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독(毒)이다. 그것은 영혼의 연약한 조직 속으로 스며들어 회의(懷疑)라는 괴저(壞疽)를 일으킨다. 드레스덴에서의 수년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세상의 침묵이라는 독을 매일같이 삼켰다. 그의 위대한 저서는 서점의 먼지 쌓인 선반 위에서, 마치 고대 유적지의 잊힌 비문(碑文)처럼 잠들어 있었다. 괴테의 희미한 인정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아서, 갈증을 잠시 잊게는 해주었으나 갈증의 근원인 사막 자체를 없애주지는 못했다. 그의 내부에서, 짓밟힌 지적 자존심은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담즙질의 증오(bilious rancor)로 변이하고 있었다. 그 증오의 대상은 명확했다. 그것은 지성의 성전(聖殿)을 더럽히는 바리새인들, 즉 독일의 강단 철학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바리새인들의 정점에는, 그들의 교황이자 살아있는 신(神)이 군림하고 있었다. 게오르크 빌헬helm 프리드리히 헤겔. 그의 이름은 단순한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정신(Zeitgeist) 그 자체의 동의어였다. 1819년의 베를린, 프로이센 왕국의 심장에서 헤겔의 철학은 단순한 학설이 아니라 국가의 공인된 신경계(神經系)였다. 그의 변증법(Dialektik)은 역사의 혼돈스러운 흐름에 신적인 이성의 질서를 부여했다. 정(正)과 반(反)의 투쟁을 거쳐 합(合)으로 나아가는 세계정신(Weltgeist)의 장엄한 서사는, 나폴레옹 전쟁의 폐허 위에서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려는 프로이센의 정치적 야망에 완벽한 형이상학적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절대정신(absoluter Geist)이 국가라는 형태로 마침내 지상에서 제 자신을 완전히 실현한다는 그의 결론은, 왕과 관료들의 귀에는 천상의 복음처럼 달콤하게 들렸다. 그의 철학은 진리였기에 권력을 얻은 것이 아니라, 권력에 봉사했기에 진리의 지위를 획득한 것이었다.
아르투어에게 헤겔은 철학의 적(敵)그리스도였다. 그는 헤겔의 저작들을 경멸적으로 탐독했다. 그 현란하고 모호하며 자기만족적인 문장들 속에서 그는 진리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라, 대중을 현혹하려는 소피스트의 교활한 기만술만을 발견했다. 헤겔이 말하는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라는 명제는, 아르투어에게 있어 현존하는 모든 고통과 부조리를 긍정하고 신성화하려는 가장 비겁하고 지독한 자기기만에 불과했다. 헤겔의 철학은 고통받는 인류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철학의 탈을 쓴 신학이었고, 이성의 옷을 입은 맹신이었다.
이 거대한 지적 사기극의 심장부를 향해 비수를 꽂아야만 했다. 침묵 속에서 서서히 썩어가느니, 차라리 적의 심장부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길을 택해야 했다. 그리하여 아르투어는 결심했다. 그는 베를린으로 갈 것이다. 헤겔이 군림하는 바로 그곳,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의 강단에 설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구직 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윗이 골리앗의 이마를 향해 조약돌을 날리기로 결심한 것과 같은, 성전(聖戰)의 선포였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야말로 진정한 조약돌, 즉 작지만 단단하고 치명적인 진리의 결정체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베를린의 공기는 드레스덴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드레스덴의 공기가 바로크 시대의 우아한 멜랑콜리로 가라앉아 있었다면, 베를린의 공기는 야심과 권력, 그리고 이성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종교적 광신으로 팽팽하게 충전되어 있었다. 아르투어는 대학에 강사직을 지원하며, 자신의 이력서와 함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와 박사학위 논문인 『충족 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를 제출했다. 그것은 서류가 아니라, 결투 신청장이었다.
교수회의는 그의 지원서를 놓고 당혹감과 조소가 뒤섞인 논의를 벌였다. 괴테의 추천서가 있었기에 무시할 수는 없었으나, 그의 저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설과 염세주의는 베를린 대학의 낙관적인 지적 풍토에 대한 근원적인 모독이었다. 특히 그의 지원서에 담긴 한 가지 요구는 그들의 오만함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만약 자신이 채용된다면, 헤겔 교수의 강의와 정확히 동일한 시간대에 자신의 강의를 개설해 줄 것을 희망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헤겔은,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잠시 동안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의 얼굴은 마치 역사의 모든 격동을 관조하며 그 이면의 필연성을 꿰뚫어 보는 세계정신의 얼굴처럼, 평온했으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의 제자들은 이 무모한 도발에 분개했지만, 헤겔 자신은 오히려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갓 부화한 독사가 제우스의 발목을 물려고 쉭쉭거리는 모습을 관찰하는 듯한, 거대한 존재의 여유를 보였다. 그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의 공개적인 시범 강의(Probevorlesung)를 통한 자격 심사를 허락했다. 그것은 자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장 잔인한 형태의 공개 처형을 예고하는 선고였다.
운명의 날, 시범 강의가 열리는 계단식 강의실은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청중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라는 무명의 철학자를 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헤겔을 보기 위해, 그리고 헤겔이 이 당돌한 이단아를 어떻게 지적으로 분쇄하는지를 목격하기 위해 모여든, 로마의 콜로세움을 가득 채운 관중과도 같았다. 공기는 팽팽한 기대감과 지적인 잔혹함에 대한 욕망으로 진동했다. 학생들, 교수들, 그리고 베를린의 지적 사교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명사들이 자리를 잡고 수군거렸다.
아르투어는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심장은 갈비뼈를 부술 듯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의 손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입 안은 바싹 말라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은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백 개의 시선을, 마치 곤충학자가 해부대 위의 벌레들을 내려다보듯, 냉담하게 마주했다. 그의 시선은 청중을 지나, 심사위원석 중앙에 앉아 있는 단 한 사람,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게 고정되었다.
헤겔은 쉰 살의 원숙한 거장이었다. 그의 육체는 다소 풍만했으나, 그 안에는 프로이센 국가처럼 단단하고 체계적인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범했으나, 그 평범함이야말로 그의 비범함을 감추는 완벽한 가면이었다. 그는 아르투어의 도발적인 시선을, 마치 거대한 강이 작은 조약돌의 저항을 느끼지 못하고 그 위를 흘러가듯, 무심하게 받아넘겼다.
아르투어는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약간 떨렸으나, 이내 자신의 사상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에 힘입어 강철 같은 울림을 되찾았다. 그는 자신의 철학 체계의 핵심을, 즉 세계가 맹목적인 ‘의지’의 끝없는 고통의 현현이라는 진실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사 제현," 그의 목소리가 강의실의 침묵을 갈랐다. "여러분께서는 지난 수십 년간 이 강단에서, 역사가 이성의 자기실현 과정이라는 달콤한 자장가를 들어오셨을 것입니다.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정신이 변증법적 필연성에 따라 움직이는 장엄한 드라마라는 말을 들어오셨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허위이며, 철학의 이름으로 행해진 가장 파렴치한 사기극임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강의실에 경악과 분노가 뒤섞인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아르투어는 그 반응을 즐기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청중을 둘러보았다.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세계의 본질은 이성이 아니라,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의지입니다. 역사는 진보의 과정이 아니라, 똑같은 고통이 다른 의상을 입고 무한히 반복되는 부조리극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그 위대한 ‘국가’란, 개개인의 이기심이라는 무수한 의지들을 억압하기 위한 필요악에 불과하며, 그것은 결코 절대정신의 현현이 될 수 없습니다. 철학의 진정한 임무는 이 끔찍한 진실을 직시하고, 이 고통의 수레바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탈의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지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부정하고 금욕과 자기희생을 통해 무(無)의 평온함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의 선언은 폭탄과도 같았다. 그는 단 몇 분 만에 헤겔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기둥, 즉 역사, 진보, 이성, 국가, 정신의 개념을 송두리째 부정해버렸다. 학생들의 얼굴에는 혼란과 적의가 떠올랐다. 그의 철학은 그들이 믿어왔던 모든 것을 파괴하는 허무주의의 망령처럼 보였다.
마침내, 헤겔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르투어의 열정적인 격정과 달리, 나른하고 심지어 약간은 지루하다는 듯한 억양을 띠고 있었다. 그는 아르투어를 직접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마치 제자에게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해주듯 말했다.
"흥미로운 주장이군요, 젊은이. 자네가 말하는 그 ‘의지’라는 것은, 말하자면 아직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는, 즉자적(an sich) 단계에 머물러 있는 정신의 미숙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신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소. 정신은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는 대자적(für sich) 단계를 거쳐, 마침내 자신과 세계의 통일을 인식하는 즉자-대자적(an und für sich) 단계로 이행하는 법이지. 자네의 철학은 이 위대한 변증법적 운동의 첫 단계, 즉 부정성(Negativität)의 측면에만 집착한 나머지, 그 부정을 지양(Aufhebung)하여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정신의 긍정적 힘을 보지 못하는 것 같군. 그것은 마치 나무의 성장을 이야기하면서 뿌리의 어둠만을 이야기하고, 그 어둠을 뚫고 나와 햇빛 속에서 꽃과 열매를 맺는 과정은 생략해버리는 것과 같소."
헤겔의 언어는 유려하고 권위가 넘쳤다. 그는 아르투어의 철학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르투어의 철학 전체를 자신의 거대한 체계 안으로 흡수하여, 그것을 미숙하고 불완전한 ‘한 단계’로 격하시켜 버렸다. 그것은 상대의 칼을 빼앗아 그 칼로 상대의 심장을 찌르는 것보다 더 잔인한 방식이었다. 그것은 상대의 칼을 녹여 자신의 갑옷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아르투어는 이 교활한 지적 포섭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 "궤변입니다! 각하께서는 제가 제시한 구체적인 고통의 현실을, ‘부정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유희 속으로 도피시키고 있습니다. 현실의 맹목적인 의지는 결코 당신이 말하는 그 ‘정신’의 일부로 지양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비합리적인 실체로서 현존할 뿐입니다!"
헤겔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현실이 비합리적이라고? 젊은이, 그것은 아직 자네의 이성이 현실의 내적 합리성을 파악할 만큼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증거일 뿐이오. 세계정신은 자네의 조급한 비관주의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법이지."
그 순간, 아르투어는 자신이 이 싸움에서 이미 졌음을 깨달았다. 그는 진리를 말하고 있었지만, 청중은 권위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는 날카로운 해부용 메스를 들고 있었지만, 헤겔은 안개와 구름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마법사와도 같았다. 그의 논리는 헤겔의 현란한 개념의 장막 앞에서 힘을 잃고 무력화되었다. 청중석에서는 이제 노골적인 조소와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아르투어를 진지한 철학자가 아니라, 거장 앞에서 무모한 재롱을 부리는 어린아이로 보고 있었다.
시범 강의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처참한 패배로 끝났다. 대학은 마지못해 그의 강사직을 승인했지만,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더 큰 굴욕의 시작이었다. 그의 강의는 헤겔의 강의와 같은 시간에 개설되었다.
첫 강의 날, 아르투어는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강의실로 향했다. 복도 건너편에 있는 헤겔의 대형 강의실 앞은, 마치 개선 장군의 행렬을 맞이하는 군중처럼 수백 명의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지적 경외심과 흥분이 가득했다.
아르투어는 마른침을 삼키고 자신의 작은 강의실 문을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거대한 공간에 오직 다섯 명의 학생만이, 마치 난파선의 생존자들처럼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호기심보다 민망함이 더 커 보였다. 아르투어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연단에 섰다. 그는 준비한 강의 노트를 펼쳤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이 쓴 글자들이 아니라, 복도 건너편에서 울려 퍼지는 헤겔의 강의에 환호하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였다. 그 소리는 물리적인 벽을 뚫고 들어와 그의 고막을 찢고, 그의 영혼을 난도질했다.
그는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텅 빈 공간 속에서 힘없이 흩어졌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진리를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은 들어주는 이 없는 자의 공허한 독백에 불과했다.
다음 강의에는 세 명이 왔다. 그다음 주에는 단 한 명만이 나타났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 찾아왔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텅 빈 강의실, 수십 개의 의자들이 마치 무덤의 비석처럼 늘어선 그 차가운 공간에 홀로 서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베를린의 겨울 햇살은 아무런 온기도 없이, 바닥의 먼지 입자들만을 유령처럼 떠돌게 할 뿐이었다. 그는 실패했다. 완벽하고, 철저하며, 치욕적으로 실패했다. 그의 철학은 세상에 의해 거부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예 무시당했다.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받았다. 그것은 사형 선고보다 더 끔찍한, 존재의 말살 선고였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강의실을 나섰다. 그의 육체는 납처럼 무거웠고, 모든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그의 등은 패배의 무게에 짓눌려 굽어 있었다. 그는 복도를 걸었다. 건너편 헤겔의 강의실 문틈으로는 여전히 열광적인 웅성거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영원히 부서지고, 동시에 무언가가 영원히 굳어졌다. 세상에 대한 마지막 미련, 인정에 대한 가냘픈 욕망이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세상 전체에 대한, 특히 헤겔과 그의 아류들로 대표되는 지적 사기꾼들에 대한, 차갑고 불멸하는 증오의 성채가 세워졌다.
그는 더 이상 이들과 같은 언어로 싸우지 않을 터였다. 그는 더 이상 이들의 경기장에서 그들의 규칙대로 싸우지 않을 터였다. 그는 광야로 나갈 것이다. 그는 예언자가 될 것이다. 그는 저주를 퍼붓는 자가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자신의 저서 곳곳에 헤겔을 향한 독을 묻힐 것이다. ‘지성을 마비시키는 협잡꾼’, ‘강단 철학의 수괴’, ‘단어만 나열할 줄 아는 엉터리 사기꾼’. 그는 후대의 모든 사람들이 헤겔이라는 이름 뒤에 자신의 이 맹렬한 저주를 함께 기억하게 만들 터였다.
베를린에서의 결투는 그의 패배로 끝났다. 그러나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남은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길고 고독하며 결코 끝나지 않을 전쟁이 될 터였다. 그는 텅 빈 대학 건물을 걸어 나오며,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조용히 맹세했다.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는 저들이 모두 죽어 잊힌 뒤에도 살아남아, 저들의 무덤 위에 침을 뱉을 것이다. 고슴도치는 이제 제 몸의 모든 가시를 바깥으로 곧추세웠다. 그의 길 위에는 이제 그 어떤 온기도, 그 어떤 타협도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오직 얼음과 침묵, 그리고 진리라는 이름의 잔인한 복수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