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하나의 거대한 시뮬라크르(simulacre)였다. 장 보드리야르가 훗날 개념화할 그 용어를 루소는 알지 못했으나, 그의 영혼은 이미 그 시뮬라크르의 독성(毒性)에 중독되고 또 그것에 저항하는, 격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디드로와의 만남은 그에게 파리의 지성계라는 내밀한 극장의 입장권을 부여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문 밖의 구경꾼이 아니었다. 그는 무대 위로 올라섰고, 스포트라이트의 눈부신 세례를 받았다. 그는 마담 조프랭(Madame Geoffrin)의 살롱에서 볼테르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척하며 그의 신랄한 경구들을 흉내 냈고, 돌바크 남작(Baron d'Holbach)의 무신론적 만찬에서는 신의 시체 위에서 벌어지는 지적인 향연에 동참했다.
살롱. 그곳은 당대 이성의 올림푸스 산이자, 가장 세련된 형태의 인간 시장이었다. 공기는 여자들의 분 냄새와 남자들의 위선, 값비싼 포도주와 더 값비싼 재치가 뒤섞여 무겁게 떠다녔다. 대화는 마치 펜싱 경기처럼, 날카롭고 현란한 언어의 칼날이 오고 가는 우아한 결투였다. 모든 발언은 계산되었고, 모든 미소는 전략이었으며, 모든 침묵은 의미심장한 암호였다. 진리의 탐구는 명분을 뿐, 실질적인 목표는 타인의 지성에 대한 우위를 점하고, 자신의 명망이라는 자산을 증식시키는 데 있었다. 루소는 이 게임의 법칙을 빠르게 습득했다. 그는 자신의 이방인적 순수함과 투박한 직설을 하나의 상품으로, 즉 ‘고귀한 야만인(le bon sauvage)’이라는 매력적인 페르소나로 가공하여 팔기 시작했다. 그는 제네바의 공화주의적 덕성을 설파했고, 알프스의 장엄한 자연을 예찬했으며, 파리의 인공적인 삶을 개탄했다. 그리고 파리의 귀부인들과 철학자들은 그의 ‘진정성’에 열광했다. 그들은 마치 희귀한 동물을 구경하듯,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영혼의 원형을 그에게서 발견하고 안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열광한 것은 그의 진실이 아니라, 그 진실의 세련된 재현, 즉 그가 연기하는 역할 그 자체였다. 그는 스스로가 이 거대한 시뮬라르크의 가장 정교한 일부가 되어가고 있음을, 혐오감과 동시에 도착적인 쾌감 속에서 인지했다.
이 위선적인 무대 위에서, 그의 영혼이 유일하게 정박할 수 있었던 항구는, 역설적이게도 그 무대의 가장 낮은 곳에 있었다. 그가 묵던 하숙집의 젊은 세탁부, 테레즈 르바쇠르(Thérèse Levasseur). 그녀는 살롱의 귀부인들이 지닌 모든 것을 갖추지 못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고, 그녀의 손은 세탁물과 잿물에 거칠어져 있었으며, 그녀의 얼굴에는 고된 노동의 그늘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재치 있는 농담을 구사할 줄도, 철학적 담론에 끼어들 줄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땅처럼 묵묵하고, 물처럼 투명하게.
루소는 그녀에게서 ‘마망’의 그림자를 보지 않았다. 테레즈는 지배하고 교육하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녀는 복잡한 심리적 게임을 요구하는 연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에게 어떤 지적인, 혹은 정신적인 위계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의 변덕과 우울, 그의 오만함과 연약함을, 마치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연처럼, 묵묵히 감내했다.
그들의 육체적 관계는 ‘마망’과의 첫 경험처럼, 정교하게 연출된 교육적 의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삶의 고단함과 존재의 외로움을 서로의 체온으로 달래는 필사적인 행위였다. 어느 비 오는 저녁, 루소는 살롱에서의 지적인 유희에 지쳐 자신의 다락방으로 돌아왔다. 테레즈는 그의 젖은 옷을 받아 챙겨주고 있었다. 그 순간, 루소는 그녀의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과, 낡은 옷에서 풍겨 나오는 비누와 노동의 정직한 냄새에서, 파리의 모든 인공적인 향수로는 결코 위장할 수 없는, 생명의 근원적인 진실성을 느꼈다.
그는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테레즈는 놀랐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귀부인들의 코르셋으로 조여진 몸처럼 우아하지 않았지만, 단단하고 따뜻했다. 그는 그녀의 거친 리넨 셔츠 위로, 그녀의 등 근육의 미세한 긴장과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녀의 입술은 포도주와 과일 맛이 나는 귀부인들의 입술과 달리, 빵과 물의 맛, 즉 생존 자체의 맛이 났다.
그들의 정사는 좁고 삐걱거리는 침대 위에서, 마치 폭풍우 속의 난파선 위에서 두 생존자가 서로를 확인하듯 격렬하고 서툴게 이루어졌다. 거기에는 낭만적인 전희도, 계산된 기술도 없었다. 오직 두 개의 고독한 육체가 서로의 살을 부딪치며, 이 차가운 세상 속에서 잠시나마 온기를 나누려는 절박한 몸부림만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아래에서 수동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신음은 쾌락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삶의 무게를 견디는 자의 깊은 한숨에 가까웠다. 루소는 그녀의 몸 안에서, ‘마망’에게서 느꼈던, 복종의 굴욕적인 쾌감이나 오이디푸스적 승리감 대신,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지극한 평온함, 모든 가식과 위계를 벗어던지고 순수한 존재 대 존재로 만나는 순간의 안도감이었다. 그는 그녀의 몸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라는 대지(大地)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사상적 방황과 실존적 불안을 잠재워주는, 그의 유일한 형이하학적 닻이었다.
이 관계는 그러나 그에게 또 다른 형태의 ‘불온한 계약’을 요구했다. 테레즈는 곧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의 탄생은, 자연의 순리였으나, 루소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재앙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그는 아버지라는 사회적 역할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그의 철학은 아직 인류 전체의 교육을 논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으며, 그의 주머니는 당장 세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턱없이 비어 있었다. 그는 플라톤의 『국가』를 떠올렸다. 이상 국가에서 아이들은 부모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 공동으로 양육된다. 부모의 이기적인 애착이야말로 불평등과 사유재산의 근원이 아니던가. 그는 자신의 무책임과 경제적 무능력을, 이처럼 숭고하고 비정한 철학적 논리로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테레즈를 설득했다. 아이는 국립 고아원(Hôpital des Enfants-Trouvés)에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그곳에서 아이는 훌륭한 시민으로, 공화국의 아들딸로 자라날 것이라고. 테레즈는 눈물을 흘렸지만, 그의 단호한 논리 앞에서, 그리고 그들의 암담한 현실 앞에서,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루소는 갓난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한밤중에 몰래 고아원의 문 앞에 놓아두었다. 아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그 어떤 표식도 남기지 않은 채. 그는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돌아서며, 이것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여 공공의 선을 이루려는, 스파르타적 덕성의 실천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러나 그의 등 뒤에서는, 그가 버린 혈육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그 자신의 영혼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것이 그가 맺은 가장 참혹한 계약이었다. 그는 인류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를 포기했다.
이러한 내면의 폭풍우가 몰아치던 1749년의 여름이었다. 그의 유일한 지적 동지였던 디드로가, 그의 무신론적 저작인 『맹인 서간(Lettre sur les aveugles)』 때문에 신성모독죄로 뱅센(Vincennes)의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루소는 분노와 공포에 휩싸였다. 이성의 빛을 전파하려던 친구가, 낡은 종교적 독단의 어둠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는 거의 매일같이, 파리 시내에서 뱅센의 요새까지 이어지는 몇 마일의 길을 걸어서 친구를 면회하러 갔다.
그날도 유난히 뜨거운, 7월의 어느 오후였다. 태양은 마치 신의 분노처럼, 대지 위로 하얀 불길을 내리쬐고 있었다. 길가의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축 늘어져 있었고, 공기는 아지랑이로 일렁여, 모든 풍경을 비현실적인 꿈의 한 장면처럼 왜곡시키고 있었다. 루소는 겉옷을 벗어 팔에 걸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걷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 지를 꺼내, 걸으면서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의 눈에 한 작은 공고가 들어왔다. 디종(Dijon)의 아카데미에서 내건 현상 논문 공모. 그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도덕을 순화시키는 데 기여했는가? (Si le rétablissement des sciences et des arts a contribué à épurer les mœurs?)”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 사도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하늘의 빛을 보고 말에서 떨어졌듯, 루소의 머릿속에서 섬광이 터졌다. 그의 시야가 하얗게 변하고, 심장이 격렬하게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지고,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현기증과 함께,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그는 길가의 떡갈나무 아래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그 그늘 아래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 나무 아래에서, 그는 거의 반 시간 동안이나 황홀경(ecstasy)과도 같은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의 의식 속으로, 지난 수년간 그의 내면을 부유하던 모든 단편적인 생각과 모순적인 감정들이, 하나의 거대하고 일관된 체계로 응축되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도덕을 순화시켰는가?’ 아니! 천만에! 그것들은 도리어 인류를 타락시키고,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쇠사슬 위에 얹힌 ‘꽃장식(guirlandes de fleurs)’에 불과하다!
그의 눈앞에 인류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소박하지만 덕성 높았던 스파르타와 공화정 시대의 로마. 그리고 예술과 철학으로 번성했지만, 결국 내분과 사치로 멸망한 아테네와 제정 시대의 로마. 이집트와 그리스, 콘스탄티노플… 문명의 흥망성쇠는 언제나 동일한 패턴을 따랐다. 지식은 교만을 낳고, 예술은 사치를 낳으며, 사치는 도덕의 해이를, 도덕의 해이는 정치적 예속을 낳는다.
그는 파리의 살롱들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교환되는 현란한 지식과 세련된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사이의 자연스러운 동정심(pitié)을 질식시키고, 그 자리를 허영심과 경쟁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우월감으로 채울 뿐이다. 과학자들은 신의 섭리를 파헤친다며 우주를 해부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속에 깃든 악의 근원은 보지 못한다. 철학자들은 덕(vertu)에 대해 논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는 고아원에 내다 버린다. 아, 바로 나 자신처럼!
그 순간, 그의 개인적인 죄책감은 인류 전체의 원죄와 연결되었다. 그가 아이를 버린 행위는, 단지 한 개인의 도덕적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성이 자연의 목소리를 억압할 때, 문명이 인간 본연의 감정을 거세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명 전체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변명하기 위해 플라톤의 논리를 빌려왔지만, 그것이야말로 이성이 감성을 기만하는 가장 교활한 방식이 아니었던가!
그는 ‘자연 상태(l'état de nature)’의 인간을 보았다. 아직 사회와 문명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원시인. 그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자기 보존의 본능과, 동족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연민(pitié)이라는 두 가지 원리만을 따랐다. 그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행복했다. 그러나 어느 날, 누군가 땅에 말뚝을 박고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선언했을 때,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다. 사유재산의 개념은 불평등을 낳았고, 불평등은 상호 의존과 예속을 낳았으며, 이 모든 사회적 관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법과 정부, 그리고 학문과 예술이라는 거대한 상부구조가 만들어졌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오직 타인의 시선(regard d'autrui)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는 ‘존재(être)’하는 대신 ‘보여주기(paraître)’ 위해 산다. 이것이 바로 문명의 본질이며, 진보의 실체였다.
루소는 떡갈나무 아래에 누워, 흠뻑 젖은 조끼를 풀어헤친 채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리를 발견한 자의 환희의 눈물이었고, 인류의 운명을 통찰한 예언자의 비통한 눈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 끔찍한 진리를 세상에 알려야 할 소명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디드로를 구원하러 가던 길에, 오히려 인류 전체를 구원(혹은 저주)할 계시를 받은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셔츠가 눈물로 흥건히 젖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일어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시 뱅센을 향해 걸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이제 막 깨어난 거대한 사상의 체계가 용암처럼 들끓고 있었다.
감옥의 면회실에서 디드로를 만났을 때, 그는 평소의 루소가 아니었다. 그의 눈은 광적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열에 들뜬 사람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는 친구를 위로하는 대신, 자신이 방금 겪은 경이로운 체험과,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 대해 횡설수설하며 늘어놓았다.
디드로는 그의 격앙된 모습에 놀랐지만, 곧 그의 이야기 속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이성주의자였고, 루소의 반(反)문명적이고 반(反)이성적인 주장에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누구보다도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는 루소의 이 급진적인 주장이 파리 사교계에 얼마나 큰 스캔들과 논쟁을 불러일으킬지, 그리고 그 논쟁의 중심에 선 루소가 얼마나 큰 명성을 얻게 될지를 즉각적으로 꿰뚫어 보았다. 그것은 기존의 판을 뒤엎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쓰게, 친구. 자네가 본 것을 그대로 쓰게!" 디드로가 그의 팔을 붙잡고 외쳤다. "세상의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게. 그 길이야말로 자네다운 길일세!"
디드로의 격려에 힘입어, 루소는 파리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다락방에 틀어박혀, 뱅센으로 가는 길에 자신을 덮쳤던 그 거대한 영감의 파도를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는 야심가가 아니었다. 그는 신탁을 전하는 피티아 여사제처럼, 자신의 의지를 넘어선 거대한 힘에 이끌려 펜을 움직였다. 그의 문장은 논리적이기보다는 웅변적이었고, 차갑기보다는 뜨거웠다. 그는 스파르타의 덕성과 페르시아의 사치를 대비시켰고, 소크라테스의 지혜와 당대 철학자들의 공허한 궤변을 비교했으며, 촌부의 소박한 믿음이 학자들의 오만한 회의주의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원고를 완성했을 때, 그는 탈진하여 침대에 쓰러졌다. 그의 책상 위에는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종이 뭉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현상 공모 논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몽의 시대 전체를 향한 선전포고문이었고, 진보라는 신화에 대한 이단적 비판이었으며, 그가 파리와 맺었던 모든 암묵적인 계약에 대한 공식적인 파기 선언이었다. 그는 이 몇 장의 종이가 자신의 운명을, 그리고 어쩌면 한 시대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아직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그는 더 이상 예전의 루소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제 진리라는 무서운 무기를 손에 쥔, 고독하고 위험한 예언자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