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 아녜스의 영혼이 남기고 간, 믿음의 도약을 통해 도달한 성스러운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고요는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현(絃)과도 같아서, 뒤이어 나타난 존재의 거친 손길에 의해 소음과도 같은 파열음을 내며 끊어지고 말았다. 경당의 공기를 채운 것은 더 이상 영적인 고뇌나 지적인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원초적이고, 부인할 수 없이 물질적인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흙과 땀의 냄새, 생선 내장과 값싼 술의 비린내, 그리고 수 세대에 걸쳐 가난이라는 유전병을 앓아온 육신이 내뿜는 시큼한 피로의 냄새였다.
여섯 번째 영혼은 이전의 존재들처럼 어떤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유령이라기보다는, 삶의 진창 속에서 너무 오래 뒹군 나머지 그 얼룩 자체가 존재의 본질이 되어버린 기억의 화석(化石)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냥 거기에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경당의 가장 어둡고 축축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의 형체는 거칠고 투박했다. 상퀼로트(sans-culottes)의 상징인 카르마뇰(carmagnole) 재킷은 해지고 더러워졌으며, 머리에 쓴 붉은 프리기아 모자(Phrygian cap)는 이제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핏물에 절어 굳어버린 상처 딱지처럼 보였다. 그녀의 맨발은 차가운 돌바닥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는데, 그 발은 갈라지고 뒤틀려 마치 오래된 나무뿌리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감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은 그녀의 손이었다. 크고, 투박하고, 마디가 굵은 그 손은 노동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살아있는 연대기였다. 손톱 밑에는 생선 비늘과 흙이 검게 박혀 있었고, 손바닥에는 칼자국과 동상(凍傷)의 흔적이 복잡한 지형도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 손은 한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빵 반죽을 치대고, 남편의 등을 두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날에는, 창과 쇠스랑을 움켜쥐고 역사의 무대 위로 뛰어올랐을 것이다. 이제 그 손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허공을 향해 굳게 말려 쥔, 무력한 분노의 주먹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른 영혼들처럼 앙투안의 정신을 직접 파고들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귓가를, 그의 피부를, 그의 기억을 거칠게 할퀴고 지나갔다. 그 목소리에는 파리 중앙시장 레 알(Les Halles)의 새벽 소음이, 생선 상자 위로 쏟아지는 얼음물의 차가움이, 그리고 굶주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녹아 있었다.
『사제 양반.』 그녀는 ‘신부님’도 ‘사제여’도 아닌, 계급의 간극을 명확히 하는 호칭을 썼다. 『당신네들은 우리 같은 것들의 고해는 듣지 않지. 우리의 죄는 너무 흔하고, 우리의 슬픔은 너무 더러우니까. 당신들의 신은 비단 방석 위에서나 기도를 듣는 모양이지. 하지만 들어봐. 이 더러운 생선 장수, 카트린(Catherine)의 이야기도 들어보라고. 당신들의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을, 진짜 혁명의 이야기를.』
그녀의 목소리는 에밀 졸라(Émile Zola)가 『파리의 배(Le Ventre de Paris)』에서 묘사했듯, 거대하고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은 시장의 소음 그 자체였다. 그녀의 기억은 앙투안을 그곳, 문명의 내장이자 욕망의 용광로인 레 알의 심장부로 끌고 들어갔다.
『혁명? 웃기지 말라 그래. 우리한테 혁명은 루소 영감의 책 속에 있는 게 아니었어. 우리한테 혁명은 빵이었지.』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었으나, 그 안에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당신, 진짜 배고픔이 뭔지 알아? 사흘 굶은 아이의 눈빛을 본 적 있어? 그 눈은 더 이상 인간의 눈이 아니야. 어미의 살이라도 뜯어 먹을 것 같은, 어린 늑대의 눈이지. 나는 내 아이들의 눈이 그렇게 변하는 걸 매일같이 봤어. 내 젖은 말라붙었고, 남편이 벌어오는 동전 몇 닢으로는 쥐새끼 먹일 만큼의 빵도 살 수 없었지. 그때 빵은 그냥 음식이 아니었어. 그건 신이었고, 법이었고, 유일한 희망이었지.』
그녀는 혁명 이전의 삶을, 육체의 언어로 서술했다. 그녀의 철학은 그녀의 몸에 새겨져 있었다.
『겨울 새벽, 해가 뜨기도 전에 나는 집을 나섰어. 뼛속까지 스미는 추위가 내 낡은 숄을 비웃으며 파고들었지.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어. 그건 그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움직이는 기계였지. 시장에 도착하면, 내 손은 얼어붙은 생선을 나르느라 감각을 잃었어. 비린내가 머리카락과 살갗에 배어, 내가 생선인지 생선이 나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지. 내 손은 늘 젖어 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디는 관절염으로 뒤틀렸어.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지만, 앉을 시간조차 없었지. 귀족 마님네 하녀들이 와서 값을 깎으려 들 때마다, 나는 내 살점을 베어 파는 기분이었어. 그들의 눈에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지. 그저 살아있는 저울추, 혹은 시끄럽고 냄새나는 가구 같은 거였어.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나는 파김치가 되어 쓰러졌지. 남편의 거친 손이 나를 더듬을 때, 나는 쾌락이 아니라 또 다른 고된 노동을 느끼곤 했어. 그렇게 우리는 짐승처럼 일하고, 짐승처럼 사랑하고, 짐승처럼 아이를 낳았지. 우리의 삶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어.』
그런 그녀에게, 혁명의 첫 소식은 추상적인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육체의 해방에 대한 약속이었다.
『바스티유가 무너졌다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처음으로 허리를 펴고 웃었어.』 그녀의 기억 속에서, 그날의 시장은 흥분으로 들끓고 있었다. 생선 대신 혁명에 대한 소문이 좌판 위에서 팔려나갔다. 『누군가 외쳤지. ‘이제 왕도, 귀족도 없다! 이제 우리 모두가 주인이다!’ 나는 그 말을 믿었어. 아, 드디어 내 아이들이 배불리 빵을 먹을 수 있겠구나. 드디어 내 남편이 귀족 나리의 마차에 흙탕물을 뒤집어썼다고 채찍질당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드디어 나도, 저 잘난 마님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생선 값을 받을 수 있겠구나. 그날, 우리는 시장의 썩은 생선을 귀족 저택의 벽에 던지며 밤새 노래하고 춤을 췄어. 그날만큼은 우리 모두가 왕이었고, 여왕이었지.』
그녀는 혁명의 가장 순수했던 순간, 그 폭발적인 에너지의 중심에 있었다. 그녀는 방관자가 아니라 주체였다. 그녀는 1789년 10월, 굶주린 여성들이 빵을 요구하며 베르사유로 행진했을 때, 그 선두에 서 있었다.
『그날은 비가 내렸어. 진창 길이 우리의 낡은 신발을 집어삼켰고, 차가운 빗물이 우리의 속옷까지 적셨지.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어. 우리 손에는 창과 식칼이 들려 있었지만, 우리의 진짜 무기는 굶주림이었어. 수천 명의 굶주린 어미들이 내지르는 함성은, 그 어떤 대포 소리보다도 무서운 법이지. 우리는 베르사유에 도착했어. 그 황금으로 도배된 궁전은, 마치 우리를 비웃기 위해 지어진 것 같았지. 우리는 소리쳤어. “빵을 달라! 빵집 주인을 파리로 데려가자!”』
그녀의 묘사 속에서, 베르사유 행진은 하나의 거대한 카니발이자, 억압된 육체의 반란으로 그려졌다.
『우리는 궁전 안으로 쳐들어갔어. 평생 그런 화려한 것을 본 적이 없었지. 대리석 바닥, 벨벳 커튼, 크리스털 샹들리에… 나는 내 더러운 맨발로 그 반질반질한 바닥을 디디며 묘한 쾌감을 느꼈어. 이것들이 전부 우리 아이들의 빵을 빼앗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았지. 우리는 왕비의 침실까지 쳐들어갔어. 그 ‘오스트리아 암캐’는 이미 도망친 뒤였지만, 그녀의 침대에는 아직 그녀의 체온과 향수 냄새가 남아 있었지. 한 여자가 그 비단 시트 위에 올라가, 마치 제 침대인 양 드러눕더군. 우리 모두는 미친 듯이 웃었어. 그것은 단순한 행패가 아니었어. 그건 전복(顚覆)이었지. 수 세기 동안 우리를 짓눌러 온 질서의 위아래를 뒤집어엎는, 신성한 의식이었어.』
그러나 그 승리의 기억은, 곧 쓰디쓴 배신의 기억으로 변질되었다. 혁명은 그들의 손에서 떠나, 말 잘하는 변호사와 냉혹한 지식인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왕을 파리로 데려왔어. 이제 모든 게 잘될 거라고 믿었지.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어. 빵 값은 여전히 비쌌고,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배를 곯았지. 대신 광장에는 단두대라는 흉측한 물건이 세워졌어. 처음에는 귀족들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걸 보며 통쾌해했지. 꼴좋다, 인민의 피를 빨아먹던 거머리 놈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 단두대 위로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어제까지 함께 술을 마시던 이웃이, 시장에서 나랑 말다툼을 했던 과일 장수가, 심지어 우리와 함께 베르사유로 행진했던 여자들까지.』
혁명의 언어는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공화국’, ‘덕성’, ‘일반의지’ 같은 단어들은 굶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단어들이 새로운 종류의 채찍이 되어 그들을 위협했다.
『그 잘난 양반들은 이제 우리를 ‘인민’이라고 부르더군.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인민’은 우리가 아니었어. 그건 그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어떤 유령 같은 거였지. 그들은 ‘인민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였어. 지롱드파가 어쩌고, 자코뱅이 어쩌고… 우리한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어. 이웃이 나를 ‘반혁명분자’라고 고발할까 봐 두려워, 밤에도 잠을 설쳤지. 희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끈적끈적한 공포가 안개처럼 들어찼어. 혁명은 우리에게 빵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대신 우리에게서 마지막 남은 것, 즉 이웃에 대한 믿음마저 빼앗아간 거야.』
카트린의 비극적인 최후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사소하고도 비열한 개인적 원한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야말로 공포정치의 가장 끔찍한 본질이었다.
『내 옆 좌판에 마르고라는 여자가 있었어. 늘 내 손님을 빼앗아 가고, 내 생선이 신선하지 않다고 헛소문을 퍼뜨리던 교활한 여자였지. 혁명 전에는 그저 서로 욕하고 머리채나 잡고 싸우는 게 전부였어. 하지만 혁명은 그녀의 손에 새로운 무기를 쥐여주었지. 바로 ‘고발’이라는 무기.』
『어느 날이었어. 빵 배급이 또 줄어서, 사람들이 모두 흉흉해져 있었지. 한 손님이 내게 푸념을 하더군. “이럴 거면 차라리 왕이 있던 시절이 나았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맞장구를 쳤어. “그러게 말이에요. 그때는 최소한 빵 걱정은 덜 했는데.” 바로 그 말을, 마르고가 엿들은 거야.』
그날 저녁, 카트린의 허름한 집으로 공안위원회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남편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팔을 뒤로 꺾고, 돼지처럼 끌고 갔다.
『내 남편은 울부짖었고,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지. 나는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엄마 금방 돌아온다고 말하려 했지만, 내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어. 나는 그때 알았지. 내가 다시는 이 아이들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내가 다시는 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혁명 재판소는 재판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결론을 통보하는 의식에 불과했다.
『재판관은 창백하고 마른 사내였어. 로베스피에르의 유령 같은 놈이었지. 그는 내게 어려운 말로 질문을 퍼부었어. 공화국의 덕성을 배신했느냐, 반역자들과 내통했느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어. 내가 아는 언어는 생선 값과 빵 걱정뿐이었는데, 그가 아는 언어는 법과 이념뿐이었으니까. 내 뒤에서는 마르고가, 눈물을 흘리는 척하며 내가 왕을 찬양하고 혁명을 저주했다고 증언했어. 나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지. “이 거짓말쟁이! 이 독사 같은 년!” 하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 그들의 눈에 나는 이미 시체였으니까.』
마지막 순간, 단두대로 향하는 수레 위에서, 카트린은 혁명의 진짜 얼굴을 보았다.
『수레가 덜컹거리며 광장으로 가는 동안, 나는 길가의 군중들을 보았어. 그들 중에는 나와 함께 바스티유의 함락을 축하했던 얼굴도, 베르사유로 행진했던 얼굴도 있었지. 하지만 그들은 나를 외면하거나, 혹은 두려움에 찬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어. 몇몇은 내게 욕을 퍼붓고 오물을 던졌지. 그 순간, 나는 깨달았어. 혁명은 괴물이구나. 크로노스 신처럼, 제 자식들을 차례차례 삼켜버리는 굶주린 괴물이구나. 우리는 그 괴물을 풀어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고, 이제 그 괴물의 먹이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구나.』
『단두대 계단을 오를 때, 나는 내 아이들을 생각했어. 이제 누가 저 아이들에게 밥을 해줄까. 누가 추운 밤에 이불을 덮어줄까. 그 생각에 심장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 같았지. 사형 집행인이 내 목을 나무틀에 고정시켰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보았어. 그리고는 나를 지켜보는 군중을, 저 어리석고 가련한 ‘인민’들을 향해 내뱉었지. 내 마지막 유언을.』
그녀는 앙투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혹은 눈이 있었을 그 텅 빈 구멍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분노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외쳤어. “너희는 빵을 원했지. 하지만 저들은 너희에게 피를 주었다! 너희는 자유를 원했지. 하지만 저들은 너희에게 공포를 주었다! 속지 마라! 저들은 너희의 해방자가 아니라, 새로운 주인일 뿐이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칼날이 떨어졌어.』
카트린의 형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영혼들처럼 안개나 빛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다시 어둠 속으로, 그녀가 처음 나타났던 그 축축하고 더러운 구석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난 뒤, 다시 자신의 좌판으로 돌아가는 시장의 아낙처럼.
그녀가 남긴 것은 철학적 질문이나 영적인 고뇌가 아니었다. 그것은 굶주린 배의 통증, 자식을 잃은 어미의 절규, 그리고 배신당한 민중의 저주였다. 앙투안은 몸을 떨었다. 그는 지금껏 책을 통해 혁명을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달았다. 혁명의 진짜 역사는 잉크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피와 눈물, 그리고 땀으로, 카트린과 같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몸 위에 직접 새겨진다는 것을. 이 밤은, 그에게 신앙뿐만 아니라, 역사와 인간에 대한 그의 모든 지식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