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의 시계, 그 태엽 감기는 소리

by 남킹

시간이 하나의 신(神)으로 군림하고, 그 신의 엄격한 교리가 칼뱅의 예정설처럼 도시의 모든 격자(格子) 위에 군림하던 곳, 제네바. 그곳에서 시간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수백 개의 톱니바퀴와 태엽, 그리고 루비 베어링의 정교한 마찰 속에서 태어나는 구체적 실체였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구획되고, 측정되고, 분절되어 인간의 모든 행위를 규율하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었다. 도시의 공기는 알프스의 빙하처럼 차갑고 맑았으나, 그 투명함 속에는 인간의 원죄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신학적 서리가 서려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한 영혼의 기이한 연대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영혼의 이름은 장 자크 루소, 훗날 인류의 자유를 논하고 사회의 계약을 설파할 이름이었으나, 당시에는 그저 어머니의 부재라는 원초적 결핍과 아버지의 침묵이라는 형이상학적 무게에 짓눌린, 가냘픈 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이자크 루소는 시계공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는 시간의 해부학자이자, 황동과 강철로 소우주를 창조하는 데미우르고스였다. 그의 작업실은 플라톤의 이데아계가 지상에 현현한 듯한 질서의 왕국이었다. 벽에 걸린 수십 개의 확대경과 족집게, 정밀한 줄과 세공칼들은 마치 외과의사의 수술도구처럼 섬뜩하리만치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돋보기안경 너머로 우주의 축소판인 무브먼트를 들여다볼 때, 아들의 존재를 망각했다. 그에게 있어 시계의 심장인 밸런스 휠의 규칙적인 진동은 아들의 불규칙한 심장 박동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생명의 증거였다. 이자크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그 인과율을 거스르는 부조리한 고통을, 시간의 완벽한 인과율 속에 자신을 유폐시킴으로써 견뎌내고 있었다. 그가 조립하는 시계 속에서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순응했다. 하나의 톱니가 돌면, 다음 톱니가 정해진 각도만큼 정확히 회전했다. 거기에는 변덕도, 우연도, 죽음이라는 부당한 침입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들에게 사랑 대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그것은 아들을 위한 교육이라기보다는, 현실의 비극을 신화와 역사의 장엄함으로 도피시키려는 아버지 자신의 처절한 자기기만이요, 낭만적 도피였다.

소년 루소에게 아버지는 차가운 금속과 기름 냄새, 그리고 나지막이 들려오는 영웅들의 서사시로 각인되었다. 어머니는 존재한 적 없는 신화, 육체의 온기 대신 책장 가득한 그녀의 책들로 남겨진 관념적 향수였다. 그는 아버지의 무릎에서 리쿠르고스와 카토의 엄격한 덕성을 배우면서도, 밤이면 어머니의 책들 속에서 아스트레와 셀라돈의 감상적인 사랑을 탐독했다. 그의 영혼은 그렇게 스파르타적 금욕주의와 목가적 낭만주의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개의 극단 사이에서 일찍부터 분열되기 시작했다. 작업실의 냉철한 이성과 서재의 뜨거운 감성, 그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선 위에서 소년은 자기 존재의 좌표를 찾지 못한 채 부유했다.

아버지 이자크가 재혼과 함께 사실상 아들을 유기하다시피 그의 누이와 매형인 람베르시에 목사 부부에게 맡긴 것은, 어쩌면 그 불가해한 아들의 영혼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보세(Bossey)의 목사관은 제네바의 기계적 질서와는 또 다른 종류의 질서, 즉 신의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의 시간은 째깍거리는 초침이 아니라,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주일 예배로 나뉘는 신성한 리듬을 따랐다. 소년에게 그곳은 처음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의 온기를 어렴풋이 느끼게 해준 곳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내면에 잠복해 있던 운명적 본능을 깨운 무대가 되기도 했다.

그 운명의 집행자는 람베르시에 목사의 누이이자, 소년 루소의 교육을 담당했던 서른 살의 미혼 여성,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였다. 그녀는 경건함과 순결함으로 무장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언제나 잘 마른 리넨과 희미한 라벤더 향기가 났고,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늘 부드러웠으나, 그 부드러움 속에는 신의 계율을 대리하는 자의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루소에게 라틴어의 격변화와 신의 섭리를 가르쳤다. 소년은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규율의 달콤함을, 순종의 안락함을 배웠다. 그녀는 부재했던 어머니의 대리인이자, 존경해야 할 스승이었으며, 동시에 소년의 미숙한 의식으로는 아직 명명할 수 없는, 막연한 여성성의 화신이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가 책장을 넘기는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말씀을 전할 때 부드럽게 움직이는 입술에, 몸을 숙일 때 드레스 깃 너머로 언뜻 비치는 목선의 부드러운 곡선에 무의식적으로 머물렀다. 그것은 욕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미적(美的)인 경외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다.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가 아끼던 값비싼 상아 빗, 그 빗살 하나가 부러져 나간 일이었다. 범인은 명백히 루소였으나, 그는 순간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녀 마리옹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그것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내면에 도사린 혼돈이 외부 세계의 질서를 향해 던진 최초의 유의미한 도전장이었다. 현실의 추악한 결과를 회피하고, 자신만의 서사 속에서 무결한 주인공으로 남고 싶었던 미숙한 자아의 발버둥이었다. 그러나 람베르시에 목사의 집요한 추궁 앞에서 그의 거짓말은 이내 파편처럼 부서져 내렸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목사관의 공기는 납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단순히 빗 하나를 부러뜨린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 앞에서, 그리고 신의 대리인 앞에서 행해진 신성모독, 즉 '거짓'이라는 원죄의 발현이었다.

처벌은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의 몫으로 결정되었다. 목사는 남성적 권위의 직접적 폭력보다는, 여성적 권위의 섬세한 교화가 소년의 영혼에 더 깊은 교훈을 새길 것이라 판단했다. 그날 오후, 루소는 그녀의 서재로 불려갔다. 볕이 잘 드는 그 방은 언제나 책과 잉크, 그리고 마른 꽃의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방 안의 모든 사물들은 잠재적인 고통의 증인이 될 운명을 예감한 듯 침묵하고 있었다. 벽난로 위에서 째깍거리는 괘종시계 소리만이, 다가올 심판의 시간을 무심하게 재고 있었다.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는 창가에 서서, 평소와 달리 루소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단호함 대신 옅은 수심과 곤혹감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자작나무 회초리가 들려 있었다. 숲에서 갓 꺾어 온 듯, 아직 푸른 기운이 남아있는 가느다란 가지였다. 그것은 폭력의 도구라기엔 너무나 연약하고 섬세해 보였다.

"장 자크."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낮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너는 네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육체의 고통은 영혼의 죄를 씻기 위한 신의 자비란다. 이 아픔을 통해 너의 거짓된 혀와 완고한 마음이 정화되기를 기도하마."

그녀의 말은 신학적 교리로 무장되어 있었으나, 그 이면에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인간적인 주저함이 엿보였다. 루소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심장은 새장 속의 새처럼 미친 듯이 날뛰었다. 두려움, 수치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정체불명의 기대감. 그의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서, 다가올 물리적 충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지를 내리거라."

명령은 나직했지만 거역할 수 없는 권위를 담고 있었다. 소년은 잠시 망설였다. 그의 작은 세계를 지탱하던 마지막 자존심의 막이 찢겨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거친 질감의 홈스펀 바지의 단추를 풀고, 그것을 발목까지 끌어내리는 그 짧은 순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차가운 서재의 공기가 그의 어린 엉덩이와 허벅지에 소름처럼 와 닿았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존경하는 여성 앞에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연약한 부위를 드러내야 하는 그 극도의 수치심. 그의 얼굴은 귓불까지 새빨갛게 타올랐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오직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의 소리만이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는 소년을 책상 모서리에 엎드리게 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직 앳된 소년의 희고 작은 둔부였다. 거기에는 어떤 성적인 함의도 없었다. 그것은 단지 교정되어야 할 잘못의 상징, 죄의 낙인이 새겨질 제단일 뿐이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다. 이것은 신성한 의식이다. 더럽혀진 영혼을 위한 정화의 세례다. 그녀는 오른손에 든 회초리를 가볍게 고쳐 쥐었다.

'쉬익-!'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첫 번째 매질이 시작되었다. 회초리는 소년의 왼쪽 둔부에 가늘고 선명한 붉은 선을 그었다. 순간, 루소의 온몸이 강하게 움찔했다. 짜릿하다 못해 아찔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치고 올라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강렬한 감각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고통의 눈물이 아니었다. 통증의 폭발 직후,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매 맞은 부위를 중심으로 뜨거운 열기가 파도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얼어붙었던 혈관이 일제히 녹아내리며 뜨거운 피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듯한 격렬한 생명의 감각. 수치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정체를 알 수 없는 흥분이, 거의 환희에 가까운 격정이 채우기 시작했다.

두 번째 매질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오른쪽 둔부였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비명이 아니라, 차라리 쾌락에 겨운 탄성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는 이를 악물었지만, 제어할 수 없는 열기가 아랫배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그의 존재 전체가 매 맞은 두 지점으로 응축되는 듯했다. 세상의 모든 관념과 사유, 아버지의 책들과 어머니의 부재, 신의 엄격한 계율과 자신의 하찮은 거짓말, 그 모든 것이 이 원초적이고 강렬한 물리적 감각 앞에서 증발해 버렸다. 오직 '맞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이 불러일으키는 전율적인 현재성만이 실존의 유일한 증거가 되었다.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는 소년의 반응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의 어깨는 더 이상 공포로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격렬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듯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녀는 매질의 강도를 조금 낮추어 서너 차례 더 회초리를 휘둘렀다. 그때마다 소년의 등은 활처럼 휘었고, 그의 억눌린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그녀는 매질을 멈추고 소년의 상태를 살폈다. 루소는 여전히 책상에 엎드린 채,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시울이 붉어진 그의 뺨과 달리, 그의 엎드린 자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더 이상 굴종이나 공포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폭풍의 눈 속에 들어선 자의 기묘한 평온, 혹은 제단에 오른 희생양이 마침내 신의 현현(顯現)을 목도하며 느끼는 도착적(倒錯的)인 환희에 가까웠다.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는 혼란에 빠졌다. 그녀가 휘두른 것은 정의의 회초리였지, 결코 쾌락의 도구가 아니었다. 소년의 영혼에 죄의식을 새기려 했던 그녀의 신성한 의식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오염되어 그 본질을 의심받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껏 읽어온 신학 서적과 교리문답 속에서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심연의 풍경을 엿본 기분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지닌, 합리적 이성과 신의 계율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어둡고 비옥한 영토였다.

그녀의 눈에 비친 소년의 작은 등은 이제 단순한 육체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텍스트, 그녀의 행위로 인해 기이한 상형문자가 새겨지고 있는 파피루스처럼 보였다. 가늘고 붉게 부어오른 자국들(stigmata)은 마치 어떤 비밀스러운 언어의 서문처럼 선명했다. 그녀는 그 문장을 읽어낼 수 없었으나, 그것이 결코 '참회'나 '반성'을 의미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직감할 수 있었다. 소년의 억눌린 숨결 속에는 고통의 신음 대신, 뜨거운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 고행자의 것과도 같은, 혹은 금지된 과실을 베어 문 이브의 것과도 같은, 고통과 희열이 뒤섞인 이율배반적인 생기가 넘실거렸다.

루소의 의식 속에서 서재의 풍경은 해체되고 재구성되고 있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는 관능적인 속삭임이 되었고, 괘종시계의 단조로운 째깍거림은 그의 심장 박동과 공명하며 격렬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메트로놈이 되었다.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의 희미한 라벤더 향기는 이제 그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최면의 향이 되어, 그의 이성을 잠재우고 원초적인 본능의 늪으로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이 현상을 정의할 단어를 알지 못했다. 그의 미숙한 지성은 아직 프로이트적 심연의 지도를 갖지 못했고, 사드 후작의 도서관에 입장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그의 영혼보다 더 정직하고 예민한 그의 육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어머니의 부재라는 형이상학적 공백 속에서, 아버지의 차가운 이성이라는 기계적 세계 속에서, 그토록 갈망해왔던 어떤 것의 현현임을.

그것은 바로 ‘관계’의 가장 원초적이고 폭력적인 형태였다.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지배와 그에 대한 완전한 복종. 이자크의 시계 속 부품들처럼, 그 역시 마침내 거대한 질서 속에 편입되어 자신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시계의 부품들이 냉철한 인과율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는 지금 뜨거운 감각의 폭정 아래 놓여 있었다. 매질은 단순한 물리적 충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존재를 향한 가장 확실한 ‘주목’의 형태였고, 그의 육체에 새겨지는 ‘의미’의 낙인이었다. 무시당하고 방임되었던 그의 자아는, 이토록 강렬한 방식으로 타인에 의해 ‘확인’되고 있었다. 고통은 그 확인의 대가였고, 쾌락은 그 대가에 대한 이자(利子)였다. 이 기이한 연금술적 과정 속에서, 수치심은 자부심으로, 공포는 갈망으로, 죄의식은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으로 변성(變性)되고 있었다.

그는 다음 매질을 기다렸다. 그의 모든 신경세포가 곤두서서, 자작나무 가지가 공기를 가르는 그 미세한 소리와, 그것이 자신의 살갗에 닿아 터져 나올 폭발적인 감각의 불꽃을 갈망했다. 그러나 시간은 영원처럼 느리게 흘러갔고, 기대했던 충격은 오지 않았다. 침묵. 그것은 매질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의 존재를 가득 채웠던 그 전율적인 충만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다시 차갑고 공허한 현실의 공기가 그의 폐부를 채웠다. 미완으로 끝난 교향곡, 절정 직전에 멈춰버린 서사시처럼, 그는 참을 수 없는 불만과 조바심에 휩싸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돌려, 책상 모서리에 기댄 채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를 훔쳐보았다. 그의 눈빛 속에는 이제 두려움이나 반성의 기미는 없었다. 그 자리에는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그러나 감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는, 간절한 애원과 순진한 의문이 뒤섞여 있었다. ‘왜 멈추시는 거죠? 저의 죄는 아직 다 씻기지 않았습니다. 이 정화의 의식을, 이 구원의 세례를 부디 완성해주십시오.’ 그의 눈동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는 소년의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그녀는 그 시선 속에서 자신과 같은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種)의 생명체를 본 듯한 이질감과 공포를 느꼈다. 소년의 눈은 맑고 투명했으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심연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애써 외면해왔던 인간 본성의 어두운 가능성들, 즉 질서와 규율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가학의 쾌락, 복종과 참회의 외피를 쓴 피학의 희열, 신성이라는 제단 위에서 벌어지는 가장 세속적인 욕망의 교환 따위의 추악한 환영들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소년의 죄를 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년의 기이한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하수인으로 전락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회초리는 어느새 정의의 심벌에서 음탕한 연극의 소도구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뺨이, 이번에는 수치심과 혐오감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일어나거라!"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갈라져 나왔다. 이전의 부드러움과 고뇌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녀는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진 사람처럼 황급히 회초리를 벽난로 속에 던져버렸다. 자작나무 가지는 마른 장작더미 위에서 금세 작은 불꽃을 피워 올리며 검은 재로 변해갔다. 신성한 의식은 그렇게, 한 줌의 재로 허무하게 종결되었다.

"바지를... 어서 올려 입어라."

루소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엉덩이에는 여전히 매질의 열기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신에게 바쳐진 제물 위에 찍힌 인장처럼, 그 붉은 줄무늬들은 뜨겁게 박동하며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바지를 끌어올렸다. 거친 홈스펀 천이 예민해진 살갗에 스치는 감촉조차,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동시에 감미로운, 비밀스러운 애무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제 영원히 간직할 비밀을 갖게 된 것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그러나 그의 남은 생을 지배하게 될 위대한 계시의 비밀을.

소년은 아무 말 없이 서재를 걸어 나왔다. 그의 등 뒤로, 마드무아젤 람베르시에의 차가운 시선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두 사람 사이를 흐르던 존경과 애정의 강물은 그날로 완전히 말라붙고, 그 자리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협곡이 생겨났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예전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길은 그를 의식적으로 비껴갔고, 그녀의 목소리는 불필요한 온기를 모두 거두어냈다. 루소에게 다정했던 가정교사는 사라지고, 마치 유령을 보는 듯 그를 대하는 차가운 타인만이 남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관계의 냉각기는 루소에게 또 다른 형태의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회피는 그의 존재를 더욱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며, 그녀의 차가운 시선은 그날 오후 서재에서 벌어졌던 비밀스러운 공모(共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암묵적인 신호였다. 그는 그녀에게 거부당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녀의 의식 속에 더욱 깊이 각인되었다. 이로써 그는 관계의 변증법, 즉 사랑과 미움, 긍정과 부정, 접근과 회피가 실은 동일한 강도의 열정을 공유하는 동전의 양면일 수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싸늘한 무관심 속에서, 매질의 열기만큼이나 짜릿한, 미묘한 권력의 게임을 감지했다.

그날 이후, 소년 루소의 세계는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그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카토의 엄격함이나 브루투스의 결단력 대신, 그들이 겪었을 고통과 시련의 순간들을 상상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에서 그는 다프네를 쫓는 아폴론의 뜨거운 욕망보다, 월계수로 변해가는 다프네의 육체적 고통과 그로 인한 기이한 구원에 더 깊이 매료되었다. 그는 이 세계가 이성과 질서라는 표면 아래, 감각과 욕망, 고통과 쾌락이라는 거대하고 혼돈스러운 힘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득한 것이다.

제네바의 시계는 여전히 정확하게 시간을 알리고, 람베르시에 목사의 설교는 변함없이 신의 섭리를 찬양했지만, 소년 루소의 내면에서는 이미 다른 시계가 태엽을 감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성의 빛으로는 결코 밝힐 수 없는 그림자의 영역에서, 금기의 경계 위에서, 고통의 절정에서 비로소 쾌락의 꽃을 피우는, 도착적이고도 낭만적인 시간이었다. 훗날 그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을 때, 그가 그리워한 '자연'이란 과연 에덴의 순수함이었을까, 아니면 이처럼 문명의 규율과 처벌 속에서 비로소 발견되는, 인간 본성의 가장 원시적이고 길들여지지 않은 어두운 충동이었을까.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도화선이 될 '사회계약론'의 첫 문장,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그 유명한 명제는, 어쩌면 그 쇠사슬의 차가운 감촉에서 기묘한 위안과 흥분을 느꼈던 한 소년의 내밀한 고백에서부터 이미 잉태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네바의 시계탑 아래, 한 위대한 사상가의 철학적 초석은, 이렇듯 가장 비철학적이고 육체적인, 수치와 희열의 경험 위에 위태롭게 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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