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by 나무

생애 첫 깍두기를 담갔다. 오후 11시가 가까워진 시간, 마지막 설거지를 마치고 겨우 한숨 돌린다. 반찬통에 담아 다용도실에 내놓은 깍두기는 간이 잘 맞을까? 무 3분의 1쪽으로 만들어 그나마 몇 알 되지도 않는 것을 간 본다며 야금야금 집어먹고 있는 중이다. 하나 먹어보고 싱거워 액젓 한 스푼, 한 알 더 먹고 새우젓 두 스푼, 그러고도 영 싱거운 듯하여 굵은소금 반 스푼을 더 넣고는 “아, 몰라!” 하며 휘휘 저어 통에 담아 버렸다.


다 늦은 시간에 난데없이 깍두기를 담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며칠 전 텃밭에 모종을 심으러 갔다가 이웃에서 농사지으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항상 호박이며 시금치며 내 고랑에 없는 작물을 나누어 주시는데 그날은 쪽파를 뽑아 한 아름 안겨 주셨다. 얼결에 받아오긴 했지만, 그걸로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냉장실 야채 칸에 넣어둔채 이틀동안 외면하다가 이러다간 곧 망가질 것 같아 김치를 담가 보기로 했다. 마침 유명 모 개그우먼의 파김치가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어 맛이 궁금하기도 했던 참이었다. 그녀의 레시피대로 양파와 배, 마늘 등의 재료를 갈고 두루 섞어 양념을 만들고, 깨끗이 씻어놓은 쪽파에 쓱쓱 발라 주었다. 완성하고 나서는 자랑도 할 겸, 저녁 식탁에서 고기를 구워 곁들이니 맛이 제법 그럴듯하다. 다만 분량을 제대로 계량하지 못해 양념이 남아 버렸고 버리자니 아까워 오늘 무를 사다가 딱 남은 양념만큼만 깍두기를 담은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쪽파를 얻는 바람에 파김치에 더해 깍두기까지 만들었다. 요리를 좋아하면서도 김치류는 어쩐지 고수만의 영역인 듯하여 그간 시도하지 않았는데 엉겁결에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막상 하고 나니 맛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해냈다는 뿌듯함이 더 크다. 동서를 막론하고 ‘그냥 하라.’는 조언이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릴레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냉장고 안에 무 3분의 2쪽이 여전히 남아있다. 다음엔 말캉하고 달콤한 무 조림에 도전해 볼까? 고민할 것 없이,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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