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소년, 운명을 만나다

by 남킹

그날 이후, 보세(Bossey)의 목사관은 루소에게 있어 하나의 기호학적 전쟁터가 되었다. 모든 사물과 행위는 이전의 순수한 의미를 상실하고, 오직 그날 오후 서재에서 벌어진 성스러운 의식, 혹은 음탕한 유희를 중심으로 재편성되고 재해석되는 끝없는 기표(signifiant)의 연쇄에 지나지 않았다.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의 침묵은 더 이상 평온의 징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모의 무게에 짓눌린 자의 질식할 듯한 묵언(默言)이었으며, 그녀가 그를 애써 외면하는 시선은 그의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필사적인 자기부정이자, 동시에 그의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역설적 증거였다. 식탁에서 그녀가 그에게 빵 접시를 건넬 때, 그들의 손가락이 스치는 찰나의 순간은 마치 라이덴 병(Leyden jar)에 축적된 전하가 방전되듯, 보이지 않는 스파크를 튀기며 두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녀에게 그는 이제 순수한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추악한 가능성을 비추는 거울, 즉 이드(Id)의 불쾌한 현현이었다.

루소에게 있어 이 냉각기는 그러나 상실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그의 내밀한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벼려내는 담금질의 과정이었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배우지 않았으나, 이미 그의 영혼은 정(正)과 반(反)의 투쟁을 통해 새로운 합(合)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라는 절대적 타자의 부정(否定)은, 그의 내면에 싹튼 ‘불온한 계약’의 정당성을 역설적으로 강화시켜 주었다. 그는 그녀의 경멸 속에서 자신의 특별함을 확인했고, 그녀의 침묵 속에서 자신만이 해독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 밤이면 그는 자신의 작은 침상에 누워, 그날의 감각을 마치 순례자가 성유물(聖遺物)을 어루만지듯 섬세하게 복기했다. 자작나무 회초리가 공기를 가르던 날카로운 소리, 살갗을 파고들던 짜릿한 섬광, 고통의 정점에서 피어오르던 아찔한 현기증, 그리고 마침내 그를 감싸 안던 완전한 충족감. 이 기억의 파편들은 그의 빈약한 경험 세계를 채우는 가장 풍요로운 자산이 되었다. 그는 니체의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사상을 예감이라도 한 듯, 그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기를, 그 고통과 희열의 파노라마가 자신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v)가 되기를 갈망했다.

이렇듯 내면의 극장이 풍요로워질수록, 현실의 세계는 더욱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퇴색해갔다. 이윽고 보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제네바로 돌아와, 그의 매형이 주선해준 각인사(刻印師) 뒤코맹(Ducommun)의 도제로 들어갔을 때, 그 간극은 견딜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뒤코맹의 작업실은 이자크 루소의 시계 공방이 지녔던 형이상학적 질서마저 거세된, 순수한 기계적 노동의 지옥이었다. 그곳의 시간은 째깍거리는 소우주가 아니라, 오직 품삯으로 환원되는 상품일 뿐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구리판 위에 뷔랭(burin)이라는 날카로운 조각칼로 정해진 문양을 새겨 넣는 단조로운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뷔랭이 금속판을 파고들며 만들어내는 차갑고 날카로운 선은, 그의 기억 속에 작열하던 회초리의 뜨겁고 생명력 넘치던 붉은 선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하나가 창조적 파괴와 관능적 희열의 상징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비인간적인 정밀함과 영혼 없는 복제의 기호였다.

뒤코맹은 루소에게 어떤 인간적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루소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주인일 뿐, 그의 영혼을 교화하려는 스승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지배와 복종의 드라마도, 처벌과 참회의 숭고한 의식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명령과 기계적인 순응,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는 냉혹한 경제 법칙만이 존재했다. 이것이야말로 홉스(Hobbes)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피하기 위해 맺어진, 가장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사회계약의 축소판이었다. 루소는 이 계약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은 정해진 규격과 틀 속에 갇혀 질식해가고 있었다. 그는 일을 게을리했고, 종종 스승의 연장을 망가뜨렸으며, 몰래 사과나 빵을 훔쳐 자신의 작은 반란을 감행했다. 이 사소한 절도 행위는 단순한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유재산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부자연스러운 제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자연 상태의 순수한 소유(자신이 먹을 만큼만 취하는)를 실천하려는 미숙하지만 진지한 철학적 시도였다.

그의 유일한 탈출구는 독서와 산책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영웅들은 이제 그의 동경의 대상을 넘어,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동지처럼 느껴졌다. 그는 타락한 제네바의 현실 속에서 제2의 카토가 되기를 꿈꾸었다. 주일이면 그는 친구들과 함께 제네바 성벽 밖의 전원으로 나갔다. 굳건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인공적인 질서를 벗어나, 자유로운 자연의 품에 안길 때, 그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거나, 숲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새소리를 듣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는 것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종교적 체험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문명이 앗아간 인간 본연의 선함과 자유를 보았다. 훗날 그가 '자연으로 돌아가라(Retour à la nature)'고 외치게 될 그 위대한 선언의 씨앗은, 바로 이 각인사 도제 시절의 갑갑한 도시 생활과 그로부터의 짧은 일탈 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운명의 그날도 그러한 일탈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1728년 3월 14일, 열여섯 살을 코앞에 둔 소년 루소는 평소보다 조금 멀리까지 산책을 나갔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쥐라(Jura) 산맥의 능선 위로 금빛 가루를 뿌리며 기울고 있었다. 그는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잊은 채,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의 군락과 그 사이를 오가는 벌들의 윙윙거림에 매료되어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해는 이미 산 너머로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도시의 성문에서 저녁 예고 나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제네바는 엄격한 규율의 도시였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성문은 굳게 닫히고, 다음 날 아침까지는 그 누구도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저물어가는 시간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가 성문 앞 해자에 도착했을 때, 그의 눈앞에서 거대한 도개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무겁고 단단한 떡갈나무 성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 그는 모든 희망을 잃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철컥, 하고 빗장이 걸리는 소리는 마치 그의 운명에 대한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 그는 성벽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의해, 그가 속한 세계로부터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되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절망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하며, 내일 아침 주인 뒤코맹에게는 어떤 변명을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그의 머리가 점차 식어가자,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묘한 해방감, 일종의 환희였다. 닫혀버린 성문은 그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억압하던 모든 의무와 질서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거대한 해방의 문이었다. 그는 더 이상 뒤코맹의 도제가 아니며, 람베르시에 목사의 피후견인도 아니며, 아버지의 성(姓)에 묶인 아들도 아니었다. 그는 이제 이름 없는 존재, 과거로부터 단절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완전한 자유의 실존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불안에 이르는 병'을 앓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그는 그 순간 자유가 동반하는 현기증과 그 이면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는 밤새 성벽 아래를 서성였다. 굶주림과 추위가 살을 에는 듯했지만,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고 명료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서사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친 도제가 아니라,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순례자였다. 그는 이 밤의 시련을 영웅의 통과의례로 격상시켰다. 성벽 안의 세계는 플라톤의 동굴, 즉 그림자의 세계이며, 자신은 이제 그 동굴을 벗어나 진리의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철학자였다. 그는 굳게 닫힌 성문을 향해 무언의 작별을 고했다. 잘 있거라, 위선과 억압의 도시여. 너의 기계적인 시간과 부당한 계약으로부터, 나는 이제 나 자신을 해방하노라.

날이 밝자, 그는 주저 없이 남쪽으로, 사보이(Savoy) 공국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그에게는 아무런 계획도, 단 한 푼의 돈도 없었다. 그의 유일한 자산은 젊음과 건강, 그리고 이제 막 해방된 그의 자유로운 영혼뿐이었다. 이틀 동안 그는 구걸하거나 농부들의 호의에 기대어 허기를 채우며 걸었다. 길 위에서의 삶은 고되었지만, 놀라운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연이 얼마나 관대한 어머니인지를,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에 아직 선의가 남아있음을 발견했다. 길에서 만난 신부는 그에게 하룻밤의 잠자리와 따뜻한 수프를 제공하며, 꽁피뇽(Confignon)에 사는 드 퐁베르(de Pontverre) 신부를 찾아가 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는 젊은이들을 돕는 자비로운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루소에게 종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칼뱅주의의 엄격함 속에서 자란 그에게 가톨릭은 이단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종교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신학적 순수성이 아니라, 당장의 생존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이었다. 그는 드 퐁베르 신부를 찾아 꽁피뇽으로 향했다.

드 퐁베르 신부는 예상대로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는 루소의 명민한 눈빛과 조리 있는 말솜씨에서 범상치 않은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이 어린 양을 칼뱅주의라는 오류의 늪에서 구해내어 가톨릭이라는 진리의 품으로 인도하는 것을 자신의 신성한 사명으로 여겼다. 그는 루소에게 가톨릭 교리를 설명하고, 그의 개종을 돕기 위해 안시(Annecy)에 사는 한 독실한 귀부인에게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남편과 별거하며,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는 이들을 돕는 자선 사업에 헌신하고 있는 루이즈 드 바랑스(Louise de Warens) 남작부인이었다.

안시. 그 이름은 루소의 가슴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남작부인이라는 존재를 상상했다. 연로하고, 경건하며, 주름진 손으로 묵주를 돌리는, 성화(聖畫) 속의 성녀 안나와 같은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새로운 보호자 아래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학문을 계속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드 퐁베르 신부가 써준 소개장을 품에 안고 안시에 도착한 것은 부활절을 며칠 앞둔 종려주일(Palm Sunday) 아침이었다. 도시 전체가 축제의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고, 봄의 햇살은 갓 녹은 눈이 흐르는 운하의 수면 위에서 부서지며 반짝였다. 루소는 지저분한 행색의 이방인이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 틈에 섞여, 남작부인의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저택은 운하 옆, 코르들리에(Cordeliers) 성당 뒤편의 조용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잘 가꾸어진 작은 정원과 깨끗한 창문이 기품 있는 인상을 주었다. 루소는 잠시 문 앞에서 망설였다. 자신의 누추한 모습이 부끄러웠고, 미지의 귀부인을 만난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뒤,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하녀가 나와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집 안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공기 중에는 밀랍과 마른 허브,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섞여 있었다. 그는 작은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낡은 벨벳으로 덮인 의자 끝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벽에는 성인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창가에는 작은 오르간이 놓여 있었다. 그때, 안쪽 방에서 나지막하고 음악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해도 괜찮단다."

루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문이 열려 있는 작은 방 안, 창가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등지고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외출 준비를 하는 중인 듯, 머리에 쓸 스카프를 매만지고 있었다. 루소는 그 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한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은 그가 상상했던 연로한 성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서른 즈음으로 보이는, 이제 막 완숙의 절정기에 접어든 여인이었다. 금발과 갈색이 섞인 풍성한 머리카락은 느슨하게 빗어 올려져 있었고, 몇 가닥의 잔머리가 햇빛 속에서 금빛으로 빛나며 그녀의 희고 부드러운 목선을 간질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고전적인 미인형은 아니었으나, 커다랗고 푸른 눈과 상냥한 미소, 그리고 생기로 가득 찬 표정이 어우러져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알프스의 눈처럼 희고 투명했으며, 옅은 주근깨가 소녀 같은 순수함을 더해주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고급스러운 회색 실크로 만들어져 그녀의 풍만하면서도 균형 잡힌 몸매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드레스의 네크라인은 당시 유행에 따라 깊게 파여, 그녀의 봉긋한 가슴 윗부분과 쇄골의 우아한 곡선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루소의 시선은 자석처럼 그곳에 이끌렸다. 그는 그 희고 부드러운 살결 아래에서 푸른 혈관이 미세하게 박동하는 것을, 그녀가 숨 쉴 때마다 가슴이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것을 상상했다. 그녀의 몸에서는 방금 전 집 안을 채우고 있던 그 향기, 즉 밀랍과 허브에 더해, 그녀 자신의 체온과 섞인 따뜻하고 감미로운 살내음이 풍겨왔다. 그것은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의 금욕적인 라벤더 향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명력과 관능으로 충만한 향기였다.

그녀가 루소를 발견하고 몸을 돌렸다. 그녀의 푸른 눈이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아, 얘야. 거기 서 있으면 안 된단다. 감기 들겠어."

그 목소리. 그것은 벨벳처럼 부드럽고 첼로처럼 깊은 울림을 지닌, 천상의 음악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 한마디에, 루소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불안과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녀의 말투에는 귀족적인 권위가 실려 있었지만, 동시에 길 잃은 어린아이를 향한 무한한 연민과 모성애가 넘쳐흘렀다.

루소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소개장을 꺼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의 온 존재가, 그의 모든 감각이 오직 눈앞의 이 여인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녀는 그가 평생을 찾아 헤맨 모든 것의 현현이었다. 그에게 없었던 어머니의 따뜻함,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에게서 발견했던 여성적 권위의 달콤함, 그리고 그가 아직 이름 붙일 수 없었던, 성숙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신비롭고 관능적인 매력. 이 모든 것이 그녀, 루이즈 드 바랑스라는 하나의 존재 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종교적인 경외감의 표현이자, 기사의 서약이었으며, 노예의 완전한 복종을 의미하는 제스처였다. 그는 품속에서 구겨진 소개장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그녀에게 내밀었다.

바랑스 부인은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숙여 소개장을 받아들고는, 다른 한 손으로 루소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그녀의 손길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 손길이 닿는 순간, 짜릿한 전율이 그의 척추를 타고 흘렀다. 그것은 회초리의 충격과는 다른 종류의,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강렬하고 전복적인 감각이었다.

"일어나렴, 아가. 이런 곳은 네가 무릎 꿇을 자리가 아니란다."

그녀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있었지만, 아직 앳된 소년의 얼굴에 깃든 총명함과 섬세한 감수성, 그리고 그 깊은 눈동자 속에 숨겨진 야생의 불꽃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 길 잃은 영혼들에게 이끌리는 자신의 운명을,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고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자신의 욕망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녀는 루소의 손을 잡고 그를 응접실로 이끌었다. 그녀의 손은 작고 부드러웠다. 루소는 자신의 거칠고 더러운 손이 그녀의 희고 섬세한 손에 잡혀 있다는 사실에 황홀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 순간, 루소는 알았다. 자신의 방황은 끝났다는 것을. 아니, 진정한 의미의 방황이 이제 막 시작되리라는 것을. 그는 길 위에서 물리적 자유를 얻었지만, 이제 이 여인의 자비로운 시선과 부드러운 손길 아래, 기꺼이 자신의 영혼을 저당 잡힐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닫힌 성문 앞에서 맺었던 자유의 계약은 파기되고, 이제 새로운 계약이 체결될 참이었다. 그것은 보호와 순종, 교육과 헌신, 그리고 그 이면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욕망과 지배의 더 깊고 은밀한 조항들을 포함한, 지극히 ‘불온한 계약’이었다. 종려주일 아침,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했듯, 소년 루소는 그의 운명의 여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예루살렘은 그녀의 저택이었고, 그의 왕국은 그녀의 마음이었으며, 그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바로 그녀를 향한, 이제 막 시작된 이 압도적인 사랑이었다.

1.jpg
002.jpg


keyword
이전 01화제네바의 시계, 그 태엽 감기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