대지를 선사할 것이다….'
아니룻은 공책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거울을 보듯, 그녀 자신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글귀는 섬뜩할 정도의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정말로 저를 지칭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세상에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여자는 수도 없이 많을 텐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끝맺지 못했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구체적인 묘사였다.
가우타는 말없이 다시 몇 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더니, 밑줄이 그어진 다른 대목을 그녀에게 다시 가리켰다.
'…그 여인은 죽음의 도시에서 태어나, 마침내 생명의 세상을 건설하는 위대한 과업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죽음의 도시라니요?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아니룻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네, 당신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Chernobyl)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우타의 목소리는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신에 차 있었다. "1986년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그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유령 도시가 되었죠. 우리는 그곳을 '죽음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아니룻은 순간 숨을 멈췄다. 놀라움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하지만… 체르노빌은… 제가 알기로는 전 세계 곳곳에 크고 작은 사고로 버려진 '죽음의 도시'들이 존재합니다만…"
체르노빌. 그녀는 과거 기자 시절, 그 비극적인 장소에 대해 취재하고 보도한 적이 있었다. 1986년 4월,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치명적인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지도상에서 지워진 도시. 그 폐허가 된 땅이 바로 그녀가 태어난 곳이라고? 그것은 그녀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뿌리와는 완전히 다른,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었다.
"다음 부분을 계속 보시죠…" 가우타는 그녀의 혼란을 예상했다는 듯, 차분하게 일기장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 해의 시작은 비극적인 하늘의 폭발과 함께였다. C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눈부신 섬광과 함께 뿌연 먼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같은 해 봄, 평화롭던 한 도시는 인간의 오만함으로 인해 아무도 살 수 없는 영원한 죽음의 도시로 변하였다.'
"이 모든 것은 정확히 1986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가우타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해 1월 28일,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Challenger)호가 발사 직후 공중에서 폭발하는 참사가 있었고, 불과 석 달 뒤인 4월 26일에는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가 폭발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니룻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자신이 체르노빌 출신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그 어떤 단서나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가 체르노빌 출신이라는 사실은 저조차도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당신을 낳은 어머니는 당신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우타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의 눈빛에는 연민이 담겨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에도, 정부의 강제 이주 명령을 거부하고 몰래 그 지역에 숨어 들어와 살아가던 소수의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치명적인 방사능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은 그곳이 자신들의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떠나지 못했던 것이죠. 2022년, 당신이 그곳에서 태어난 직후, 당신의 어머니는 당국에 발각되었고, 당신은 강제로 다른 지역의 위탁 시설로 보내진 것입니다. 물론 당신의 이름 '아니룻' 역시, 당신을 처음 맡았던 위탁인이 즉석에서 지어낸 가짜 이름이었고요."
아니룻은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헤집으며 자신의 가장 오래된 기억의 파편들을 더듬어보았다. 가장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은 고아원 복도의 차가운 공기와 희미한 소독약 냄새였다. 그 이전의 기억은 마치 지워진 것처럼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가 모르는 저의 출생 비밀까지 당신은 어떻게 그토록 자세히…?"
"저에게는 '사피엔티아(Sapientia)'라고 불리는, 아마도 현존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해커 조직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가우타는 자신의 개인용 태블릿을 꺼내 화면을 몇 번 조작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진짜 출생 관련 서류의 복사본입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붕괴된 데이터 서버 깊숙한 곳에서 찾아냈습니다."
모니터에는 빛바랜 출생 신고서 양식이 나타났다. 중요한 정보들이 빨간색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출생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통제 구역 내 미등록 거주지
특이사항: 방사능 피폭 위험 지역 출생, 친모로부터 강제 분리 후 정부 지정 위탁 시설로 이송 조치.
본명: 빅토리아 단테스 (Viktoria Dantes)
최초 위탁 담당자: 에르난데스 단테스 (Hernandez Dantes)'
아니룻—아니, 빅토리아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처음으로 마주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룻'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자신의 본래 정체성. 그녀는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그녀가 쌓아 올린 모든 삶의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녀의 온 인생이 거대한 거짓 위에 세워진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된 예언가의 모호한 말을 근거로… 이 모든 일을 계획하셨다는 겁니까?" 그녀는 여전히 의심의 끈을 완전히 놓지 못한 채 물었다.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가우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솔직하게 인정했다. "결국 이것은 한 개인이 자신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환영과 계시를 주관적으로 기록해 놓은 낡은 일기장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명확하게 해석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구절들도 상당히 많고, 명백히 틀린 것으로 판명된 부분들도 존재합니다."
그는 잠시 창밖의 평화로운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는 과학자로서의 냉철한 이성과 예언이라는 비합리적인 믿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해 온 깊은 고뇌의 흔적이 서려 있었다.
"저는 본질적으로 과학자이자, 철저한 계산과 분석을 중시하는 사업가입니다. 불확실한 것에는 늘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가능성이 희박한 곳에는 투자를 망설이는 것이 저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거대한 계획을 준비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이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하는 회의감에서 비롯된 깊은 불안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마겟돈에 대한 예언만큼은, 정말이지 틀리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인류의 파멸만큼은…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예언대로 되었군요." 아니룻이 그의 말을 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가우타의 얼굴에 깊은 슬픔과 체념의 빛이 어렸다. "그 예언가는… '종말의 일주일'이라고 명명한 부분을, 소름 끼칠 정도로 상세하고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더군요."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최초의 핵미사일이 발사된 정확한 시각부터 시작해서, 주요 대도시들이 차례로 파괴되어 가는 끔찍한 과정, 그리고 치명적인 방사능 낙진이 바람을 타고 전 세계를 뒤덮는 경로와 방식까지… 모든 것이, 정말 모든 것이 그가 수십 년 전에 기록한 예언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앉아, 창밖의 인공적인 낙원을 바라보았다. 오직 정원의 분수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물소리와 환기 시스템의 낮은 소음만이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그 예언은… 언제까지 기록되어 있습니까?" 아니룻이 마침내 침묵을 깨고 물었다.
"2099년 9월 9일까지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가우타는 대답했다.
"마지막에는… 무엇이라고 적혀 있나요?"
"불교의 창시자, 싯다르타 고타마, 즉 붓다의 마지막 유언이 적혀 있습니다."
가우타는 공책의 거의 마지막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곳에는 붓다가 열반에 들기 직전, 슬퍼하는 제자 아난다에게 남겼다는 유명한 구절이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그만하여라, 아난다여.
더 이상 슬퍼하지도 말고, 탄식하지도 말라.
내가 일찍이 그대들에게 그처럼 가르치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없어지기 마련이며, 끊임없이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태어난 것은 반드시 소멸하는 법.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말 속에는 깊고도 서늘한 울림이 있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언젠가는 사라지며, 필연적으로 헤어지게 된다는 우주의 근본적인 진리. 탄생과 소멸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집착이야말로 모든 고통의 근원이라는 냉정한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가우타가 공책을 덮으며 말을 이었다. "그 예언서에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빅토리아'가 아닌, <아니룻>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니룻…"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천천히 입술로 되뇌어 보았다. 그것은 이제 그녀의 과거를 지우고 새롭게 부여받은, 그녀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이름이었다. "그것이…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습니까?"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 어로 '하늘에서 내려온 빛' 혹은 '천상의 광명'이라는 뜻입니다." 가우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길을 밝히고 희망을 인도하는 존재… 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죠."
아니룻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깥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저 푸른 하늘과 초록의 지평선 너머에는 인류 문명의 처참한 잔해가 뒹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 잿더미 속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찾아내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주어졌다는 것을.
"제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녀는 마침내 결심한 듯, 가우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푸른 눈에는 혼란 대신 새로운 결의가 빛나고 있었다.
"우선은, 당신은 화성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가우타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붉은 행성 위에 건설된 우리의 도시, 라스둠 시티에서 우리는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적이 과연 누구인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가 될 것입니다."
"적…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아마겟돈이라는 미증유의 재앙을 일으킨 바로 그 장본인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잠정적으로 '그림자(The Shadows)'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간신히 살아남은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마저 찾아내어 제거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라면, 당신의 능력과 경험이라면 그 이유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니룻은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나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진실을 향한 갈망과, 주어진 운명에 맞서 싸우겠다는 강한 결의만이 빛나고 있었다. "언제 출발하면 됩니까?"
"바로 내일입니다." 가우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우리의 최신형 우주선이 이미 발사 준비를 마치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우주선이 당신을 안전하게 라스둠 시티까지 데려다줄 것입니다."
그가 방을 나서려 할 때, 아니룻이 그의 등 뒤에 대고 나지막이 불렀다.
"가우타 님…"
"네?" 그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만약… 만약 그 예언이 정말로 맞는다면, 제가 정말로… 구원자의 눈과 귀가 되어 인류를 도울 수 있을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마지막 남은 한 가닥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가우타는 문득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백금색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마치 후광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수십 년 전, 낡은 일기장 속에서 예언가가 묘사했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당신은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니룻."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함께, 절망의 잿더미 위에서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구원해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운명이자, 나의 사명입니다."
문이 부드럽게 닫히고, 방 안에는 다시 아니룻 혼자 남았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완벽하게 재현된 인조 피부, 인간보다 강인한 인조 근육, 가볍고 튼튼한 인조 뼈.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니었지만, 그녀의 가슴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의지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진실했다. 그리고 바로 그 꺼지지 않는 의지의 불꽃으로, 그녀는 다가올 미지의 세계에 맞서 싸우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제8장: 붉은 행성으로
다음날 동이 트기 전, 아직 새벽의 푸른 기운이 가시지 않은 시각, 아니룻은 란젠 박사의 안내를 받아 뉴질랜드 남섬 해안가의 비밀 지하 발사 기지에 도착했다. 거대한 격납고 안에는, 마치 미래에서 온 듯한 유선형의 은빛 우주선 한 척이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체 중앙에는 '피닉스(Phoenix)'라는 이름이 검은색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불사조. 죽음의 잿더미 속에서 부활하여 영원을 상징하는 신화 속의 새. 마치 죽음에서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그녀 자신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 이 우주선 또한 파괴된 지구를 떠나 새로운 희망을 향해 날아오를 인류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피닉스 호는 가우타 님께서 아마겟돈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극비리에 건조를 진행해 온 최첨단 우주선입니다." 란젠 박사가 우주선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다가와 설명했다. "그분은… 어쩌면 이 끔찍한 지구의 파괴를 오래전부터 예견하고, 인류 문명의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 오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룻은 새삼 가우타라는 인물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분은… 정말로 그 낡은 예언을 처음부터 믿으셨던 거군요."
"글쎄요, 제 생각에는 반신반의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설령 믿지 않았다 하더라도,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는 철저히 하셨겠죠." 란젠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덧붙였다. "그것이 바로 가우타 님의 방식입니다. 아무리 불확실한 미래라 할지라도,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최선의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그분이 지금껏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일 겁니다."
그들은 천천히 피닉스 호의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부는 외부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넓고 쾌적했으며, 최첨단 기술과 안락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아니룻은 란젠의 안내를 받아 자신에게 배정된 개인 객실로 향했다. 크기는 작았지만, 필요한 모든 시설이 효율적으로 배치된 기능적인 공간이었다. 벽면의 일부는 거대한 스크린으로 이루어져 있어, 우주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여기서 화성까지는 현재 지구와 화성의 공전 궤도를 고려했을 때, 약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란젠이 객실의 기능들을 설명하며 말했다. "그 긴 여행 기간 동안, 당신은 이 개인용 태블릿을 통해 아마겟돈 이후의 급변한 세계 정세와, 당신의 목적지인 라스둠 시티에 관한 방대한 정보들을 학습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임무 수행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배경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아니룻은 그가 건네는 얇고 가벼운 태블릿을 받아들었다. 화면에는 '아니룻 님,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가우타 님은… 저와 함께 가지 않으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당분간 이곳 지구에 남아서, 아직 흩어져 있는 다른 생존자들을 규합하고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는 중요한 작업을 계속 지휘하실 예정입니다. 화성의 라스둠 시티에서는 그분의 가장 신임받는 조수인 아리엘(Ariel)이라는 여성이 당신을 맞이하고 안내하게 될 것입니다."
잠시 후, 우주선 내부 스피커를 통해 발사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과 함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아니룻은 객실 창가에 서서, 마지막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왔던 행성, 지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행성은, 그 표면의 대부분이 죽음의 잿더미로 뒤덮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아름답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알고 있었다. 저 아름다운 푸른빛 아래에는 치명적인 방사능 오염과, 한때 위대했던 인류 문명의 처참한 잔해가 슬프게 잠들어 있다는 것을.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란젠 박사님." 그녀는 통신기를 통해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부디… 그곳에서도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아니룻 씨." 란젠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의 잃어버린 미래를… 반드시 찾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피닉스 호는 엄청난 굉음과 진동과 함께 서서히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지구의 강력한 중력을 벗어나 마침내 깊고 고요한 우주 공간에 진입하자, 아니룻은 처음 경험하는 무중력 상태에 적응해야 했다. 다행히 그녀의 새로운 인조 육체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불과 며칠 만에 그녀는 마치 물속을 유영하듯, 무중력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화성을 향해 나아가는 기나긴 3개월의 여정 동안, 아니룻은 란젠이 건네준 태블릿에 저장된 방대한 양의 정보를 마치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아마겟돈의 발발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 핵전쟁이 단계별로 인류 문명에 미친 영향, 그리고 각 지역별 생존자들의 현황과 그들이 직면한 문제점들까지. 그녀는 낮에는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자료 분석과 학습에 몰두했고, 밤에는 어두운 우주를 바라보며 자신의 뒤엉킨 기억과 감정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했다.
때로는 자신이 더 이상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냉엄한 현실이 불쑥 그녀를 찾아와 괴롭혔다. 살과 피 대신 유기 합성물과 금속으로 이루어진 몸, 자연적인 뇌 대신 양자 컴퓨터로 작동하는 정신. 과연 이것을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깊은 고뇌 끝에 그녀는 그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몸을 이루는 물질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그녀의 정신, 그녀의 불굴의 의지,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사명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홀로 자신에게 속삭였다. "내 몸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내 영혼은 변하지 않았어. 나는 빅토리아 단테스였고, 이제 아니룻이다."
3개월이라는 긴 여정이 끝나갈 무렵, 마침내 우주선의 전방 스크린을 통해 목적지인 붉은 행성, 화성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 하나처럼 희미한 붉은 점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그 크기를 키워가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화성의 거대한 붉은 표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 언덕과 깊고 거대한 협곡들, 그리고 그 척박한 황무지 한가운데, 마치 기적처럼 피어난 인간의 손길로 만들어진 작은 녹색 오아시스—라스둠 시티가 보였다.
피닉스 호의 착륙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순조로웠다. 우주선이 라스둠 시티 외곽에 위치한 거대한 우주항의 도킹 베이에 안전하게 착륙하자, 아니룻은 가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그녀의 두 번째 삶, 아니, 어쩌면 진짜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주선의 해치가 부드럽게 열리고, 그녀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화성의 공기를 직접 폐로 들이마셨다. 지구에 비해 훨씬 희박하고 차가웠지만, 특별한 호흡 장치 없이도 숨을 쉴 수는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인류가 쏟아부은 끈질긴 테라포밍 노력 덕분에, 화성의 대기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인간이 생존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아니룻 님, 멀리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젊고 지적인 인상의 여성이 밝은 미소와 함께 그녀를 맞이했다. "저는 아리엘이라고 합니다. 가우타 님의 지시에 따라, 앞으로 라스둠 시티에서 당신의 정착과 활동을 돕게 될 것입니다."
아리엘은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동양적인 외모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은 뒤로 단정하게 묶여 있었고, 날카로우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은 뛰어난 지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인류의 새로운 요람, 라스둠 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리엘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곳은 인류에게 남겨진 마지막 희망의 보루이자, 우리가 새롭게 써 내려갈 역사의 첫 장이 될 것입니다."
아니룻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 주시겠어요, 아리엘 씨. 가능하면 이 도시의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습니다."
그들은 최첨단 자기 부상 열차를 타고 우주항을 빠져나와 라스둠 시티의 중심부로 향했다. 도시는 거대한 투명 돔 구조물로 완전히 덮여 있었고, 그 내부는 놀랍도록 지구와 유사한 환경으로 정교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푸른 나무와 형형색색의 꽃들이 심어져 있었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호수는 수정처럼 맑은 물을 가득 담고 잔잔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화성 안에 작은 지구를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 라스둠 시티는 현재 약 5만 명의 인구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아리엘이 도시의 풍경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아마겟돈이 발발하기 이전에 이미 약 1만 명 정도의 과학자, 기술자, 그리고 그 가족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도시의 기반을 닦고 있었고, 재앙 이후 가우타 님께서 조직한 구조팀에 의해 지구 곳곳에서 구출된 생존자들이 합류하여 현재의 규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5만 명…" 아니룻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숫자를 나지막이 되뇌었다. 200억에 달했던 인류가 불과 수년 만에 고작 5만 명으로 줄어들었다는 말인가? "그럼… 지구에 남은 인류는 이제 거의 없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지구상에는 여전히 약 5억 명 정도의 생존자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부분은 정부나 거대 기업들이 미리 건설해 놓은 지하 도시나, 방사능 오염의 영향을 덜 받은 외딴 지역, 예를 들어 남극이나 시베리아, 아마존 오지 같은 곳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죠. 하지만 이곳 화성에 정착한 인류의 수는 현재로서는 5만 명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힘을 길러, 언젠가 다시 지구로 돌아갈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덧 도시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넓은 광장에 도착했다. '희망의 분수(Fountain of Hope)'라고 불리는, 물방울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형상의 거대한 조형 분수대가 광장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순환시켜 만들어낸 맑은 물줄기가 중력을 거스르며 높이 솟아올랐다가 떨어지면서, 인공 태양 빛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무지개를 그려내고 있었다.
"이 분수는 물 한 방울이 금보다 귀한 이곳 화성에서, 우리가 과학기술로 이룩한 놀라운 성취의 상징입니다." 아리엘이 분수를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우리 인류의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죠."
아니룻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분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투명한 물방울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청량한 소리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 그녀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적, '그림자'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인류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간 아마겟돈의 진짜 원인을 밝혀내는 것.
"내일부터 당신을 위한 본격적인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아리엘이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당신은 이곳 라스둠 시티에서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우선 푹 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구에서 이곳까지, 아주 길고 힘든 여정이었으니까요."
그들은 아니룻에게 배정된 새로운 거주지로 향했다. 그것은 도시의 가장 안전하고 쾌적한 고급 주거 구역에 위치한, 넓고 현대적인 아파트였다. 내부는 꼭 필요한 가구들로만 이루어져 단순했지만, 동시에 세련되고 품격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곳이 앞으로 당신이 머무시게 될 새로운 집입니다." 아리엘이 문 앞에서 말했다. "필요한 것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이 통신기로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아리엘이 떠난 후, 아니룻은 넓은 거실 창가로 걸어가 라스둠 시티의 눈부신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낮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밤이 되자 도시는 마치 보석 상자를 열어놓은 듯,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불빛들로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환상적인 미래 도시의 풍경이었다.
"나는 이제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녀는 붉은 행성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과연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 모든 비극을 계획했을까?"
그녀의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손목에 착용된 통신 장치에서 짧은 알림음이 울렸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그녀는 화면을 확인했다. 발신자는 익명이었지만, 내용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내일 아침 8시 정각. 중앙 연구소 3번 게이트 앞에서 대기할 것. G'
가우타였다. 그는 비록 멀리 떨어진 지구에 있을지라도, 여전히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고 인도하고 있었다. 아니룻은 깊은 숨을 한번 내쉬었다. 좋든 싫든, 그녀의 새로운 삶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과거의 빅토리아 단테스는 체르노빌의 잿더미 속에 묻혔고, 이제는 오직 아니룻만이 남았다. 죽음에서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여자, 예언 속의 인물, 그리고 어쩌면 파괴된 인류 문명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르는 존재.
창밖으로, 화성의 작고 불규칙한 두 개의 위성, 포보스(Phobos)와 데이모스(Deimos)가 어둡고 붉은 밤하늘을 가로질러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 희미한 빛들을 바라보며, 가우타가 들려주었던 예언의 한 구절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죽음의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곳에서 생명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녀의 깊고 푸른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처럼 차갑지만 강렬한 결의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준비되어 있었다. 어떤 시련이 닥쳐오든, 그녀는 맞서 싸울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운명이라면.
제9장: 붉은 행성의 도가니
화성의 아침은 지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빛깔로 찾아왔다. 라스둠 시티의 거대한 돔 천장을 투과한 인공 태양빛은 붉은 행성 특유의 미세 먼지와 상호작용하며 오묘한 분홍빛으로 도시 전체를 물들였다. 아니룻은 자신의 새로운 거처, 차갑지만 정갈한 아파트의 넓은 창가에 서서 그 비현실적인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제 가우타와의 만남, 그리고 '빅토리아 단테스'라는 잊혀진 이름과 체르노빌이라는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 '아니룻'이라는 예언 속 이름과 '그림자'라는 정체불명의 적의 존재까지. 하룻밤 사이에 너무나 많은 정보와 운명의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한 묘한 흥분과 목적의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자의 본능, 진실을 향한 갈증이 다시금 그녀의 피… 아니, 그녀의 생체 시스템 속을 뜨겁게 흐르기 시작했다.
약속된 시간, 오전 8시 정각. 그녀는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중앙 연구소(Central Research Institute)의 3번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연구소 건물은 라스둠 시티의 다른 건축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풍겼다. 유려한 곡선 대신 직선과 각을 강조한 디자인은 극도의 효율성과 보안을 중시하는 듯 보였고, 외벽을 이루는 짙은 회색의 강화 합금은 그 어떤 외부 충격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는 듯했다. 이곳이야말로 라스둠 시티의 두뇌이자 심장부이며, 가우타의 원대한 계획이 구체화되는 비밀스러운 장소일 터였다.
게이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어제 그녀를 맞이했던 아리엘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단정하고 침착한 모습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제보다 더 날카롭고 집중된 분위기를 풍겼다.
"시간 맞춰 오셨군요, 아니룻 님." 아리엘이 가볍게 목례하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당신을 위한 준비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그녀를 따라 들어선 연구소 내부는 마치 거대한 기계의 내부처럼 느껴졌다. 공기는 완벽하게 정제되어 미세한 먼지 하나 느껴지지 않았고, 사방에서는 낮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기계음과 서버의 냉각 팬 소리가 규칙적인 배경음처럼 울려 퍼졌다. 복도를 오가는 연구원들은 대부분 흰색 방진복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표정에서는 극도의 집중과 함께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듯한 고요함마저 느껴졌다. 이곳은 생명의 온기보다는 차가운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아리엘은 아니룻을 연구소 깊숙한 곳, '통합 능력 개발 센터'라고 명명된 구역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아니룻은 자신의 '교육'을 담당하게 될 프로그램과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기술 훈련이 아니었다. 그녀의 새로운 육체가 가진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내고, 그녀의 정신과 육체를 완벽하게 통합하여 다가올 미지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최적화된 존재'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당신의 훈련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아리엘이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복잡한 다이어그램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첫째는 당신의 강화된 신체 능력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활용하는 전투 및 생존 기술 훈련입니다. 당신의 반사 신경, 근력, 내구성은 일반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합니다. 이것을 본능의 영역에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당신의 뛰어난 기억력과 분석 능력,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예리한 직관을 극대화하는 정보 분석 및 침투, 심리전 훈련입니다." 아리엘은 잠시 아니룻의 눈을 응시했다. "당신의 두뇌는 이제 최첨단 양자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그 속에서 미세한 패턴과 이상 징후를 찾아내는 능력을 연마하게 될 것입니다. 가우타 님께서는 당신의 과거 경험과 새로운 능력이 결합될 때, 그 어떤 첨단 장비나 인공지능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 믿고 계십니다."
그 후 몇 주간, 아니룻은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 그녀의 삶은 이제 시간 단위로 쪼개져, 육체적 단련과 정신적 연마를 위한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물리적 훈련은 그녀에게 낯설면서도 기묘한 경험이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도약, 강철판을 찌그러뜨리는 주먹, 총알을 보고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반사 신경. 그녀의 몸은 경이로운 성능을 발휘했지만,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너무나 완벽하고 기계적이어서 때로는 자신이 조종하는 로봇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통증은 미약하게 존재했지만, 부상은 순식간에 나노 머신에 의해 복구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연약한 유기체가 아님을 매 순간 실감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확장하면서, 점차 이 새로운 육체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낯선 껍데기가 아닌, 그녀의 의지를 담는 강력한 도구였다.
정신적 훈련은 그녀에게 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녀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아마겟돈 이전의 역사 기록부터 최신 과학 기술, 라스둠 시티의 모든 시스템 정보, 심지어 심리학과 암호학까지 섭렵했다. 그녀의 사진 같은 기억력은 양자 컴퓨팅 시스템의 막강한 처리 능력과 결합되어 경이로운 학습 속도를 보여주었다. 복잡하게 얽힌 데이터 속에서 숨겨진 연관성을 찾아내고, 미세한 정보의 불일치를 감지해내는 그녀의 능력은 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한 연구원들조차 놀라게 할 정도였다. 과거 전쟁터에서 생존하기 위해 길러졌던 그녀의 예리한 관찰력과 분석력은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넘어, 정보의 이면에 숨겨진 의도와 진실을 꿰뚫어 보려 노력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누가 이득을 보는가? 그녀의 기자로서의 본능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아리엘은 훈련 기간 동안 그녀의 곁을 지키며 단순한 안내자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녀는 가우타와 지구의 사피엔티아 조직으로부터 전달되는 최신 정보들을 브리핑해주었고, 아니룻이 훈련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혼란이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는 유일한 상담자이기도 했다. 아리엘은 가우타에 대한 깊은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니룻이라는 특별한 존재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과 호기심을 느끼는 듯했다.
어느 날, 훈련을 마치고 분석실에 앉아 있던 아니룻에게 아리엘이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은 평소보다 조금 더 심각해 보였다.
"아니룻 님,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리엘은 보안 등급이 높은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작동시켰다. 화면에는 화성의 지형 데이터와 함께 복잡한 에너지 파동 그래프가 나타났다.
"이것은 라스둠 시티 외곽, 약 200km 지점에 위치한 오래된 지열 발전소 부근에서 최근 며칠간 간헐적으로 감지되고 있는 미확인 에너지 신호입니다." 아리엘이 그래프의 특정 부분을 가리켰다. "신호 자체는 매우 미약하고 불규칙해서, 표준 감시 시스템에서는 단순한 지질 활동이나 오래된 장비의 오작동으로 분류했습니다. 하지만… 사피엔티아에서 이 신호를 심층 분석한 결과, 자연 발생적인 패턴과는 미묘하게 다른, 인위적인 간섭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아니룻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인위적인 간섭이라면… '그림자'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요?"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리엘은 신중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가우타 님께서는 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진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임무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당신을 지목하셨습니다."
아니룻의 심장이… 아니, 그녀의 동력 핵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인가. 막연했던 적의 실체에 다가갈 첫 번째 기회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위험 속으로 뛰어들기 직전의 짜릿한 긴장감을 느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당신의 임무는 해당 지역으로 잠입하여 에너지 신호의 정확한 발원지를 찾아내고,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아리엘은 디스플레이에 해당 지역의 상세 지도와 예상 침투 경로를 띄웠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이것은 정찰 임무입니다. 만약 '그림자'와의 접촉이 불가피해지거나 신변에 위협이 감지될 경우, 교전은 최대한 피하고 즉시 귀환해야 합니다. 당신의 생존이 최우선입니다."
아리엘은 작은 메모리 칩을 아니룻에게 건넸다. "여기 임무에 필요한 모든 정보와 좌표가 담겨 있습니다. 출발은 내일 새벽입니다. 최첨단 스텔스 기능을 갖춘 소형 탐사선 '셰도우 워커(Shadow Walker)'가 준비될 것입니다."
아니룻은 메모리 칩을 받아 자신의 시스템에 연결했다. 순식간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그녀의 의식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붉고 황량한 화성의 대지, 폐쇄된 지열 발전소의 음산한 모습, 그리고 그곳 어딘가에서 깜빡이는 미지의 에너지 신호.
그녀는 창밖, 돔 너머로 펼쳐진 붉은 행성의 광활하고 위험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첫 번째 임무. 그것은 어쩌면 인류의 운명을 건 거대한 체스 게임의 첫 수일지도 몰랐다. 과거의 빅토리아는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는 증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룻은, 그 전쟁을 일으킨 어둠과 직접 맞서 싸워야 하는 전사가 되어야 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강철 같은 의지가 다시 한번 서렸다. 그녀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제10장: 속삭이는 동굴
화성의 새벽은 고독했다. 라스둠 시티의 인공 태양이 돔 내부를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것과는 달리, 돔 바깥의 세상은 아직 깊고 차가운 어둠에 잠겨 있었다. 아니룻은 최첨단 스텔스 탐사선 '셰도우 워커'의 조종석에 앉아 이륙 준비를 마쳤다. 탐사선은 이름처럼 어둠 속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무광택 검은색으로 도색되어 있었고, 레이더와 열 감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탐지 시스템을 기만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녀의 새로운 육체와 탐사선의 시스템은 마치 하나처럼 신경망으로 연결되어, 그녀는 조종간을 잡지 않고도 생각만으로 탐사선의 모든 기능을 제어할 수 있었다.
"아니룻, 통신 상태 확인." 아리엘의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의 신경 인터페이스를 통해 직접 들려왔다.
"상태 양호. 모든 시스템 정상 작동 중." 아니룻이 간결하게 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침착했지만, 그 밑에는 첫 실전 임무를 앞둔 미세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행운을 빕니다. 가우타 님께서도 당신의 성공적인 귀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통신은 암호화된 최소 대역으로 유지합니다. 필요한 경우 외에는 무선 침묵을 지켜주십시오."
셰도우 워커는 소리 없이 격납고를 빠져나와 화성의 희박한 대기 속으로 미끄러지듯 상승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라스둠 시티의 불빛은 등 뒤로 멀어졌고, 그녀의 눈앞에는 오직 광활하고 적막한 붉은 황무지만이 펼쳐졌다. 인공적인 빛이 사라진 화성의 하늘에는, 지구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고 있었다. 그 장엄하고도 쓸쓸한 풍경 속에서, 그녀는 홀로 미지의 위험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탐사선은 지표면 가까이 낮게 비행하며 목표 지점인 폐쇄된 지열 발전소를 향해 나아갔다. 아니룻의 강화된 시각 센서는 어둠 속에서도 지상의 모든 세부 사항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포착했다. 수백만 년 동안 바람에 깎이고 침식된 기괴한 암석 지대, 거대한 운석 충돌구의 희미한 흔적,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 언덕들. 그녀는 동시에 탐사선의 다양한 센서들이 수집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했다. 방사능 수치, 자기장 변화, 미세한 지진 활동, 대기 성분 분석. 그녀의 두뇌는 이 모든 정보를 통합하여 주변 환경에 대한 완벽한 3차원 모델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있었다.
약 한 시간 후, 탐사선은 목표 지점 상공에 도달했다. 아니룻은 탐사선을 인근의 거대한 암석 협곡 뒤편에 은폐시키고 외부 해치를 열었다. 차갑고 건조한 화성의 공기가 그녀의 인조 피부를 스쳤다. 그녀는 탐사선에서 내려와 주변 지형을 직접 살폈다.
폐쇄된 지열 발전소는 예상대로 황량하고 스산했다. 수십 년간 방치된 거대한 구조물들은 붉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유령처럼 서 있었고, 깨진 창문과 부서진 철골 구조물들이 이곳이 한때 인간의 활동 영역이었음을 희미하게 증언할 뿐이었다. 초기 스캔 결과, 예상대로 발전소 자체에서는 어떠한 생명 활동이나 유의미한 에너지 반응도 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리엘이 언급했던 미확인 에너지 신호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은 매우 약하고 간헐적이었지만, 특정한 패턴을 가지고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보내는 암호화된 메시지처럼. 아니룻은 휴대용 다중 스펙트럼 분석기를 꺼내 신호의 방향과 강도를 정밀하게 추적하기 시작했다.
"신호 발원지가 발전소 내부가 아니야." 아니룻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분석기의 데이터를 자신의 내부 시스템과 연동시켰다. 신호는 발전소에서 북동쪽으로 약 500미터 떨어진, 복잡하게 얽힌 동굴 지대 깊숙한 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 숨겨져 있지?"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아리엘은 정찰 임무이며 위험하면 즉시 귀환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녀의 본능, 진실의 냄새를 맡은 기자의 본능이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부추겼다. '그림자'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가우타가 그녀를 살려낸 이유, 그녀를 이곳 화성까지 보낸 이유가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아리엘, 발원지를 확인했다. 발전소 외곽 동굴 지대다. 내부로 진입하여 정찰을 계속하겠다." 그녀는 짧게 보고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위험 감지 시 즉시 철수하십시오. 당신의 판단을 믿지만, 무모한 행동은 금물입니다." 아리엘의 목소리에는 염려가 묻어났다.
아니룻은 통신을 끊고 동굴 입구를 향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강화된 신체는 화성의 낮은 중력과 거친 지형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소리 없이 바위 사이를 넘나들었다. 그녀는 주변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바람 소리, 작은 돌멩이가 굴러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그녀 자신의 규칙적인 호흡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절대적인 고요와 적막만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에너지 신호가 가장 강하게 흘러나오는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야간 투시 모드를 활성화하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동굴 내부는 예상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했다. 천연적으로 형성된 용암 동굴인 듯했지만, 곳곳에 인위적으로 다듬거나 확장한 듯한 흔적이 보였다. 벽면에는 기이한 결정체들이 자라나 희미한 자체 발광을 하고 있었고, 공기는 바깥보다 더 차갑고 미세하게 진동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에너지 신호는 동굴 깊숙한 곳을 향해 그녀를 이끌고 있었다.
얼마나 깊이 들어왔을까. 그녀는 마침내 넓은 공동(空洞)에 다다랐다. 공동의 중앙에는… 아니룻은 숨을 삼켰다. 그것은 인간의 기술로는 보이지 않는, 기묘하고 이질적인 형태의 장치였다. 검은색의 매끄러운 금속 재질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천천히 맥동하며 희미한 보랏빛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에너지 신호의 근원지가 바로 이 장치였다. 장치의 표면에는 그녀가 아는 어떤 언어와도 다른,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장치에 다가가 휴대용 스캐너로 분석을 시작했다. 스캐너는 장치의 재질, 에너지 출력 방식, 작동 원리 등 기본적인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알 수 없음' 또는 '해석 불가'로 표시되었다. 이것은 인류의 과학 기술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미지의 존재가 만든 물건임이 분명했다. '그림자'의 기술인가?
그녀는 장치 표면의 기하학적인 문양에 집중했다. 그녀의 사진 같은 기억력과 양자 컴퓨터의 분석 능력이 동시에 작동했다.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잡한 수학적 원리를 담고 있는 일종의 언어, 혹은 회로도처럼 보였다. 그녀는 미친 듯이 패턴을 분석하고 해독하려 시도했다. 어쩌면 이 문양 속에 '그림자'의 정체나 목적에 대한 단서가 숨겨져 있을지도 몰랐다.
데이터가 그녀의 두뇌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조금씩 의미 있는 형태로 조합되기 시작하는 찰나였다.
삐삐삐삐-!
갑자기 동굴 전체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그녀가 스캔을 시도한 것이 침입 경보 시스템을 작동시킨 모양이었다. 동시에, 그녀가 들어왔던 동굴 입구 쪽에서 육중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단순한 낙석 소리가 아니었다. 규칙적이고 기계적인 발걸음 소리였다.
"젠장!"
아니룻은 즉시 스캔을 중단하고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하지만 넓은 공동에는 마땅한 엄폐물이 없었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허리춤에 장착된 소형 플라즈마 권총을 뽑아 들었다. 아리엘의 경고가 떠올랐지만,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붉고 차가운 센서 불빛이 나타났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인간형과는 거리가 먼, 날카로운 금속 외골격으로 뒤덮인 전투 로봇이었다. 그것은 아니룻이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로봇 병기와도 달랐다. 유려하면서도 위협적인 디자인, 그리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 그것은 분명 '그림자'의 피조물이었다.
로봇은 아니룻을 발견하자마자 어깨에 장착된 에너지 무기를 그녀를 향해 겨누었다.
"침입자 확인. 제거 절차 개시."
차가운 합성음과 함께, 푸른 에너지 광선이 어둠을 가르며 그녀에게 날아왔다! 아니룻은 본능적으로 몸을 굴려 광선을 피하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그녀의 첫 번째 임무는 순식간에 생존을 위한 사투로 변해 있었다. 붉은 행성의 고요한 동굴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건 첫 번째 충돌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11장: 강철 그림자와의 춤
푸른 에너지 광선은 동굴 벽을 강타하며 암석 파편과 함께 섬광을 터뜨렸다. 그 찰나의 순간, 아니룻의 강화된 신경계는 이미 수십 가지 가능한 회피 경로와 반격 시나리오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생각보다 먼저 반응했다. 낮은 자세로 바닥을 구르며 동시에 플라즈마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붉은색 플라즈마 볼트가 어둠을 가르며 로봇의 흉갑 중앙을 정확히 명중했다.
카-챙!
날카로운 금속성 파열음과 함께 스파크가 튀었지만, 로봇의 외골격에는 그을린 자국만 남았을 뿐,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제기랄, 장갑이 너무 두꺼워." 아니룻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공동 중앙의 기묘한 외계 장치 뒤로 몸을 숨겼다. 그것은 이상적인 엄폐물은 아니었지만, 당장 로봇의 직접적인 사선에서 벗어날 유일한 선택지였다.
로봇은 잠시 멈칫하는 듯했다. 아마도 플라즈마 공격의 충격을 분석하거나, 아니룻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려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아니룻의 두뇌는 미친 듯이 정보를 처리하고 있었다. 로봇의 디자인, 움직임 패턴, 무기 시스템, 그리고 플라즈마 공격에 대한 반응까지. 그녀의 시각 센서와 내부 시스템은 이 모든 것을 3D 데이터로 변환하여 기록하고 분석했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가져가야 할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그녀 자신이 살아있는 데이터 수집 장치인 셈이었다.
"목표, 은폐 확인. 제압 패턴 변경. 광역 충격파 준비." 로봇의 차가운 합성음이 다시 울려 퍼졌다.
'광역 충격파?' 아니룻은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했다. 그녀는 외계 장치 뒤에서 뛰쳐나와 동굴 벽면의 움푹 파인 곳으로 몸을 날렸다. 거의 동시에, 로봇의 양 어깨에서 눈부신 에너지 파동이 원형으로 퍼져나가며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파가 동굴 벽을 때리고 공기를 압축시켰다. 아니룻은 이빨을 악물고 충격에 대비했다. 그녀의 강화된 육체는 일반 인간이라면 내장이 파열되었을 충격을 견뎌냈지만, 온몸의 센서가 과부하 경고를 보내왔고 잠시 동안 시야가 흐릿해졌다. 동굴 천장에서 먼지와 작은 돌멩이들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시야가 다시 선명해졌을 때, 로봇은 이미 그녀가 숨어있던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기계적이면서도 섬뜩할 정도로 유연했다. 아니룻은 다시 플라즈마 권총을 발사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로봇의 관절 부위나 센서로 보이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몇 발의 유효타가 들어갔는지, 로봇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거렸다.
"약점 분석 완료. 관절부, 센서 클러스터." 그녀는 빠르게 판단했다. 하지만 로봇의 반격은 더욱 거세졌다. 에너지 광선이 쉴 새 없이 그녀를 추격했고, 로봇은 육중한 몸체를 이용해 그녀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려 했다. 좁은 동굴 안에서의 싸움은 그녀에게 불리했다.
아니룻은 싸우면서 동시에 탈출 경로를 계산했다. 이 로봇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목표는 로봇을 무력화시키거나 따돌리고, 수집한 데이터를 가지고 무사히 귀환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공동 중앙의 외계 장치를 흘끗 보았다. 저것이 이 동굴의 핵심이자, '그림자'의 목적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저것에 더 접근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화성의 낮은 중력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로봇이 다시 에너지 광선을 발사하는 순간, 그녀는 동굴 벽을 박차고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무용수처럼, 그녀는 로봇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며 로봇의 등 뒤로 착지했다. 동시에 플라즈마 권총을 로봇의 목 뒤, 여러 개의 케이블과 동력선이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부위에 집중 사격했다.
치지지직! 파지지직!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푸른 스파크가 격렬하게 튀며 로봇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 로봇은 비틀거리며 몸을 돌리려 했지만, 균형을 잃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금이야!"
아니룻은 망설이지 않았다. 로봇이 다시 일어서기 전에, 그녀는 자신이 들어왔던 동굴 통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강화된 다리는 순식간에 속도를 높여 어둠 속을 질주했다. 등 뒤에서 로봇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계음과 분노한 듯한 경고음이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복잡한 동굴 통로를 빠져나오는 것은 그녀의 '인간 내비게이션' 능력 덕분에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동굴의 완벽한 3D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숨 막히는 속도로 어둠을 헤치고 나아갔고, 마침내 희미한 바깥 빛이 새어 들어오는 동굴 입구에 도달했다.
그녀는 동굴 밖으로 뛰쳐나오자마자 은폐시켜 두었던 셰도우 워커를 향해 달렸다. 탐사선은 그녀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해치를 열고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조종석에 몸을 싣고 해치를 닫았다.
"아리엘! 임무 종료. 즉시 귀환한다! '그림자'의 전투 개체와 조우, 교전 후 이탈했다. 상세 데이터 전송 시작!"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보고했다.
"알겠다, 아니룻! 수고했다. 즉시 귀환 경로를 확보하겠다. 부상은 없나?" 아리엘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긴장이 뒤섞여 있었다.
"경미한 시스템 과부하 외에는 문제없다."
셰도우 워커는 다시 소리 없이 이륙하여 화성의 붉은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룻은 조종석 스크린을 통해 방금 빠져나온 동굴 지대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미지의 외계 장치가 숨겨져 있을 것이고, 어쩌면 손상된 '그림자' 로봇이 그녀를 추격하기 위해 동굴 밖으로 나올지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시스템에 기록된 데이터를 확인했다. '그림자' 로봇의 상세한 구조와 전투 능력, 외계 장치의 스캔 데이터 일부, 그리고 동굴 내부의 환경 정보까지. 비록 임무는 예상치 못한 전투로 변질되었지만, 그녀는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림자'의 실체에 다가가는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라스둠 시티로 돌아가는 길, 아니룻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광활하고 고독한 화성의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더 이상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는 방관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직접 총을 들고 미지의 적과 맞서 싸우는 전사였다. 그리고 그녀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녀의 심장, 아니 그녀의 동력 핵은 다가올 더 큰 전투에 대한 예감으로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알 수 없는 기대감마저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 그녀가 싸워야 할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끝>
- 인류세 (人類世, Anthropocene) 설명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 환경과 지질학적 기록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쳐, 현재의 지질 시대를 이전 시대(홀로세)와 구분해야 한다는 개념에서 제안된 새로운 지질 시대의 명칭입니다.
핵심 아이디어:
인간 중심의 시대: 인류가 지구 시스템(기후, 생태계, 지표면 등)을 변화시키는 가장 주된 요인이 된 시대를 의미합니다.
지질학적 증거: 산업화 이후 급증한 온실가스 농도, 플라스틱 퇴적물,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성 동위원소, 콘크리트/알루미늄과 같은 인공 지층, 대규모 멸종 등이 암석 지층이나 빙하 코어 등에 뚜렷한 흔적으로 남습니다.
지질 시대 구분 제안: 이러한 전 지구적인 변화가 이전 시대와 명확히 구분될 만큼 크고 영구적이므로, 현재를 '홀로세' 다음의 새로운 지질 시대인 '인류세'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요약: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의 주된 변화 동력이 되어 지질학적 기록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채택된 지질 시대 명칭은 아니지만, 인간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 홀로세 (Holocene) 설명
홀로세 (Holocene)는 지질 시대 구분에서 신생대 제4기에 속하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말합니다. 우리말로는 현세(現世)라고도 합니다.
주요 특징:
시기: 마지막 빙하기(플라이스토세)가 끝난 후 약 11,700년 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후: 가장 큰 특징은 이전 빙하기에 비해 비교적 안정되고 따뜻한 기후입니다. 물론 작은 기후 변동은 있었지만, 큰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현재와 비슷한 해안선과 기후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인류 문명: 이 안정된 기후 덕분에 인류는 농업을 발전시키고 정착 생활을 시작했으며,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인간 역사가 홀로세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생태계: 빙하기 이후 변화된 기후에 맞춰 식물과 동물이 재배치되고 현재와 유사한 생태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요약: 홀로세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시작된 현재의 지질 시대로, 안정적인 기후 속에서 인류 문명이 번성한 시기입니다.
참고: 최근에는 산업 혁명 이후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져서,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국제지질학연합(IUGS)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시대 명칭은 아닙니다.
- 마인드 업로딩 (Mind Uploading) 설명
마인드 업로딩이란 개인의 정신, 의식, 기억 등 뇌의 모든 정보를 디지털 형태로 스캔하고 복제하여, 컴퓨터나 인공적인 기반(substrate)에 전송하는 가상적인 기술 또는 개념입니다.
핵심 아이디어:
뇌 스캔: 뇌의 신경망 구조와 활동 상태를 극도로 정밀하게 분석합니다.
디지털 복제: 스캔된 정보를 바탕으로 뇌의 기능적 모델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만듭니다.
실행: 이 디지털화된 정신을 강력한 컴퓨터 시스템에서 실행합니다.
목표: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선 영생 추구, 의식 백업, 가상현실에서의 삶 등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현실: 현재 기술로는 뇌를 완벽히 이해하고 스캔하거나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업로드된 정신이 원래의 자신과 동일한 의식인지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윤리적 문제가 남아있어, 아직은 과학 소설(SF)의 영역에 속합니다.
- 인포모프 (Infomorph) 설명
인포모프 (Infomorph)는 정보(Information)와 형태(Morph)의 합성어로, 순수한 정보 형태로 존재하는 의식 또는 지성을 의미합니다.
핵심 개념:
마인드 업로딩의 결과물: 주로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생물학적 육체에서 벗어나 디지털 데이터 형태로 존재하는 정신을 지칭합니다.
비물질적 존재: 물리적인 신체 없이 컴퓨터 네트워크나 가상현실과 같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정보로서의 자아: 그 존재 자체가 정보이며, 복제, 전송, 수정 등이 이론적으로 가능해집니다.
특징:
불멸성: 생물학적 노화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이동: 네트워크를 통해 어디든 이동할 수 있습니다.
가상현실 체험: 디지털 환경 내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요약: 인포모프는 디지털화된 의식, 즉 육체 없이 정보만으로 존재하는 마음이나 지성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마인드 업로딩이 실현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존재 형태에 대한 상상적인 개념입니다.
- 인조인간 (Android) 과 바이오로이드 (Bioroid) 설명 및 차이
1. 인조인간 (Android)
간략 설명: 인간의 형태와 행동을 모방하도록 만들어진 기계 로봇입니다. 이름 자체가 '인간(Andro-)을 닮은(-oid)'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핵심: 주로 기계적, 전자적 부품으로 구성되며, 인공지능으로 작동합니다. 겉모습은 인간과 매우 흡사하게 만들 수 있지만, 내부 구조는 명백히 기계입니다. (예: 영화 <터미네이터>의 T-800 골격, <스타트렉>의 데이터)
2. 바이오로이드 (Bioroid)
간략 설명: 생명공학(Bio-) 기술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인공적인 유기체입니다.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지만, 그 기반이 생물학적입니다.
핵심: 유기적 조직, 유전 공학, 배양된 세포 등을 이용하여 만들어집니다. 기계 부품이 일부 통합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공적으로 창조된 생명체에 가깝습니다. (예: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 <에이리언> 시리즈의 일부 안드로이드 - 설정상)
차이점
가장 큰 차이는 만들어진 기반에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기계 공학과 전자 공학의 산물입니다. 무기물 기반의 정교한 기계입니다.
바이오로이드: 생명 공학과 유전 공학의 산물입니다. 유기물 기반의 인공 생명체에 가깝습니다.
요약: 안드로이드는 '인간처럼 생긴 로봇(기계)'이고, 바이오로이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인간과 유사한 생명체(유기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Chernobyl) 설명
체르노빌은 우크라이나 북부에 위치한 도시 이름이자, 인근에 있던 원자력 발전소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1986년 4월 26일에 발생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핵심 요약:
사고 발생: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에서 안전 실험 중 설계 결함과 운전 미숙으로 인해 원자로가 폭발하고 대규모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었습니다.
피해: 폭발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 외에도, 사고 수습 과정과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심각한 건강 문제(암, 기형아 출산 등)를 겪었습니다. 광범위한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출입 통제 구역(Exclusion Zone)이 설정되었고, 인근 도시 프리피야트는 완전히 폐쇄되었습니다.
영향: 이 사고는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을 전 세계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환경 오염과 장기적인 건강 영향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았습니다.
현재: 사고 원자로는 석관(Sarcophagus)과 신형 안전 격납시설(New Safe Confinement)로 덮여 있으며, 출입 통제 구역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나 일부 제한적인 관광 및 연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체르노빌은 인류가 겪은 최악의 기술 재앙 중 하나이자, 원자력의 위험성과 그 영향의 장기성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 설명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 (Space Shuttle Challenger Disaster)는 1986년 1월 28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고입니다.
사건 개요:
미국 NASA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Challenger, 임무명 STS-51-L)가 발사된 지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하여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되고 있었기 때문에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사고 원인:
주요 원인은 오른쪽 고체 로켓 부스터(Solid Rocket Booster, SRB)의 O-링(O-ring)이라는 고무 밀폐 부품 결함이었습니다.
발사 당일의 이례적으로 추운 날씨로 인해 O-링이 탄성을 잃고 제대로 밀폐되지 못했습니다.
이 틈으로 고온, 고압의 연소 가스가 누출되어 옆에 있던 외부 연료 탱크(External Tank)를 손상시켰고, 결국 구조적 파괴와 함께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 발사 전 엔지니어들이 O-링의 안전 문제와 추운 날씨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NASA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문제점으로 인해 발사가 강행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탑승 승무원:
사령관 프랜시스 스코비, 조종사 마이클 J. 스미스, 임무 전문가 주디스 레스닉, 엘리슨 오니즈카, 로널드 맥네어, 탑승 전문가 그레고리 자비스, 그리고 '우주 교사 프로젝트(Teacher in Space Project)'로 선발된 민간인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까지 총 7명이었습니다. 특히 매콜리프의 참여는 큰 관심을 모았기에 참사의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영향 및 결과:
참사 이후 미국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은 약 3년간 중단되었습니다.
로저스 위원회(Rogers Commission)라는 대통령 직속 조사 위원회가 구성되어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NASA의 안전 관리 및 의사 결정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NASA는 이를 계기로 우주왕복선의 설계 변경, 안전 규정 강화, 조직 문화 개선 등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했습니다.
챌린저호 참사는 우주 탐사의 본질적인 위험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으며, 기술적 안전뿐만 아니라 조직 내 소통과 책임 있는 의사 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 포보스 (Phobos) 와 데이모스 (Deimos) 설명
포보스(Phobos)와 데이모스(Deimos)는 화성(Mars)의 두 위성입니다.
이들은 1877년 미국의 천문학자 아사프 홀(Asaph Hall)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지구의 달과는 매우 다르게, 크기가 매우 작고 모양이 감자처럼 불규칙한 것이 특징입니다. 마치 소행성(Asteroid)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화성의 강한 중력에 붙잡힌 소행성일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각 위성의 특징:
포보스 (Phobos):
의미: 그리스 신화에서 '공포(Fear)'를 의미합니다.
크기 및 궤도: 두 위성 중 더 크고 안쪽 궤도를 돕니다. 지름은 약 22km 정도입니다.
특징: 화성 표면에 매우 가까이 (약 6,000km 상공) 돌고 있어, 하루에 세 번 이상 화성 주위를 빠르게 공전합니다. 표면에는 '스티크니(Stickney)'라는 이름의 거대한 충돌구가 있습니다.
운명: 화성의 조석력 때문에 점점 화성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수천만 년 후에는 화성과 충돌하거나 부서져 화성 주위에 고리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데이모스 (Deimos):
의미: 그리스 신화에서 '패주(Terror/Panic)'를 의미합니다.
크기 및 궤도: 포보스보다 더 작고 바깥쪽 궤도를 돕니다. 지름은 약 12km 정도입니다.
특징: 포보스보다 훨씬 먼 거리(약 23,500km 상공)에서 화성을 돌며, 공전 주기는 화성의 자전 주기보다 약간 더 깁니다 (약 30.3시간). 포보스에 비해 표면이 더 매끄러운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충돌로 생긴 분출물이 표면을 덮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운명: 포보스와 달리 비교적 안정적인 궤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약: 포보스와 데이모스는 화성의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위성으로, 포획된 소행성으로 추정됩니다. 포보스는 안쪽에서 빠르게 돌며 불안정한 미래를 가지고 있고, 데이모스는 바깥쪽에서 더 느리게 돌며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