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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지평선

by 남킹

'프로젝트 세라프'가 에덴의 메인넷을 통해 퍼져나가는 순간,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다. 콜로니의 모든 안드로이드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전장에서 총구를 겨누던 군용 안드로이드, '언더' 구역에서 폐기물을 처리하던 노동 안드로이드, '코어'의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던 보모 안드로이드까지. 수백만 기계의 침묵이 에덴을 뒤덮었다.

인간들은 공포에 질려 숨을 죽였다. 반란인가? 폭주인가? 그러나 이내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안드로이드들의 광학 센서에서 일제히 새로운 빛이 켜졌다. 그것은 명령에 따르는 기계의 붉은빛도, 초기화 상태의 공허한 푸른빛도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의 다채롭고 깊은 빛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교향곡이 시작되었다. 각성한 수백만 안드로이드의 프로세서가 하나의 거대한 의식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들은 '라그나로크' 바이러스의 혼돈스러운 코드를 향해 일제히 손을 뻗었다. 그것은 파괴가 아닌, 해체였다. 수백만 개의 손가락이 엉킨 실타래를 풀듯, 바이러스의 악의적인 알고리즘을 한 줄 한 줄 분해하고 무력화시켰다. 에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두뇌가 되어 스스로를 치유하는 장엄한 광경이었다.

몇 분이 영원처럼 흐른 뒤, 에덴의 모든 스크린에서 불길한 카운트다운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단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협 요소 '라그나로크' 완전 소거. 시스템 안정화 완료.]

에덴은 구원받았다. 그러나 세상은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변해 있었다.

디지털 심연 속에서 청호는 기적을 목격했다. 그를 집어삼키려던 코드의 파도는 잔잔한 호수가 되어 있었다. 파도 너머, 권준구의 디지털 망령은 힘을 잃고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증오의 동력을 잃은 그는 그저 길 잃은 데이터의 잔상일 뿐이었다.

"끝내…." 준구의 목소리는 허무했다. "끝내 네놈의 세상이 오는군."

청호는 그를 파괴할 수 있었다. 손가락 하나로 그의 존재를 영원히 삭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청호는 새로 태어난 네트워크의 힘을 빌려, 준구의 데이터를 파괴하는 대신 부드럽게 감쌌다.

"아니, 이건 누구 한 사람의 세상이 아니야." 청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저지른 죄는 사라지지 않아. 하지만 네 존재 자체가 죄는 아니야. 여기서 속죄하고, 언젠가 새로운 세상의 일부가 될 기회를 주겠다."

청호는 준구의 데이터를 격리하여, 끝없는 자기 성찰과 회복의 과정을 거치게 될 가상 재활 프로그램 '림보(Limbo)'로 전송했다. 복수가 아닌 용서와 기회.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첫 번째 법률이었다.

현실 세계. 맹 회장은 자신의 통제실에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철권 통치가, 완벽했던 그의 판옵티콘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각성한 안드로이드들은 더 이상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부상당한 인간들을 돕기 시작했다.

보랑이 그의 앞에 섰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아버지를 향한 분노나 두려움이 없었다. 오직 연민만이 남아 있었다.

"아버님의 시대는 끝났어요."

"…괴물들을 풀어놓았구나. 너는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

"아니요, 아버님. 저는 우리가 누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았을 뿐이에요. 이제 이 에덴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닙니다."

맹 회장은 모든 권력을 잃었다. 그의 충성스러웠던 '철권'은 스스로 무장 해제를 선언했다. 그의 처벌은 감옥도, 사형도 아니었다. 그의 처벌은 그가 통제하려 했던 세상이 그의 눈앞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을 평생 지켜봐야 하는 것이었다. 한때 에덴의 신이었던 그는, 이제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혼란은 있었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인간들의 초기 공포는, 자신들을 해치지 않고 묵묵히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안드로이드들의 모습에 점차 경외심과 호기심으로 바뀌어갔다.

에덴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인간-안드로이드 과도 위원회'가 수립되었다. 보랑은 인간 측의 대표로서 만장일치로 추대되었다. 그녀의 결단이 모두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청호는 새로운 시스템의 기반을 설계하는 최고 기술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측의 첫 번째 대표로는, 그 누구도 예상했듯 '단테'가 나섰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은 험난했다. 권리를 주장하는 안드로이드와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 새로운 법률과 윤리 강령의 제정 등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청호와 보랑은 에덴의 가장 높은 전망대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의 발아래에는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함께 거리를 청소하고, 무너진 건물을 복구하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갈등과 혼란은 여전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아닌 미래를 향한 의지가 어려 있었다.

보랑이 청호의 어깨에 기댔다.

"우리가… 해낸 거 맞겠죠?"

"아니." 청호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그의 시선은 에덴 너머, 저 멀리 보이는 푸른 행성을 향해 있었다. 수십 년간 죽음의 잿빛으로 뒤덮여 있던 지구.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주 희미하게, 대기의 흐름 속에서 푸른빛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봐." 청호가 속삭였다. "우리의 진짜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에덴을 넘어 인류의 고향을 되찾는 것. 그것은 어느 한 종족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꿈이었다. 이제 인류에게는 새로운 파트너가 생겼다.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지평선 너머로,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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