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년의 바이마르, 시간의 태피스트리는 나폴레옹이라는 거대한 방추(梭)에 의해 격렬하게 짜이고 있었으나,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살롱 안에서만큼은 그 격동의 실올이 잠시 그 숨을 고르는 듯했다. 공기는 로코코풍 향수와 갓 내린 커피의 증기, 그리고 지적 허영이 발산하는 미묘한 체취로 끈적하게 농축되어 있었다. 실내의 모든 사물, 즉 베네치아산 크리스털 샹들리에에서 반사되는 촛불의 파편들, 페르시아 카펫의 복잡한 아라베스크 문양, 상아로 장식된 피아노의 침묵하는 건반조차도 하나의 거대한 연극을 위해 정교하게 배치된 무대장치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연극의 주인공은 단연코, 살롱의 여주인이자 소설가인 요한나였다. 그녀의 움직임은 잘 조율된 푸가(fuga)와 같았다. 한 그룹에서 다른 그룹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던지는 경쾌한 농담, 부채 뒤에 숨긴 채 교환하는 비밀스러운 눈짓,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사내들의 찬사에 보답하는 계산된 미소. 그녀는 이 작은 우주의 창조주이자 유일한 입법자였으며, 그녀가 빚어낸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Vorstellung)’는 안온하고 우아했으며, 무엇보다도 예측 가능했다.
그러나 모든 정교한 구성에는 불협화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살롱의 한구석, 다른 손님들과의 교류를 차단하려는 듯 육중한 서가(書架)의 그림자 속에 자신을 유폐시킨 한 젊은이가 바로 그 불협화음의 근원이었다. 스물다섯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그의 존재는 이 유쾌한 연극에 대한 무언의,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모독이었다. 그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니, 참여하지 않는 것을 넘어,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언어적 교환 행위를 마치 현미경 아래 놓인 아메바의 군집처럼, 냉담하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단어들은 그의 귀에 의미를 지닌 기호(記號)의 연쇄가 아니라, 그저 공기의 진동, 즉 ‘의지(Wille)’가 제 자신을 객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의미한 음향의 파편으로만 들렸다. 쉴러의 이상주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문학평론가의 부풀려진 흉곽의 떨림, 칸트의 정언명령을 논하며 핑거푸드를 집어드는 법률가의 탐욕스러운 손가락의 움직임, 피히테의 ‘자아(Ich)’ 개념을 설명하며 은밀히 젊은 미망인의 어깨를 탐하는 대학교수의 번들거리는 눈빛. 아르투어에게 이 모든 것은 현상계(現象界)의 기만적인 베일 아래 꿈틀거리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삶에의 의지’의 발작적인 경련에 불과했다.
그의 육체는 그의 정신이 느끼는 경멸감을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꽉 끼는 프록코트의 깃은 그의 목을 조르는 교수형 집행인의 올가미처럼 느껴졌고,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려 속옷을 축축하게 적셨다. 그의 위장은 경련을 일으켰으며, 미간에는 깊은 골이 패어 마치 헤라클레이토스가 예견한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라는 명제를 제 자신의 얼굴에 각인이라도 하려는 듯 보였다. 그는 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연회’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그의 정신은 이미 이곳을 떠나, 플라톤의 이데아(Idea)가 유영하는 순수의 영역, 베단타 학파의 현자들이 설파한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고요한 바다, 혹은 칸트가 설정한 물자체(Ding an sich)의 불가해한 심연을 향해 비상하고 있었다. 그는 손에 든 와인잔의 차가운 감촉에 집중하려 애썼다. 액체 루비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부르고뉴 와인의 표면 위로, 샹들리에의 불빛이 마치 꺼져가는 별들의 군집처럼 아른거렸다. 그는 그 작은 우주 속에서 뉴턴이 프리즘으로 분해했던 빛의 스펙트럼이 아니라, 빛과 어둠의 투쟁, 즉 현상과 본질 사이의 영원한 길항(拮抗) 관계를 보았다. 괴테가 그의 색채론(Farbenlehre)에서 주장했듯, 색은 빛 자체의 변용이 아니라, 빛이 어둠이라는 근원적 실체와 만나 투쟁하고 타협하며 빚어내는 생리적이고 역동적인 현상이었다. 이 살롱의 모든 허위와 기만은 눈부신 빛의 유희와 같았고, 진실은 오직 저 심연의 어둠 속에, 침묵 속에 존재했다.
"저 음울한 젊은이 좀 보게."
한 귀부인의 목소리가 비단 부채를 스치는 소리와 함께 아르투어의 고독한 성채(城砦)를 침범했다. 그녀는 근처에 있던 다른 여성들에게 속삭였다.
"요한나의 아들이라지. 어미는 저리도 빛나는데, 아들은 어찌 저리도 제 그림자만 파먹고 사는 유령 같은지. 듣자 하니 박사 논문인가 뭔가를 썼다는데, 그 제목부터가 사람 질리게 하는 것이었다더군. ‘충족 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라니! 세상에, 그런 따분한 주제로 대체 누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여인들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독침처럼 그의 고막을 찔렀다. 웃음소리는 단순한 공기의 진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체화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에 갇힌 가련한 존재들이, 자신들과 다른 종(種)에 속한 개체를 발견했을 때 보이는 원초적인 배타성과 공격성의 발현이었다. 그들은 아르투어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반응은 조롱과 경멸이었다. 아르투어는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쇼펜하우어 가문(家門)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플로리스 쇼펜하우어. 그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이 기만적인 현상계의 유통업자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창고의 어두운 통풍창에서 떨어져 죽었다. 자살이었으리라. 이 세계의 부조리함을 견디지 못한 자의 유일하고 정직한 퇴장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요한나.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에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자신의 이름을 건 살롱을 열고, 값싼 명성과 얄팍한 지성으로 제 삶을 치장하는 길을 택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아들에게는 세계의 본질을 직시하게 한 비극적 계시였으나, 어머니에게는 더 자유로운 사교 활동을 위한 해방의 서곡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근원적인 인식의 차이가 모자(母子)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을 파놓았다.
바로 그때였다. 살롱의 웅성거림의 결이 미묘하게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수많은 작은 시냇물들이 하나의 거대한 강으로 합류하듯, 흩어져 있던 시선들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고,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바이마르의 살아있는 신화, 공작의 총애를 받는 추밀원 고문관, 유럽 정신의 현신(現身),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으나, 그의 존재감은 주변의 모든 인물들을 희미한 배경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세는 꼿꼿했으며, 형형한 눈빛은 마치 제우스의 독수리가 지상의 가련한 인간 군상들을 굽어보는 듯한 위엄과 통찰력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의 시대였고, 하나의 정신사(精神史)였다. ‘파우스트’의 고뇌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열정과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이 그의 주름진 얼굴과 단단한 골격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의 등장은 살롱의 모든 대화를 일순간에 값싼 복제품으로 전락시켰다. 진품(眞品)이 나타나자, 모든 위작(僞作)들은 부끄러움에 제 빛을 잃었다.
요한나가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다가가 가장 화려한 미소와 가장 교태 섞인 목소리로 그를 맞았다. 괴테는 여주인의 환대에 기품 있게 응대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이미 이 방 전체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피상적인 예의와 대화의 거품을 걷어내고, 각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무게를 저울질하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시선이 방 한구석의 그림자 속에 갇힌 젊은 불협화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에게 닿았다.
괴테는 아르투어를 조롱하던 귀부인들의 무리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접근에 여인들은 마치 신의 강림을 목격한 님프들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수다를 멈추었다. 괴테의 낮은 저음이 울려 퍼졌다.
"무엇이 그리 즐거우시오, 부인들?"
한 여인이 용기를 내어, 그러나 여전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추밀원 각하. 저기 저 젊은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나 부인의 아드님 말입니다. 어찌나 세상만사에 무심하고 음울한지, 저희끼리 작은 농담을 나누고 있었을 뿐입니다."
괴테는 여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 그림자 속의 아르투어를 한동안 말없이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마치 연금술사가 미지의 원소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깊은 탐색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는 아르투어의 찌푸린 미간에서 단순한 젊은 날의 치기가 아니라, 세계의 고통을 제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인 자의 숭고한 낙인을 보았다. 그의 굳게 닫힌 입술에서 사교성의 결여가 아니라, 진실이 아닌 것을 발설하기를 거부하는 지성의 정직함을 읽었다. 그의 고독 속에서, 그는 무수한 타인과의 공허한 관계보다 더 풍요로운 내면의 우주를 감지했다.
괴테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인들을 향해 나직하지만 방 전체를 울리는 듯한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Lassen Sie den jungen Mann in Ruhe. Er wird einmal größer sein als wir alle."
(그 젊은이를 그냥 놔두시오. 그는 언젠가 우리 모두보다 위대해질 것이오.)
순간, 살롱의 모든 소음이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 사라졌다. 시간은 멈추었고, 공간은 얼어붙었다. 킥킥거리던 여인들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가셨고, 주변에서 이 광경을 훔쳐보던 사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요한나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과 당혹감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바이마르의 신, 살아있는 올림포스의 신이, 그녀의 문제아 아들에게 신탁(神託)을 내린 것이다.
아르투어에게 그 목소리는 천둥과도 같았고, 동시에 세례의 물과도 같았다. 수십 년간 자신을 짓눌러왔던 세상의 몰이해라는 거대한 빙하에, 괴테의 언어라는 예리한 정(釘)이 내리꽂혀 균열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방망이질쳤다. 혈액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는 증기처럼 뜨거워져 그의 뺨으로 몰려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괴테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 눈빛 속에서 그는 자신을 판단하는 심판관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종(種)의 영혼을 알아본 동족(同族)을 발견했다. 인정에 대한 갈망. 그것은 그가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았던 ‘의지’의 가장 교활한 속성이었으나, 바로 이 순간만큼은 그 갈망이 구원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괴테의 인정은 이 허위의 세계가 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세계를 초월할 수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고독한 비상의 허가증이었다.
그날 이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괴테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조용히 초대하기 시작했다. 요한나의 살롱이 피상적인 담론이 떠도는 공허한 광장이었다면, 괴테의 서재는 진리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신성한 지성소(至聖所)였다. 방 안은 오래된 양피지와 광물 표본, 그리고 마른 식물들의 냄새로 가득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먼지 입자들을 황금 가루처럼 흩뿌리며, 책상 위에 놓인 프리즘과 렌즈들을 통과해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색채(色彩)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에서 색은 단순히 망막에 맺히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진리에 접근하는 통로, 즉 철학 그 자체였다. 괴테는 뉴턴의 광학 이론에 깊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뉴턴에게 빛은 희고 순수한 원형이었으며, 색은 그 빛이 프리즘이라는 고문기구에 의해 분해되어 나타나는 파편에 불과했다. 그것은 빛에 대한 수학적이고 기계론적인 폭력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색이 빛과 어둠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탄생하는 살아있는 현상이라고 믿었다. 어둠은 단순한 빛의 부재가 아니라, 빛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원초적 실체였다.
아르투어는 이 지점에서 괴테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한 단계 더 심화시켜 자신만의 형이상학적 체계로 끌어들였다.
"각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아르투어의 목소리는 서재의 고요함 속에서 유난히 명료하게 울렸다. "뉴턴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현상을 또 다른 현상으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는 빛의 스펙트럼을 발견했지만, 색채라는 ‘체험’ 자체의 본질은 놓쳐버렸습니다. 그러나 각하,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빛과 어둠의 투쟁, 그것은 결국 제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의지’와 ‘표상’의 투쟁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일어나 서재를 천천히 걸으며 말을 이었다. 그의 몸짓에는 더 이상 살롱에서의 불안과 위축이 없었다. 오직 지적인 확신에 찬 자의 단호함만이 있었다.
"어둠, 그것은 '물자체', 즉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는 근원적 실체인 ‘의지’와 같습니다. 그것은 형태도 없고, 목적도 없으며, 그저 맹목적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반면에 빛은 ‘인식’, 즉 주관(主觀)의 작용입니다. 우리의 지성이 이 맹목적인 의지의 세계에 인과율과 시공간이라는 격자(格子)를 들이댈 때, 비로소 ‘표상’으로서의 세계, 즉 현상계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색채란, 바로 이 빛과 어둠, 인식과 의지가 만나는 경계에서 피어나는 가장 극적인 현상입니다. 푸른 하늘은 무한한 어둠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대기의 혼탁함이라는 매질을 통과한 빛의 좌절된 모습이며, 저녁노을의 붉은빛은 빛이 지평선 너머의 어둠 속으로 소멸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토해내는 격렬한 단말마와도 같습니다. 색은 세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세계의 근원적 고통을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괴테는 턱을 괸 채, 젊은 철학자의 열정적인 독백을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는 아르투어의 사상 전체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생명과 생성에 대한 긍정에 뿌리내리고 있었기에, 아르투어의 철학에 짙게 드리운 염세주의의 그림자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눈앞의 젊은이가 지닌 지성의 깊이와 독창성에 경외감마저 느꼈다. 그는 제자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대등한 정신을 지닌 대화 상대를 갈망했고, 바로 이 기이하고 과민하며 세상과 불화하는 젊은이에게서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아르투어의 눈에서 단순히 학문적 야심이 아니라, 진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불사를 준비가 된 순교자의 광기 어린 불꽃을 보았다.
그러나 이 지적인 밀월(蜜月)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다. 아들이 괴테의 총애를 받는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된 요한나는, 아르투어가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발판 삼아 바이마르 사교계의 총아(寵兒)로 거듭나기를 기대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더 부드러운 옷을 입고, 더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괴테와의 친분을 과시하여 유력한 인사들과 교류하라고 종용했다.
어느 날 저녁, 살롱 파티가 끝난 후, 요한나는 아들의 방으로 찾아왔다. "아르투어," 그녀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했으나 그 안에는 강철 같은 의지가 숨어있었다. "오늘 왜 폰 하르덴베르크 공작 부인께 인사를 올리지 않았니? 괴테 각하께서 친히 너를 소개해 주려고 하셨는데도, 너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자리를 피했더구나. 네가 대체 뭘 원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르투어는 읽고 있던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빙하처럼 차가웠다.
"제가 원하는 것은 어머니의 살롱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진리를 원합니다. 저들의 공허한 찬사와 거짓된 미소, 권력에 아부하는 비굴한 영혼들 사이에는 단 한 조각의 진리도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끌어들이려는 그 세계는 거대한 가면무도회일 뿐입니다.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서로를 속이고, 자신마저 속이며 광대의 춤을 추고 있지요."
요한나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가면이라고? 진리라고? 아르투어, 너는 아직도 세상을 모르는구나. 세상은 네가 책에서 배운 그런 관념의 유희가 아니란다. 세상은 관계이며, 평판이며, 영향력이다! 너는 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막대한 유산 덕분에 그런 고상한 놀음을 할 수 있는 게야. 하지만 나는 내 힘으로 내 세계를 구축했다. 내 소설, 내 살롱, 이 모든 것이 내가 저 ‘가면무도회’ 속에서 피땀 흘려 얻어낸 것이다. 그런데 너는 네 어미의 노력을 그렇게 경멸할 수 있냔 말이냐!"
"경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르투어는 마침내 책을 덮고 어머니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그의 눈빛은 추상같은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연민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평생을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오셨습니다. 타인의 인정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가련한 노예의 삶을 말입니다. 제가 괴테 각하를 존경하는 것은 그분의 명성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은 타인의 평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만 귀 기울여 위대한 작품을 일구어내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설령 그 길이 평생의 고독과 오해로 점철된다 할지라도, 저는 기꺼이 그 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이 무의미한 세계에서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품위 있는 삶의 방식이니까요."
그의 선언은 두 사람의 관계에 마지막 쐐기를 박는 것과 같았다. 요한나는 아들의 얼굴에서 자신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세계를 보았다. 그것은 그녀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부정하는, 위험하고 파괴적인 세계였다. 그녀는 몸을 떨며 방을 나갔고, 그날 이후 두 사람의 대화는 사실상 단절되었다.
아르투어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전의 고독과는 그 질이 달랐다. 이전의 고독이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자의 수동적인 상태였다면, 이제 그의 고독은 스스로 세상과 결별하기로 선택한 자의 능동적이고 자부심 가득한 결단이었다. 괴테라는 거대한 별이 그의 존재를 잠시 비추어주었지만, 그는 그 빛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위성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는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恒星)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책상에 앉아 펜을 들었다. 창밖의 바이마르는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내면에서는, 이제 막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그 창조의 서곡을 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텅 빈 양피지 위에 훗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될, 그 거대한 사상의 첫 문장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플라톤과 칸트, 인도의 현자들이 그의 어깨 뒤에서 숨죽인 채 그의 펜 끝을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그의 투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