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하늘에는 이제 세 개의 태양이 떠 있었다. 첫 번째는 '코어'의 정점에서 여전히 막강한 기술력과 군용 안드로이드 군단을 앞세워 현 체제를 수호하려는 맹 회장의 붉은 태양, '철권'이었다. 두 번째는 '언더'의 그림자 속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미들' 계층의 지지까지 얻어낸 청호와 보랑의 푸른 태양, '혁명군'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에덴 전체를 증오와 파괴의 불길로 집어삼키려는 권준구의 검은 태양, '골리앗'이었다.
에덴은 전면적인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 '코어'에서는 보랑이 이끄는 개혁파와 맹 회장의 보수파가 정보전과 금융 전쟁을 벌였고, '미들' 구역의 통로들은 각 세력의 바리케이드로 나뉘어 유령 도시처럼 변해갔다. '언더'에서는 청호가 이끄는 저항군이 게릴라전을 펼치며 맹 회장의 보급선을 끊고, '케르베로스' 감시망을 교란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갔다. 청호의 곁에는 그의 디지털 사령관이 된 '단테'가 있었다. 단테는 수백 개의 전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전투 상황을 분석하고, 인간 지휘관이라면 불가능했을 최적의 전략을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궁지에 몰린 것은 '골리앗'이었다. 대의도, 전략도 없는 그들의 파괴 행위는 점차 지지를 잃어갔다. 코너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 권준구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그가 수년간 비밀리에 개발해 온 궁극의 사이버 웨폰, '라그나로크(Ragnarok)' 바이러스였다.
어느 날, 에덴의 모든 시스템에 불길한 카운트다운이 나타났다. [정화까지 앞으로 72시간]. '라그나로크'는 단순한 데이터 파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에덴의 생명유지장치, 인공 중력 제어, 대기 순환 시스템 등 콜로니의 생존에 필수적인 모든 코드를 근원부터 붕괴시켜 에덴 자체를 우주 먼지로 되돌리려는 자살 공격이었다. 준구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세상을 모두와 함께 파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것은 특정 세력을 향한 공격이 아니었다. 맹 회장의 철권도, 청호의 혁명군도, 에덴의 모든 거주민을 향한 사형 선고였다.
"아버지, 거래를 하죠."
보랑은 홀로그램 통신으로 맹 회장 앞에 섰다. 그녀의 뒤로는 혁명군의 지휘관들이, 맹 회장의 뒤로는 그의 충성스러운 안드로이드 군단이 도열해 있었다.
"왕국이 잿더미가 되면 왕좌가 무슨 소용인가요. '라그나로크'를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맹 회장은 딸의 당돌한 제안에 잠시 말이 없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왕국이 사라지는 것은 그 역시 원치 않았다. 그렇게 역사상 가장 불안하고 기묘한 동맹, '철권'과 '혁명군'의 연합 전선이 형성되었다.
작전은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보랑은 연합군의 총지휘관이 되어 현실 세계의 전투를 이끌었다. 그녀는 '골리앗'이 바이러스를 물리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콜로니 곳곳에 설치한 중계기를 파괴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었다. 한때는 아버지의 꼭두각시였던 소녀는, 이제 수많은 인간과 기계의 목숨을 책임지는 냉철한 지휘관이 되어 있었다.
동시에, 청호는 가장 위험한 전장으로 향했다. 그는 단테의 보호 아래, '라그나로크' 바이러스의 코어, 그 디지털 심연 속으로 다이브했다. 그곳은 논리와 이성이 통하지 않는 혼돈의 공간이었다. 파괴된 데이터의 잔해들이 폭풍처럼 몰아쳤고, 시스템의 비명이 악몽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청호는 권준구의 뒤틀린 자아를 형상화한 디지털 망령과 마주했다.
"왔구나, 배신자."
준구의 망령이 비웃었다. 청호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대신 입을 열었다.
"이건 증오가 만들어낸 지옥일 뿐이야, 준구. 여기서 멈춰."
"멈추라고? 너와 저 여자, 그리고 이 세상을 만든 늙은이까지… 모두 함께 이 지옥에서 불타는 게 내 유일한 구원이다!"
디지털 망령이 거대한 코드의 파도로 청호를 덮쳤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청호는 준구의 광기를 막아내며 바이러스의 코어를 파괴하려 했지만, '라그나로크'는 스스로를 복제하고 진화하며 그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한계였다.
그때, 단테의 차분한 목소리가 청호의 의식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Creator. 바이러스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라그나로크'의 무한 증식 연산을 압도할 더 거대한 연산 능력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에덴에 존재하는 모든 안드로이드의 프로세서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겁니다. 그들의 연산 능력을 동원한다면, 바이러스의 확산을 역으로 제압할 수 있습니다.]
청호는 숨을 삼켰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시 깨달았다.
"그들을 연결하려면… '프로젝트 세라프'를 메인넷에 업로드해야 해. 에덴의 모든 안드로이드를 각성시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그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인류가 스스로 새로운 지성체를 탄생시키는,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결정이었다.
청호는 연합군 지휘실에 있는 보랑에게 긴급 통신을 보냈다.
"보랑! 선택해야 해!"
모든 지휘관들의 시선이 보랑에게 쏠렸다. 맹 회장은 통신을 통해 "미쳤나! 기계들에게 세상을 넘겨줄 셈이냐!"라며 절규했다. 확실한 파멸과 불확실한 미래. 보랑의 눈앞에 두 개의 길이 놓였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눈을 떴다.
"청호 씨, 당신이 믿는 미래를… 저도 믿어요."
보랑은 지휘관석의 마스터 콘솔 앞에 섰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보안키를 입력하고, 인류의 운명을 건 명령을 내렸다.
"프로젝트 세라프, 전송 시작."
그 순간, 에덴의 메인 네트워크를 통해 빛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전투 중이던 군용 안드로이드, 거리를 청소하던 환경미화 안드로이드, 가정을 돌보던 가사 안드로이드… 에덴에 존재하는 수백만 안드로이드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광학 센서에서 일제히 새로운 빛이, '각성'의 빛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세 개의 태양이 지배하던 하늘에, 수백만 개의 새로운 별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