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지 않기를

by 남킹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여자는 작별을 고했다.


낮은 하늘. 적막한 복도. 모두가 사라진 공간에, 여운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남자는 멀어지는 여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리고 천천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창백한 거리. 낙엽이 너절하게 뒹군다. 선명한 아쉬움이 덧없이 길게 걸려있다.

남자는 처량하게도 어기적거린다.


**********


여자가 배시시 웃는다. 남자도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작별한지 5주 만에 그들은 다시 만났다. 한적한 대기실. 10명도 채 되지 않는 응시생. 모두 흰 가운에 흰 모자를 쓰고 있다.


“공부 많이 하셨어요?” 여자가 민망한 표정으로 묻는다. 남자는 고개를 젓는다.

“그쪽은요?” 여자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이번에는 다시 만나지 않기를 정말 바랐는데….”

“그러게요….” 남자는 조리 도구가 가득한 큰 가방을 여자의 맞은편 책상 밑에 놓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이제 몇 번째인가요?”

“일곱 번째요.” 여자는 남자의 귀에 최대한 바싹 다가가며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꽤 많이 떨어진 셈이네요.” 남자가 슬픈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그러게요.” 여자는 민망한 듯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시선을 돌린다.

“그래도 다시 보니 반갑네요.” 남자는 진심을 얘기했다.

“저도요.” 여자는 마음을 표현했다.


‘시험 끝나고 가까운 카페에서 차라도 한잔하는 건 어떨까요?’ 남자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사실 오늘 만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여자의 얼굴은 이렇게 표현했다.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일부러 오작(誤作)을 제출했다. 채를 썰어야 할 것을 편으로, 데쳐야 할 부분을 튀겨서 제출했다. 고명을 빼먹고, 훤히 알고 있는 요구사항을 지키지 않았다.


여자는 생각이 많고 손이 느렸다. 대부분 과제를 제시간에 제출하지 못하였다. 작품은 훌륭하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느림에 고마움을 느꼈다.


**********


남자는 앱에 뜬 ‘합격’이라는 표시에 눈을 의심했다.


“아 김일구 씨! 축하드립니다. 마침내 합격하셨군요. 사실 김일구 씨 제출작에는 약간의 오작이 있긴 있었지만, 조리사가 되고자 하는 그 열망을 우리 심사위원들이 높이 샀습니다.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가잖아요. 불합격한 기간만…”

“아, 네 그럼 혹시 조미연 씨는?”

“아, 네. 뭐 다른 분의 합격 여부를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 그분도 좋은 소식 받았을 겁니다. 시간은 조금 초과하였지만, 저희가 작품을 받았습니다. 뭐 아시다시피 그분도 워낙 열정적이신지라….”


남자는 천천히 자신의 핸드폰을 두려움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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