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장식처럼 매달려 들어갔던 별다방. 다방 문을 들어설 때부터 내 코를 자극하던 변두리 다방 특유의 퀴퀴한 냄새와 눈을 침침하게 했던 조명과 허름한 장식들, 특히 일 년 내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촌스런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것에 관한 기억은 일종의 향수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내가 입구에서부터 느꼈던 이 모든 어설픈 것들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보이려는 듯 뿌려댄, 요즘은 나오지도 않는 방향제 냄새와 실내를 채 탈출하지 못하고 갇혀버린 담배연기와 때마침 정각을 알리던 낡은 괘종시계 소리에 대한 모든 기억들은 소리와 냄새와 풍경에 대한 나의 편식을 아직도 적당히 무마시켜 주고 있으니 사소한 이득도 있는 셈이다. 그리고 트리 장식과 묘하게 어울리며 다방 안을 울려 퍼지던 루이 암스트롱의 LP판 노래와 그 모든 것들을 배경으로 서있던 여자, 미쓰리.
그녀를 처음 보았던 것은 도무지 내 곁을 쉬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짧은 머리와 싸구려 도색잡지에 관한 기억이 동반되는, 그러니까 적당한 반항과 호기심의 기질이 천지사방을 향해 들끓던 시절이었던 거다. 스물서넛이나 되었을까? 조금은 순진했고 필요한 만큼은 음흉하기도 했던 소년에게 풍선처럼 부풀어 있던 파마머리와 새빨간 립스틱은 너무나 압도적인 비주얼이었으니, 다소 천박하게도 보였지만 대신 싸움에도 능수능란할 것 같은 아우라로 인해 눈치를 보는 건 오히려 나였고 그녀는 무심할 정도의 사무적인 아니 다방적인 태도로 다가왔다. 아버지를 향해 너도 껌 주랴는 식으로 짝짝거리는 빨간 입. 뭐 드실래요? 어떠한 마음의 상태도 감지할 수 없는 일정하고도 나른한 목소리. 미쓰리의 첫마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팜므파탈의 그것이어서 오히려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특히 주인아줌마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다방 마담은 내가 그때까지 배운 욕이 학생용이라는 반증이라도 하듯 살벌한 실전용을 자주 틈틈이 미쓰리를 향해 기총소사식 발사를 했고 그녀는 그 욕을 다 먹어 가면서도 여전히 무덤덤했다. 선천성 무감각증후군일까, 난무하는 욕설이 깊은 속정의 또 다른 밀어라고 믿는 사람처럼 말이다. 내 주변을 지나면서 눈이 마주치자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장난기가 도는 얼굴로 하던 말, 에이 시팔 재수 없어 나 없으면 장사될 줄 아나. 껌을 짝짝거리면서도 말과 욕을 그렇게 빨갛게 하는 사람은 지금껏 보지 못했다. 며칠 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다시 그 동굴 같은 다방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거기 없었다. 재난영화처럼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내 뒤통수에 화살처럼 꽂히던 마담의 말들. 에그, 쌍년. 그래도 미쓰리 그 년이 일은 무던했는데. 어디 가서 또 그런 년 데려오나. 에그, 미친년, 나가 뒤질 년.(실은 혀 깨물고 배창시에 눈깔까지 인체의 신비전이 열렸지만 그걸 차마 어떻게 적겠는가)
그때 알았다. 그녀의 성이 분명한지는 모르겠지만 미쓰리라고 불렸다는 것, 그리고 떠났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도 삶이란 것의 일부인 듯 담담했던 사람들, 내 편협한 표주박 반쪽 같은 가슴이 얼어 갈 때마다 병풍처럼 등 뒤에 서서 '놀라지 마, 세상은 이런 측면도 있어' 라며 온기 아닌 온기를 보여주던 순간과 기억들. 그것들이 없었다면 내 삶은 딱 그만큼의 분량만큼 부족하지 않았을까. 나의 잣대는 지나치게 조악하고 작은 것이었으니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어 마땅하다. 그렇다. 아주 오래전에 어떤 날 미쓰리는 별다방을 떠났고 사계절 성탄 트리는 그대로였고 나는 심오한 욕의 세계에 대해 견문을 넓혔던 것이다. 그 후로 그녀의 근황 같은 것은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으며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소리와 냄새와 풍경을 따라 심심한 기억 하나가 남아 나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거짓말처럼 별다방 미스리라는 다방이 생긴 걸 보며 이거 껌 좀 씹으면서 로열티라도 징수해야 하나 싶은 싱거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성큼 세월이 지난 지금 홀로 옛날다방에서 미쓰리를 기억하며 다리를 꼬고 앉아 쓴맛 나는 커피를 마셔본다. 부디 오천 원어치 평화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