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이름으로 기록되지만, 진리는 종종 패배한 자들의 침묵 속에서만 발견된다. 1858년 2월 22일, 아르투어 쇼펜하아워는 자신의 출생이라는, 그가 평생에 걸쳐 그 근원적 오류성을 논증해온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날을 맞았다. 그의 인생은 표면적으로는 완벽한 패배의 연속이었다. 학계로부터의 추방, 대중으로부터의 외면, 동시대 거인들의 그림자 속에서의 기나긴 유배. 그는 지성이라는 광야에서 세례 요한처럼 외쳤으나, 그의 외침에 귀 기울인 자는 거의 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위해 가시관을 썼고, 고독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졌다.
그러나 역사의 변증법은 헤겔의 낙관적인 도식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아이러니한 경로를 따른다. 잊혔던 예언자의 무덤 위로, 아주 느리지만 확실하게, 새로운 세대의 순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848년 혁명의 실패 이후, 독일 부르주아지의 낙관적인 진보 신화는 폐허 속에서 그 기만적인 맨얼굴을 드러냈다. 현실은 이성적이지 않았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이 환멸의 시대에, 쇼펜하아워의 비관주의는 더 이상 정신병적인 염세주의가 아니라, 시대를 꿰뚫는 가장 정직한 진단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이제 대학의 썩은 강단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작업실에서, 법률가들의 서재에서, 환멸에 빠진 젊은이들의 비밀스러운 모임에서 속삭여지는 암호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70세 생일은, 한 잊힌 노인의 조용한 생일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시대정신(Zeitgeist)이 대관식을 치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변모했다. 그의 충실한 사도(使徒) 프라우엔슈타트와 그비너가 주축이 되어, 프랑크푸르트의 ‘엥글리셔 호프’ 호텔 연회장에서 성대한 축하연이 준비되었다. 아르투어는 처음에는 이 모든 소동을 경멸적으로 거부했다. "내 생일은 축하할 날이 아니라 애도할 날일세. 존재의 감옥에 갇힌 지 70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잔치를 벌이자니, 이 무슨 부조리란 말인가!" 그러나 그의 내면 깊숙한 곳, 그가 평생 부정하려 애썼던 ‘의지’의 가장 원초적인 현신인 허영심(Eitelkeit)은, 이 뒤늦은 영광의 제물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의 육체는 쇠약했으나, 그의 자아는 수십 년간 굶주린 끝에 마침내 차려진 이 만찬 앞에서 탐욕스럽게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연회 당일, 그는 수십 년간 입어온 낡은 프록코트 대신, 특별히 맞춘 검은색 벨벳 연미복을 차려입었다. 뻣뻣한 옷감은 그의 늙고 마른 육체를 갑옷처럼 옥죄었고, 평생 매본 적 없는 넥타이는 교수형 집행인의 올가미처럼 목을 졸랐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낯설고 기괴했다. 고독한 늑대가 양의 탈을 쓴 것 같기도 하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 자신의 시신에 수의(壽衣)를 입힌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얼굴 근육은 경직되어 미소를 짓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의 표정은 잔치에 초대된 주빈(主賓)이 아니라, 자신의 공개 처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그것과도 같았다.
연회장은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숭배자들로 가득 찼다. 그들의 면면은 그의 철학이 얼마나 이질적인 영혼들에게 가닿았는지를 보여주는 기묘한 파노라마였다. 머리를 길게 기른 낭만주의 시인과 냉철한 눈빛의 외과 의사가 나란히 서서 샴페인을 마셨고, 프로이센 군대의 훈장을 주렁주렁 단 퇴역 장교가 열정적으로 바그너의 음악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존경의 편지만을 보내왔던 익명의 숭배자들, 그의 책을 통해 삶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여성들, 그리고 이제 막 그의 사상에 매료되기 시작한 젊은 대학생들까지. 그들은 하나의 종교 집단처럼, 교주(敎主)의 등장을 경건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연회장의 모든 소음이 일순간 멎었다. 수백 개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들 속에는 경외, 숭배, 호기심, 그리고 약간의 동정심마저 뒤섞여 있었다. 아르투어는 마치 로마의 개선식에 끌려온 갈리아의 늙은 족장처럼, 뻣뻣하고 어색한 걸음걸이로 연회장을 가로질러 상석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길을 터주며 박수를 쳤다. 그 박수 소리는 그의 귀에 천둥처럼 울리면서도, 동시에 기이할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꿈, 혹은 죽기 직전에 보는 마지막 환영은 아닌가.
그는 자리에 앉아, 자신에게 쏟아지는 헌사와 찬사를 무표정하게 들었다. 프라우엔슈타트는 그의 철학이 독일 관념론의 어둠을 걷어낸 진리의 서광이라고 칭송했다. 한 법률가는 그의 윤리학이 칸트 이후 가장 위대한 도덕 철학적 성취라고 격찬했다. 시인들은 그를 위해 헌시를 낭송했고, 음악가들은 그가 좋아했던 로시니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모든 것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가 창조주이자 유일신인 작은 우주였다. 그의 육체는 의자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이 모든 광경을 아주 먼 거리에서, 마치 천문학자가 새로운 별의 탄생과 소멸을 관측하듯, 냉담하게 관조하고 있었다.
"보라," 그의 내면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것이 바로 명성(Ruhm)이라는 것의 본질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의 실체가 아니라, 타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허상(虛像)에 불과하다. 저들은 지금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의 책을 읽고 만들어낸 ‘쇼펜하우어’라는 관념의 우상에게 절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나는 지금 여기에 앉아, 소화불량과 관절염의 고통을 느끼며, 이 모든 소동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인데."
그는 자신에게 바쳐지는 은으로 만든 잔을, 신문 기사에 실린 자신의 생일 파티 소식을, 유럽 각지에서 온 축전을, 마치 남의 일처럼 무감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이 철옹성 같은 냉소주의를 단번에 무너뜨린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한 통의 편지였다. 늙고 희미해진 잉크로 쓰인, 여성의 우아한 필체. 그것은 그가 젊은 시절 바이마르에서 알았던, 그리고 괴테의 아들과 결혼했던 오틸리에 폰 괴테(Ottilie von Goethe)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그와 마찬가지로 늙고 병든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편지에는 지난 수십 년의 세월에 대한 회한과 함께, 젊은 시절 아무도 그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을 때, 자신의 시아버지였던 위대한 괴테와 자신만큼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노라는, 따뜻하고도 슬픈 회상이 담겨 있었다.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쇼펜하우어 박사님. 제 시아버지께서는 늘 말씀하셨지요. 저 젊은이는 언젠가 우리 모두보다 위대해질 것이라고. 세상은 너무 늦게야 그분의 예언이 옳았음을 깨달았군요. 부디 이 늙은 친구의 축하를 받아주시고, 당신의 위대한 정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편지를 읽는 아르투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연회장의 샹들리에 불빛이 뿌옇게 번져 보였다. 그의 굳게 닫혀 있던 감정의 수문이, 이 과거로부터 온 따뜻한 물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바이마르의 살롱, 자신을 조롱하던 여인들, 그리고 그 모든 소음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를 꿰뚫어 보았던 거인의 위엄 있는 얼굴. 괴테. 오틸리에. 그 이름들은 그의 혹독했던 지적 광야에서, 그가 만났던 거의 유일한 오아시스였다.
그의 육체는 감정의 격동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옆에 앉은 그비너에게 잠시 바람을 쐬고 싶다고 속삭였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호텔의 발코니로 나섰다. 밤공기는 차가웠으나, 그의 불타는 뺨을 식혀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난간에 기댄 채, 어둠에 잠긴 마인강을 내려다보았다. 강물 위로, 연회장에서 새어 나온 불빛과 음악 소리가 부서진 조각들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오틸리에의 편지를 꺼내, 희미한 불빛에 비추어 다시 한번 읽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밤 그가 받은 유일하게 진실한 선물이었다. 다른 모든 헌사들이 현재의 명성에 대한 찬양이라면, 이 편지는 그의 아무것도 아니었던 과거, 그의 고통과 고독의 본질을 기억하고 증언해주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다시 예전의 냉소적인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변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이 모든 것을 순수한 경멸의 대상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이 어리석고 감상적인 찬사들 속에도, 진실에 대한 인간의 서투른 갈망이 담겨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며칠 후, 그의 집으로 또 다른 뜻밖의 방문객이 찾아왔다. 엘리자베스 네이(Elisabet Ney)라는 이름의, 젊고 당돌한 여성 조각가였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명사들만을 모델로 삼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이제 그 명예를 쇼펜하우어에게 바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그의 흉상을 제작하여 그의 불멸의 정신을 대리석 속에 영원히 가두고 싶다고 말했다.
아르투어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내 육체는 썩어 없어질 감옥에 불과하오. 내 정신은 내 책 속에 있소. 그것을 읽으시오. 나를 조각할 필요는 없소."
그러나 엘리자베스 네이는 보통 여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의 냉소주의 이면에 숨겨진 인정에 대한 갈망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녀는 끈질기게 그를 설득했다. "선생님, 플라톤은 예술이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했지요. 하지만 어떤 그림자는, 실체보다 더 영원히 남는 법입니다. 선생님의 얼굴에 새겨진 그 고뇌와 통찰의 지도를, 후대의 사람들이 직접 보게 해야 합니다."
결국 그는 항복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예술의 대상이 되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몇 시간이고 작업실의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했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주변을 맴돌며, 캘리퍼스로 그의 두개골의 치수를 재고, 그의 피부 질감과 근육의 움직임을 탐색했다. 그녀의 손길은 차갑고 객관적이었으나, 그녀의 눈빛은 그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이 기나긴 정지(靜止)의 시간 속에서, 아르투어는 자신의 삶 전체를 반추했다. 조각가의 손에 의해 한 줌의 진흙이 서서히 자신의 형상을 갖추어가는 것을 보며, 그는 시간과 기억이라는 손에 의해 빚어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라는 존재의 정체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누구인가? 상인의 아들인가, 철학자인가? 패배자인가, 승리자인가? 세상을 경멸한 자인가, 아니면 세상의 사랑을 갈망한 자인가?
"선생님," 어느 날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선생님의 철학은 고통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르투어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창밖으로는 해가 지고 있었고, 작업실 안은 석고상들의 흰 그림자로 가득 찼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고 갈라져 있었다.
"가장 큰 고통은..." 그는 말을 멈추고, 마치 그 단어의 무게를 가늠하려는 듯 허공을 응시했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었소.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다는 것도 아니었소. 가장 큰 고통은, 내가 경멸하는 이 세상과, 그리고 내 자신의 일부가, 결국에는 똑같은 맹목적인 ‘의지’의 법칙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음을, 매 순간 확인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소. 내 안의 적과 싸우는 것이, 가장 지독한 전쟁이었지."
마침내 흉상이 완성되었다. 엘리자베스는 작품을 덮고 있던 천을 걷어냈다. 아르투어는 자신의 대리석 분신(分身)과 마주했다. 그는 숨을 삼켰다. 대리석은 그의 외면뿐만 아니라, 그의 내면까지도 남김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깊게 파인 미간의 고뇌, 굳게 다문 입술의 경멸,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넘어, 멀고 공허한 곳을 응시하는 눈동자의 슬픈 통찰. 그것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철학 전체를 압축해놓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는 조각상에 만족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인간은 자신의 기념비가 세워지는 것을 볼 때, 자신의 유한성을 가장 절실하게 깨닫는 법이다.
생일의 소란이 모두 지나가고, 조각가의 방문도 끝났다.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서재에 앉아, 프 Friedrich 니체의 전신(前身)이라 할 만한 어떤 시인이 남긴 시구를 조용히 읊조렸다.
"나는 이제 여정의 목적지에 지쳐 서 있다. 지친 머리는 월계관을 쓰고 있기도 힘들구나. 그래도 내가 했던 일을 기쁘게 돌아보는 것은,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라."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그 안에는 패배자의 회한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온 자의, 슬프지만 장엄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황혼의 월계관은 무거웠고, 가시로 만들어져 그의 늙은 이마를 찔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그가 평생의 고독과 맞바꾼, 그만의 것이었다. 고슴도치는 마침내 숲의 왕으로 추대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홀로 가시를 세운 채, 다가오는 영원한 겨울의 침묵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