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메트(Les Charmettes)의 전원적 목가는, 모든 에덴의 신화가 그렇듯, 종말을 고할 운명이었다. 그 목가의 종언은 격렬한 파국이 아니라, 마치 만성적인 질병처럼 서서히, 그리고 지독하게 찾아왔다. 루이즈 드 바랑스, 그의 ‘마망’이자 그의 육체를 처음으로 개안(開眼)시켜준 여사제(女司祭)의 애정은, 이제 조석(潮汐)처럼 변덕스러워졌고, 그녀의 자비로운 왕국은 새로운 총신(寵臣)들의 출현으로 그 영토가 분할되었다. 루소, 그는 더 이상 유일한 숭배자도, 독점적인 소유물도 아니었다. 그는 이 새로운 정치 지형 속에서 자신의 지위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을, 마치 지진계의 바늘처럼 예민하게 감지했다. 그녀의 품은 여전히 안락했지만, 그 안락함은 이제 질식할 듯한 권태(ennui)와 희석된 애정의 굴욕감을 동반했다. 한때 그의 모든 우주였던 그녀의 시선은 이제 다른 대상들을 향해 분산되었고, 그 분산된 시선의 잔광(殘光) 속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가 희미하게 바래어가는 것을 목도해야 했다.
그는 떠나야만 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물학적 필연이었다. 유기체는 성장이 멈춘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생태계를 찾아 떠나야 하는 법이다. 그의 지성은 ‘마망’의 서재가 제공할 수 있는 자양분을 이미 모두 소진했고, 그의 야망은 사보이의 좁은 골짜기에 더는 갇혀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더 거대하고 장엄한 무대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 무대의 이름은 파리(Paris)였다. 당대 유럽의 바빌론이자 아테네, 이성과 광기, 예술과 타락, 혁명과 반동의 모든 가능성이 들끓는 거대한 용광로. 그는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그의 손에 들린 무기는, 제네바의 굳건한 성벽을 넘게 해주었던 맹목적인 용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몇 년간 그가 골방에 틀어박혀 고안해낸 새로운 숫자 기보법(數字 記譜法)이었다. 기존의 오선보가 지닌 시각적 복잡성과 학습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숫자를 이용해 음의 높이와 길이를 절대적이고 합리적인 체계로 표현하려는 시도. 그것은 데카르트적 합리주의를 음악의 영역에 적용하려는, 젊은 지성의 오만함과 천재성이 번뜩이는 발명품이었다. 그는 이 새로운 언어가, 마치 라이프니츠의 보편기호학(characteristica universalis)처럼, 음악의 바벨탑을 허물고 모든 이를 위한 보편적 소통의 길을 열어주리라 믿었다. 이 기보법 악보 뭉치는 그의 여권이자, 파리라는 지적 전쟁터의 성문을 열어젖힐 공성퇴(攻城槌)였다. ‘마망’은 그의 여정에 마지못해 축복을 빌어주며, 얼마간의 여비를 쥐어주었다. 그 돈에는 미안함과 안도감, 그리고 어서 떠나주었으면 하는 냉정한 바람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의 불온한 계약은, 그렇게 사실상의 파기 수순에 접어들고 있었다.
리옹을 거쳐 파리로 향하는 길은, 그가 열여섯 살 때 제네바를 떠나 안시로 향하던 길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때의 그는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무명의 소년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미래를 정복하려는 야심에 찬 청년이었다. 그러나 파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야심의 빛은 도시가 뿜어내는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도시의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후각을 덮친 것은 샤르메트의 라일락 향기나 갓 벤 풀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라는 종(種)이 밀집했을 때 필연적으로 생산해내는 모든 배설물과 부패의 총체적 악취, 즉 수 세기 동안 정화되지 않은 채 골목마다 스며든 오줌의 암모니아 냄새와 말똥의 시큼함, 센 강변 도살장에서 흘러나온 피비린내와 가죽 무두질 공장의 역겨운 화학약품 냄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덮으려는 듯 부유한 마차에서 풍겨 나오는 사향과 용연향의 무겁고 인공적인 향수가 뒤섞인, 형언할 수 없는 미아즈마(miasma)였다.
청각 또한 무자비하게 공격당했다. 좁은 골목길의 돌바닥을 긁으며 지나가는 철제 마차 바퀴의 굉음, 마부들의 거친 고함 소리,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날카로운 외침, 보이지 않는 곳에서 터져 나오는 싸움 소리와 흐느낌, 그리고 이 모든 소음의 기저에 깔린 수십만 인간의 웅얼거림.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내지르는, 고통과 욕망으로 뒤엉킨 신음소리처럼 들렸다.
시각적 풍경은 더욱 압도적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건물들은 마치 서로의 공간을 빼앗으려는 듯 위태롭게 기대어 서서, 좁은 골목길에 영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루브르 궁의 장엄한 위용과 노트르담 대성당의 고딕적 숭고함은, 그 바로 옆에 시궁창 같은 오물이 흐르는 뒷골목과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노동자들의 다락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길 위에서는 비단과 레이스로 치장한 귀족 부인의 화려한 마차가, 누더기를 걸친 채 손을 내미는 걸인과 팔다리가 잘린 상이군인의 곁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부(富)와 빈(貧)의 이토록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병치(竝置). 그것은 그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훗날 논파하게 될 사회적 부조리의 살아있는 전시장이었다.
루소는 이 거대한 혼돈의 미궁 속에서 현기증과 함께 구역질을 느꼈다. 이곳은 그가 꿈꾸던 지성의 아테네가 아니었다. 이곳은 소돔과 고모라, 인간의 교만이 쌓아 올린 현대의 바벨탑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원적 감수성과 자연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이 인공의 정글 속에서는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뿐인 시대착오적 유물임을 직감했다. 그는 품속에 든 기보법 악보 뭉치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이것만이, 이 순수한 이성의 산물만이, 이 혼돈의 도시를 길들이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유일한 아리아드네의 실이었다.
그의 첫 번째 목표는 파리의 지적 심장부인 과학 아카데미(Académie des sciences)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당대의 석학들이 모여 모든 새로운 지식과 발명을 심판하고 공인하는 최고 권위의 기관. 그는 자신의 기보법이 그곳의 냉철한 이성들 앞에서 그 혁신성을 인정받으리라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는 퐁트넬(Fontenelle)과 레오뮈르(Réaumur) 같은 명망 있는 회원들의 추천서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마침내 그의 발명품을 아카데미 공식 석상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
발표 당일, 루소는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아카데미의 회의장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차갑고 엄숙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벽에는 과거의 위대한 과학자들의 초상화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길게 늘어선 테이블에는 가발을 쓴 학자들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흔들려는 모든 이단적 시도에 대한 권태로운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루소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기보법의 원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논리적이며, 배우기 쉬운지를 열정적으로 역설했다. 그것은 음악의 귀족주의를 타파하고, 모든 이에게 음악의 기쁨을 돌려주려는 민주주의적 시도라고, 그는 거의 선언하듯 말했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회의장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흩어질 뿐이었다. 학자들은 하품을 하거나, 코담배 갑을 열어 냄새를 맡거나, 옆 사람과 나지막이 잡담을 나누었다.
발표가 끝나자, 몇몇 위원들이 의무적이라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들의 질문은 그의 발상의 혁신성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체계와 비교하여 그것이 가진 사소한 결함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체계가 옥타브의 구분을 명확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점, 장식음이나 미묘한 리듬의 변화를 표기하기에 투박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들의 비판은 본질적으로, ‘새롭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모든 기득권이 변화 앞에서 보이는 관성적 저항의 전형이었다. 루소는 그들의 비판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려 애썼지만, 그의 주장은 그들의 두터운 지적 관료주의의 벽을 뚫을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 아카데미는 그의 발명품이 “독창성은 있으나, 실용성이 부족하고 기존의 체계를 대체할 만큼 우월하지 않다”는 판정을 내렸다.
루소는 망연자실했다. 그의 공성퇴는 성문을 열기는커녕,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다. 그는 파리라는 거대한 기계의 첫 번째 톱니바퀴 앞에서 완벽하게 패배했다. 그의 순수한 이성은, 그들의 복잡하고 인습적인 이성 앞에서 무력했다. 그는 굴욕감과 분노에 휩싸여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깨달았다. 이곳에서 진리의 가치는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권위와 인맥, 그리고 사교적 평판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그의 실패는 그의 발명품의 실패가 아니라, 그의 순진함의 실패였다.
절망의 나날이 이어졌다. 그는 싸구려 하숙방에 틀어박혀, 자신의 실패를 곱씹었다. 파리의 소음은 이제 그의 패배를 조롱하는 소리처럼 들렸고, 도시의 화려함은 그의 초라함을 비추는 잔인한 거울이었다. 그는 ‘마망’을, 샤르메트의 평화를 지독하게 그리워했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가치가 의심받지 않았고, 그의 모든 변덕과 천재성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용납되었다. 그는 이 거대한 익명의 도시 속에서 철저히 혼자였다.
그의 운명에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그가 거의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있을 무렵, 지성의 또 다른 용광로인 카페 드 라 레장스(Café de la Régence)에서였다. 그곳은 아카데미의 엄숙함과는 정반대의, 자유로운 영혼들의 해방구였다. 공기는 담배 연기와 커피 향, 그리고 열띤 토론의 열기로 자욱했다. 체스판 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수 싸움만큼이나, 테이블 위에서는 신의 존재와 군주의 권리, 인간의 본성에 대한 위험한 담론들이 격렬하게 오고 갔다.
바로 그곳에서, 루소는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를 만났다.
디드로는 루소와 동갑이었지만, 이미 파리 사교계와 지성계의 중심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였다. 그는 살아있는 백과사전이었고, 멈추지 않는 지적 발전기였다. 그의 정신은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읽고, 소화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상으로 재구성해냈다. 그는 유물론자이자 무신론자였고, 절대 권력의 신랄한 비판자였으며, 무엇보다도 인류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하여 이성의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려는 거대한 프로젝트, 즉 『앙시클로페디(Encyclopédie)』의 심장이자 두뇌였다.
그들의 첫 만남은 마치 서로 다른 원소가 만나 폭발적인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화학 반응과도 같았다. 루소는 체스판 앞에 고독하게 앉아 있었고, 디드로는 특유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테이블 사이를 오가다, 루소의 고독하고 강렬한 눈빛에 이끌려 그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신 얼굴에는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대한 고뇌와, 그것을 전복시키려는 오만이 함께 담겨 있군."
디드로의 첫마디는 전형적인 파리식 재치와 통찰력이 번뜩이는 도발이었다. 루소는 이 당돌한 침입자에게 불쾌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의 비범함을 즉각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는 냉소적으로 응수했다.
"오만은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의 눈에만 보이는 법이지. 나에게는 그저 명료함일 뿐."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대화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들은 음악과 철학, 정치와 신학을 넘나들며 서로의 지성을 탐색하고 겨루었다. 루소는 디드로의 방대하고 체계적인 지식과 번개처럼 빠른 사고의 속도에 경탄했다. 디드로는 루소의 투박하지만 근원적인 사유의 깊이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듯한 야생의 감수성에 매료되었다. 디드로는 파리라는 세련된 기계의 산물이었지만, 그는 그 기계의 부품이 아니라 기계를 해부하려는 외과의사였다. 루소는 그 기계 바깥에서 온 이방인이었지만, 그 기계의 근본적인 설계 오류를 직감하는 예언자였다.
디드로는 루소의 기보법 이야기에 깊은 흥미를 보였다. 그는 아카데미의 판결에 코웃음을 쳤다.
"그 늙은 화석들이 뭘 알겠나? 그들은 새로운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가 없는 자들이야. 그들의 뇌는 이미 낡은 교리로 가득 차서, 새로운 생각 한 방울 들어갈 틈이 없지. 자네의 실패는 자네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능함을 증명할 뿐이야."
디드로의 이 한마디는 루소의 닫혔던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였다. 처음으로, 이 거대한 도시에서 누군가가 그의 가치를, 그의 좌절을 이해해주었다. 디드로는 그를 자신의 동료로, 『앙시클로페디』라는 위대한 지적 모험을 함께할 동지로 인정했다. 그는 루소에게 음악 관련 항목의 집필을 맡겼다. 그것은 단순한 일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루소가 파리의 지성계에 공식적으로 편입되었음을 알리는 초대장이었다.
그날 밤, 루소는 자신의 누추한 다락방으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그는 디드로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는 더 이상 패배자가 아니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고, 몰이해한 세상에 맞서 싸우는 고독한 투사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연대감 속에서도, 그는 디드로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디드로는 문명의 가능성을, 이성의 힘으로 인간 사회를 진보시킬 수 있다는 낙관론을 믿었다. 그는 파리라는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할 에너지를 보았다. 반면 루소는 그 혼돈 자체를 문명의 필연적인 질병으로, 치유 불가능한 타락의 징후로 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창밖의 파리 야경을 향했다. 수천 개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멀리서 보면 은하수처럼 아름다웠지만, 그는 그 불빛 하나하나가 고독과 위선, 헛된 야망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감옥임을 알았다. 그는 문득 ‘마망’의 침실을 밝히던 촛불을 떠올렸다. 그 하나의 작고 따뜻한 불빛이, 이 도시의 모든 화려한 조명보다 더 진실하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파리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친구와 적을, 명성과 굴욕을, 지적인 희열과 존재론적 고독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는 이제 이 도시의 일원이 되었지만, 영원히 이방인으로 남을 운명이었다. 그가 맺은 새로운 계약, 디드로와의 우정과 『앙시클로페디』파와의 연대는, 그를 구원하는 동시에 그를 더 깊은 투쟁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을 것이었다. 그는 이제 곧 펜을 들어, 이 화려한 도시의 심장을 겨냥한 최초의 선전포고문을 작성하게 될 터였다. 학문과 예술이 과연 인간의 도덕을 순화시켰는가? 이 질문은, 아카데미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과, 문명 전체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가 뒤섞인, 지극히 ‘불온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파리의 모든 살롱을 경악시키고, 계몽의 시대 그 자체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