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 드 랑시의 영혼이 남긴 날카로운 서리의 파편들이 경당의 바닥으로 스며들어 돌의 냉기를 한층 더 깊게 만들었을 때, 앙투안은 존재의 근원적인 한기(寒氣)에 휩싸였다. 네 명의 영혼이 들려준 이야기는 각기 다른 현(絃)을 뜯었으나, 결국은 인간이라는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동일한 비가(悲歌)였다. 오만, 이상, 순수, 명예. 혁명이라는 거대한 용광로는 그 모든 것을 녹여 알 수 없는 형태의 합금으로 만들거나, 혹은 순수한 잿더미로 화하게 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영혼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감광판(感光板)처럼, 더 이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다섯 번째 존재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녀의 현현(顯現) 방식은 이전의 그 누구와도 달랐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솟아나거나, 빛으로 응축되거나, 혹은 얼음처럼 결정화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아주 서서히, 제단의 부서진 대리석 위로 스며든 희미한 달빛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오랫동안 어둠 속에 방치되었던 낡은 프레스코 벽화가, 마법적인 빛을 받아 서서히 원래의 색채와 형태를 되찾는 과정과도 같았다.
그녀는 수녀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세속의 눈으로 보는 단순한 제복이 아니었다. 거친 양모로 짠 검은 베일과 스카풀라(scapular)는 그녀의 육체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영혼이 거하는 성전(聖殿)의 경계를 표시하는 신성한 휘장이었다. 그녀의 형체는 다른 영혼들처럼 반투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존재는 주변의 어둠을 빨아들여, 그 모든 혼돈과 절망을 침묵의 질료로 삼아 스스로를 빚어내는 듯했다.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깊이 눌러쓴 베일 아래, 그곳은 인간적인 개별성이 소멸되고 오직 신과의 관계만이 남은, 성스러운 공백의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투안은 그 그림자 속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Ávila)가 겪었던 탈혼(脫魂)의 황홀경과, 십자가의 성 요한(John of the Cross)이 노래했던 ‘어두운 밤’의 고뇌를.
그녀의 존재는 경당의 공기를 바꾸었다. 이전까지 이곳이 인간적인 비극을 상연하는 극장이었다면, 이제는 신의 부재(不在)를 증명하는 거대한 제단이 되었다. 그녀가 내뿜는 것은 슬픔이나 분노, 혹은 회한이 아니었다. 그것은 질문이었다. 신을 향한, 인간을 향한, 그리고 존재 자체를 향한, 침묵으로 이루어진 거대하고도 끝없는 질문.
마침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그것은 그 어떤 소리보다도 고요했다.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 Chant)의 단선율처럼 장식 없이 순수하고, 사막 교부(敎父)의 기도처럼 모든 세속적 욕망이 증발된,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정수(精髓)와도 같은 음성이었다.
『사제여.』 그녀는 앙투안을 ‘신부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직책이 아니라, 그의 본질적인 소명을 호명했다. 『당신은 저 가련한 영혼들의 고백을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려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신의 침묵을 기록하기 위해 선택된 증인입니다. 저들은 모두 인간에게 버림받았다고 울부짖었지만, 저는 다릅니다. 저는 신에게 버림받은 자, 포르투갈의 시인이 노래했듯 ‘불안의 책’의 마지막 장을 제 피로 써 내려간 영혼, 아녜스(Agnès)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파스칼(Blaise Pascal)의 팡세(Pensées)처럼, 단편적이면서도 존재의 심연을 꿰뚫는 잠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혁명이 오기 전, 저의 세상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우주, 카르멜 수녀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하루는 종소리에 의해 나뉘고, 저의 호흡은 기도의 리듬에 맞춰 조절되었습니다. 저의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자, 동시에 영혼을 옥죄는 감옥이었습니다. 저는 이 모순된 육신을 길들이기 위해 기도하고, 단식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했습니다.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을 때마다, 제 무릎뼈에 전해지는 고통은 제가 아직 지상에 속해 있음을 일깨우는 신호였습니다. 굶주림으로 위장이 뒤틀릴 때마다, 저는 인간적인 욕망의 허무함을 깨달았습니다. 가죽 채찍이 제 등 위로 내리꽂힐 때마다, 저는 그리스도의 오상(五傷)에 아주 미미하게나마 동참하고 있다는 도착적인 희열을 느꼈습니다.』
앙투안의 눈앞에, 수녀원의 엄격하고도 정적인 일상이 펼쳐졌다. 새벽 4시의 기상 종소리,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성당에서 무릎 꿇은 수녀들의 검은 실루엣, 제단을 밝히는 촛불의 흔들림,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유향(乳香)의 냄새,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편의 나지막한 읊조림. 그곳은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매일 같은 기도의 시간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순환하는, 영원을 모방한 공간이었다.
『저의 목표는 단순한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구원을 넘어선 합일(unio mystica)을 갈망했습니다. 저는 제 자아를 완전히 비워내고(kenosis), 그 텅 빈 공간을 신의 현존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의지를 버리고, 신의 뜻이 저를 통해 흐르는 순수한 도관(導管)이 되기를 열망했습니다. 제게 사랑이란, 저 어린 신부가 말했던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제게 사랑은 제 영혼이라는 신부가, 그리스도라는 신랑과 하나가 되는 거룩하고도 고통스러운 혼인 성사였습니다. 저는 제 육체가 그 신성한 결합을 위한 제단이 되기를, 제 심장이 그분을 담는 성작(聖爵)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아, 그 얼마나 교만한 기도였는지요. 저는 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신과 하나가 되겠다는 제 자신의 열망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녀의 고백은 단순한 신앙의 간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비주의 신학의 가장 깊은 역설, 즉 신을 향한 극단적인 사랑이 어떻게 가장 정교한 형태의 자기애로 변질될 수 있는가에 대한 통렬한 자기 분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해부하고 있었고, 앙투안은 그 수술의 참관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장 너머의 세상이 미쳐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소음이 저희의 기도 소리를 방해하는 성가신 소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곧, 그 소음은 저희의 돌담을 흔드는 거대한 공성퇴(攻城槌)가 되었습니다. ‘이성’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을 섬기는 자들이, 우리의 신을 죽이러 왔습니다.』
수녀원의 문이 부서지던 날의 기억은, 엘레오노르의 집이 유린당하던 기억과는 또 다른 차원의 폭력이었다. 그것은 육체에 대한 폭력이기 이전에, 신성에 대한 조직적인 모독, 즉 성상 파괴(iconoclasm) 운동의 광기였다.
『그들은 술에 취한 채 낄낄거리며 저희 성당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욕정이 아니라, 조롱과 경멸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저희를 여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희를 ‘미신의 노예’, ‘인민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라 불렀습니다. 한 사내가 성모 마리아 상의 목을 망치로 내리쳤을 때, 저는 돌이 깨지는 소리가 아니라, 제 어머니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끌어내려 바닥에 던지고, 그 위에서 야만적인 춤을 추었습니다. 그들은 수백 년 된 성경을 갈가리 찢어, 그것으로 자신들의 더러운 장화를 닦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지도자로 보이는 자가 감실(龕室)로 다가갔습니다. 그는 성광(聖光) 안에 모셔진 성체(聖體)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저희 신앙의 핵심이자 실체인 바로 그 성체를. 그는 그것을 높이 들어 군중에게 보여주며 외쳤습니다. “보아라, 인민들이여! 이것이 너희를 수 세기 동안 속여 온 ‘신’이라는 놈의 실체다! 이 보잘것없는 빵 조각이!” 그리고 그는, 그 신성한 빵 조각을 바닥에 던져 군홧발로 짓이겨 버렸습니다.』
아녜스의 목소리는 그 순간, 모든 감정이 증발된 듯한 공허한 울림으로 변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선, 이해 불가능한 신성모독 앞에서 모든 감정 기능이 정지해버린 영혼의 소리였다.
『신부님, 그 순간 저는 제 눈앞에서 신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니체(Nietzsche)가 예언하기 한 세기 전에, 저는 저의 신이 파리의 한 작은 성당 바닥에서, 술 취한 혁명가의 군홧발 아래서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습니다. 울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텅 빈 하늘을 향해 물었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Eli, Eli, Lema Sabachthani?)’ 그러나 하늘은 텅 비어 있었고, 제단은 더럽혀졌으며, 신은… 침묵했습니다.』
수녀원은 폐쇄되었고, 수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녜스는 하루아침에 신의 신부에서, 거리의 부랑자로 전락했다. 그녀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것은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내면의 신앙이 붕괴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었다.
『저는 수녀복을 벗고 누더기를 걸친 채 파리의 거리를 헤맸습니다. 한때 저의 세상이었던 돌담 안의 질서와 침묵은 사라지고, 저는 혼돈과 소음의 바다에 내던져졌습니다. 굶주림과 추위는 견딜 만했습니다. 육체의 고통은 익숙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저를 정말로 무너뜨린 것은, 제 안에서 시작된 침묵이었습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제 기도는 더 이상 하늘에 닿지 못하고, 텅 빈 제 머릿속에서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흩어졌습니다. 저는 시편을 읊조렸지만, 그 아름다운 단어들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음절의 나열에 불과했습니다. 신의 존재는 더 이상 제 안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현존이 아니라, 증명해야 할 차가운 가설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파스칼의 도박사처럼, 신의 존재에 제 남은 생애를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손에는 걸 만한 패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육체는 그녀의 영혼이 벌이는 전쟁터가 되었다.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영적 고갈은 그녀를 열병에 빠뜨렸다. 그녀는 파리의 어느 후미진 골목, 쓰레기 더미 옆에서 사경을 헤맸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그 순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하나의 거대한 환각 교향곡으로 변주되었다.
『열에 들뜬 제 눈에, 세상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그림처럼 뒤틀리고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보였습니다. 행인들의 얼굴은 악마와 광대의 얼굴로 변했고, 건물의 벽들은 저를 비웃으며 일그러졌습니다. 제 몸은 불타는 듯 뜨거웠다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저는 제가 지옥의 문턱에 와 있음을 느꼈습니다. 제 안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목소리는 ‘이 모든 것은 시험이다. 욥(Job)처럼 끝까지 견뎌라. 신은 너를 버리지 않았다’고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목소리는, 훨씬 더 교활하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는 이렇게 비웃었습니다. ‘어리석은 여자여, 눈을 떠라.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네가 평생을 바친 것은 아름다운 거짓말, 유약한 인간들이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너의 기도는 허공을 향한 독백이었고, 너의 신비 체험은 굶주림과 자기 학대가 빚어낸 뇌의 착각이었을 뿐이다. 보아라, 너의 신은 너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너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너 자신, 너의 이성뿐이다.’』
『저는 그 두 번째 목소리의 유혹에 거의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래, 차라리 모든 것을 부정하고, 이 끔찍한 희망의 무게에서 벗어나 버리자. 차라리 저 ‘이성의 여신’을 섬기는 자들처럼, 이 차갑고 무의미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것이 훨씬 더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삶이 아닐까? 저는 거의 항복할 뻔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녀의 운명을 결정지을 사건이 일어났다. 국민 방위대 병사들이 순찰을 돌다, 쓰레기 더미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들은 그녀가 폐쇄된 수녀원의 수녀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저를 부축여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제게 물었습니다. “성직자 시민 헌법(Civil Constitution of the Clergy)에 서약하고,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하겠는가? 그러면 따뜻한 수프와 잠자리를 주겠다.” 신부님,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이 제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 제 믿음의 실체를 증명하라는 최후통첩이었습니다. 제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는 따뜻한 수프와 잠자리, 즉 생존으로 이어지는 길. 다른 하나는 거부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안의 모든 혼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제 머릿속은 텅 비었고, 제 심장은 고요했습니다. 저는 신의 현존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천사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했습니다. 제 안에는 오직, 텅 빈 침묵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저는 제 대답을 찾았습니다.』
『저는 병사들을 향해 고개를 들고, 제 평생에서 가장 명료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하느님 외에 그 어떤 것에도 충성을 맹세할 수 없습니다(Non possumus).”』
그것은 이성의 계산이나 감정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가 말한 ‘믿음의 도약’이었다. 아무런 증거도, 보장도 없는 심연을 향해,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몸을 던지는 행위. 그녀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믿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믿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신을 창조한 것이었다.
『제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저는 제 영혼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을 느꼈습니다. 텅 빈 제단 위에, 아주 작지만 결코 꺼지지 않을 촛불 하나가 다시 켜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 신은 침묵할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부조리하고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 선택은 의미를 갖는다. 이 광기와 혼돈 속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은, 바로 이 믿음을 선택한 나 자신의 자유의지뿐이다.』
그녀는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예상대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단두대로 향하는 수레 위에서, 아녜스는 평생 처음으로 진정한 평화를 느꼈다.
『수레가 덜컹거리며 혁명 광장으로 향하는 동안, 저는 저를 향해 야유를 퍼붓는 군중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증오가 아니라, 깊은 영적 굶주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낡은 신을 죽이고 새로운 신을 세웠지만,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목말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단두대 앞에 섰을 때,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 거대한 기계는 더 이상 공포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지상의 순례를 끝내고, 마침내 신랑을 만나러 가는 문처럼 보였습니다. 사형 집행인이 제 베일을 벗기고 제 머리카락을 잘라냈을 때, 저는 속세의 마지막 허물을 벗어 던지는 세례식을 치르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목을 나무틀에 고정시켰을 때, 저는 마침내 제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그분의 뜻에 제 모든 것을 맡기는 완전한 순명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칼날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은 제게 단절의 소리가 아니라, 완성의 소리로 들렸습니다. 제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는 그 찰나의 순간, 저는 마침내 보았습니다. 제 평생을 찾아 헤맸던 그 빛을. 그것은 제 안에서, 제 밖에서, 모든 곳에서 터져 나오는 눈부신 빛이었습니다. 아, 당신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었군요. 당신은 언제나 그곳에 계셨군요. 다만 제 귀가 멀고, 제 눈이 어두웠을 뿐이군요. 저의 어두운 밤은, 당신의 광휘로운 새벽을 맞이하기 위한 긴 여정이었을 뿐이군요.』
아녜스의 이야기는 끝났다. 그녀의 형상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달빛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경당을 채우고 있던 신의 부재라는 거대한 공백은, 이제 다른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믿음의 증거가 아니라, 믿음의 가능성이었다. 대답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의 신성함이었다.
앙투안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아녜스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 이 끔찍한 밤이 지나고 새벽이 왔을 때, 자신 또한 아녜스처럼, 텅 빈 침묵 속에서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낼 수 있기를. 이 무너진 제단 위에서, 아주 작은 촛불 하나라도 다시 켤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그는 기도했다. 신을 향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영혼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