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햇살, 잠시의 도피

by 남킹

베를린에서의 패배는 단순한 경력상의 좌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존재론적 좌표축 전체를 뒤흔드는 형이상학적 지진이었다. 그의 육체는 정신의 폐허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충실한 거울이었다. 밤이면 신경성 위경련이 내장을 비틀어 쥐어짰고, 음식은 위벽에서 염산과 뒤섞여 역류하며 식도를 태웠다. 그의 귀에서는 이명(耳鳴)이 그치지 않았는데, 그것은 텅 빈 강의실의 침묵이 그의 두개골 안에서 영원한 메아리로 변해버린 소리였다. 그는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점차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세계의 부조리함에 대한 최종적인 판결을 내리고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던 그 절망의 가면—을 닮아가는 것을 보았다. 북독일의 하늘은 납빛으로 낮게 드리워져 있었고,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는 그의 폐부로 스며들어와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듯했다. 이곳에서 공기 중에 떠도는 것은 안개와 석탄 연기뿐만이 아니었다. 헤겔이라는 이름의 지적 전염병, 즉 모든 모순과 고통을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라는 미명 아래 봉합해버리는 저급한 낙관론의 포자(胞子)가 편재(遍在)했다. 그는 질식해가고 있었다.

탈출. 그것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본능적 경련이었다. 그는 알프스 이남(以南)을 갈망했다. 고대 로마인들이 ‘Hic manebimus optime(이곳이 가장 머물기 좋으리라)’라 외쳤던 그 땅, 역사의 모든 위대함과 비극이 태양 아래 대리석처럼 풍화되고 있는 그 거대한 박물관. 그것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식론적 전이(epistemological transition)에 대한 염원이었다. 칸트적 범주(Kategorien)의 회색빛 감옥에서 벗어나, 감각적 현상(phenomenon)이 그 자체로 압도적인 실재가 되는 세계로의 도피. 플라톤의 이데아(Idea)가 관념의 하늘에서가 아니라, 빛과 색채의 지상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땅으로의 순례였다. 그는 의사에게 요양을 권유받았다는, 누구도 믿지 않을 핑계를 대고 짐을 꾸렸다. 그의 여정은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아니라, 지옥을 탈출하려는 오르페우스의 위태로운 발걸음과 같았다. 다만 그가 뒤돌아보지 말아야 할 것은 에우리디케의 그림자가 아니라, ‘독일 관념론’이라는 이름의 메두사였다.

알프스를 넘는 여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화 의식이었다. 마차는 좁고 험준한 산길을 삐걱거리며 기어올랐다. 아래로는 수천 척의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있었고, 위로는 인간의 오만을 비웃는 듯한 만년설의 봉우리들이 침묵 속에 서 있었다. 이 태고의 풍경 앞에서, 베를린의 하찮은 지적 논쟁들은 한순간에 의미를 잃었다. 저 거대한 바위의 단층과 빙하가 할퀴고 간 상처야말로 ‘의지’가 수억 년에 걸쳐 제 자신을 객관화한 가장 정직하고 장엄한 기록이었다. 헤겔의 변증법 따위는 저 영겁의 시간 앞에서 하루살이의 날갯짓보다도 하찮았다. 마침내 브레너 고개의 정상을 넘어 이탈리아 땅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질감이 변했다. 북쪽의 공기가 날카로운 유리 조각 같았다면, 남쪽의 공기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올리브유처럼 그의 피부를 감쌌다. 그리고 빛. 빛이 달랐다. 북구의 빛이 사물을 분석하고 해부하는 냉정한 이성의 빛이었다면, 이탈리아의 빛은 모든 것의 윤곽을 부드럽게 녹여내고 색채에 깊이를 더하는, 감각의 연금술이었다.

그는 로마에 당도했다. 영원한 도시.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영원이 아니라, 영원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과 그 필연적인 실패의 흔적들이었다. 포룸 로마눔의 부서진 기둥들은 마치 거인들의 앙상한 뼈대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한때 세계의 법률이 선포되고 역사의 향방이 결정되었던 이곳은 이제, 염소 떼가 풀을 뜯고 연인들이 밀회를 속삭이는 목가적인 폐허에 불과했다. 그는 콜로세움의 아치 아래에 서서, 눈을 감고 수만 관중의 함성과 맹수의 포효, 검투사의 마지막 비명을 들으려 애썼다. 이 거대한 원형 경기장이야말로 그의 철학을 위한 가장 완벽한 건축학적 은유였다. 수많은 개체들(검투사, 맹수, 관중)이 생존과 쾌락이라는 ‘의지’의 명령에 따라 서로를 죽이고 환호하는, 거대한 고통의 파노라마. 시저의 영광도, 제국의 권세도 결국은 이 맹목적인 의지의 순환을 한순간 화려하게 장식했다 스러져간 핏빛 거품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폐허의 도시에서, 그는 역설적인 구원을 발견했다. 그것은 예술을 통한 구원이었다. 그는 바티칸의 박물관으로 향했다. 수많은 걸작들 사이를 유령처럼 헤매던 그의 발걸음이, 벨베데레의 뜰에 놓인 한 조각상 앞에서 멈추었다. 라오콘 군상(Laocoön Group).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의 거대한 뱀에게 질식당하며 죽어가는 순간을 포착한, 고통의 대리석 교향곡.

그는 조각상 앞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의 온몸의 감각이 오직 눈으로만 집중되었다. 그는 더 이상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라는, 개인적인 고통과 실패의 기억에 짓눌린 한 개체(individuum)가 아니었다. 그의 주관(Subjekt)은 그의 의지(Wille)로부터 분리되어, 순수한 ‘인식의 주체(willenloses Subjekt der Erkenntnis)’가 되었다. 그는 라오콘의 뒤틀린 근육,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아들을 구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절망적인 무력감 속에서 개인 ‘라오콘’의 비극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고통’ 그 자체의 이데아, 즉 플라톤적 의미에서의 원형(原型)을 보고 있었다. 뱀은 맹목적이고 무자비한 운명, 즉 ‘의지’의 화신이었다. 라오콘의 저항은 그 의지에 맞서는 인간 실존의 헛되고도 숭고한 몸부림이었다.

이 미적 관조(ästhetische Kontemplation)의 순간, 그는 처음으로 진정한 평화를 느꼈다. 욕망도, 증오도, 불안도 없는, 오직 순수한 인식의 기쁨만이 존재하는 고요의 상태. 아타락시아(ataraxia). 이것이야말로 그의 철학이 제시하는 유일한, 비록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가능한 구원이었다. 의지의 수레바퀴가 잠시 멈추는 순간. 그는 빈켈만이 말했던 ‘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대함(edle Einfalt und stille Größe)’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은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고통을 관조함으로써 고통을 초월하는 경지였다. 그는 몇 시간이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의 몸은 미동도 없었으나, 그의 정신은 영원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로마의 장엄함에 지친 그는 나폴리로 향했다. 베수비오 화산이 거대한 괴물처럼 웅크리고 앉아 도시를 위협하는, 혼돈과 생명력이 들끓는 도시. 이곳의 삶은 로마처럼 기념비적이지 않았으나, 훨씬 더 원초적이고 격렬했다. 그는 이곳에서 뜻밖의 해방감을 맛보았다. 바로 젊은 영국인 여행객들과의 교류였다. 당시 그랜드 투어(Grand Tour)의 일환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영국의 귀족 청년들은, 그가 평생 경멸해온 독일의 현학적인 지식인들과는 전혀 다른 종족이었다. 그들은 로크와 흄의 경험론적 전통 속에서 자라나, 형이상학적 궤변보다는 구체적인 사실과 상식(common sense)을 존중했다. 그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구절을 인용하며 농담을 던졌고, 바이런의 시를 읊으며 나폴리만의 석양을 찬미했다.

아르투어는 그들 사이에서 뜻밖의 편안함을 느꼈다. 그의 완벽한 영어 발음과 영국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청년들을 매료시켰다. 독일 철학자 특유의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와 달리, 그는 때때로 신랄하고 냉소적인 유머를 구사하며 좌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사교’라는 행위를, 그것이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이루어질 때에는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청년들과 함께 배를 타고 카프리 섬으로 건너가, 티베리우스 황제의 별장 유적을 탐사했다. 푸른 동굴(Grotta Azzurra)의 신비로운 푸른빛 속에서, 그는 잠시 자신이 ‘의지’의 고통을 설파하는 염세주의 철학자라는 사실을 잊었다. 그는 그저 고전과 예술을 사랑하는 한 명의 박식한 신사일 뿐이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영국 청년들과 함께 나폴리의 한 야외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신선한 해산물과 토마토, 그리고 올리브유의 향기가 지중해의 저녁 공기 속에 감미롭게 퍼져나갔다. 멀리서는 만돌린 소리가 들려왔고, 베수비오의 실루엣 너머로 하늘은 오렌지색에서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키안티 와인에 취해, 호라티우스의 시를 라틴어 원전으로 암송하며 청년들의 찬사를 받고 있었다. 그의 뺨은 드물게 혈색이 돌았고,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마저 어려 있었다. 베를린의 악몽은 먼 전생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의 육체는 이완되었고, 그의 정신은 평온했다. 아마도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의 가장 근접한 형태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바로 그때, 하인이 그에게 편지 한 통을 건븄다. 낯익은 여동생 아델레의 필체였으나, 봉투의 밀랍은 서둘러 찍은 듯 거칠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편지를 열었다. 주변의 유쾌한 소음이 갑자기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편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것은 어머니 요한나의 사업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었다. 단치히에 있던 남편의 옛 사업 동료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가 파산하여 잠적해버렸다는 것이었다. 이제 어머니의 재산은 물론, 아르투어와 아델레에게 상속된 아버지의 유산마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절박한 내용이었다.

순간, 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폴리만의 아름다운 풍경은 한순간에 색을 잃고 잿빛의 배경으로 변했다. 만돌린 소리는 신경을 긁는 소음으로 돌변했고, 와인의 맛은 입안에서 시큼한 재처럼 썼다. 그의 심장이 차가운 쇠 집게에 꽉 붙들린 듯 옥죄어왔다. 그의 위장에서는 다시 격렬한 경련이 시작되었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고, 손은 제어할 수 없이 떨려 편지를 구겨뜨릴 뻔했다.

‘의지’였다.

그가 잠시 잊고 있었던, 그러나 결코 그를 놓아준 적이 없었던 그 거대한 괴물이 다시 그의 발목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돈, 상속, 가족, 의무, 법적 분쟁. 이것이야말로 ‘의지’가 현상계에서 제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추악하고 집요한 형태들이었다. 그가 로마의 예술품 속에서, 나폴리의 햇살 속에서 애써 구축했던 미적 관조의 성채는, 이 한 장의 편지 앞에서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내렸다. 그는 해탈한 ‘순수 인식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돈 문제와 가족이라는 끈적끈적한 거미줄에 얽힌, 욕망하고 고통받는 한 마리의 가련한 개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일 뿐이었다.

그는 영국 청년들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는 짧은 말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의 의아한 시선을 뒤로 한 채, 그는 비틀거리며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는 정처 없이 걸었다. 나폴리의 밤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이제 그 아름다움은 그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내면의 추함과 고통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잔인한 조명처럼 느껴졌다.

그는 깨달았다. 이탈리아로의 도피는 해결이 아니라, 마취에 불과했다. 예술을 통한 구원은 진정한 해탈이 아니라, 고통의 일시적인 유예(猶豫)일 뿐이었다. 진정한 싸움은 아름다운 남쪽 나라에서가 아니라, 저 차갑고 이성적인 북쪽의 땅에서, 즉 ‘의지’의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바로 그 현실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는 독일로 돌아가야만 했다. 헤겔의 망령이 배회하고, 어머니의 세속적인 욕망이 들끓고, 세상의 몰이해가 그를 기다리는 그곳으로. 그의 육체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이제 기이할 정도로 차갑고 명료해졌다. 이탈리아의 햇살은 그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다. 대신, 그것은 행복이 얼마나 덧없고 기만적인 것인지를, 그리고 고통이야말로 이 세계의 유일하고 영원한 실체임을 더욱 혹독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는 짐을 꾸렸다. 다시 알프스를 넘을 때, 그는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진리임을 제 자신의 삶을 통해 처절하게 증명하고 돌아가는, 상처 입은 예언자였다. 고슴도치는 잠시 햇볕을 쬐러 굴 밖으로 나왔었지만, 이제 다시 제 몸의 가시를 곧추세우고 어둡고 차가운 자신의 굴 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깥세상에는 온기란 없다는 것을, 오직 잠시의 환상만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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