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품과 부록, 뜻밖의 영광

by 남킹

시간은 칸트가 설파했듯, 인간 지성의 선험적(a priori) 형식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실체도 내용도 없는 텅 빈 직관이다. 그러나 이 텅 빈 형식은, 살아있는 유기체의 살과 뼈를 갈아 마시며 제 자신의 공허함을 채운다. 1850년대의 프랑크푸르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육체는 시간이라는 무자비한 사채업자에게 수십 년간 이자를 지불한 끝에 파산 선고를 받은 담보물과도 같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의 관절들은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그의 피부는 건조한 양피지처럼 얇아져 그 아래로 푸른 정맥의 지도가 비쳐 보였고, 머리카락은 만년설처럼 희게 내려앉았다. 그의 청력은 점차 감퇴하여, 세상의 소음은 이제 뭉툭하고 불분명한 웅얼거림으로 변해갔다. 그는 시간의 흐름을 달력이나 시계가 아니라, 제 몸의 점진적인 붕괴를 통해, 즉 썩어가는 육체의 유기화학적 과정을 통해 체감했다.

그의 정신은 그러나, 이 낡아빠진 육체의 감옥 속에서 오히려 더욱 예리하고 잔인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은 그를 잊었다. 혹은 애초부터 기억한 적조차 없었다. 그의 일생의 역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초판이 절판된 이후 재판조차 찍히지 못한 채, 지성사의 공동묘지 속으로 잊혀 가는 듯했다. 헤겔은 죽어서 신(神)이 되었고, 그의 제자들은 독일 대학의 모든 강단을 점령한 채 ‘절대정신’의 복음을 설파하고 있었다. 아르투어는 살아있는 채로 지적(知的)으로 매장당한 망령이었다. 그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수천 년 전의 죽은 철학자들과, 이제는 그 자신만큼이나 늙고 병든 푸들, 제2대 아트만뿐이었다.

이 기나긴 황혼 속에서, 그는 새로운 종류의 저술에 몰두했다. 그것은 더 이상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세우려는 건축학적 야심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고고학자의 작업과도 같았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자신의 사유의 여백에, 일기장에, 편지 초고의 뒷면에 흩뿌려놓았던 생각의 파편들을 수집하고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그의 주저(主著)라는 거대한 대륙에 편입되지 못한 채 버려졌던 작은 섬들과 암초들이었다. 인생의 지혜에 관한 아포리즘, 문체론에 대한 에세이, 소음의 해악에 대한 격렬한 비난, 자살과 성애(性愛)에 대한 도발적인 성찰, 유령과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찰까지. 잡다하고, 체계 없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의 편린들이었다.

그는 이 원고 뭉치에 냉소적인 제목을 붙였다.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 그리스어로 ‘부차적인 저작(Nebenwerke)’과 ‘남겨진 것(Zurückgelassenes)’이라는 의미. 그것은 이 글들이 자신의 핵심 사상에 비하면 그저 곁가지요, 지적 식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에 불과하다는 오만한 겸손의 표현이었다. 그는 이 원고를 들고 여러 출판사를 전전했다. 대부분은 문전박대했다. 잊힌 철학자의 신변잡기적 에세이 뭉치를 출판할 만큼 어리석은 출판업자는 없었다. 마침내 베를린의 한 작은 출판사, A. W. 하인(Hayn)이 헐값에, 그것도 저자에게 인세(印稅)를 한 푼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모욕적인 조건으로 출판을 수락했다. 아르투어는 수락했다. 그는 더 이상 명성이나 부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자신의 생각이, 설령 그것이 빵 부스러기일지라도, 활자라는 형태로 이 세상에 물질적인 흔적을 남기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것은 난파선의 생존자가 바다에 띄우는 마지막 유리병 편지와도 같았다.

1851년, 책은 거의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출간되었다. 아르투어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고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세상은 여전히 돼지들의 진창이었고, 그는 또 한 번 진주를 던졌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요새로 돌아와, 늙은 푸들과 함께 마인강 변을 산책하며, 혼잣말로 세상을 저주하는 이전의 삶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2년 후, 1853년. 그의 고독한 요새의 두꺼운 성문에, 아주 작지만 분명한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독일이 아닌, 그가 평생 동경해 마지않았던 나라,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존 옥센포드(John Oxenford)라는 이름의 한 무명의 저널리스트가, 당대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진보적 잡지인 『웨스트민스터 리뷰(Westminster Review)』에 「독일 철학의 이콘 파괴(Iconoclasm in German Philosophy)」라는 제목의 긴 논평을 기고했다. 그 논평은 거의 전부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라는, 영국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독일 철학자의 사상을 소개하는 데 할애되어 있었다. 옥센포드는 쇼펜하우어를 칸트 이후 독일 철학계를 지배해온 헤겔, 피히테, 셸링의 공허한 관념론을 분쇄하는 지적 다이너마이트로 묘사했다. 그는 특히 『소품과 부록』에 담긴 명쾌한 문장, 신랄한 위트, 그리고 삶의 구체적인 고통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극찬했다.

이 영국발(發) 포탄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독일 지성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독일의 한 여성 언론인, 린트너(Lindner)가 이 논평을 다시 독일어로 번역하여 베를린의 유력 신문인 『포스 신문(Vossische Zeitung)』에 발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지적으로 매장했던 바로 그 도시 베를린에서, 그의 부활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처음에는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이전처럼 출판사를 통해 전달되는 단발적인 독자의 편지가 아니었다. 그의 집 주소로 직접 배달되는, 절박하고도 열정적인 고백들이었다. 발신인들은 대학 교수나 철학도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의사, 법률가, 예술가, 은퇴한 군인, 심지어는 정체를 밝히지 않은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평생 막연하게 느껴왔던 삶의 고통과 부조리함, 세상의 허위와 기만을,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가 자신들을 대신해 명료하고도 정확하게 언어화해주었다고, 마치 평생을 찾아 헤맨 스승을 마침내 만난 듯한 감격적인 어조로 써 내려갔다.

아르투어는 이 편지들을 읽으며, 그의 늙고 냉소적인 심장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기이한 종류의 온기를 느끼는 것을 경험했다. 그의 육체는 미세하게 떨렸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몇 번이고 마른기침을 해야 했다. 이것은 그가 원했던 종류의 인정은 아니었다. 그는 철학 ‘체계’의 위대함을 인정받고 싶었지, 인생 상담가나 잠언 작가로 칭송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서투르고 열정적인 고백들 속에는, 헤겔의 제자들이 써내는 현학적인 논문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진실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의 철학은 강단의 유희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들의 상처 입은 영혼에 가닿는 실제적인 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을 두드리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오후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늙은 아트만은 그의 발치에서 평화롭게 코를 골고 있었다. 갑자기, 현관문에서 낮고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르투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방문객을 증오했다. 방문객은 그의 규칙적인 일과를 파괴하고, 그의 고독이라는 신성한 공간을 더럽히는 불청객이었다. 그는 무시하려 했지만, 노크 소리는 집요하게 이어졌다.

마지못해 문을 열었을 때, 그의 앞에는 서른 살가량의, 안경을 쓰고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옷차림은 단정했으나 값비싸 보이지는 않았고, 그의 손에는 아르투어 자신의 책, 『소품과 부록』이 들려 있었다.

"누구신가. 무슨 용무요?" 아르투어의 목소리는 녹슨 쇠문이 삐걱거리는 것처럼 거칠었다.

젊은 남자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의 목소리는 존경심과 흥분으로 약간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율리우스 프라우엔슈타트(Julius Frauenstädt)라고 합니다. 저는... 저는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어,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자(Schüler). 그 단어는 아르투어의 귀에 생소하고 이질적인 소리로 들렸다. 그는 평생 스승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예언자였고, 진단하는 의사였으며, 저주를 퍼붓는 자였지만, 누군가를 이끄는 스승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는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저 경배하는 듯한 눈빛 뒤에 숨겨진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지적 갈망인가, 아니면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유명인에게 기생하려는 세속적인 욕망인가?

"들어오시오." 그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몸을 비켰다.

프라우엔슈타트는 마치 성지에 들어서는 순례자처럼 조심스럽게 그의 서재로 들어섰다. 방 안은 책과 먼지, 그리고 노인의 체취가 뒤섞인, 농축된 고독의 냄새로 가득했다. 아르투어는 그에게 자리를 권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안락의자에 다시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으나, 그 눈꺼풀 아래에서 그의 정신은 날카로운 메스처럼 젊은이의 모든 것을 해부하고 있었다.

"자네가 들고 있는 그 책," 아르투어는 턱짓으로 『소품과 부록』을 가리켰다. "그것은 내 철학의 현관 응접실에 불과하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서 잠시 머물다 갈 뿐, 본 건물에는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지. 자네는 어디까지 들어와 보았는가?"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시험이었다. 통과의례였다. 프라우엔슈타트는 이 늙은 사자의 의도를 즉시 알아차렸다. 그는 긴장으로 마른입술을 혀로 축였다. "선생님, 저는 물론 그 책을 통해 선생님의 위대함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선생님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구해 읽었습니다. 아니, 읽었다기보다는, 지난 몇 달간 그 책과 씨름을 벌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씨름이라." 아르투어의 입가에 희미하고 냉소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말해보게. 내 철학의 아르키메데스적 지렛대, 즉 모든 것을 들어 올리는 단 하나의 지점은 무엇인가? 내 사상의 심장은 어디서 박동하고 있는가?"

프라우엔슈타트의 눈이 빛났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기다렸던 질문이었다. "그것은 주관(Subjekt)과 객관(Objekt)의 분리 불가능성에 대한 칸트적 통찰에서 시작하지만, 칸트가 남겨둔 ‘물자체(Ding an sich)’의 정체를 ‘의지(Wille)’라고 폭로한 바로 그 지점입니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지만, 그 표상의 이면에 있는, 그리고 나의 육체적 현존을 통해 직접적으로 체험되는 근원적 실체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의지라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르투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감은 듯했던 눈을 천천히 뜨고, 프라우엔슈타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늙고 피곤한 노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수십 년간 고독 속에서 벼려온, 서슬 퍼런 지성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더 나아가 보세. 그 ‘의지’는 개체화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를 통해, 시공간 속에서 무수한 현상으로 자신을 객관화하지. 그렇다면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Idea)’는 내 체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그것은 개별 현상과 맹목적인 의지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것은 더 깊은 함정이었다. 그의 철학에서 가장 미묘하고 오해하기 쉬운 부분 중 하나였다. 프라우엔슈타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의 뇌는 격렬하게 회전했다. 그의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데아는... 이데아는 의지가 아직 시공간과 인과율이라는 개체화의 원리에 의해 분열되기 이전 단계의, 직접적인 객관화입니다. 그것은 ‘사자(獅子) 그 자체’, ‘인간 그 자체’와 같은, 종(種)의 원형적 형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는 개별적인 사물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이데아를 직관하고 작품 속에 구현함으로써, 우리를 잠시나마 의지의 폭정에서 벗어난 순수한 관조의 상태로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술은 진정제이며, 철학은 수술입니다. 예술은 고통을 잠시 잊게 하지만, 철학은 고통의 근원을 도려내려 시도합니다."

그 대답이 끝났을 때, 서재 안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늙은 아트만이 잠꼬대를 하며 희미하게 낑낑거리는 소리만이 그 침묵을 가르고 있었다.

아르투어는 아주 천천히, 뻣뻣한 몸을 일으켜 벽난로 옆의 작은 찬장으로 다가갔다. 그는 먼지 쌓인 와인병 하나와 잔 두 개를 꺼냈다. 그는 잔에 붉은 액체를 따르며, 등을 돌린 채 나직하게 말했다.

"자네가 말한 ‘수술’은,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환자의 죽음으로 끝나지."

그는 돌아 서서 프라우엔슈타트에게 잔 하나를 건넸다. 그것은 인정의 표시였다. 제자로서, 혹은 최소한 대화할 가치가 있는 인간으로서의 인정. 프라우엔슈타트는 떨리는 손으로 잔을 받았다. 그의 심장은 감격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프라우엔슈타트는 그의 첫 번째 사도(使徒)가 되었다. 그는 스승의 사상을 해설하고, 옹호하며, 때로는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각색하는 일에 자신의 여생을 바쳤다. 그의 방문을 시작으로, 아르투어의 고독한 요새에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법률 고문관인 프리드리히 드루그트, 젊은 사법관 아담 도스, 그리고 훗날 그의 첫 번째 전기 작가가 되는 변호사 빌헬름 그비너까지. 그들은 모두 세상의 공식적인 철학에 환멸을 느끼고, 이 늙은 이단아의 저주와도 같은 진실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자들이었다.

아르투어는 이 뒤늦은 영광 앞에서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의 육체는 늙고 쇠약해졌지만, 그의 자아, 즉 그가 평생 부정하려 애썼던 ‘의지’의 가장 교활한 현신인 자아는, 이 숭배의 제물을 게걸스럽게 탐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거만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내심 그들의 방문을 기다렸고, 그들의 찬사에 굶주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신문과 잡지를 샅샅이 뒤졌고,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실린 기사는 따로 오려두었다.

어느 날 저녁, 모든 방문객이 돌아간 후,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는 서재의 불을 끈 채, 창밖으로 보이는 프랑크푸르트의 야경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도시의 불빛들은 마치 인간들의 덧없는 욕망이 피워낸 도깨비불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그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승리감을 맛보았다. 그는 살아남았고, 마침내 옳았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 승리감의 이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과 슬픔이 짙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 왜 그의 정신이 가장 날카롭게 빛나고, 그의 육체가 투쟁의 열기로 들끓던 젊은 시절이 아니라, 모든 것이 사그라들어가는 이 인생의 황혼녘에야, 세상은 뒤늦은 월계관을 씌워주려 하는가? 그리고 왜, 왜 하필이면 그의 위대한 본관(本館)이 아니라, 그저 응접실과 부속 건물에 불과한 『소품과 부록』을 통해서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서가로 다가갔다. 어둠 속에서 그는 손가락의 감각만으로, 낡고 해진 가죽 장정의 책 한 권을 찾아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그의 젊음, 그의 고독, 그의 모든 지적 정수가 담겨있는,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그의 맏아들. 그는 책을 꺼내어 차가운 표지를 제 뺨에 가져다 댔다. 그것은 마치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귀향하여 늙고 눈먼 충견 아르고스를 알아보는 것과도 같은, 슬프고도 장엄한 재회였다.

사람들은 이제 그를 칭송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으로 그를 이해하는가? 아니면 그저 그의 가장 이해하기 쉬운 부분만을 소비하며, 자신들이 그의 철학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는 승리한 것인가, 아니면 가장 교묘한 방식으로 패배한 것인가? 고슴도치는 마침내 세상의 인정을 받았지만, 그 인정은 그의 가장 날카로운 가시 몇 개를 뽑아 액자에 넣어 전시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위대한 저서를 끌어안은 채, 승리한 자의 고독 속으로,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비극 속으로, 다시 깊이 침잠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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