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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Mar 03. 2020

23. 원점회귀

#23 - 1번 료젠지 ~ 다카마쓰 토요코인 호텔

주행거리 94.8km


새벽 네 시쯤 누군가 살그머니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갔다. 그 소리에 나도 깼지만 다른 이들을 방해할까 싶어 누운 채 시간을 보내다가 여섯 시 다 돼  일어났다. 누워있는 동안 어젯밤의 불쾌한 대화가 계속 되새김되었다. 순례의 마지막이 헝클어진 것 같았다.


길을 떠나야 하니 짐을 꾸리고 조용히 아침을 챙겨 먹었다. 저녁에 사 온 두부와 조금 남아있던 북어로 국을 끓여  밥을 말아먹었다. 스무 살 때 자취를 시작하는 내게 어머니가 전수해준 기본 요리 중 하나다. 물에 불린 북어채를 꼭 짠 뒤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찬물을 부으면 뽀얀 국물이 우러나온다. 가난한 자취생을 연명시킨 고마운 국이다.


7시 반경, 설거지를 끝낸 무렵 한둘씩 깨어 떠날 채비를 했다. 후지산 인근에서 왔다는 가와베 군. 나가노에서 온  다카하시 군은 자전거 순례를 거의 마쳐간다고 했다. 2010년 나가노에 있는 카미고지(上高地)에서 북알프스 야리가다케를 등반한 적이 있어 어쩐지 이 친구가 친근하게 여겨졌다.
이들 외에는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때문인지 대개들  늦잠을 잤다. 사토미 아다찌도 기척이 없어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주인장이 혐한 발언을 이어갈 때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침묵을 지켜 의중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대개의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을까. 혐한이든 강한 국가의 재건이든 개인의 문제에 몰두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았다. 물론 평화헌법 수호나 원전 반대에도 그 점은 마친가지인 것 같았다.

88 사찰순례를 마친 나의 자전거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와 1번 료젠지에 갔다. 순례를 통해 알 게 된 코보 대사께 순례를 마치고 돌아간다고 인사를 드렸다. 조금 감회가 복잡해서 절 앞 벤치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잠시 앉아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 투숙객 중 오카야마 출신  젊은 여성 아오이가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절로 올라왔다. 간밤에 주인장이 일장 연설을 할 때, 듣기 싫은 사람도 있으니 그만하라고 제지하던 친구다. 그의 자전거에는 ‘일본 일주중. 잘 곳을 찾고 있어요'라고 써붙여 놓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간밤의 일을 미안해하는 마음을 담겨있었다. 그의 자전거에 '곰 출현 주의' 스티커가 붙어있기에 재미있다고 했더니 홋카이도에서 붙였다며, 거긴 정말 곰이 나타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큭큭 웃으며 누구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냐? 사람이냐 곰이냐? 말하니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다카마쓰로 바로 돌아가기는 아쉬워 도쿠시마 시내 쪽으로  달려보았다. 갑자기 목표를 잃어버린 듯 허전했다.

도쿠시마 중앙공원까지 직선거리 10.3km. 도쿠시마 역과 중앙공원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 가족들에게 마지막 엽서를 썼다. 열 장 한 묶음 중 마지막 장이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이무렵 나와 불화하고 있던 당시 대학 1학년 큰 아이가 제일 많이 떠올랐다.
아와오도리(阿波踊り) 회관은 그냥 지나쳤다. 매년 8월 15일 이곳에서 세계 최대의 댄스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이들에게 8월 15일은 전쟁이 끝난 날이기도 하겠지만 8월 보름 명절 오봉도 양력으로 쇤다고 한다. 보름달 없는 양력의 한가위는 상상하기 어렵다. 박정희 정권이 이른바 구습을 타파한다며 음력설을 금지시켜 이른 새벽 차례를 지내고 등교하던 그 어수선한 기억이 떠올랐다.


도쿠시마 시내를 배회하다 보니 드물게 가톨릭 교회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한가해 보였다. 영어회화 강좌 등을 안내하는 게시물들. 일본에는 신구교를 합쳐도 기독교 신도가 1% 남짓이란다. 간밤에도 한국에는 기독교 신자가 많은 점이 화제가 됐다. 그들의 질문에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지만, '교육과 의료 등 선교사들이 조선에 근대를 전파한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답했다. 가톨릭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일, 목숨을 건 수많은 순교행렬의 그 마음을 나는 채 다 이해하지 못한다.


간밤의 기억이 자꾸 떠올라 마음은 여전히 착잡했다. 좀 더 모질게 대꾸하지 않은 게 후회가 되기도 하고 마음이 들끓었다. 한 달 가까이 절마다 들러 향을 사르고 반야심경을 독경하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실상 없는 것’이라고 되뇌며 고요해진 것 같던 마음이 일순간 휘저어진 느낌이었다.

여행에서 만났던  선량한 주민들. 이제까지 만나온 일본 생협의 양식 있는 시민들을 떠올렸다. 일본에도 다양한 흐름이 있겠지. 건강한 상식이 다수가 되기를 기원한다.

날도 뜨겁고 흥도 나지 않아 도쿠시마 관광은 포기하고 다카마쓰로 돌아가기로 했다. 루트 파인딩을 해보니,  GPS는 첫날 도쿠시마쪽으로 올 때 이용한 해안 도로가 아니라 산을 넘어 질러가는 42번 도로를 가리킨다. 이제 자전거로 산을 넘는 일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


12시 반,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기 전에 북도쿠시마 맥도날드 지점에 들어가 점심도 해결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생 모집 전단에 시급 800엔이라고 나와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시급은  5000 원 남짓. 빅맥 가격은 3600 원 정도로 비슷했다. 빅맥을 사는 데 몇 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지, '빅맥지수'로 각국의 구매력과 물가 수준을 비교한다던데, 한국은 소득은 낮고 물가는 비싼 나라가  되었다.

무엇인가 늘 쫓기는 심정.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무엇인가 미진한 게 남은 것 같은 강박. 이것은 나만의 병증일까. 각박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늘 우리에게 '각성'을 요구한다. '깨어서 살피는 것'은 노동과 경쟁에 임하는 태도가  아니라 내 마음, 스스로를 어루만지는 그 눈길이어야 할 텐데...


산길이 시작되는 초입에 '도이치촌'이 있었다. 1차 대전 당시 이 인근에 독일군 포로수용소가 있었다고 한다. 독일군이 왜 여기까지 와서 수용되었어야 했을까. 독일풍의 아이스크림과 기념품 등을 파는 휴게소인데 손님도 나 혼자뿐이었다. 따가운 볕, 작열하는 아스팔트, 가파른 고개를 견디며 오후 2시경 고개 정상에 도착했다. 다시 산 아래 저 멀리 파랗게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142번 도로로 산을 넘어 다시 해안가 11번 국도를 만났다. 도로는 뙤약볕에 하얗게 달궈져 있었다.

오후 4시. 다카마쓰까지는 아직 40 km미터가 남은 지점에서 호텔에 전화를 걸어 하루를 더 예약했다. 해 질 녘 드디어 다카마쓰가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캠핑장을 못 찾고 어둠이 내린 거리를 처량한 마음으로 방황하던 요시마. 어둠 속으로, 환하게 불 밝힌 차창 안에  무표정한 사람들을 싣고 달려가던 전차도 다시 만났다.

떠나기 전까지 이틀 밤 호텔도 예약했겠다 목표로 했던 순례도 마쳤겠다, 느긋해도 좋으련만 마음은 허전했다.

다카마스 시내로 진입하는 순간,  핸들바에 결착해둔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져 액정 디스플레이가 깨지고 전원도 들어오지 않았다. GPS, 사진과 글 저장매체, 집으로 연락하는 통신수단 등 거의 모든 편의를 의지하던 스마트폰이 그렇게 되고 나니 여간 허전하지 않았다.
 
밤 일곱 시가 다 돼 호텔에 도착했다. 낯익은 주차 관리 아저씨와 프런트의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역시 '순례자(헨로사마)'에게는 5% 할인, 이틀 연속 청소 없이 방을 이용하는 크린 프로그램까지 포함해 일박에 4500엔.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중심가 아케이드 상가를 구경했다. 대형마트 마루나가에서 6개들이 캔맥주와 반액 할인하는 초밥 도시락, 귤 등을 사서 방에 와 혼자만의 자축연을 벌였다. 며칠 동안 햇볕에 달궈진 몸이 좀처럼 식지 않아 화끈거렸다.

내일. 시코쿠에서 보내는 남은 하루. 가방을 모두 뗀 빈 자전거로 느긋하게 관광을 해야겠다.

그러나 핸드폰이 먹통이 되고 나니 검색도 여의치 않고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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