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맨 우들스 1

by 남킹
전쟁이 끝났다. 그리고 황폐함만이 남았다. 인간은 사라졌고 도시는 파괴되었다. 차들은 멈추었고 도로는 잡초로 뒤덮였다. 붉은 모래바람이 끝없이 불었고 황색 비가 삽시간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세상은 방사능으로 뒤덮였고 바다는 검게 오염되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죽은 물고기가 끝도 없이 해안으로 밀려왔다. 죽은 것은 부패하고 악취는 만연했다. 세상은 이제 어디를 가나 지옥이었다. (<릴리안 나리>의 <호모 사피엔스 기록> <대멸종 편> 1장 9절)



우들스의 시작은 늘 그렇듯, 산만한 꿈에서 깰 때부터 시작한다. 꿈은 섞여 있고 느낌만 강렬하다. 이게 꿈이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그는 불어 터진 오줌보가 보내는 통증과 지친 세포가 보내는 게으름, 또 태양이 사라진 지상에서 어떻게든 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한데 섞인, 혼란스러움에 빠져들곤 한다. 갈등과 망각의 조합. 비정형의 현실 테두리를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느끼는 강한 향수. 그를 눈 뜨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향기였다.


실비아는 그녀의 짙고 푸른 눈동자를 그에게 응시했다.

“며칠을 잤는지 아세요?”

“이틀?” 그녀는 미소를 띠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흘이에요. 꼬박 나흘을 죽은 듯이 잠만 잤어요. 당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맞은편 모서리에 떠 있는 홀로워치를 쳐다봤다. 반투명한 실비아 속으로, 경고를 의미하는 알람이 낮은 음향으로 울리고 있다.


2166년 7월 11일. 오후 11시 44분. 조명이 천천히 밝아왔다. 그리고 실비아가 사라진다.


오랫동안 그는 그녀를 생각했다. 불면이 깊을수록 느낌은 커져만 갔다. 인공 태양은 오전 7시 정각이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가려진 방의 모든 틈으로, 피곤한 몸뚱이를 갉아대는 강렬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눈을 물들이는 붉은빛. 현실과 생각은 모호하고 느낌은 낯설기만 하다. 널브러진 육체.


그는 헝클어진 무질서로 새겨진 차이나타운을 헤매고 다녔다. 거칠게 제조한 구오롱스(Guolongs). 4세대 메탐페타민(Methamphetamine)을 구하러 다닌 것이다. 그를 재울 수 있는 유일한 마약. 가진 대부분 돈이 사라졌다. 당연히 환각은 길어지고 망각은 깊어졌다. 어떤 날은 생각한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때가 있었다.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인식이 돌아오면 그의 시간은 외로움과 슬픔으로 채워졌다.


그는 이제 흔적조차 흐릿한 그 시절의 거리와 골목, 가로등과 바람, 나무와 걸개를 기억하려 애썼고, 끄트머리 기억까지 차곡차곡 훑으며, 바다와 디젤 향을 맡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구부러지고 왜곡된 그의 머리에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그는 눈을 감은 듯 뜬 듯, 보는 듯 보지 않는 듯하며 어쩌면 그날, 그 마지막 날.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게 된 그 시점의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칠월의 밤바람 속에 향긋한 풀냄새가 났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창문을 끝까지 열었다. 도시의 불빛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하늘은 별 하나 없이 그냥 새까맣다. 사실, 별이 존재하는 하늘은 오래된 디지털 영상에만 존재한다. 대멸종 이전 말이다. 이미 한 세기 전의 일이다.


어둠에 해충을 걱정할 새도 없이, 그의 방 형광등에는 날 것들이 삽시간에 들어와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곤충은 포유류보다 훨씬 뛰어났다. 하늘과 바다, 대기와 땅이 모두 오염되고 대부분 동물이 멸종으로 접어들었지만, 곤충은 오히려 번창하였다. 그들은 이제 지상의 몇 안 되는 인간 거주지역을 온통 새까맣게 물들이고 있다. 이곳, 남태평양 한가운데, 예전 폴리네시아로 알려진, 배들의 도시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잠시 살충광을 쪼일까 하다가 관두었다. 불쌍한 생각이 든 것이다. 죽음에 대해 애처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지극히 피상적인 발상이지만, 그나마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살상이 더 일어났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숭숭하며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속옷 차림이었지만 그다지 가볍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계속 창문을 열어 두기로 했다. 벌레는 귀찮지만 바람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가 묵고 있는 방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텔이다. 땅에 세워진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다. 배들을 엮어 만든 도시는, 태양이 비추는 어느 곳이든, 혼란과 무질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 모든 것을 어둠이 감싸 안는다. 반목, 폭력, 혼란, 갈등, 죽음, 절망이 검은 장막에 덮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여전히 지옥은 진행형이다.


그는 낮은 곳의 깨알 같은 불빛을 본다. 밤의 멋진 전망 속에, 살포시 훑고 지나가는 바람 속에, 그는 비로소 안심한다. 어둠 속에 모든 가난다움과 죄스러움이 숨겨진다는 게, 어찌 보면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도 잠시 휴식 속에 갖는, 혹은 맛있는 빵이라도 먹으면서 겪게 되는 찰나의 행복이 있다는 전제가 되므로 사실, 이 순간만이 비로소 편안하다고 해야겠다.


**********


그는 메신텔에 기록된 영상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한다. 지령은 간결하였다. 지구령 8개월 만에 그의 7번째 대상이 선정되었다.


2166년 7월 12일이 막 시작하였다. 그의 생일까지 17일이 남았고, 태양계의 세 번째 식민지인 타이탄 서클에서 외둥이로 태어난 지 77세를 목전에 둔 날이었다. 고향에서는 여전히 청년 취급을 받지만, 폭력과 살상이 넘쳐나는 태양계 1 섹터에서는, 신기하게 살아남은 자로 일컬어지는 럭키맨으로 통용된다.


남킹의 문장 1 브런치 스토리 (4).jpg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2023-12-08T141721.608.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극 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