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소리가 가득한 밤의 마당

아프고 흔들릴 때 잠시 멈춰서는 법

by namoo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하면서

이것 보소, 남녀노소 좌우로 흔들어

소리 지르는 니가 (챔피언)

음악에 미치는 니가 (챔피언)

인생 즐기는 니가 (챔피언)

니가 (챔피언)"


비로 깨끗하게 씻긴 하늘에 유난히 밝은 달이 떠있고

첩첩 산들이 비에 젖어 더 푸릇한 산냄새가 더없이 향긋한 밤에 시골 마당에 서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가족들의 노랫소리. 대학교 1학년인 조카의 노래 실력이 많이 늘었다.


조카의 어린 시절 꿈은 래퍼였다. 장난기도 많고 흥도 많은 우리 가족은

가족들 앞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반강제로 조카에게 노래를 시켰었다.

변성기 목소리의 중학생의 랩 실력은 가수가 되기에는 아직 노력이 좀 더 필요해 보였지만,

웃음을 꾹 참고 모두 열렬히 호응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제법 잘 부른다.


몇 해 전에 부모님이 귀농을 하셨다.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로망대로 손수 집을 지으셨다.

비용을 절약하고 원하는 집을 짓겠다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돈은 생각보다 많이 들어갔고 아무래도 비전문가이다 보니 다 지어진 집이 조금 어설프다고 해야 하나.


그 어설픈 부분을 여러 방식으로 변형시키다 보니 아빠만의 '동굴'이 생겼다.

노래를 사랑하시는 아빠는 그 동굴에 노래방 기기, 마이크, 큰 스크린 화면을 가져다 놓으셨다.

손자 사위 아들 딸들이 모이면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노래잔치가 벌어진다.

그럴 때면 아빠는 직접 심고 거둔 과일이며 여러 가지 간식거리를 바지런히 준비해 주신다.


한 때 래퍼가 꿈이었던 대학생 조카는 깊고 늦은 밤까지 지치지 않고 흥을 제대로 방출한다.

주변에 다른 집들도 없어 이 '동굴'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해도 주변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

마당에 서서 가족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나는 듣는 귀가 발달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피아노를 처음 배웠는데 청음 시간이 있었다.

소리를 기억하고 어떤 음인지 맞추는 시간인데 제법 잘 맞췄다.

그때 잠깐 배웠던 실력으로 밴드에서 키보드 연주를 한 적이 있었는데,

연주할 곡의 키보드 부분을 악보 없이 듣고 그대로 흉내 냈어야 했는데 제법 해냈다.


듣는 것과 달리 노래는 잘 부르지 못한다. 절대 음감이지만 고음불가라고 해야 하나.

타고난 흥이 고음불가를 이긴다. 가족 노래방 예약 순서에 빠지지 않고 곡을 대기시킨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는 노래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귀가 불안정해서 작은 소음에도 이명이 크게 발생하고 머리가 왕왕대니 들어갈 수가 있나.

한쪽 귀의 청력이 거의 사라져서 밸런스도 안 맞고 음악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약속도 안 했는데 가족들은 번갈아 가며 마당으로 나온다.

안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를 평가하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농담도 하고 달이 이쁘다는 이야기도 하면서

내가 외롭지 않게 무심한 듯 세심하게 내 옆을 지켜준다.

가족 노랫소리를 BGM삼아 마당에서 서서 저녁 풍경을 즐기것도 괜찮네.


그렇지만... 솔직하게...

고막이 터지도록 노래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