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y Aug 08. 2017

엄마표 여행 vs 아빠표 여행

알쓸신잡의 경주, 엄마가 하자는 대로 떠나보았습니다.

  몇 번의 글을 여러분들께서 즐겁게 구독해 주시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신경 써서 콘텐츠를 채워야겠다는 욕심이 부쩍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주변 분들께서 "도대체 여행은 언제 떠나는 거냐?", "실제 여행에서 아빠가 해야 할 것들은 언제 가르쳐 주는 거냐?"는 질문 반, 강요 반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지난주에 온 가족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럼, 이제 궁금해지시죠? 여행 베테랑 아빠는 그럼 어떻게 다녀왔을지 말입니다. 


드디어 떠나는 첫 여행(8/4~6), 어디로 목적지가 정해졌을까요?


  지난 글들을 통해 여러분들께 말씀드렸지만, 여행지 선정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어디를 정하든 결국 아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결정되게 되어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옆집 철수 엄마가 다녀온 그곳, 우리 애 회장 엄마가 그렇게 좋다던 그곳으로 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다른 좋은 곳이 있다면 감히 실례를 무릅쓰고, 마나님께 상신을 하여 볼 수는 있으나 고집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본전도 못 찾기 십상입니다)


3cm의 작은 크기, 내 모습 같아 (금강역사/국립경주박물관)


  와이프님께서는 금번 여행지를 알쓸신잡에 나왔던 '경주'를 가시겠다고 저에게 언질을 주시며, 아이의 역사공부를 위해 '경주'를 선택하였으니 빈틈없이 살피어 일정을 올려보라 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목숨을 내어 걸고, "전국이 폭염경보에 휩싸여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메시지가 11시마다 울려대는 요즈음, 뜨거운 햇살 아래 피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경주라니요. 더구나 경주는 대구에 맞먹을 만큼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당시 기온 36~39도), 봄에는 겹으로 벚꽃이 피고, 가을에는 불국사의 단풍이 흐드러지며, 겨울엔 동궁과 월지(구, 안압지)에 내린 눈이 정겹게도 포근한 곳이오나, 여름에만은 결코 가서는 아니되옵니다. 차마, 공주들의 옥체가 열사로 인하여 상할까 심히 염려되옵니다."라고 외람되게 고하였으나, 마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 또한 고심 끝에 아이들을 위해 내린 결정이니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님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까지 들를 테니 일정에 잘 반영하라는 수정 지시까지... (아, 이러고 살아야 하나?)


엄마표 여행 VS 아빠표 여행


  엄마가 여행지를 정하고, 아빠가 일정을 정한다거나 하는 역할은 실제로 나뉘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성향이 존재할 뿐이죠. 그렇지만, 제 글이 여러분 대다수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통계적으로 자신하는 편입니다. (예외가 존재한다는 말을 어렵게 썼습니다.) 어떤 가정은 엄마가 여행의 예산과 일정을 모두 관리하고, 아빠는 그저 운전기사 역할만 대충하면서 맥주 마시러 나갈 기회만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가정은 엄마는 아이들의 안전관리와 모니터링 요원 역할을 하고, 아빠는 여행 가이드와 통역사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죠.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 중에서 '본전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엄마'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본전을 뽑고 가야지',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다양한 경험을 시켜줘야 해, 이런 기회가 언제 온다고...'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엄마인 경우가 많다는 뜻이죠.

  그렇지만, 이걸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정말 아이들과 여행을 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이건 전적으로 아빠 탓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본전 생각을 안 할래야 할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엄마표 여행은 '고집스럽고 억척스럽게 아이들을 위해 내 한 몸을 바치는 여행'인 경우가 많고, 아빠표 여행은 '아이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집을 떠났지만, 나도 휴식하며 자신을 찾는 여행'인 경우가 많습니다. (에이~ 나는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은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잘하고 계신 겁니다. 존경해요! ) 

  그러니, 여행만 갔다 하면, 엄마와 아빠가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는 여기서 생기는 거죠. 여행의 가치관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가 뭐라하든 아이들은 V자 그리기 바쁘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봉하마을)

 그렇다면, 엄마표 여행과 아빠표 여행의 균형을 잘 맞추다 보면, 뭔가 합의점이 생길까요? 


  "아니, 김대리, 오늘따라 왜 이리 피곤해 보여? 주말에 뭐라도 했어?"

  "아, 과장님, 지난주에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좀 다녀왔습니다."

  "아이고, 고생했겠네, 오늘은 좀 쉬엄쉬엄하라고"


  언제쯤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은 이런 '힘든 의무'와 고된 일이 아니라 '행복한 경험'이 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걸까요? 그건 여행의 목적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않을 때 달성될 수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를 위한 여행을 떠날 때는 "이번 여행은 엄마, 아빠를 위한 여행이야!"라고 말하고 떠나세요.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는 행복할까?'라고 질문하는 여행이 되도록 해보세요.



피할 수 없는 경주, 그렇다면, 100% 설문으로 일정을 정해봅니다.


  결국, 마나님의 고집을 꺽지 못한 죄(?)로 목적지는 경주로 이미 결정되었고, 일정 수립에 앞서 고객님(와이프, 두 딸)들을 위한 사전 여행 설문을 실시했습니다. 왜냐하면, 여행코스를 수립할 때에는 절대 불만을 가질 수 없도록 100% 사전에 일정을 합의해야 하니까요. 


1) 김해 봉하마을은 경주와의 거리가 상당한데, 꼭 방문해야 할까요?  (네, 꼭 가고 싶습니다.)

2) 경주는 현재 기온이 35~39도를 육박, 상당히 더운데 괜찮을까요? (유적지가 많으니, 꼭 가야 합니다.)

3) 경주에서 박물관과 전시관을 방문할 때, 설명이 필요합니까? (아빠가 있는 이유가 뭡니까?)

4) 경주가 요즘 방 구하기 어렵습니다. 힐O호텔은 40만원이 넘어요. 한옥 스테이는 어떻습니까? (우린 호텔!)

5) 황리단길이 요즘 뜨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 맛집 탐방도 필요할까요? (8끼 이상 먹을 텐데, 무조건 갑시다)

6) 경주에는 블루O리조트, 캘리O니아비치 등 워터파크가 많은데, 더위 식힐 겸 하루 일정을 추가할까요?

    (따님 두 분 방방 뛰며 찬성, 엄마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한 마디에 일동 침울, 결국 취소)

7) 명주실을 직접 뽑아보고, 번데기도 먹을 수 있는 체험관이 있는데 가 볼까요? (그게 뭔가요? 절대 싫다며 첫째 따님 반발, 엄마가 가보고 결정하자며 설득, 나도 싫은데... ㅠㅠ)


이런 방식으로 설문을 마치고 아래와 같이 최종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1일) 출발 → 봉하마을 → 노무현 대통령님 묘소 → 경주 문무대왕릉 → 감은사지 → 경주 전통명주 전시관 → 대릉원 → 최영하빵(황남빵) → 동궁과 월지 (구, 안압지) → 호텔


2일) 석굴암 → 불국사 → 신라역사과학관 → 추억의 달동네 → 교촌마을 → 최부자 고택 → 분황사 → 천마총 → 황룡사지 → 국립경주박물관 → 포석정 → 경주 엑스포공원 → 호텔


3일) 구룡포 해수욕장 →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 포항 호미곶 해맞이 축제 → 복귀


  아니, '아빠, 여행을 부탁해'가 내세웠던 ① 하루에 2~3곳 이상은 방문하지 않도록 합니다. ② 아이가 힘들어할 만큼 멀리 떠나지 않습니다. 라는 내용이 무색해지는 강행군 코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건 OO투어 패키지 코스보다 빡센 일정) 그렇지만, 가장 큰 대 전제인 '와이프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진리'라는 문구를 가슴에 새기며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해님과 구름이 내기를 했습니다. 해님은 햇볕을 쨍쨍 내리쬐었지요. 나그네가 죽었어요.


 평일 출발이어서인지 고속도로는 한산한 편이었습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할 즈음이 되어서야, TV 화면에서 보았던 그곳이 실제로는 도시 근교의 작은 농촌마을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묘소도 소탈하니 정말 돌 하나만 남겨놓으라는 유언대로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벌써 점심, 첫끼부터 아이들은 '라면'을 사달라며 난리입니다. 그렇지만, 자동차 실외기 온도가 37도를 가리키는 더위에 염분 섭취가 필요하니 라면이라도 먹어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평일에도 참배객들이 많던데, 주말에는 주차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노대통령님 기존 사저는 5월에만 임시 개방을 했고, 9월에 다시 개방할 예정으로 현재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봉하마을에는 생태체험관과 기념품관 등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고, 추모관에서는 대통령님이 운전하시던 자전거부터 생전 영상들도 보실 수 있어요. 하여간, 대통령님께는 죄송한데요. 정말 더웠습니다.


 이제, 경주로 이동할 시간, 아빠의 작전이 발동될 타이밍이 왔습니다.


더위에 쓰러진 두 따님,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작전 개시 타이밍)


  자동차 안도 이미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상황이라, 아이들은 차에 타자마자 거의 실신하다시피 잠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첫날 코스를 돌아다니면, 열사병에 걸릴 확률 100%라며 와이프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갈이 아니라, 정말 경주는 더 더울 텐데 상상이 안되던 날씨였거든요) 그래서, 목적지를 급선회, 실내를 돌아볼 수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경주에 도착해서 시원한 실내를 몇 바퀴 돌고 나니, 기력이 다시 되살아난 아이들~~! (체력 충전 완료)

 경주박물관은 주차료나 입장료가 무료이며, 어린이 박물관이 있어서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다보탑과 석가탑의 복각품도 있고, 실제로 경주박물관만 제대로 섭렵한다면, 다른 유적지는 스쳐 지나간다 해도 역사 공부에는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전시가 되어있습니다. 

 

[ 여기서 아빠들을 위한 Tip ①, 역사를 가르치지 말고, 같이 공부해요 ]  

  역사 공부를 하게 되는 현장을 여행지에서 자주 마주치게 될 텐데요. 이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역사 소개가 되어있는 안내문과 책자를 읽게 하고, 퀴즈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진흥왕이 영토 확장을 하면서 세운 비석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런 걸 물어보는 건 절대 금지입니다. 그것보다는 "아니 여기 돌멩이에 뭐라고 써놓은 걸까? 궁금한데 아빠는 잘 모르겠네"라고 어슬렁대고 있으면, 아이들이 "아빠는 이것도 몰라, 진흥왕 순...수비래" 그럴 겁니다. "아, 진흥왕? 이 왕이 만든건가?"라는 정도로 맞장구 쳐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아빠를 가르치는 교사 역할을 하도록 칭찬해줍니다. 아이가 정 궁금해하는 것들은 도와주면서 '아이 주도 학습'을 하도록 하고, 절대 암기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무의식 중에 '역사'를 기피하도록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 경주박물관 관람할 때 알아두셔야 할 것 ]

 1) 성덕대왕신종을 예전에는 타종할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녹음된 소리를 20분 간격으로 틀어줍니다.

 2) 어린이 박물관에서는 탁본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종이를 데스크에서 제한적으로 나눠주는데요.

     눈치 보지 마시고, 많이 들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몇 장만 달라고 사정하면 잘 줍니다.

  3) 경주박물관의 동궁과 월지 전시관은 빼먹지 말고 들르세요. (암막새와 수막새가 뭔지 공부하고 가시면 좋습니다. - 정말 자주 등장하는 유물입니다. 박물관에서 굳이 암기를 시키시려면 이걸 암기시키시면 좋습니다. '아빠 대단해, 모르는게 없어'라고 칭찬 먹었어요.)

  4) 경주박물관은 대부분의 숙박장소가 있는 보문단지와 연결되는 관문 역할을 합니다. 건너편에 동궁과 월지(안압지)가 있고, 대릉원과 첨성대에서 멀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그 주변만 돌아보면 여행을 다 한 셈입니다.



어느새, 첫날밤이 찾아왔습니다.


  마나님께서 무려 8개의 코스를 탐방하시겠다며 시작한 첫날, 우리 가족은 겨우 2군데를 방문했지만 가슴 한 구석의 응어리도 풀었고, 머릿속은 신라에 대한 지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더위에 쓰러질까 봐 노심초사하다 보니 일정도 줄이고, 실내에 오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았죠. 여행의 목적은 뭐다? 아이의 행복이죠. 


월지향의 정식 3인분 상차림, 가격 대비 양이 적다 생각된 건 나 혼자 뿐인가?

  

  첫날밤은 경주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월지향"이라는 한식집을 찾아갔는데요. 아, 역시 네이버 검색을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네이버 검색으로 여행 계획을 짜면 안 된다는 글은 제가 다시 한 번 작정하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양은 양대로 적고, 주차공간 없고, 가격은 비싸고...  하여간,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답니다.

 

  둘째 날은 다음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여행지에서 아빠의 역할과 경주에 관한 팁도 이어서 전해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들을 위한 여행지 특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